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열전]⑥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부자 3대 못간다' 우려 불식 과제
  • 박성의 기자 (sincerity@sisapress.com)
  • 승인 2015.12.28 17:57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경영능력 입증사례 전무하다는 비판나와...제네시스 성공 여부 관건
사진=현대차, 그래픽=시사비즈

중국 격언에 '기업 부자 3대를 못간다(富不過三代)'는 말이 있다. 기업 세습은 '1대 창업, 2대 수성, 3대 폐업' 의 흥망성쇄로 이어진다는 교훈이 담겼다.

중국 속담대로라면 국내 대기업 다수가 ‘폐업’ 수순에 와있다. 한국 재벌의 기형적인 세습구조는 어느덧 삼성가(家)와 현대가(家) 전통이 됐다. 이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병환으로 누운 이건희 삼성 회장을 대신에 경영 일선에 뛰어든 상태다.

재계가 주목하는 신흥 황태자는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이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이 건재하지만 어느덧 여든에 접어들었다. 정 부회장이 정 회장을 이어 고(故) 정주영 전 현대그룹 명예회장으로부터 이어진 현대차 유산을 수성할 수 있을지 이목이 쏠린다.

일각에서는 정 부회장이 경영 능력을 입증한 사례가 전무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실제 정 부회장은 재벌3세 특유의 비단길을 걸어왔다. 1993년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1997년 미국 샌프란시스코대 경영대학원에서 MBA를 마쳤다. 그 뒤 일본 무역회사인 이토추상사 뉴욕지사를 거쳐 1999년 12월 현대자동차 구매담당 이사로 입사했다.

입사와 동시에 이사 자리를 꿰찬 ‘어린 황태자’를 향한 시선이 곱지만은 않았다. 입사 1년4개월 만에 상무로, 2002년 국내 영업본부 부본부장을 거쳐 이듬해 부사장으로 초고속 승진하자 임직원 사이에서 “어린 아들이 현대차 전통을 이을 수 있겠냐“는 괄시가 번졌다.

현대차그룹 계열사 사장 출신으로 내부 사정에 능통한 P씨는 “정몽구 회장은 특유의 묵직한 리더십을 자랑했다. 투박하더라도 말 한마디로 조직을 제압하는 스타일이었다”며 “그에 반해 당시 정 부회장은 아버지보다 섬세하고 조용했다. 나이가 많은 간부들로서는 ‘풋내기’로 보일 수밖에 없었다”고 전했다.

설익은 재벌3세라는 꼬리표를 떼내기 위해 정 부회장이 선택한 방법은 ‘현대가(家) 스러운’ 정면 돌파였다. 출근시간은 매일 아침 7시 이전으로 정했다. 일주일에 한번은 국내 공장을 방문, 근로자들과 식사하며 현장 목소리를 들었다.

정 부회장이 개발을 총괄한 기아차 모닝과 모하비가 호실적을 보이자, 그제야 현대차 내부에서 “정씨 일가 피가 어디 안 갔다”라는 목소리가 나왔다.

문제는 정 부회장의 기업 장악력이다. 지금까지 현대차는 정주영 명예회장, 정몽구 회장 특유의 ‘뚝심 경영’ 녹을 먹고 컸다. 2013년 미국 수출을 앞두고 있던 기아차 오피러스를 정 회장이 직접 타본 뒤 "엔진 소음 없애라"고 지시하자 출시일이 40여일 미뤄진 것은 유명한 일화다.

재계 안팎에서는 정 부회장이 정 회장과 같은 통솔력을 보일 수 있을지 의문을 표한다. 고생 한번 하지 않은 젊은 경영인(CEO)이 직원수만 6만5000명이 넘는 그룹사를 지배할 수 있겠느냐는 질문이다. 이에 대해 현대차 내부관계자는 사내 간부들은 정 부회장에 대한 믿음이 확고하다고 선을 긋는다.

익명을 요구한 현대차 관계자는 “정 부회장이 나이가 어리지만 사실이지만 이미 기아차 사장을 역임한 바 있다. 당시 경영능력에 대한 물음표는 지웠다고 생각한다”며 “미래 자동차 산업에 대한 통찰력도 뛰어난 편”이라고 평가했다.

정 부회장이 넘어야 할 산은 이 뿐만이 아니다. 핵심 계열사의 지분 문제도 걸림돌이다. 정 부회장은 현대글로비스와 현대엠코의 대주주지만, 현대·기아차와 현대모비스 지분이 미미하다.

정 부회장은 9월 현대중공업이 보유한 현대차 주식 316만4550주(1.44%)를 약 5000억원에 매입했다. 지난달에는 현대차 보통주 184만6150주(지분율 0.65%)를 현대삼호중공업으로부터 시간외매매로 취득했다. 이를 통해 정 부회장의 현대차 지분은 1.11%에서 1.76%까지 늘었다. 정 회장 현대차 지분율은 3.99%다.

정 부회장이 지분 문제를 해결한다고 해도 외부시선이 곱지만은 않다. ‘정(鄭)’씨 피를 물려받았다는 이유로 주식을 몰아주는 행태가, 현대차 발전에 도움이 되냐는 물음표가 붙는다. 이에 현대차는 정 부회장이 주도한 현대차 고급브랜드 제네시스 성공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세계 고급차 시장이 연간 10%를 넘기는 상황에서, 제네시스가 무너진다면 현대차 사운이 흔들릴 수 있다. 재벌3세 경영의 한계가 드러난다면 대내외 신뢰도 하락은 필연이다. 글로벌 자동차 업계를 선도하겠다는 포부는 거품이 될 수 있다.

현대차 측은 정 회장이 건재한 상황에서 정 부회장에 대한 섣부른 판단은 이르다고 주장하고 있다. 실제 정 회장은 한전 부지 매입에 과감히 10조원을 투자하는 등 경영 일선에서 활약하고 있다.

중국 최대 정보기술(IT) 기업 화웨이의 런정페이 총재는 가족에게 절대 경영권을 넘겨주지 않겠다고 선포했다. 회사 경영권을 누구에게 맡길 것인지는 어떤 경영행위보다 중요한 사안이란 말을 덧붙였다. 그룹 내 유능한 경영인을 검증을 거쳐 후계자를 선발하겠다는 계획이다.

현대차 올해 3분기 영업이익은 1조5039억원이다. 2010년 4분기 이후 5년만에 최저치다. 환율변동과 판매비용 증가가 원인이라지만 그렇다고 내년 판매 전망이 그리 밝은 것도 아니다. 미국은 금리를 올렸고, 신흥국 경기는 바닥을 쳤다. 격화되는 글로벌 자동차 시장에서 정 부회장이 중국 격언을 뒤집을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프로필

 

정의선

아버지 정몽구, 어머니 이정화, 할아버지 정주영, 누나 정성이, 정명이, 정윤이

1970년 서울 생

1993년 고려대 경영학과 졸업

1997년 미국 샌프란시스코대 경영대학원 졸업

1999년 현대자동차 구매실장

2005~2009년 기아자동차 대표이사 사장

2009~현재 현대자동차 기획 및 영업담당 부회장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