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인과의 대화] “날 파출부 취급한 며느리 목 졸라 죽였다”
  • 배상훈 | 서울디지털대 경찰학과 교수 (프로파일러) (.)
  • 승인 2015.12.24 18:55
  • 호수 13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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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부’로 살아온 시어머니, 배 속에 손자 가진 며느리 살해

2013년 3월18일 밤 10시16분쯤 대구시 달서구 H빌라 거실에 B씨(34)가 숨져 있는 것을 남편 C씨(36)가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다른 방에는 B씨의 시어머니 A씨(57)가 쓰러져 있었다. 거실에는 빈 소주병 2개와 구토한 흔적, 시어머니 A씨가 손자의 도화지에 쓴 여러 장의 유서가 발견됐다. 유서에는 ‘며느리가 나를 멸시해왔다. 나 혼자 죽으려고 했는데, 내가 너 죽이고 같이 죽어야 한다’는 등의 내용이 쓰여 있었다. 회복된 A씨는 경찰 진술에서 “평소 며느리가 나를 무시해서 수건으로 목을 졸라 숨지게 했다. 그리고 나도 스스로 목을 졸라 목숨을 끊으려 했다”고 진술했다.

그런데 숨진 며느리 B씨는 배 속에 둘째 아이를 가진 상태였다. 다음 달 출산을 앞두고 있는 임신부였다. 평소 B씨는 시어머니 A씨와 아들 육아 문제를 두고 종종 갈등을 빚어왔다. 남편 C씨와는 2008년 결혼해 맞벌이 생활을 해왔다. 시댁과 1㎞ 정도 떨어진 아파트에서 살았다. 시어머니 A씨는 맞벌이하는 아들 부부를 대신해 유치원을 마친 후 돌아온 다섯 살배기 손자를 오후 4시부터 며느리 퇴근 전까지 1?2시간 돌봐왔다. 때문에 일을 마친 며느리는 아들을 데리러 매일같이 본가에 들렀다.

ⓒ 일러스트 오상민

시어머니 A씨는 유서에서 며느리에 대한 불만을 드러냈다. 예를 들면 “아들이 보는 데서 ‘텔레비전을 보지 마라’ ‘설거지를 제대로 못하니까 그냥 두라’는 등의 잔소리를 했다”고 밝혔다. 사건 후 A씨는 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는 동안 자해 소동을 벌이는 등 불안한 상태를 보였다고 한다. 이후 A씨는 만삭의 며느리를 숨지게 한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징역 20년, 항소심에서 징역 17년을 선고받았다. 법원은 살해의 주요 동기로 ‘황혼 육아’에 따른 갈등을 꼽았다. 시어머니가 며느리와 손녀가 될 8개월 된 태아에게 반인륜적 범죄를 저질렀기 때문에 중형을 선고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그녀가 종부(宗婦)로서 비참한 삶을 살아왔고, 또 손자 육아 과정에서 지속적으로 며느리에게 모욕감을 느껴왔다는 점을 감안하면 형량이 다소 과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재판을 한 지역이 보수 성향이 강한 TK(대구·경북) 지역이라는 점이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국민참여재판이나 다른 지역에서 재판이 이뤄졌다면 불우한 시어머니의 입장이 조금 더 반영됐을지도 모른다. 서구의 경우 며느리의 이러한 행동이 포괄적인 노인 학대라고 볼 수도 있다는 측면에서 훨씬 형량이 가벼웠을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당시 이런 점에 대한 고려는 거의 없었다. A씨의 우울증에 대해서도 심각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시어머니로서의 자존감 깔아뭉개져

재판부가 판단했듯이 사건 자체만으로 볼 때 시어머니는 만삭의 며느리를 잔혹하게 살해한 살인범이다. 그런데 오랜 기간 고통을 받아온 시어머니의 삶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살인이라는 죄는 용서받기 어렵지만 그녀의 삶도 참으로 가엽다는 생각을 떨치기 힘들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황혼 육아’ 속에 녹아 있는 우리 사회의 세대 문제와 노인 문제, 그리고 육아 문제다. 사건 속 시어머니는 손자 육아를 책임지고 있었는데, 다섯 살 난 손자의 어린이집이 시댁 앞 100m 거리에 있었다. 어린이집이 끝나는 오후 3~4시쯤부터 회사 경리인 며느리의 퇴근 시각까지 매일 그녀가 손자를 돌봤다.

