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들 기약 없이 기다리는데 송파구 돌연 삼표
  • 송응철 기자 (sec@sisapress.com)
  • 승인 2015.12.24 18:58
  • 호수 13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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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치기 보상’ 풍남동 토지 보상 문제 두고 주민들 집

서울시 송파구 풍납동 주민들이 문화재보호구역 지정으로 벙어리 냉가슴을 앓고 있다. 예산 부족으로 보상 및 발굴 작업이 지연되면서 막대한 재산상 피해를 보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최근 송파구가 삼표의 레미콘공장 부지를 우선적으로 보상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보상을 기다리고 있는 주민들이 술렁이고 있다. 일각에서는 송파구가 삼표에 특혜를 주는 것 아니냐는 의혹마저 나오고 있다. 삼표는 오히려 자신들이 피해자라는 입장이다. 자신들의 부지를 강제로 보상 대상에 포함시키면서 공장 사용이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여기에 송파구는 정당한 보상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고 반박하고 있다.

ⓒ 시사저널 박은숙

문화재 발굴 및 보상 절차 지지부진

풍납동이 처음 문화재보호구역으로 지정된 건 1963년, 백제 풍납토성의 잔재가 발견되면서다. 하지만 발굴은 이뤄지지 않았고, 여느 지역과 마찬가지로 개발이 이뤄졌다. 그러나 1997년 풍납동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유물이 발견되면서 상황은 바뀌었다. 이후 정부는 문화재 발굴을 이유로 주민들의 부동산을 연차적 협의 보상을 통해 매입하며 발굴 조사를 시작했다. 이후 2001년부터 풍납토성 안쪽 주택지 전체가 문화재구역으로 지정됐고, 2009년부터는 ‘풍납토성 보존·관리 및 활용 기본계획’에 따라 6개 권역으로 나뉘어 관리되고 있다. 1권역은 이미 문화재 발굴이 끝난 지역이고, 4·5·6권역은 문화재 존재 가능성이 작거나 훼손됐을 것으로 판단되는 곳이다. 정부는 이후 매장 문화재 유존 가능성이 클 것으로 추정되는 2·3권역을 주민들의 신청 순서에 따라 협의 보상 절차를 거쳐 매입해왔다.

그러나 문화재 발굴과 보상 절차가 지지부진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예산이 턱없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그사이 풍납동 주민들의 권익은 방치되다시피 했다. 개발이나 증·개축이 제한돼 정상적인 부동산 거래가 이뤄지지 못하면서 주택은 점점 노후화됐고, 상가를 비롯한 각종 생활·편의시설들이 차례로 빠져나가면서 풍납동 전체가 크게 낙후됐다. 그러다 보니 부동산 가격 상승률이 주변에 비해 낮은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실제 풍납동은 2002년까지만 해도 잠실권역에 속해 상당한 지가 상승이 기대되던 지역이었다. 그러나 문화재보호구역으로 지정된 이후 감정가 기준으로 주변의 송파구 방이동과 강동구 성내·천호동이 평균 347% 상승한 반면, 풍납동은 250% 오르는 데 그쳤다. 97%포인트나 차이가 벌어진 셈이다.

보상금도 인근 지역 주택 시세에 비해 적다. 주민들에 따르면, 잠실동의 주택 매매가가 평당 3000만원인 반면, 풍납동의 보상금은 1700만~1800만원 선이다. 문화재보호법 및 ‘공익 사업을 위한 토지 등 취득 및 보상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손실 보상 절차는 협의와 수용 단계로 이뤄진다. 그러나 사실상 협의는 진행되지 않고 있다. 송파구가 제시한 금액을 거부하면 보상 순위가 가장 뒤로 밀리기 때문이다. 현재 보상을 기다리는 신청 가구는 700여 가구 안팎이다. 한 해 보상을 받는 가구가 30~50곳에 불과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최소 14년을 다시 기다려야 한다는 얘기다. 따라서 주민들은 송파구의 보상금액을 수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아니면 보상금보다 낮은 금액을 받고 부동산을 매각하는 길밖에 없다.

이런 가운데 송파구가 11월11일 사업인정고시에 삼표의 풍납동 레미콘공장 부지를 유일하게 올리면서 주민들 사이에 반발이 일고 있다. 해당 부지 매입을 위한 비용은 700억원 안팎이다. 송파구가 내년 보상과 문화재 발굴 및 관리 비용으로 조성한 570억원을 크게 웃도는 규모다. 그만큼 주민들의 보상은 미뤄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문제는 삼표 레미콘공장 부지를 우선적으로 보상해야 할 합리적인 근거가 전혀 없다는 데 있다.

주민들 사이에선 오히려 삼표 공장은 후순위로 밀려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주민들이 레미콘공장의 토지조사를 한 결과, 10m가량의 파일이 지하에 박혀 있어 문화재가 심각하게 훼손돼 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실제 풍납동 일대의 아파트 단지는 4권역으로 분류돼 보상 대상이 아니다. 아파트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문화재가 이미 소실됐을 것이라는 판단이 반영된 결과다. 주민들로 구성된 ‘풍납동 사적지 및 환경 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 측은 “삼표 공장 부지에 대한 우선적인 보상은 조속히 수용 절차를 통해 보상금을 받기를 희망하고 있는 다수의 주민들의 의사를 무시하는 처사이자 형평성에 어긋난 결정”이라고 비판했다. 대책위는 또 “송파구는 앞서 삼표의 부지를 매입해놓고도 문화재 복원 사업이라는 원래 목적과는 달리 주차장 등의 용도로 사용하고 있다”며 “이번 송파구의 결정은 부동산 가격 하락을 이유로 삼표 레미콘공장을 이전시켜달라는 일부 주민들의 민원을 수용한 결과가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은 자신들의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소송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일부 주민들 사이에선 송파구가 삼표에 특혜를 주고 있다는 의혹마저 나오고 있다. 그러나 삼표는 오히려 자신들도 피해자라는 입장이다. 부지가 수용될 경우 삼표는 더 이상 공장을 가동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삼표는 송파구에 공장시설 보상, 대체부지 확보, 영업권 보장 등 공장 폐쇄에 따른 여러 요구를 했지만 이를 전혀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때문에 삼표는 공장 폐쇄에 따른 막대한 피해를 전적으로 부담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현재 삼표는 송파구를 상대로 자사의 레미콘공장 부지를 사업인정고시에서 제외해달라는 취지의 행정소송을 준비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서울 송파구 풍납동 주민들로 구성된 ‘풍납동 사적지 및 환경 대책위원회’가 내건 플래카드.

송파구 “계획에 따른 정상적인 수용 절차”

송파구는 정상적인 수용 절차를 밟고 있다는 입장이다. 송파구에 따르면, 삼표 레미콘공장은 성벽 터로 2권역으로 분류돼 문화재 발굴에 중요한 위치다. 여기에 개별 보상 신청자들과 달리 부지가 넓어 송파구 직권으로 강제수용 절차를 밟게 됐다는 설명이다. 송파구 관계자는 “삼표 레미콘공장 부지는 이미 2003년부터 보상을 진행해 이미 전체 부지의 64%가량을 수용했음에도 계속해서 공장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해줬다”며 “그동안 보상만 완료되면 풍납동을 떠나겠다는 입장을 지켜왔지만 2014년부터 갑자기 부지 수용을 거부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또 주민들의 민원에 따라 수용 결정을 내린 것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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