[2015 올해의 인물] 세 父子가 연출한 ‘막장 드라마’
  • 감명국 기자 (kham@sisapress.com)
  • 승인 2015.12.24 18:27
  • 호수 13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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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그룹 경영권 둘러싸고 아버지와 아들 간, 형과 동생 간 소송과 비방 난무

2월9일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은 ‘올해의 인물’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를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매 연말이 되면 국내외의 여러 언론사와 단체에서 경쟁하듯이 ‘올해의 인물’을 발표하지만, 유독 타임의 선정 뉴스에 눈길이 가는 이유는 따로 있다. 올해의 인물 선정을 타임이 맨 처음 선보였기 때문이다. 1927년이니까 무려 88년이란 전통을 자랑한다. 12월14일, 타임에 이어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 역시 메르켈 총리를 올해의 인물로 발표했다. 그만큼 2015년 한 해 지구촌에서는 유럽으로 밀어닥친 ‘난민’들의 문제가 가장 큰 이슈였다.

‘한국의 타임’을 표방하며 1989년 창간, 한국을 대표하는 시사주간지로 자리매김한 시사저널은 창간 첫해부터 매년 12월 마지막 주 송년호 표지에 올해의 인물을 내세우고 있다. 올해로 26년째다. 올해는 유독 선정 과정이 난산(難産)이었다. 뚜렷하게 대두되는 인물이 없었던 데다, 긍정적인 인물보다는 부정적인 인물이 더 많이 거론된 탓이다. 그만큼 우리 사회의 어두웠던 현실을 대변한다. 지난해인 2014년에도 전국이 세월호의 아픔으로 뒤덮였는데, 올해 2015년 역시 국민들에게 희망적 메시지를 주는 데에는 정치·경제·사회·문화 모두가 실패했다.

ⓒ 일러스트 신춘성

물론 올해의 인물이 반드시 긍정적인 인물로만 가는 것은 아니다. 타임은 지난 1938년에 독재자 히틀러를 선정하기도 했고, 2007년에는 총리로 자리를 옮기는 꼼수를 발휘하며 장기 집권을 꾀한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표지에 내세우기도 했다. 시사저널 역시 최근 북한의 새 권력자 김정은을 두 번(2010·2013년)이나 올해의 인물로 선정한 바 있다. 올해의 인물은 대개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영향력과 관계 있는 것인데, 그 영향력이란 게 반드시 긍정적인 요소만 갖고 있는 건 아닌 탓이다. 존경과 기대도 있지만, 반면 아픔도 있고 비판과 조롱의 대상도 있다.

‘롯데가(家) 왕자의 난’으로 불리기도

그런 면에서 2015 올해의 인물로 선정된 ‘롯데가(家) 3부자’는 안타깝지만 전자보다는 후자 쪽이다. 국내를 대표하는 ‘5대 재벌’ 가운데 하나인 롯데그룹의 경영권을 둘러싸고 부자간·형제간에 보여준 이전투구는 가뜩이나 지쳐 있는 우리 국민들에게 또 하나의 실망감과 허탈함을 안겨줬다. 특히나 롯데 하면 백화점, 쇼핑센터, 제과, 프로야구 등 소비자들에게 친근한 이미지로 다가왔던 회사였던 탓에 그 배신감은 더 컸다.

한여름 무더위가 절정에 달하던 지난 7월28일, 국내 언론은 일제히 ‘신동주의 난 실패’ 뉴스를 긴급 타전했다. 롯데 창업주 신격호 총괄회장의 장남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이 경영권을 되찾기 위해 아버지를 등에 업고 동생에게 반격을 가했으나, 결과적으로 무위에 그쳤다는 것이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94세의 고령임에도 여전히 총괄회장직을 유지하고 있는, 롯데의 상징적 존재이자 절대적인 카리스마를 발휘하는 신 총괄회장이 퇴진하게 됐다는 것이었다. 차남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아버지를 명예회장으로 퇴진시키고 한국 롯데에 이어 사실상 일본 롯데의 경영권마저 모두 확보한, 확고한 그룹의 2대 총수로 자리매김하는 듯했다. 마치 조선 초기 이방원이 형제들을 죽이고 아버지(이성계)를 퇴진시킨 채 왕위를 차지했던 ‘왕자의 난’을 연상케 하며 ‘롯데가(家) 왕자의 난’으로 불리기도 했다.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이 10월16일 서울 중구 롯데호텔 34층 집무실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신 총괄회장 뒤에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이 서 있다. ⓒ 연합뉴스롯데그룹 신동빈 회장이 8월11일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경영권 분쟁과 관련해 대국민 사과를 하고 있다(오른쪽). ⓒ 시사저널 최준필

