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세(亂世)를 사는 법] “당장 부채 상환 전략 부터 먼저 짜라”
  • 김회권 기자 (khg@sisapress.com)
  • 승인 2015.12.31 17:43
  • 호수 13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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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을 먹고 사는 지금이 바로 난세(亂世)…당신의 일자리는 안녕하십니까

“회사를 떠나는 날, 웃음이 나왔어요. 40대쯤에는 잉여가 될 수도 있으니까 그렇게 되기 전에 뭔가를 준비해야겠다고 장기 계획을 세웠거든요. 그런데 막상 20대에 퇴직하라고 하니 그렇게 생각했던 것 자체가 우습더라고요.”

이제 20대 후반을 맞은 전직(?) 직장인을 2015년 12월23일 저녁, 어렵게 만날 수 있었다. 온라인을 뜨겁게 달궜던 두산인프라코어에서 희망퇴직을 한 당사자 중 한 명이다. 회사를 다닌 시기도 길지 않아 경력으로 옮기기에도 마땅치 않다는 ㄱ씨는 2016년 다른 기업의 신입 자리를 다시 노려볼 생각이다.

비극의 주인공치고는 표정이 밝았다. “더 오래 다니지 않아 다행이죠. 어중간한 나이보다는 지금이 오히려 나으니까.” 그는 세상에 백수로 내쳐질 때보다 회사 안에 있을 때 더욱 잔인한 풍경을 접해야 했다. 어떤 제안이나 의견 교환 없이 진행된 희망퇴직을 날것 그대로 봤다. 마치 해고처럼 명단이 정해진 듯 보였고 회사는 다양한 방법으로 명단 속 인물들을 압박했다.

‘사람이 미래다’는 카피를 자랑스러워하며 새 식구가 된 신입사원조차도 퇴직 명단에 이름을 올리면서 이 사건은 커졌다(여론이 악화되자 신입사원의 희망퇴직은 철회됐다). ㄱ씨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렇게 내보내려고 했다면 왜 그렇게 사람을 많이 뽑았는지 당최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2014년 두산인프라코어는 60여 명의 신입사원을 뽑았는데, 들리는 이야기로는 내부에서 뽑지 말아야 한다는 의견이 팽배했다고 한다. ㄱ씨는 정부가 추진하는 청년 고용 문제와 이번 두산인프라코어 사건이 맞물려 있다고 했다. “실무진의 반대 의견에도 불구하고 정부에서 이야기하는 청년 고용과 맞물리면서 윗선의 고집으로 두산 쪽도 신입사원을 꽤 많이 뽑은 것으로 안다.”

한 대기업의 인사 담당자는 “두산인프라코어가 취한 희망퇴직 액션은 과거 STX급이다. 정말로 세게 들어간 건데, 그만큼 회사 상황이 심각한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과도한 신입사원 뽑기 역시 두산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지적했다. “막상 인원을 뽑아놓고 유휴 인력이나 다름없는 이들을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는 기업이 여럿 된다.”

“나이를 먹더라도 스펙은 필요하다”

ㄱ씨 이야기로 시작한 건 두산인프라코어의 희망퇴직이 그만큼 상징적인 사건이라서다. 젊은 사원들의 퇴직 현상은 “더 이상 연령의 안전지대는 없다”는 선포라고 대중은 해석했다. 여기에 청년 고용 문제로 고민하는 정부와 기업의 고민도 맞닿아 있다.

희망퇴직은 사실 새로운 게 아니다. IMF 외환위기 이후부터 계속 있어왔던 사건이다. 다만 지금은 좀 더 많은 기업이 고민을 하게 된 것이 과거와 다르다.

앞서 언급한 대기업 인사 담당자의 배경 설명이다. “우리 산업의 주축인 제조업의 경우 마진율이 고정된 지 오래됐다. 기업 입장에서는 마진율을 올리려면 비용을 줄여야 한다. 비용 절감을 위해 먼저 인건비부터 건드리고 있다.”

취업이 안 되는 것도 문제다. 그러나 어렵게 확보한 일자리를 오래 유지할 수 없는 현실은 더욱 큰 비극이다. 그래도 40대까지는 일자리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는 사회적 기대와 통념은 무너지고, 20~30대도 실직을 걱정해야 하는 시대가 왔다. 평생직장도 없고 모든 이가 불안하다.

한국노동연구원이 2010년 펴낸 ‘한국 베이비붐세대의 근로생애 연구’ 보고서를 보면, 노동자가 ‘생애 주된 일자리’에서 퇴직하는 연령은 평균 53세(남성 55세, 여성 51세)다. 통계청이 내놓은 ‘경제활동인구조사 청년층 및 고령층 부가조사’에서는 가장 오래 근무한 일자리에서 퇴직하는 평균 연령이 2014년 기준으로 49세(남성 52세, 여성 48세)에 불과하다.

