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데…”
  • 조유빈 기자 (you@sisapress.com)
  • 승인 2015.12.31 18:06
  • 호수 13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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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조출연업체 한국예술 대표, 엑스트라 미지급 출연료 3억 횡령 징역 1년 선고받아

#사례1 A씨는 보조출연 아르바이트를 하기 위해 아르바이트 커뮤니티에 등록된 구인 공고를 보고 알선업체를 찾아갔다. 보조출연을 하기 위해 명단 등록을 하려면 가입비 3만원을 내야 한다고 했다. 출연자 명단에 등록을 시켜준 후 출연을 몇 회 하면 돌려주는 식이고, 무단으로 나오지 않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내는 보증금 개념이라고 했다. 보증금을 받는 것은 불법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뒤 돈을 돌려받으려고 했지만, 나중에 출연하는 데 불이익이 생길까 봐 관뒀다. A씨는 “(명단) 등록만 돼 있고 안 나간 지 거의 1년이 됐다. 예전에도 그랬지만 지금 촬영장에서 가장 불쌍한 대우를 받는 것이 엑스트라”라고 토로했다.

#사례2 B씨는 출연료 때문에 골머리를 앓았다. 2014년 1월에 일한 출연료가 두 달 후에 입금된다고 했지만 1년이 지나도 들어오지 않았다. 결국 출연료를 지급받기 위한 법적 절차를 밟기로 했지만 보조출연노동조합에서 정한 은행의 통장을 다시 개설해야 한다고 했고, 수수료도 발생한다고 했다. 10만원의 출연료를 받기 위해 수십 번 왔다 갔다 하느라 다른 일자리도 못 구했다. 그는 “나는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데, (보조출연 아르바이트가) 이런 식인 줄은 몰랐다”며 “두 번 다시 하지 않겠다”고 했다.

2013년 한국예술이 보조출연자를 파견한 KBS 드라마 의 장면들.ⓒ KBS 캡쳐

#사례3 C씨는 투잡(Two job)으로 보조출연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러나 한 업체를 통해 출연한 드라마 보조출연료가 지급되지 않았다. 회사가 부도나면서 출연료 지급이 어렵다고 했다. 석 달이 지나도 출연료가 들어오지 않자 서울남부고용센터를 방문해 진정서를 접수하고 체당금(替當金·도산 기업에서 퇴직한 노동자가 사업주로부터 임금 등을 지급받지 못한 경우 국가가 대신 지급해주는 임금)을 신청했다. 출연을 하고 1년이 지나고서야 20만원 정도의 출연료를 받을 수 있었다. C씨는 그 후로 보조출연 아르바이트는 하지 않고 있다.

실제로 보조출연을 했던 사람들의 목소리다. 단역(端役), 엑스트라, 보조출연자라고 불리는 이들은 영화나 드라마에 짧게 등장하는, 비중이 작은 역할을 맡은 사람들이다. 화면에 잠시 등장하는 행인이나 손님, 가게 직원, 회사원, 병사 등이 주요 배역이다. 카메라에 자주 잡히지 않고 대사가 많은 것도 아니기 때문에 특별한 기술이나 학력, 경력은 중요하지 않다. 그 때문에 연기자를 꿈꾸는 사람들, 연기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뿐 아니라 아르바이트로 출연료를 벌려는 사람들이 보조출연 일을 하기도 한다.

과거 보조출연은 연예인의 모습을 볼 수 있고 촬영장의 분위기도 체험할 수 있어 일명 ‘꿀알바’로 불렸다. 방송국에서 직접 출연료를 지급했기 때문에 당일 일한 돈을 바로 받아올 수 있는, 인기 있는 일당 아르바이트였다. 그러나 보조출연업체들이 인력사무소 형태로 보조출연자들을 공급하게 되면서 분위기가 바뀌었다. 업체들이 법적 근거가 없는 보증금을 받거나, 출연료 지급을 하지 않는 등의 문제들이 발생한 것이다.