신 총괄회장 오락가락 행보로 더 큰 혼란

신 총괄회장의 장악력과 두 아들이 각각 일본 롯데와 한국 롯데를 나눠 경영하는 구도로 볼 때 롯데의 후계 구도는 사뭇 안정적인 것처럼 보였던 게 사실이다. 이런 구도에 이상 조짐이 일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인 2014년 말부터였다. 지난해 12월26일 신동주 전 부회장이 일본롯데그룹 부회장직에서 해임된 데 이어, 2015년 1월 일본 롯데홀딩스 이사직과 부회장직에서도 연이어 해임됐다. 사실상 경영 일선에서 완전히 쫓겨난 셈이다. 여기에는 신 총괄회장의 의지가 한몫했다. 2014년 말 일본에서 가진 한 모임에서 신 총괄회장은 “신 전 부회장이 (자신의) 허락 없이 (한국 롯데) 지분을 매입해 마치 롯데에 큰일이 일어난 것같이 외부에 비쳐졌다”며 “곧 모든 자리에서 내려오게 할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시사저널 1319호(1월27일자) “허락 없이 일 도모하는 건 배신…” 기사 참조>

하지만 6개월여 만에 반전이 일어났다. 아버지에 의해 해임된 장남 신동주 전 부회장이 아버지와 손을 잡았다. 6개월 전 장남에게 격노했던 신 총괄회장은 이번에는 차남 신동빈 회장과 각을 세웠다. 오락가락 행보를 보이는 신 총괄회장으로 인해 롯데는 물론, 국민들 모두 혼란에 빠졌다. 7월27일 신 총괄회장이 일본으로 건너가, 2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대표이사에 오른 차남 신동빈 회장과 신 회장 측 이사 6명의 해임을 시도한 것이다. 이는 장남 신동주 전 부회장이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불과 하루 만인 28일 신동빈 회장 측의 반격에 의해 신 총괄회장은 일본 롯데홀딩스 회장에서 전격 해임되고 자신과 이사들이 제자리를 되찾는 또 하나의 반전이 이뤄진 것이다.

이후부터는 그야말로 진흙탕 싸움 양상이었다. 신동주 전 부회장은 국내 언론사와 적극적으로 인터뷰를 가지면서 동생 신동빈 회장 해임은 아버지 신격호 총괄회장의 강력한 의지에 의한 것임을 거듭 강조했고, 7월31일에는 자신을 한국 롯데그룹 회장으로 임명한다는 아버지 직인이 찍힌 임명장과 육성을 공개하기도 했다. 당시 일본에 머무르던 신동빈 회장은 급거 귀국해 8월3일 “신 총괄회장의 해임지시서는 법적인 효력이 없다”고 일축했다. 이튿날 롯데그룹 37개 계열사 사장단은 신 회장 지지 선언을 했고, 8월17일 일본 롯데홀딩스 주총에서도 신 회장 지지를 확인하면서 일단 신 회장이 형의 난을 진압하고 왕좌를 지키는 모양새가 됐다.

롯데호텔 34층 장악 위한 형제간 이전투구

이때부터는 94세의 고령인 신격호 총괄회장을 둘러싼 쟁탈전이 시작됐다. 지난 10월8일 신동주 전 부회장은 기자회견을 열고 “신 총괄회장으로부터 법적 권한을 위임받았다”며 부친 친필 서명 위임장을 공개하고, 동생 신동빈 회장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그리고 10월14일 한·일 롯데그룹 지배구조의 정점에 있는 광윤사 주총을 열어 신동빈 회장을 이사직에서 해임시키고 자신이 새 대표이사로 취임했다. 신 전 부회장 측은 “이제 하려고 하는 전쟁의 시작일 뿐”이라는 말로 결연함을 나타내기도 했다.

