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박의 ‘진박 프레임’에 험악해지는 새누리당
  • 이승욱 기자 (gun@sisapress.com)
  • 승인 2015.12.31 17:56
  • 호수 13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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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박계 일각 “‘어게인 2008년’ 사태 불러올 수도” 으름장

“이미 2016년 4·13 총선에서 나올 새누리당의 핵심 구호가 ‘박·근·혜’ 석자로 정리된 것 아니냐. 친박(친박근혜) 핵심 인사들이 연일 ‘진박(眞朴·진실한 사람+친박) 마케팅’에 혈안인 것은 단순한 해프닝이 아니다. 자신들의 의도대로 선거 프레임을 짜놓고 총선을 준비하겠다는 것 아니냐. 그런데 이게 도가 너무 지나쳤다는 게 문제다. 비박(非朴)이라고 가만히 있을 수 있나. 친박의 횡포가 심하면 심할수록 비박계의 명분은 차곡차곡 더욱더 견고하게 쌓일 것이다.”

새누리당 내 전략통으로 분류되는 한 인사가 최근 당내에서 불고 있는 이른바 ‘진박 마케팅’을 두고 한 말이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다가오는 20대 총선을 앞두고 벌어질 당내 경선 구도에서 친박이 우위를 선점한 형국이지만, 그에 따른 반작용도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새누리당 친박계를 중심으로 한 이른바 ‘진박 마케팅’이 점입가경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연이은 ‘진실한 사람’ 언급에 힘입은 새누리당의 ‘진박 마케팅’이 석 달여 앞으로 다가온 20대 총선에서 계파 갈등의 불쏘시개로 작용하는 형국이다. ‘진박 마케팅’은 박근혜 대통령 및 친박계 등과 각을 세운 후 원내대표직에서 사퇴한 유승민 새누리당 의원의 지역구에서 절정을 이뤘다.

2015년 12월7일 열린 새누리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서청원 최고위원(오른쪽)이 발언하는 가운데, 원유철 원내대표(왼쪽), 김무성 대표가 앉아 있다. ⓒ 시사저널 이종현

TK 정치권 “한때 형이라 부르던 유승민을…”

오는 4·13 총선에서 유승민 새누리당 전 원내대표의 지역구인 대구 동구 을 후보로 출마할 예정인 이재만 전 대구 동구청장의 선거사무소 개소식이 2015년 12월19일 열렸다. 이날 개소식에는 친박계 핵심으로 분류되는 홍문종 의원을 비롯해 이장우 새누리당 대변인, 조원진 원내수석부대표 등 현역 국회의원이 몰렸다. 이들은 한목소리로 이 전 청장을 ‘진실한 사람’이라고 치켜세웠다.

홍문종 의원은 개소식에서 “대통령이 진실한 사람을 선택해달라고 했다”며 “이재만이 진실한 사람이란 것을 여러분도 잘 알 것”이라고 말했다. 이장우 의원도 “의리 있는 사람이 좋다. 신의가 없는 사람과 함께 가기 어렵다”면서 “이 전 청장은 겉과 속이 똑같은 사람이고 이것이 진실한 사람”이라고도 말했다. 같은 TK(대구·경북) 지역 의원인 조원진 의원은 아예 유 의원을 염두에 둔 듯 “박 대통령을 잘 도우라는 대구 시민의 천명을 따르지 못한 사람이 있다”고 비난했다. 같은 당 원내대표 출신의 동료 의원이 현직으로 있는 지역구에서 동료 의원과 경쟁하는 예비후보의 선거사무소에 현역 의원들이 줄지어 참석한 것도 모자라 경쟁 후보를 치켜세우는 발언을 작심한 듯 쏟아낸 셈이다.

