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집
  • 김인숙 | 소설가 (.)
  • 승인 2015.12.31 18:35
  • 호수 1368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며칠 전 방송에서 들은 이야기다. 콜롬비아에 관한 이야기인데, 우리에게 커피로 유명한 이 나라는 사실 50년간이나 정부군과 반군 게릴라 사이의 전쟁으로 인해 고통을 받고 있는 중이다. 콜롬비아 출신이고 <백년 동안의 고독>의 작가인 마르케스는 <납치일기>라는 작품에서 이 나라의 부패와 폭력과 내전에 관한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원인이 무엇이든, 실상이 어떻든 전쟁은 어디에서나 깊은 상처를 남긴다.

며칠 전 방송에서 들은 이야기는 이 나라의 크리스마스에 관한 것이다. 콜롬비아 정부는 반군 게릴라를 대상으로 선전전을 벌이던 중 게릴라 부대원들의 이탈이 가장 많은 때가 크리스마스 시기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로부터 콜롬비아의 정글에 대형 크리스마스트리가 세워지기 시작한다. 모션센서로 전구들이 작동하게 되어 있는 트리였다. 요란한 확성기 방송도 없고, 상대방을 자극하는 비방도 없었으나, 다가가는 순간 환하게 불이 켜지는 크리스마스트리는 군복을 입고 라이플 총을 든 채 행군을 하고 있는 게릴라들의 마음을 밑바닥부터 흔들었다. ‘집에 가고 싶다. 크리스마스에는 집에 가고 싶다.’ 이것보다 더 간절하고 더 소박한 소망은 있을 수 없을 것이다. 게릴라들이 집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이 크리스마스 선전전은 정부의 의뢰를 받은 콜롬비아의 한 광고회사에 의해 진행되었는데, 그 성공 요인을 밝히는 대표 호세 미구엘 소콜로프의 발언이 매우 인상 깊다. 그것은 ‘아름다움’이다. 사람들의 가장 기본적인 감정을 건드리는 것, 기본적인 욕망, 혹은 소망을 건드리는 것은 바로 ‘아름다움’이라는 것이다. 여기에서 아름다움을 화려함이나 멋스러움으로 이해해서는 안 될 것이다. 아름다움은 사랑, 가족, 집, 그 모든 것을 불러일으키는 가장 기본적인 요소로, 어떤 의미에서는 동의어로 판단해도 좋을 것이다.

오래전에 서태지와 아이들이 <컴백홈>이라는 노래를 불렀을 때, 많은 가출 청소년이 실제로 집으로 돌아가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이 노래의 가사에 따뜻한 가족에 대한 이야기는 없다. 오히려 랩의 특성상, 억압과 분노가 날카롭게 표현된다. 그래도 청소년들은 집으로 돌아갔다. 서태지의 힘이기도 하겠지만, 그들의 가슴속에 존재하는 집에 대한 감정, ‘아름다운 것’과 ‘아름다워야 할 것’들에 대한 간절한 소망 때문이기도 했을 것이다.

연말이다. 그리고 크리스마스다. 종교와는 상관없이, 집을 생각할 때다. 누군가는 크리스마스에 밤을 새워, 송년회에 밤을 새워 집 밖의 시간을 즐기겠지만, 그래도 날이 밝으면 돌아갈 집이 있는 한 모두 ‘컴백홈’이다. 멀리 가족이 있어도 마찬가지다. 연말이면 지나간 한 해의 보람차고 즐거웠던 일들이 떠오르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우울했던 일, 참지 않으면 안 되

었던 일, 간신히 버텼으나 앞으로는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일이 더 많이 떠오르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그런 와중에도 아름다운 것은 있다. 바로 집이다.

집을 가지지 못한 사람들도 있다. 집 같지도 않은 집을 가진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언젠가는 갖게 될, 자신만의 정말로 아름다운 집에 대한 소망만은 잃지 않기를 바란다.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