직장을 잃어버린 이들 앞에 펼쳐진 세상은 찬바람이 거세다. 그들에게는 이런 세상이 난세(亂世)다. “나이를 먹더라도 스펙은 필요하다”는 우용표 재테크 컨설턴트의 지적은 지금 필수적이다. 물론 최고의 은퇴 전략은 바로 은퇴를 하지 않는 것일 거다. 하지만 원치 않는 강제 은퇴를 피하는 것이 상책이다. 그래서 자기만의 브랜드와 강점을 만드는 게 필요하다. 우 컨설턴트는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이 얼마나 경쟁력을 가지고 있는지 다른 사람에게 납득시킬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런 능력의 객관적인 지표가 스펙이고 실력이다”고 조언한다. 회사를 빠져나온 후 마주하게 될 찬바람을 막아줄 방벽은 지금부터 차곡차곡 적립해놓은 스펙으로 채울 수 있다는 얘기다.

늦었다고 생각하면 주위를 둘러볼 필요가 있다. 실제로 그렇게 준비해가는 사람이 적지 않다. 자격증 시험에 응시하는 연령별 숫자를 보면 가장 가파르게 상승하는 층이 일자리를 잃었거나 곧 잃을지 모를 50대다. 국가기술자격증 필기시험에 응시한 20대의 경우는 100만2899명(2010년)에서 102만2747명(2014년)으로 살짝 늘어났지만, 50대 이상은 10만6537명(2010년)에서 16만1492명(2014년)으로 대폭 증가했다. 구병철 머서코리아 팀장도 자신의 커리어 관리를 중요하게 지적한다. “지금은 자신의 경력에 대해 좀 더 명민해져야 하고, 긴장해야 하며, 당당해야 한다. 경력 관리에 계속 관심을 갖고 움직였던 사람과 그렇지 않았던 사람의 차이는 꽤나 크다.”

10명 중 7명, 창업 5년 만에 문 닫아

그럼에도 결국 떠나야 한다면? 일단 이 어지러운 세상이 주는 불안감에 당장 불행해진다. 현대경제연구원에서는 2008년 1월부터 경제적 행복지수를 연간 2회씩 발표해왔다. 그동안 발표해왔던 지수를 종합해보면 2014년을 기준으로 가장 불행한 그룹은 ‘40대-이혼-자영업-남성-대졸자’였다. 일자리 위협 세대와 맞물린다. 직업 안정성이 주는 행복을 느끼려면 전문직과 공무원의 경제적 행복지수를 보면 된다. 이 두 집단의 행복지수는 시대가 변해도 매년 일정했다. 반면 자영업자는 경제적 행복지수에서 늘 하위권이다. 주부에게 밀리기도 하고, 2009년에는 ‘기타·무직’(38.0)에도 뒤진 34.6을 기록했다. 자영업자들의 경제적 자존감은 바닥을 치고 있다.

“사실 직장에서 퇴직하시는 분들 중에 자의적으로 나오는 분이 얼마나 되겠나.”(한치호 행복경제연구소장) 그들의 경제적 자존감은 악전고투를 치르며 생긴 결과다. 2013년 한 중견기업에서 퇴직한 김주영씨(가명·34)는 2014년 3월 경남 양산에서 유아용 의류 가게를 열었다. 온-오프라인을 병행하면 승산이 있겠다고 판단해 퇴직금을 포함해 4000만원을 들고 자영업자가 됐다. 그리고 그녀의 가게는 1년 2개월 만에 문을 닫았다. 스스로 실패한 원인을 생각해봤는데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아동 의류에 대해 막연한 지식만 갖고 뛰어든 게 문제였다. 자금이 별로 안 들고 운영도 쉬울 거라 생각했는데 막상 엄마들은 근처의 대형마트나 인터넷 쇼핑으로 구매하더라. 사람 왕래가 많은 곳에 매장을 구했는데 임차비용이 많이 들어서 의류 품목을 많이 구비하지 못한 것도 실수였다.” 가게를 열고 6개월 만에 자금이 부족해졌고 그렇게 그녀의 자영업 진출기는 막을 내렸다.

통계청이 2015년 12월23일 발표한 ‘2014년 기준 기업생멸 행정통계’는 김씨가 겪은 자영업 시장의 처참함을 보여준다. 기업의 생존율은 시간이 지날수록 급락한다. 대표적인 자영업 분야인 숙박 및 음식점업은 더 심각하다. 창업 1년 뒤에는 55.6%가 살아남지만 5년이 흐르면 17.7%만이 존재한다. 10개 중 8개가 문을 닫았다는 뜻이다.

