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르는 게 값’, 널뛰는 무인항공기 사업
  • 박혁진 기자 (phj@sisapress.com)
  • 승인 2015.12.31 18:04
  • 호수 13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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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수단 해산 시점에 맞춰 논란의 ‘해군 정보함’ 사업 재시도 나선 해군과 방사청

방위사업합동비리수사단(이하 합수단)의 수사에서 비리 혐의가 드러나 구속된 무기중개상들이 연루됐던 무인항공기를 해군과 방위사업청(이하 방사청)이 최근 또다시 도입하려는 움직임을 보인 것으로 시사저널 취재 결과 확인됐다. 방사청은 2015년 12월11일 서울시 용산구 후암동에 있는 방사청 입찰실에서 UAV(무인항공기) 중개업체들과 해군 관계자들을 모아놓고 ‘신세기함 UAV 능력 보강 사업 예비설명회’를 개최했다.

이 사업은 ‘신세기함 UAV 성능 개량 사업’이란 이름으로 해군이 2010년 한 차례 추진했으나, 해군 출신 무기중개상들이 에이전트로 있는 특정 업체에 특혜를 제공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무산된 바 있다. 실제로 이 업체의 에이전트였던 전직 해군 준장 이 아무개씨는 2015년 2월 합수단에 구속되기도 했다. 이처럼 논란이 끊이지 않던 사업을 합수단이 해산하는 시점에서 슬그머니 다시 추진하는 데다, 당시 물의를 빚었던 업체가 이번 사업에 또다시 참여하는 것으로 알려져 군 내부에서 논란이 일고 있다.

서울 용산구 후암동에 있는 방위사업청 건물과 2011년 신세기함 UAV 성능 개량 사업 입찰에 참여했던 오스트리아 S사의 무인항공기. ⓒ 시사저널 이종현

동일 제품, 과거보다 가격 오히려 100억 내려

해군이 국가정보원의 예산을 받아 운영하고 있는 정보함은 모두 2척이다. 2척 모두 장비 계약 과정에서 비리 의혹이 끊이지 않았다. 이번에 해군과 방사청이 도입하려고 하는 UAV는 2척 가운데 2003년 우선적으로 건조된 ‘신세기함’에 탑재하려는 장비다. 신세기함에는 미국 회사의 UAV가 건조 때 탑재돼 7년간 작전에 투입됐다. 그러나 2010년 작전 중 추락해 현재 항공기 자체는 없고 조종 시스템만 있는 상황이다. 이후 NLL(북방한계선) 인근의 정보를 수집하는 일선 부대에서 무인기를 통한 영상정보 누락에 대한 우려를 끊임없이 제기했다.

그러다 2010년 연평도 포격 사태가 벌어지면서 국회에서 서해 5도 전력 증강 사업을 위한 특별예산 1조원이 배정됐고, 해군은 이 중 UAV 성능 개량 사업 명목으로 예산 200억원 정도를 받았다. 이 예산은 ‘성능 개량 사업’이란 이름으로 받았기 때문에 기존 미국 업체의 장비를 ‘업그레이드’하도록 정해져 있었으나, 해군과 방사청 측은 특정 업체를 입찰에 참여시켜 아예 새로운 업체를 선정하려 했다.

당시 새로 입찰에 참여했던 업체는 오스트리아의 S사. S사의 제품은 2008년 2차 정보함인 ‘신천옹함’(이후 ‘신기원함’으로 개명)을 새로 건조했을 당시에도 탑재됐다. 하지만 당시 자격 미달의 제품을 탑재했다는 논란이 일었고, 가격까지 부풀렸다는 의혹이 이후에도 끊임없이 제기된 바 있다. 2011년 S사가 신세기함 UAV 성능 개량 사업 입찰에 참여하면서 써낸 가격은 181억원. 문제는 S사가 제안한 가격이 그 전 신천옹함에 납품한 제품 구성(헬기 4대, 조종 시스템 1대)과 완전히 같았음에도 가격을 훨씬 더 낮게 써냈다는 점이었다. 실제 S사는 같은 구성의 제품을 신천옹함에 256억원에 납품하기로 2008년 계약을 맺은 바 있다. 단순히 가격 비교만 해봐도 신천옹함과 신세기함에 실린 UAV의 가격 차가 75억원이나 됐다.

