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인생 망가뜨리는 잔인한 희망퇴직
  • 유창선 | 시사 평론가 (.)
  • 승인 2015.12.24 18:56
  • 호수 13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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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입사원까지 구조조정에 내몬 두산인프라코어 우리 사회 기업윤리 되묻게 해

‘사람이 미래다.’ 두산그룹의 이미지를 홍보하는 광고 카피다. 그런데 이 그룹 계열사인 두산인프라코어에서 사람이 미래인 것은 고사하고, 사람 취급조차 받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 회사는 최근 구조조정에 나서면서 올해 입사한 1년 차 20대 직원들까지도 퇴직 대상으로 삼았던 사실이 알려졌다. 이 회사의 희망퇴직은 올해 들어 벌써 네 번째로, 이번에는 사무직 직원 3000명 전원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실시하겠다고 발표한 것인데, 특히 올해 1월부터 출근한 1년 차 신입사원들도 그 대상으로 삼아 사람들을 경악하게 만들었다. 실제로 1~2년 차 88명 가운데 28명, 그러니까 31.8%의 신입사원이 울며 겨자 먹기로 희망퇴직을 신청한 것으로 파악됐다. 사회적 비난여론이 확산되자 박용만 두산그룹 회장은 1~2년 차 신입사원은 제외하라고 지시했고, 그에 따라 신입사원들은 일단 희망퇴직에서 제외되었다. 하지만 3년 차부터는 당초 계획대로 희망퇴직이 진행된다고 한다.

‘사람이 미래다’라는 카피를 내세운 두산그룹 홍보 광고.

경영자의 판단 실패가 오늘의 위기 초래

참으로 잔인한 일이었다. 물론 구조조정을 위한 희망퇴직은 두산인프라코어뿐 아니라 다른 대기업들에서도 진행되고 있다. 실적 악화에 따라 조선과 중공업 부문에서 시작된 대기업들의 감원 칼바람은 전자와 자동차 등 전 방위적으로 확산되면서 추운 겨울을 더 얼어붙게 만들고 있다. 빚더미 때문에 경영상의 어려움이 심각한 두산인프라코어가 인력 감축을 위해 희망퇴직을 하는 것 자체를 뭐라 할 일은 아니다. 하지만 사람을 내보내는 데도 지켜야 할 선은 있는 것 아니겠는가. 생각해보자. 이 취업대란의 현실에서 간신히 입사해 막 일을 시작한 신입사원들을 나가게 만들면 그들의 인생은 어떻게 하란 말인가. 차라리 채용을 하지 않았더라면 다른 직장을 계속 구했을 텐데, 이제 와서 퇴직하고 나면 다른 곳에 취업을 하는 것도 기대하기 어렵다. 사회 초년병들을 낭떠러지 아래로 밀어내는 행위다.

이 회사가 1~2년 차에 대한 희망퇴직은 철회하지만 3년 차부터는 그대로 진행한다는데, 사실 입사한 지 몇 년 안 된 그들도 마찬가지다. 나이 서른 전후 결혼 적령기의 직원들을 퇴직하게 만들면, 그들은 정말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다. 결혼을 한 사람은 가정의 모든 설계가 깨지는 아픔을 겪을 것이고, 결혼을 앞둔 사람은 결혼까지도 미루어야 할 상황이 되기 십상이다. 나이 서른이 되면 이미 다른 곳에 원서를 내기도 어려운 실정임은 세상이 다 아는 일이다. 그런 식으로 사람을 채용하고 나서 파리 목숨처럼 몇 년도 안 되어 나가라고 할 것이었으면 차라리 채용이나 하지 말 것이지, 이 무슨 잔인한 짓이란 말인가. 다른 무엇을 떠나, 인간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이 회사가 비난받을 일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임신 3개월 된 여성, 출산휴가를 두 달 앞둔 여성, 사내 부부 중 여성, 결혼 3주 차 사원 등이 희망퇴직을 권고받았다고 한다. 퇴직을 거부한 기술직 직원들에게는 대기발령을 내리고 노무교육을 진행하면서 휴대폰 사용 금지, 회고록 작성 등을 강요한 것도 언론 보도를 통해 드러났다. 그런가 하면 두산인프라코어에 재직 중이던 일부 임원 자녀들은 감원의 칼바람을 피해 두산중공업, 두산 면세사업 관련 팀 등 두산그룹 내 유망 계열사로 이직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래서 인력 구조조정에도 ‘금수저’ ‘흙수저’가 따로 있다는 분노의 항의가 터져 나왔다. 기업윤리의 총체적 부재다.