‘급할 때일수록 돌아가라.’ 원론적인 원칙을 전문가들은 강조한다. “급한 마음은 이해하지만 오히려 큰 화가 될 수도 있으니 냉정하게 시간을 가지고 준비하라”는 얘기다. 한치호 소장은 여유와 준비를 강조한다. △가족들의 격려로 심리적인 지지와 안정을 확보할 것 △고용정보센터 등을 방문해 자신의 직업적 적성이나 유지 기간을 고려해 일을 찾을 것 △가족 모두가 참여해 결정할 것 △빚을 제외한 금액을 가지고 시작할 수 있는 업종을 찾을 것 등이 주의 깊게 새겨들어야 할 요소다.

“가계 내 비용 절감 노력 절실히 해야”

실직한 사람이나, 실직 후 자영업으로 떠밀린 사람이나, 그들이 일자리에 대해 갖는 불안은 가계를 좀먹을 수밖에 없다. 불안감의 증상은 소비로 나타난다. 쓰지 않는 삶, 일부에서는 이를 두고 ‘소비 파업’이라고 부르는 현상도 결국 고용 불안이 싹을 틔웠다.

김효정씨(가명·여·39)는 2000년 대학을 졸업한 후 무난하게 첫 직장을 잡았고 거래 회사를 다니던 남자와 만나 29세에 결혼했다. 신혼집을 얻은 곳은 서울 도봉구. 전세 1억원에 얻은 24평 아파트가 보금자리였다. 맞벌이로 올린 500만원의 수입으로 크게 부족하지 않은 생활이 가능했다. 그렇게 10년이 흘렀다. 김씨의 직장에 약간 부침(浮沈)이 있어서 벌이가 많이 늘진 않았지만, 지금은 둘이 합쳐 800만원 정도를 매달 번다. 하지만 김씨의 소비 수준이 수입 증가와 더불어 10년 전과 비교해 60% 정도 나아진 것은 아니다. 초등학생인 아이를 위해, 아파트를 옮기면서 생긴 빚을 갚아나가기 위해, 부모님의 용돈을 드리기 위해, 매달 고정적으로 지출해야 한다. 그러고 나니 조금이라도 여유 자금을 만들려고 악착을 떨며 아끼는 중이다. 김씨는 말한다. “매일매일 정신을 차리고 돈을 써야 가계가 유지되는 수준인 것 같다”고. 자신과 남편이 언제까지 일할지도 모르는데, 그런 염려가 다가오면서 좀 더 아끼고 좀 더 모으려고 아등바등하고 있다.

‘빚 갚는 가계’의 닫힌 지갑

소득이 지속되거나 증가한다면 부채가 좀 늘어나도 상관없다. 그렇지 못하니 지금 가계는 빚 갚느라 정신이 없다. 2015년 12월21일 통계청·금융감독원·한국은행이 내놓은 ‘2015년 가계 금융·복지 조사’의 결과는 한마디로 요약된다. ‘빚 갚는 가계.’ 가계의 가처분소득(가계에서 세금과 4대 보험 등을 빼고 실제로 쥐는 돈) 대비 원리금 상환액 비중은 24.2%였는데, 이 조사를 실시한 2010년 이후 가장 높은 수치였다. 100만원을 손에 쥐면 24만2000원을 빚 갚는 데 사용했다는 얘기다.

그러다 보니 소비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 가계는 줄곧 돈을 아끼고 있다. 저축의식의 발로가 아니라 쓸 돈이 없어서다. 2015년 11월에 통계청이 발표한 ‘2015년 3분기 가계 동향’은 김씨 같은 사람이 주변에 많음을 알려준다. 가구의 가계 흑자액은 102만원으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하지만 지출이 감소했다. 금융권에 빚을 진 78%가 ‘빚을 갚느라 저축과 씀씀이를 줄였다’고 답했다. 지출은 고소득층인 상위 20%(-1.7%)에서도, 하위 20%(-1.2%)에서도, 하위 60%(-0.1%)에서도 모두 줄었다. 소득 수준과 상관없이 전 방위적으로 감소했다.

가계는 이런 불안을 해소할 수 있는 정답을 원한다. 이런 질문을 들을 때마다 전문가들도 난감해한다. 단 최악의 상황을 고려해봐야 한다는 충고는 유의미하다. 이상건 미래에셋은퇴연구소 상무의 지적은 그래서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 “부채가 있는 사람은 먼저 상환 전략을 짜라. 우선순위를 재조정해 가계 내 비용 절감 노력을 절실히 해야 한다. 그리고 위기가 오더라도 보유해야 할 자산과 처분할 수도 있는 자산을 구분해놔야 한다. 신속하게 대응하기 위해서다.”

나라 전체가 고용 절벽에 내몰리며 경제적 불안감에 휩싸이는 지금의 모습은 분명 난세다. 원래 난세는 영웅을 만들고 영웅은 활로를 찾는다고 했다. 그런데 그런 영웅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그냥 죽을 수는 없는 법이다. 이제 개개인이 난세에 답하는 법을 찾아야 할 때가 왔다.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의 시대, 각자도생(各自圖生)의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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