며느리는 시어머니에게 아이를 맡기려고 시댁 가까이에 집을 얻었다. 어린이집도 마찬가지 문제다. 시어머니 입장에서는 사전에 동의를 구하지도 않고 마치 자신을 파출부 쓰듯 대했다고 생각했을 수 있다. 여기에다 며느리가 육아를 자기 방식으로만 고집하고 이를 강요했다고 여겼다고 한다. 전업주부인 시어머니를 무시한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갈등이 상당했다는 것이다. 보기에 따라서는 노인 학대로 간주될 여지도 있다. 실제 시어머니의 유서 내용을 보면 “내가 깨끗이 빨아 입힌 손자 옷을 며느리가 다시 세탁기에 넣었다. 열심히 청소를 했는데 며느리가 잔소리를 하며 다시 청소를 했다”고 적었다. 시어머니로서의 자존감을 며느리가 깔아뭉갰다는 것이다.

애지중지 키운 아들이었다. 시어머니는 그런 아들과 결혼한 며느리의 잔소리를 들었을 때 깊은 모욕감과 배신감 같은 것을 느꼈을 것이다. 그래서 A씨는 사건 당일 저녁 며느리가 먹을 국수에 수면제 두 알을 몰래 탔다. 그리고 며느리 B씨가 잠들자 스카프로 목을 졸라 살해했다. 범죄 행동을 분석해보면 ‘목을 졸라 살해하는 데 사용된 물건’에는 특별한 의미가 담겨 있다. 그녀에게 스카프는 일하는 여성, 사회생활을 하는 여성의 상징이었을 것이다. 실제 시어머니 A씨는 평생을 살아오면서 그런 화려한 스카프를 가질 수 없었다. 그녀에게 스카프는 전업주부로서의 삶을 살아온 자신과 사회생활을 하는 며느리를 극명하게 구분하는 상징적인 물건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상징적인 물건으로 며느리를 살해했다. 자신의 분노 감정을 고스란히 전달할 수 있는 방식, 즉 며느리를 앞에서 목을 졸라 살해한 것이다. 그녀는 며느리가 죽어가는 모습 속에서 자신을 죽이고 싶은 욕망을 표출했다. 목을 졸라 죽이는 순간 극도의 분노에 휩싸였다. 그 분노를 상대방이 알아줬으면 하는 마음으로 살해한 것이다. 죽은 사람은 하나가 아니라 둘이었다. 그녀는 며느리를 죽임으로써 자신의 불행한 삶도 마감하고 싶었을 것이다.

‘종부’로서 살아온 삶이 가져다준 우울증

시어머니 A씨가 그토록 죽이고 싶어 했던 자신의 모습은 무엇일까. 그녀는 ‘종부’였다. A씨는 8남매 가운데 맏이인 남편을 만나 종손 며느리로 살았다. 평생 종부로서 집안 제사 챙기랴, 남편 뒷바라지하랴, 거의 노예와 같은 삶을 살았다고 한다. 종손은 다칠까 봐 바깥일을 시키지 않는다. 사회 진출을 못하게 하고 오직 집안에만 머무르게 한다. 그래서 그 좌절감에 도박과 주색잡기에 빠지기도 한다. 아무런 경제적 능력 없이 살아가는 것이다. 그런 남편을 건사해야 하는 존재가 바로 종부다.

A씨 경우도 남편이 없는 게 아니다. 사실 남편은 젊은 여자와 딴살림을 차렸다고 한다. 그런데 종손·종부라는 지위로 인해 이혼도 못했다. 남편이 말아먹은 집안 살림을 책임지면서 힘겹게 아들을 키웠다. 문제는 역시 종손인 아들도 아버지의 행동을 답습했다는 것이다. 경제적 능력이 없었다. 집안 돈으로 휴대폰 대리점을 운영했는데 제대로 돈을 벌어오지 못했다고 한다. A씨의 고생은 끝이 없었다. 그런 자식을 어렵게 결혼시켰는데, 무능력한 아들을 대신해 며느리가 직장에 다녀야 했다. 결국 육아 부담은 자신에게로 향했다.

정신적으로 많이 아팠을 것이다. 구체적인 증세가 우울증으로 나타났다. 그녀는 22년간 우울증을 앓았다고 한다. 그 원인은 종부로 살아온 삶이었을 것이다. 유서 내용 중에 “나 혼자 죽으려고 했는데 너를 죽이고 죽겠다”라는 대목이 나오는데, 여기서 ‘너’는 중의적 표현으로 볼 수 있다. 며느리를 지칭하기도 하지만 자기 자신, 혹은 자신을 이 지경까지 이르게 만든 방관자인 남편과 아들을 포함하는 의미였을 것이다. 그리고 며느리 배 속의 태아 역시 그녀의 선택에 한몫을 했을 수 있다. 자신을 억압하는 또 하나의 존재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녀가 손자 앞에서 며느리를 죽인 것도 어쩌면 그런 장면을 생각하고 행동한 것일 가능성이 있다. 종부로서 남편·아들 때문에 고생하고 희생한 A씨의 내면은 종손인 손자의 존재도 받아들이기 힘들었을 것이다. 만약 손자가 아닌 손녀였다면 다른 판단을 했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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