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열전]⑦ 38년 외길 걸어온 박진수 LG화학 부회장, 세찬 바람 앞에 놓이다
  • 송준영 기자 (song@sisapress.com)
  • 승인 2015.12.30 09:20
  • 호수 13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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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확실한 경영상황···부드러움과 냉철한 판단력 '시험대'에

#1 "제비 한 마리 왔다고 봄이 오겠는가. 좀 더 두고 봐야 한다."  6월 22일 한국화학산업협의회 회의에 참석 후.

#2 “아침 해가 온종일 계속되진 않는다. 밤을 밝힐 등불을 준비하라.”  7월 20일 2분기 실적 발표 후 나주 공장 방문해서.

#3 “파도가 무섭다고 뱃머리를 돌렸다가는 전복의 위험을 맞게 된다. 파도에 흔들리지 않는 가장 좋은 방법은 속도를 높여 정면으로 돌파하는 것이고, 차별화된 경쟁력과 도전 정신으로 남보다 먼저 파도를 넘었을 때 위기는 기회로 바뀌게 된다.” 새해 첫 현장 경영으로 방문한 여수공장에서.

박진수 LG화학 부회장의 언어에는 비유적 표현들이 자주 등장한다. 구체적이고 직설적으로 말하기보다 부드러운 언어로 현상을 짚는다. 우회적이나 핵심을 파고든다. 그의 경영 방식도 이와 비슷하다.

임직원을 대할 땐 부드러움을 앞세운다. 박 부회장은 진급한 직원들에게는 일일이 휴대폰 축하 문자나 이메일을 작성해서 보내기로 유명하다. 생산 현장에서는 마주치는 직원에게 꼭 악수를 청한다. 올해 초 LG화학 여수 공장을 방문할 때는 40여개 부서 임직원과 모두 악수하고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이는 인재를 중요하게 여기는 그의 철학과 맞닿는다. 박 부회장은 “내 사전에는 고객과 인재 딱 두 개의 단어만 있다”고 했다. 천리마를 발굴해냈던 주나라의 백락처럼 숨겨진 인재를 발굴해낸다는 게 그의 인재관이다.

실제 박 부회장은 지난 10월 중국 인재 찾기에 발벗고 나서기도 했다. LG화학 매출 40%가 중국에서 발생하고 있고 향후 전기차 배터리 등 핵심 시장도 중국이 될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박 부회장은 채용 행사를 직접 주관하며 베이징대·칭화대 등 중국 내 주요 10여개 대학 학부생 30여명을 직접 만났다.

중요 사안을 결정할 때는 이 부드러움이 사라진다. 대신 핵심을 찌르는 냉철한 승부사 기질이 튀어나온다. 업계에서는 박 부회장의 성공 비결을 사업가적 판단력에 있다고 평가한다. 2012년 12월 최고경영자(CEO)에 선임된 이후 신사업을 집중 육성한 공로로 2년만에 부회장으로 승진했을 정도다.

박 부회장의 냉철한 의사 결정 기저에는 정직하게 찍어온 발자취가 있었다. 박 부회장은 서울대 화학공학과를 졸업한 뒤 1977년 LG화학의 전신인 럭키에 입사했다. 이후 2003년 현대석유화학 공동대표와 2005년 LG석유화학 대표를 거쳐 2014년 LG화학 부회장에 이르기까지 37년을 석유·화학 외길을 걸었다.

이때 배긴 굳은살이 그의 경영 능력 기반이 됐다. 박 부회장은 2005년 LG석유화학 대표이사를 맡은 후 나프타분해시설(NCC) 공장을 아시아 세 손가락 안에 드는 규모로 성장시켰다. 이는 LG화학 캐시카우(Cash Cow) 역할을 하며 실적에 든든한 버팀목이 됐다. 또 EP 원료인 비스페놀A 사업에 진입해 수익성과 성장성을 동시에 갖춘 사업으로 키워내며 LG화학 석유화학 사업 전성기를 이끌었다. 

LG화학 부회장 승진 첫해에는 고부가가치 사업에 집중 투자했다. 이는 차후 중국과 차별화가 필요한 시장 상황과 잘 맞물렸다. 한 LG화학 관계자는 “당시 중국이 범용 제품 생산을 늘리고 있는 것에 석유화학 업체들은 큰 위기감을 느끼고 있었다”며 “이에 대비해 LG화학이 EP(엔지니어링 플라스틱), 아크릴·SAP, 고무·특수수지 등 고부가가치 제품 포트폴리오를 강화한 건 발 빠른 대응이었다”고 평가했다.

박 부회장은 유가 불확실성으로 석유화학 사업 실적이 요동치자 비석유 사업에도 적극적으로 손을 뻗었다. 지난해 LG화학은 미국 해수담수화용 RO필터 제조업체 나노에이치투오(NanoH2O)를 인수해 수처리 사업에 본격 진출했다. 수처리 사업은 공장 가동 한 달 만에 수출 실적을 냈다.

바이오 사업도 시작할 예정이다. 농약 원료 제조 회사인 동부팜한농 인수를 강력하게 추진했고 인수 목전에 왔다. 바스프를 비롯한 글로벌 화학기업들이 바이오 부문을 영위하고 있는 것처럼 LG화학도 글로벌 종합화학기업으로서 입지를 다진다는 계획이다.

LG화학은 2016이 새로운 전환점이다. 매출 70%를 차지하는 기초 소재 사업 분야는 중국 자급률 증가와 유가 등 외부 요인으로 경영 환경이 불확실해졌다. 반면 박 부회장이 소중하게 키워온 중대형 2차 전지 시장은 커지고 있다.

박 부회장에 대한 평가는 이제부터 시작이라 할 수 있다. 전문 분야인 석유화학이 아닌 전지 부문을 성장 동력으로 삼았다. 시작은 좋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네비건트 리서치(Navigant Research)는 전기차 배터리 분야와 ESS(energy storage system·에너지저장장치) 분야 1위로 LG화학을 꼽았다. 특히 LG화학은 기술 부분에서 경쟁사를 압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직 영업이익이 나오지 않는 것은 박 부회장이 해결해야 할 문제다. 전기차 배터리 경우 올해 매출은 7000억원을 상회할 것으로 보이나 여전히 손익분기점을 내지 못하고 있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전기차 배터리 부문에서 이익을 남기려면 매출 최소 1조원 이상이 돼야 본격적인 이익이 발생한다. 

전기차 배터리 선두 주자 지위를 지키는 것도 박 회장이 해야 할 일이다. 선발 주자로서 시장만 개척해 놓고 후발주자에 뺏기는 경우가 많다. 경쟁사인 삼성SDI는 전기차 배터리에 2조원을 투자할 계획으로 알려졌다.

박 회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세찬 바람이 불어봐야 비로소 억센 풀인지 아닌지 알 수 있는 질풍경초(疾風勁草)의 자세를 갖자”고 했다. 불확실한 경영 상황 앞에서 그 역시 세찬 바람에 놓였다. 12년이 넘는 경영 경험이 강한 바람 앞에서도 진가가 드러날 수 있을지 두고 볼 일이다.

 

프로필

 

박진수 부회장

1952년 인천 출생

1977년 서울대 화학공학과 졸업

1977년 (주)럭키 입사

2003년 현대석유화학 공동대표이사 부사장

2005년 LG석유화학 대표이사 부사장

2008년 LG화학 석유화학사업본부장(사장)

2012년 LG화학 대표이사 사장

2014년~ LG화학 대표이사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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