방사청 “보안 사항이라 확인해주기 어렵다”

게다가 181억원에는 배에 설치돼 있는 기존 미국 회사의 시스템 철거비용 30억원까지 포함돼 있다. 즉, S사 제품의 순수한 무인항공기 가격과 설치비용은 151억원에 불과했던 셈이다. 당시 사업에 참여했던 AAI사의 무기중개상은 시사저널과의 전화통화에서 “똑같은 구성의 제품을 갖고 몇 년이 지나서 100억원 가까이 오히려 가격을 낮춰서 입찰에 참여했는데, 물가상승률이나 환율 등을 비교해봤을 때 이는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중간에 에이전트 수수료로 돈이 과다하게 지급되지 않고서는 설명하기가 어렵다”고 밝혔다. 즉 에이전트 수수료의 차이가 100억원의 차이를 만들었다는 뜻이다.

신세기함 UAV 성능 개량 사업 당시 이런 과정들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사업이 주목을 받자, 해군과 방사청 측은 아예 사업 자체를 취소하고 예산을 반납했다. 당시 국회에서 이 예산 말고도 연평도에 K-9 자주포를 추가 배치하는 등 1조원가량의 서해 5도 전력 증강 긴급예산이 편성됐으나, 이 중 신세기함 성능 개량 사업 예산만 유일하게 사용되지 못하고 국고로 반납됐다.

여기에다 S사 측 에이전트로 일했던 전직 해군 준장 이씨가 지난 2월 정보함 비리에 연루되어 합수단에 구속되면서, 정보함 관련 구설들이 단순 루머가 아니라는 것도 일정 부분 확인됐다. 이씨는 국방부에 근무하던 2009년 1월께 M사로부터 해군 정보함에 사용될 통신장비 납품업체로 뽑힐 수 있도록 영향력을 행사해달라는 청탁과 함께 수천만 원을 수수한 혐의를 받았다. 이씨는 M사 외에 S사의 에이전트로도 활동한 바 있다.

합수단 관계자는 “2003년 신세기함을 구축할 당시 담당자였던 이씨가 이후에도 정보함에 들어가는 장비 선정과 관련해 광범위하게 관여한 사실이 드러났다”고 말했다. 사실 해군이나 방사청 입장에서는 2011년 성능 개량 사업 당시 배정된 예산을 명목에 맞게 사용했으면 논란이 커지지 않았을 것을, 비리 의혹이 제기됐던 특정 업체를 또다시 참여시킴으로써 ‘긁어 부스럼’을 만든 모양새가 됐다. 여기에다 최근 이 사업을 재개하려고 준비하고 있는데, 때마침 이 사업에 과거 논란을 일으킨 업체가 다시 참여하려는 움직임이 있어 또 한 번 방산업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는 것이다.

한 방산업계 관계자는 “이 사업은 이번 합수단 수사에서도 주목을 받았던 사업이고, 정보함에 연루되어 전직 해군 장성까지 구속됐는데 합수단 해산 시점에 사업을 재개한다고 하니 논란이 불가피해 보인다”며 “가뜩이나 합수단 수사로 인해 해군 사업에 대한 불신이 커진 마당에 또다시 논란이 될 만한 업체를 선정한다면 파장이 적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물의를 빚은 업체는 입찰에 참여할 수 없도록 하는 보완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방사청 무인기사업팀 관계자는 “관련된 사항은 보안에 속하기 때문에 어떤 것도 확인해줄 수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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