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부 다 떠나면 K리그의 골문은 누가 지키나
  • 서호정 | 축구 칼럼니스트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01.05 15:28
  • 호수 13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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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골키퍼들에 일본의 러브콜이 쏟아지는 이유
슈틸리케호의 No.1 골키퍼인 김승규(사진 가운데) 역시 정성룡에 이어 일본 J리그 이적이 유력한 상황이다. © 연합뉴스

최근 K리그는 아시아 축구의 가장 믿을 만한 인력 시장으로 통한다. 2009년부터 시행된 ‘아시아쿼터제’(아시아와 호주 국적 선수 1명은 기존 외국인 제한에 포함시키지 않는 제도)에서 가장 선호되는 선수는 한국 선수다. 수준급의 기술과 체력, 거기에 뛰어난 현지 적응력과 투지, 그리고 팀에 대한 헌신에 매력을 느끼기 때문이다. 막대한 자금력을 앞세운 중국 슈퍼리그에서는 2015년을 기준으로 10명의 한국 선수가 뛰었다. UAE·카타르·사우디아라비아 등 중동 주요 리그에도 국가대표급 선수들이 대거 진출해 있다. 국제스포츠연구센터는 아시아 각국 1부 리그에서 뛰는 외국인 선수 통계를 냈는데, 한국은 총 33명으로 세계 축구의 선수 공장으로 통하는 브라질(139명)에 이어 2위였다.

일본의 J리그는 아시아쿼터제 시작 전부터 한국 선수를 주목했다. 1990년대 ‘J리그 러시’가 펼쳐졌다. 홍명보·황선홍·유상철·김도훈·하석주·최용수 등 대표팀의 주전들이 잇달아 일본으로 향했다. 하지만 이런 물살은 2000년대 중반을 기점으로 약해졌다. 박지성이 유럽무대에서 성공하자 대표팀의 핵심 선수들은 유럽 진출을 1차 목표로 삼았다. 차선책은 J리그보다 더 많은 돈을 주는 중동이었다.

정성룡·김승규·이범영 모두 J리그로 이적

그런데 최근 이런 경향과는 정반대의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국가대표 골키퍼들이 줄줄이 J리그로 향하고 있다. 2010 남아공월드컵과 2014 브라질월드컵에 잇달아 출전했던 정성룡이 수원을 떠나 가와사키 프론탈레로 이적했다. 각급 대표팀을 거치며 브라질월드컵에서 정성룡과 경쟁했던 김승규도 소속팀 울산과 작별하고 빗셀 고베 이적을 눈앞에 두고 있다. 김승규의 라이벌인 이범영도 강등된 소속팀 부산을 뒤로하고 후쿠오카 아비스파에 입단할 예정이다. 이미 김진현이 일본 2부 리그인 J2리그의 세레소 오사카에서 뛰고 있다. 이렇게 되면 슈틸리케 감독이 신뢰했던 대표팀의 주요 골키퍼가 모두 2016 시즌에는 J리그에서 뛰는 기현상이 벌어지게 된다.

J리그가 한국인 골키퍼를 원하는 이유는 일본의 골키퍼난(難)이 심화됐기 때문이다. 최근 J리그 이적 시장에서 가장 가치가 높은 포지션은 골키퍼다. 수요는 많은데 공급이 부족하다. 일단 골키퍼 황금세대를 열었던 주역들이 퇴장을 앞두고 있다. 1990년대 말부터 10년 넘게 일본 대표팀의 골문을 책임졌던 가와구치 요시카쓰, 나라자키 세이고, 소가하타 히토시가 모두 30대 중반 혹은 불혹의 나이다. 한·일전에서 여러 차례 대결해 국내 팬들에게도 유명한 미남 골키퍼 가와구치는 하부 리그에서 선수생활을 이어가는 중이다. 그의 뒤를 이었던 나라자키는 지난 시즌부터 기량이 뚝 떨어졌다.