이들의 언행은 비박계뿐만 아니라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층이 두터운 TK 지역 정치권에서도 ‘볼썽사나운 일’이라는 반응이 나올 정도로 빈축을 샀다. 친박계로 분류되는 TK 지역 출신 의원실의 한 보좌관은 “유 의원이 박 대통령의 견제를 받고 있지만 그래도 한때는 TK를 대표하던 정치인이 아닌가. 이 전 청장 개소식에 참석한 조 의원도 한때 유 의원을 형이라고 부를 정도로 각별한 사이였는데, 어떻게 등 뒤에서 칼을 꽂는 일을 할 수 있느냐. 박 대통령의 지지 여부를 떠나 친박의 과잉 언행에 곱지 않은 시선이 많다”고 말했다.

2015년 12월19일 20대 총선에서 새누리당 유승민 의원(대구 동구 을)의 대항마로 나선 이재만 전 동구청장(맨 오른쪽)의 선거사무소 개소식에 홍문종 의원(오른쪽 두 번째) 등 친박계 인사들이 모습을 보였다. ⓒ 뉴시스

친박계 핵심들이 최근 들어 부쩍 ‘진실한 사람’을 거론하는 것을 두고 박근혜 대통령의 심중을 반영한 것이라는 데 이견을 다는 이는 없다. 박 대통령은 2015년 6월 유승민 당시 새누리당 원내대표를 비판할 때 ‘배신의 정치’를 거론했다. 이어 박 대통령은 11월10일 국무회의를 주재하면서 “앞으로 국민을 위해서 진실한 사람들만이 선택받을 수 있도록 해달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과연 ‘진실한 사람’이 누구인가를 두고 정치권은 촉각을 곤두세웠다. ‘진박’(진짜 친박)과 ‘가박’(假朴·가짜 친박)을 구분하는 ‘진박 자가감별법’이 인터넷과 SNS(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에 나돌 정도로 희화(戱化)하는 분위기도 적지 않았다. 박 대통령이 친박계의 총선을 지원하기 위해 직접 나서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왔다. 하지만 박 대통령의 ‘진실한 사람’ 레퍼토리는 최근까지도 이어졌다. 박 대통령은 2015년 12월21일 개각을 발표한 다음 날, 여의도에 복귀하는 장관들을 상대로 “옛말에 들어갈 때 마음과 나올 때 마음이 한결같은 이가 진실한 사람이라는 말이 있다”면서 “그것은 무엇을 취하고 얻기 위해서 마음을 바꾸지 말고 일편단심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말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총선 공천 룰 경쟁에서 친박계에 밀리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비박계로서는 더 이상 ‘진박 마케팅’을 좌시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새누리당 내 비박계로 분류되는 김성태 의원은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총선에 나서려는 분들이나 대통령의 측근을 자처한 인사들이 (진실한 사람 발언을) 자의적으로 해석해서 박심(朴心) 마케팅, 이른바 진박 마케팅에 활용한 것이 문제”라면서 “영남권에서 박심 마케팅을 하는 것인데 전국적으로 당이 선거를 치르는 데 상당히 낭패스럽다”고 말했다. 이준석 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도 “굉장히 사람들에게 웃음거리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진실한 사람’이 뭡니까. 선거 구호로”라면서 “대통령께서 그렇게 언급했다고 그걸 그렇게 쓰는 사람들이 어디 있나”라고 말했다.

“명분 쌓으면 탈당 사태 없으란 법 없어”