오너 일가, 매년 수십억대 배당금 챙겨

사실 두산인프라코어가 지금 같은 경영난에 처하게 된 것은 전적으로 경영상의 실패에 기인한 것이었다. 특히 인수를 통한 무리한 기업 확장이 오늘의 경영난을 부른 중요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미국 건설기계업체 ‘밥캣’ 인수였다. 두산은 지난 2007년 밥캣을 인수하면서 약 49억 달러, 지금 돈으로 약 5조7000억원이 넘는 돈을 투입했으나 그 직후 금융위기 여파로 엄청난 적자를 내고 그룹 전체에까지 타격을 주면서 만성적인 유동성 위기를 겪었다. 결국 경영자의 판단 실패가 오늘 두산의 위기를 초래한 셈이다. 그런데도 그 실패의 책임은 죄 없는 직원들에게만 전가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두산인프라코어의 행태가 참 나쁘게 보이는 것은 신입사원들에게는 가혹한 희생을 강요하면서 정작 오너 일가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부(富)를 이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두산그룹 지주회사인 ㈜두산 지분의 44.05%를 오너 일가가 보유하고 있다. 박용만 회장, 박 회장의 큰형인 박용곤 명예회장의 아들 박정원 두산건설 회장, 박지원 두산중공업 부회장은 4% 이상의 지분을 보유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두산은 순이익 대비 매우 높은 배당을 통해 지난해에만 박용만 회장에게 45억원, 박정원 회장에게 70억원, 박지원 부회장에게 45억원가량을 배당한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게다가 최근 정부로부터 특허권을 획득한 면세점 사업도 오너 일가의 지분율이 높은 ㈜두산이 맡고 있다. 역시 황금알을 낳는 사업이다. 경영이 어렵다고 직원들을 내보내는 와중에도 재벌 일가는 이렇게 열심히 부를 쌓고 이익을 챙기고 있는 것이다. 윤리적으로 옳지 못하다.

두산인프라코어는 야구단 두산 베어스의 선수 헬맷에 기업 로고를 다는 ‘스포츠 마케팅’ 계약으로 올해 7월부터 3개월간 66억원을 지불했다고 한다. 또 올해 두산그룹의 연수원과 연구단지로 사용할 부지 매입을 위해 수백억 원을 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호황을 누릴 때라면 모르겠지만, 당장이라도 망할 것처럼 직원들을 내보내는 기업의 모습과는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그런 돈들을 아껴서 신입사원들만큼은 감원 대상에서 제외할 생각을 하는 것이, 사람이 미래라고 외치던 기업의 모습이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렇지 않아도 힘든 젊은이들이다. 위로하고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그들의 가슴에 못을 박는 일을 해서야 되겠는가. 그냥 앉아서 다 같이 죽는 길을 고집하는 것은 물론 어리석은 일이다. 하지만 나는 살 테니 너희들만 죽으라는 것은, 나이 더 먹은 어른들이 앞길이 구만리 같은 젊은이들에게 할 일이 아니다. 쇼펜하우어는 동고(同苦, Mitleid)의 사상을 통해 고통의 윤리학을 제시하고 있다. ‘동고’라는 말은 타인의 고통을 함께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선한 사람은 남의 고통을 그 자신의 고통처럼 아주 가깝게 느낀다. 그 때문에 그는 남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자신의 풍요를 단념하고 궁핍을 감수한다. 반대로 이기주의자들은 모든 희망이 자신의 안녕을 토대로 한다. 오늘 우리 기업인들은 어떠한가. 나의 풍요는 지키면서 쉬운 퇴직, 쉬운 해고로 일하는 사람들에게만 어려움을 떠넘기는 편한 이기주의자가 되고 있지는 않은가. 두산인프라코어는 오늘 우리 사회에서의 기업윤리를 되묻게 하고 있다. 어디 그 회사만의 일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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