출연료를 타인 계좌로 입금해 횡령

브라운관에서는 스쳐지나가는 역할이지만 촬영장에서는 하루 종일 ‘항시 대기’를 해야 한다. 아침에 모집해 초저녁에 촬영이 마감될 경우 세금을 제하고 4만원 정도를 받는다. 새벽 4시에 집결해 자정이 지난 시간에 촬영 마감을 하더라도 최대로 받는 돈은 10만원가량이다. 그마저도 바로 손에 쥐어지는 돈이 아니다. 촬영을 하고 두 달이 지나야 출연료를 받을 수 있다. 계속 일을 하면서 두 달 후에 지급될 돈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지급이 안 된 출연료를 받기 위해서는 사무실을 다시 방문해야 한다. 한 보조출연자는 출연을 하고 두 달이 지나기 전에 군 입대를 하는 바람에 출연료를 받지 못했다. 또 다른 보조출연자는 “출연료 지급을 할 때 연락을 주겠다고 해서 기다렸는데 4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연락이 없다”고 하소연했다.

이렇게 보조출연자들에게 미지급된 돈을 횡령한 혐의로 최근 유명 보조출연업체 대표가 실형을 선고받았다. 서울 남부지방법원은 12월9일 업무상 횡령 등으로 기소된 한국예술 대표였던 권 아무개씨에 대해 징역 1년형을 선고했다. 한국예술은 우리나라에서 역사가 가장 오래된 보조출연업체다. 1961년부터 운영을 시작해 1984년 법인으로 등록했다. 그러나 제작비 부족, 출연료 미지급 등 문제가 생기면서 적자를 면치 못했고, 결국 2014년 4월 폐업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지급된 출연료와 직원들에게 주지 않은 퇴직금 등을 횡령한 권씨는 이 돈을 개인적인 용도로 사용한 것으로 밝혀졌다. 재판부는 보조출연자들에게 미지급된 출연료가 타인 명의의 개인 계좌를 통해 입금된 점, 이 계좌에서 권씨의 카드대금 및 보험료 등으로 일부 금액이 빠져나간 점을 업무상 횡령으로 판단했다. 5년에 걸쳐 3억원이 개인 계좌로 지급됐는데, 바로 이 돈이 보조출연자들의 출연료와 직원들의 임금으로 지급돼야 하는 금액이었다. 

거짓 파산으로 출연료 받지 못한 경우도

30년간 한국예술에서 일했다는 한 인사는 “5년에 걸쳐 3억원을 횡령한 것으로 드러났지만, 권씨가 10년 동안 대표직을 맡으면서 횡령한 실제 금액은 10억원 가까이 된다. 일하지 않은 사람들의 명의로 출연료를 받아 사용하는 경우도 있었고, 회사 법인카드로 상품권 등을 구매하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등록된 출연자가 850여 명이지만 체당금 신청을 한 인원은 300명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직원들의 퇴직금과 보조출연자들의 출연료 지급을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보조출연자들이 받는 출연료는 그 자체가 많지 않기 때문에, 수십 번 출연한 사람이 아닌 이상 개인당 받아가는 돈의 액수가 많지 않다. 출연료가 지급되지 않더라도 ‘액수가 얼마 안 되니 그냥 포기하자’ ‘괜히 문제를 일으키면 다음 번 출연이 어렵게 되지 않을까’ 하는 심정으로 포기하는 경우가 많아 실제로 미지급된 출연료는 훨씬 더 많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보조출연업체 관계자는 “보조출연업체가 늘어나면서 거짓으로 파산신고를 하는 경우도 생기고 있다. 미지급분이 밀리면 출연료 지급을 하지 않기 위해 폐업을 해버리고 다른 사람 명의로 다시 사무실을 운영하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방학 기간에는 보조출연을 알선해주는 업체들의 ‘보증금 사기’가 더 많이 일어난다고 한다. 아르바이트를 계약할 때 보증금·착수금 등을 받는 것 자체가 근로기준법 위반이지만, 불법임을 알게 되더라도 보증금을 돌려받기 위한 절차가 복잡하기 때문에 보조출연자들이 고스란히 피해를 안게 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한 보조출연업체 관계자는 “아르바이트 커뮤니티에 올라오는 구인 광고를 보고 방학을 맞은 학생들이 보조출연 아르바이트를 하기 위해 찾아오는 경우가 많다”면서 “3만원의 보증금이 있어야 출연자 명단에 등록을 해준다고 하면서 출연을 10회 하면 보증금을 돌려준다는 제안을 한다. 그러나 학생들을 출연시켜주는 일도 많지 않고, 8~9번 나가면 일부러 연락을 안 하는 곳도 많다. 법에 대해 잘 모르는 학생들 용돈을 떼어가는 사기행각”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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