아버지를 등에 업은 신동주 전 부회장은 더욱 거세게 몰아붙였다. 신 전 부회장 측은 “신 총괄회장이 신동빈 회장에게 자신의 집무실(롯데호텔 34층)에 배치된 직원 해산 및 CCTV 철거 등 6가지 요구 사항을 통보했다”며 “(신 회장 측이) 이에 불응할 경우 민·형사상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밝혔다. 롯데호텔 34층에 있는 신 총괄회장의 통제권을 놓고 형제가 싸우는 볼썽사나운 꼴이 연출된 것이다. 실제 신 전 부회장 측은 롯데호텔 34층을 장악하기도 했다. 그러자 신 회장 측은 “신 전 부회장 측이 34층에서 나가지 않으면 법적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맞받았다. 그리고 10월30일 신 회장 측은 신 전 부회장 측근 인사 2명을 명예훼손과 업무방해, 주거침입 등으로 고소했다.

롯데 안팎에서는 11월15일을 주목했다. 신 총괄회장의 93번째 생일날이었다. 이날 세 부자가 모두 한자리에 모인 것이다. 세 사람은 30여 분간 34층 집무실에 함께 있었다. 하지만 이날 회동에도 불구하고 사태는 오히려 악화일로를 치달았다. 롯데가의 법적 분쟁이 급기야 형사소송으로까지 번졌다. 신격호 총괄회장은 12월1일 신동빈 회장과 그 측근 임원 등 3명을 업무방해 및 재물은닉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소했다. 이번 소송 역시 신동주 전 부회장이 관여한 것으로 전해졌다. 신 회장 측은 “소송을 남발하는 신 전 부회장 측에 강력히 대응할 것”이라고 반발했다.

12월1일에는 가족 간 형사고소와 함께 또 하나의 추태가 연출됐다. 정말 갈 데까지 간 최악의 상황이었다. 신동주 전 부회장이 신격호 총괄회장과 함께 이날 오후 제2롯데월드타워 현장을 찾았는데, 롯데 측에서 신 총괄회장의 입장만 허락하고 신 전 부회장의 입장을 불허한 것이다. 결국 혼자 남게 된 신 전 부회장 측은 신 총괄회장을 기다렸으나, 한 시간 정도가 지나도 연락이 되지 않자 신 총괄회장이 롯데 측에 ‘납치’된 것으로 간주하고 경찰에 신고하는 촌극까지 벌였다.

소송전이 가열되면서 그동안 롯데 내에서는 금기시되던 신 총괄회장의 건강이상설도 제기되기 시작했다. 신동빈 회장 측은 12월2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공판에서 “신 총괄회장이 지난 7월 같은 질문을 4차례나 반복하는 등 판단 능력이 의심된다”는 내용을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자 또 난데없는 사진 한 장이 언론을 통해 공개됐다. 12월9일 갑자기 신 총괄회장이 자신의 집무실에서 조치훈 프로바둑기사와 만나 바둑을 두는 장면이 사진으로 등장한 것이다. 신동주 전 부회장 측에서 공개한 사진임은 물론이다. 동생 측이 제기한 건강이상설을 씻어내기 위한 의도인 셈이다. 유치찬란한 세 부자간 다툼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인내심도 이제 한계에 다다르고 있는 느낌이다.

 

 

‘올해의 인물’ 어떻게 선정했나  

시사저널은 1989년 창간 이후부터 매년 12월 마지막 주 발행되는 송년호에 ‘올해의 인물’을 선정·발표해왔다. 한 해 동안 가장 많은 화제에 올랐던 인물(단체·사물·사건)들을 대상으로 그 인물이 우리 사회에 갖는 긍정적·부정적 영향력과 의미 등을 평가한다. 올해 역시 예년과 마찬가지로 본지 편집국 기자들이 전체 10개 부문별 후보를 추천하고, 추천된 후보들을 대상으로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독자 온라인 투표를 실시했다. 이를 통해 2~3명으로 압축된 최종 후보자를 놓고 편집국 내부 토론 과정을 거쳐 올해의 인물과 나머지 9개 각 부문별 인물을 선정했다.

‘올해의 인물’로는 박근혜 대통령, 메르스와 싸운 사람들이 최종 후보에 올랐으나, 경영권을 둘러싼 재벌가의 치부를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낸 롯데가(家) 3부자에게 좀 더 많은 표가 모였다. 이 밖에도 경제 인물에서 카카오와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국제 인물에서 아웅산 수치 여사와 IS(이슬람국가)가, 과학 인물에서 김대식 KAIST 교수와 김빛내리 서울대 교수가, 최악 인물에서 IS와 국회가 막판까지 치열한 경합을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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