계파를 떠나 현역 의원들 사이에서도 ‘진박 마케팅’에 대한 부정적인 기류가 엿보인다. 당내 초·재선 의원 모임인 ‘아침소리’를 주축으로 한 의원 16명은 12월21일 성명을 내고 “최근 전국 각지에서 총선을 위한 선거사무소 개소식이 열리고 있다. 여기에 현역 의원들, 특히 당직을 가진 의원들이 참석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국민들이 보기에도 부적절할 뿐 아니라 당의 힘을 결집하는 데 있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면서 일부 친박계 의원들의 선거사무소 개소식 참석과 ‘진박 마케팅’ 발언을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물갈이 지역’으로 떠오른 TK 지역을 중심으로 친박계에 대한 반발 기류가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른바 유승민계로 분류되는 초선 의원들이 다수 포진하고 있는 TK 지역의 경우 ‘TK 물갈이론’의 직격탄을 맞을 수 있다. 친박 핵심 인사들이 이 전 청장의 선거사무소 개소식에서 한 ‘진실한 사람’ 발언과 관련해 유승민 의원은 “박 대통령은 특정인을 지적해 (후보로) 내려보낼 분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동안 박 대통령의 그늘에 가려서 큰소리를 내지 못하던 비박계에서도 친박계의 노골적인 ‘진박 마케팅’에 대해서만큼은 “해도 너무 한다”며 반발의 강도를 키우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이에 따라 당내 경선을 즈음해 친박과 비박의 전면전 양상이 급격히 촉발될 수 있을 만큼 더욱 험악한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는 시각도 있다. 현재로서는 박 대통령의 그림자가 당내에 미치는 영향력이 큰 만큼 일단은 당내 경선 직전까지는 참겠지만, 명분이 축적되면 일부 경선 과정에 불만을 품은 현역 의원들의 탈당 사태가 도미노처럼 이어질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온다. 그만큼 친박의 횡포에 대한 명분이 축적됐다는 얘기다.

TK 출신의 한 여권 인사는 “이미 당내 경선 구도가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벌어지는 게임과 마찬가지 아니냐”면서 “어차피 친박에게 가박이라고 찍혀, 제대로 싸움도 못하고 전사할 바에야 먼저 탈당해 무소속 출마를 결심하는 이들이 나올 수 있을 정도의 분위기”라고 말했다. 비박계로 분류되는 수도권 출신의 한 초선 의원도 “당헌·당규상 경선에 참여하면 출마를 포기해야 한다”면서 “‘진박 마케팅’처럼 친박이 횡포를 부리는 정도가 노골화할수록 비박이 친박의 찍어내기에 당했다는 동정론이 커질 수 있는 시간은 충분하다. 지난 2008년 18대 총선에서 탈당으로 부활했던 친박이 오히려 탈당 사태로 인한 부메랑을 맞을 수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새누리당 180석? 장밋빛 전망일 뿐” 

안철수 의원이 새정치민주연합을 탈당하면서 야권 분열이 가속화하자 새누리당은 반색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2016년 4월13일 치러지는 20대 총선에서 3자 구도가 고착화되면서 여당이 ‘어부지리’를 얻을 것이라는 계산법 때문이다. 이런 분위기를 반영하듯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2015년 12월21일 ‘안철수 탈당’과 관련해 “야권 분열이 우리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일이 없다”면서 “180석은 가능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당내 일각에서는 20대 총선에 대한 낙관론을 경계해야 한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야권 분열이 선거공학상으로는 유리하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지만, 자칫 불똥이 새누리당 내부의 지지층 이탈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분석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여론조사 전문 기관 리얼미터가 4·13 총선을 가상해 정당 후보 지지도를 알아본 2015년 12월 3주 차 여론조사(2015년 12월21일 발표) 결과가 주목된다. 이번 조사(자동응답·유무선 병행 임의 걸기(RDD) 방식, 응답률 4.7~7.5%, 표본 오차 95% 신뢰 수준에서 ±2.9~3.0%p)에서 새누리당은 38.2%를 얻어 새정치민주연합의 25.7%를 앞질렀다. 하지만 안철수 신당 16.3%, 정의당 5.8%, 천정배 국민회의가 1.3%를 각각 기록했다. 결국 야권 후보 모두를 합할 경우 후보 지지도는 59.1%로, 새누리당과는 20%포인트 이상 차이를 나타내는 셈이다. 이는 그동안 정당 지지도에서 야권을 모두 합해도 여당에는 미치지 못했던 과거 조사와는 다른 결과다.

비박계로 분류되는 수도권의 한 의원은 “총선 낙관론이 나오고 있지만 이는 장밋빛 전망일 뿐”이라면서 “야권이 지금은 분열 양상을 보이고 있지만 여전히 연대 가능성이 열려 있는 데다, 여권 견제론이 일면 예측할 수 없는 상황으로 급변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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