이들의 공백을 메우려면 젊은 선수들이 성장해야 하는데 대체자가 나타나지 않았다. 현재 J리그에서 국가대표로서 확실한 경쟁력을 지녔다는 평가를 받는 선수는 우라와 레즈의 니시카와 슈사쿠 정도다. 실제로 일본 대표팀을 이끌고 있는 바히드 할릴호지치 감독은 매 소집때마다 니시카와를 제외한 두 자리의 골키퍼를 바꾸고 있다.

그래서 주목한 것이 K리그의 한국인 골키퍼들이었다. 경기력과 스타일 면에서 한국인 골키퍼들은 매력적이다. 대표팀 골키퍼 코치로 두 차례 월드컵을 책임진 FC 서울의 김현태 스카우트 팀장은 “현대 축구에서 골키퍼의 체격 조건은 점점 중요해지고 있다. 한국인 골키퍼들이 일본인 골키퍼보다 우위에 있다. 안정감이 한 수 위다. 일본 골키퍼들이 빠르다고는 하지만 우리는 장신임에도 순발력까지 좋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K리그 최고 수준의 골키퍼들은 왜 J리그의 러브콜을 받아들였을까? J리그와 K리그의 최고 연봉자 수준은 비슷하다. 정성룡·김승규·이범영 모두 J리그 진출로 연봉 면에서 큰 폭의 상승을 이루진 못했다. 이적 시장에 밝은 관계자는 “많아야 5억원에서 7억원 수준이다. 국내에도 그 정도 연봉을 지불할 수 있는 구단은 있다”고 말했다.

우선 선수 입장에서는 해외 진출이라는 도전을 충족할 수 있는 사실상의 유일한 선택이라는 점이 영향을 미친다. 정성룡과 김승규는 2년 전부터 해외 진출을 타진해왔다. 하지만 필드플레이어와 달리 선택지가 많지 않았다. 대표팀의 경기력 저하로 직결될 수 있는 문제라 골키퍼 포지션은 외국인 영입 금지를 하는 국가가 많다. 우리나라를 포함해 중국과 중동도 골키퍼 포지션에 대한 외국인 선수 영입 금지 조항을 갖고 있다.

“더 과감하게 유럽에 도전해야” 아쉬움

그렇다면 결국 골키퍼들의 선택지는 유럽과 J리그 정도다. 문제는 아시아 골키퍼의 유럽 진출 가능성이 극도로 작다는 것이다. 김현태 팀장은 “한국 골키퍼들도 우수하지만 유럽에서 경쟁하기엔 벅차다. 독일·이탈리아·스페인 같은 골키퍼 강국은 체계적인 교육으로 육성한다”고 현실적인 차이를 설명했다. 유럽 중하위 리그라면 도전해볼 만하지만 그럴 경우 금전적 보상이 적다. 결국 선수들은 가장 안정적이면서도 새로운 무대에서 뛰고 싶은 열망을 채울 수 있는 현실적 대안으로 J리그를 택하는 것이다.

K리그 내부의 문제도 골키퍼들의 J리그 진출을 부채질했다. 재정 상황이 얼어붙은 K리그는 최근 시즌이 끝난 후 보상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정성룡의 경우도 2015년 연봉을 절반 가까이 삭감당했다. 김승규와 이범영도 큰 폭의 연봉 상승을 기대할 수 없는 분위기다. J리그가 제시한 금액이 K리그 최고 연봉과 큰 차이는 나지 않지만 그걸 부담할 수 있는 국내 구단은 전북 현대 정도다.

이런 상황을 바라보는 팬들의 반응은 냉랭하다. K리그의 흥행 부진이 장기화되는 이유다. 올림픽과 아시안게임에서 병역 혜택을 받으며 선수생활에 부담이 줄어든 선수들이 극히 현실적인 행보를 보이는 것도 팬들에겐 불만이다. 정성룡·김승규·이범영은 모두 J리그 진출을 앞두고 기초군사훈련을 마무리했다. 남들보다 2년의 시간을 더 벌었음에도 과감한 도전을 하지 않는다면 사실상 유럽 진출에 나설 골키퍼는 없다. 팬들이 냉랭한 시선을 보내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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