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올해의 인물] 감염 확산 막기 위해 현장에서 고군분투
  • 안성모 기자 (asm@sisapress.com)
  • 승인 2015.12.24 18:33
  • 호수 1367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메르스 사태 확산 방지 사투 벌인 사람들의 헌신

2015년 5월은 잔인했다. 이달 20일 보건복지부 질병관리본부는 중동 지역 바레인에 다녀온 68세 남성이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에 감염된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중동 국가를 중심으로 전파됐던 메르스 바이러스가 국내 환자에게서 발견되기는 처음이었다. 환자 상태가 위중하지 않다는 소식에 가슴을 쓸어내렸지만, 이는 이후 한국 사회를 일대 혼란에 빠뜨리게 만든 공포의 서막이었다.

참담한 현실이 여름을 지나 가을로 이어졌다. 마지막 환자가 사망한 11월25일까지 186명이 감염돼 이 중 38명이 목숨을 잃었다. 치사율이 20.4%에 달했다. 격리된 인원은 1만6000여 명에 이른다. 그만큼 메르스의 위력은 강력했고, 정부의 대응은 나약했다. 정부는 세월호 참사 때와 마찬가지로 초기 대응에 실패했다. 컨트롤타워의 부재로 인한 오락가락 갈지자 행보도 변함이 없었다.

6월4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병원 응급실 입구에 설치된 메르스 의심환자 격리센터에 의심환자가 들어가고 있다. ⓒ 시사저널 최준필

메르스 사태를 그나마 진정시킬 수 있었던 것은 현장에서 메르스와 사투(死鬪)를 벌였던 사람들의 헌신 덕이었다. 구급대원들은 감염의 위험을 무릅쓰고 환자들을 이송했다. 의사·간호사들도 제 몸 돌보지 않고 환자들의 치료에 전념했다. 밤잠을 설쳐가며 묵묵히 할 일을 해낸 이들 덕분에 메르스의 공포를 떨쳐낼 수 있었다. 시사저널이 ‘2015년 사회 분야 올해의 인물’로 ‘메르스와 싸운 사람들’을 선정한 이유다.

구급대와 의료진은 이중의 고통을 겪었다. 우선 자신도 감염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떨어야 했다. 초기에는 보호 장비조차 없었다. 바이러스 침투에 사실상 무방비상태였다. 보호 장비가 지급된 후에도 환자와의 접촉이 불안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또 보호 장비를 착용한 채 환자를 이송하고 치료하는 일은 평소보다 배는 더 힘들었다. 땀을 뻘뻘 흘리며 한여름 찜통더위와도 싸워야 했다.

메르스 교훈 철저히 되새겨야

한편으로는 ‘메르스 전파자’로 인식돼 자신은 물론 가족까지 주변으로부터 따가운 시선을 받았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메르스를 옮길지 모른다는 이유로 왕따를 당하기도 했다. 이로 인해 한동안 집에 들어가지 않은 채 스스로를 격리시키기는 경우도 많았다. 이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메르스 사태를 진정시킬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남았던 80번 환자가 숨지면서 메르스 사태는 사실상 종식됐다. 방역 당국은 위기 경보를 관심 단계로 하향 조정했다. 메르스 확산을 막기 위해 최일선에서 고군분투한 이들에게 다시 한 번 박수를 치며 감사의 인사를 전할 때다. 이와 함께 메르스 사태가 가져다준 교훈을 되새겨야 한다. 메르스와 같은 신종 감염병은 언제 또 터져 나올지 모른다. 그때마다 구급대와 의료진의 헌신을 바라고 희생을 요구할 수는 없다. 메르스 공포를 부추긴 것은 무능한 정부를 향한 불신이었다. 신뢰 회복을 위한 제도 개선이 철저히 이뤄져야 한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