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수저’ 안철수, 왜 야당을 택했나
  • 박준용 기자 (juneyong@sisapress.com)
  • 승인 2016.01.05 16:04
  • 호수 13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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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계 입문 전부터 ‘중소기업’ ‘인권’ ‘능력주의’에 관심
이명박 대통령이 2008년 청와대에서 안철수 의원(당시 안철수연구소 이사회 의장)에게 대통령 자문 미래기획위원회 위원 위촉장을 전달하고 있다. © 연합뉴스

‘정치인 안철수’는 어쩌면 새누리당에 더 어울릴지도 모른다. 그의 배경만 놓고 보면 그렇다. 1980년 서울대 의대에 진학한 그는 이른바 ‘운동권’에 몸담지 않았다. 현재도 운동권문화에 대해 ‘낡은 진보’라며 각을 세운다. 게다가 ‘자본 시장의 첨병’ 역할을 하는 미국 펜실베이니아 대학 와튼스쿨 경영전문대학원(MBA)을 거쳤다.

그는 ‘금수저’이자 고액 자산가이기도 하다. 안철수 무소속 의원의 아버지는 서울대 의대를 졸업해 부산에서 50년 넘게 병원을 운영했다. 안 의원은 컴퓨터 백신 사업으로 막대한 부(富)를 일궜다. 2015년 3월 기준 그의 재산은 787억원이다. 김세연 새누리당 의원(1443억원)에 이어 두 번째로 재산이 많은 국회의원이다. 국회의원 재산 순위 5위 안에 든 야당 인사는 안 의원뿐이다.

안철수 시선에 새누리당은 ‘책임 회피당’

여당 정치인이 될 기회가 없었던 것도 아니다. 이명박 정권 때 여권에서 안 의원을 영입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하지만 안 의원의 거절로 무산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 그가 야당 정치인의 길을 택했다. 정계에 데뷔한 지 3년이 지난 지금도 계속 그 길을 걷고 있다. 그는 왜 야당을 택한 걸까. 안 의원은 ‘리더의 책임’을 중시한다. 2012년 펴낸 <안철수의 생각>에서 “리더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건전한 생각을 가진 것만으로는 곤란하다. 결과를 잘 만들어내야 할 책임이 있는 것이다. 독일의 정치철학자 막스 베버는 ‘소명으로서의 정치’에서 ‘정치인은 신념윤리와 책임윤리를 함께 가져야 한다’고 했다”고 밝힌 바 있다. 또 그는 그보다 이전에 리더의 책임 회피를 강하게 비판한 적이 있다. 2001년에 지은 책 <CEO 안철수, 영혼이 있는 승부>에서 한 대학의 의대 교수직을 그만둘 때의 경험을 언급하며 “한국 사회에서 리더의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그 자리만 유지하려고 하지 그에 요구되는 책임은 회피하는 것을 목격하게 되었다”고 지적했다.

안 의원의 정계 입문이 임박했을 때 그가 ‘한나라당(현 새누리당)이 벌여놓은 일을 책임지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게끔 만든 사건이 있었다. 바로 2011년 서울시 무상급식 논란이다. 당시 오세훈 서울시장이 선별적 무상급식을 주장하며 “주민투표에서 패배하면 물러나겠다”고 공언한 후 투표율이 낮아 사퇴했다. 안 의원은 <안철수의 생각>에서 이에 대해 “행정 혼란, 세금 낭비 등 잘못에 대해 대가를 치르지 않고 한나라당에서 다시 시장직을 차지하게 된다면 정의롭지 못하다는 생각이었다”고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안 의원의 측근들은 그가 ‘금수저’임에도 경제적으로 어려운 청년기를 보냈기에 재벌과 부유층에 호의적인 보수 정당을 택하지 않았다고 입을 모은다.

안철수 의원이 2012년 출간한 은 품절 사태를 빚는 등 판매 돌풍을 일으켰다. © 시사저널 최준필

벤처기업 운영하며 대기업 횡포 목격

실제로 안 의원은 컴퓨터 백신 사업 초기에 어려움이 많았다. 그는 2009년 문화방송(MBC)의 <황금어장 무릎팍 도사>에 출연해 사업 초기 직원 월급으로 줄 1000만원이 부족했던 시절을 회고했다. 방송에서 안 의원은 급박했던 상황에서 회사 동료에게 보낸 이메일을 공개했다. 안 의원은 당시 “(월급을 줄) 날짜는 닥치고 저희로선 방법이 없다”고 적었다.

같은 맥락에서 대기업보다 덩치가 작은 회사를 이끌며 차별을 눈으로 지켜본 것도 새누리당을 택할 수 없었던 계기가 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안 의원은 <안철수의 생각>에서 중소기업에 불공정 거래로 피해를 주는 재벌에 비판적인 견해를 가진 이유에 대해 “제가 직접 피해를 당하진 않았지만 제가 많이 목격하고 주위 사람들로부터 자주 들었다”고 언급했다.

안 의원의 수석보좌관을 지낸 이수봉 인천경제연구소장은 안 의원에 대해 “대기업에 비해 ‘을’의 입장에서 회사를 운영하면서 한국 사회가 대기업 중심 경제가 돼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강했다”면서 “‘공정성장론’이라는 결과물을 만든 것도 이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안 의원이 미국 유학을 하며 ‘인권’ 의제에 관심을 가졌기에 새누리당 대신 더불어민주당(옛 새정치민주연합)이나 신당을 택했다는 추측도 한다. ‘북한 인권’ 이슈를 선점하기 전까지 한국의 보수 여당은 인권 문제에 소극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안 의원이 했던 발언에는 인권운동가들의 활약이 등장한다. 그는 2014년 일간지에 연재한 <내 인생의 책> 코너에서 첫 번째로 <넬슨 만델라 자서전>을 꼽았다. 2011년 ‘작은 행동 하나가 큰 변화를 이끌어냅니다’라는 제목의 박원순 서울시장 후보 지원 편지글에서도 미국 흑인 인권운동의 상징인 ‘로자 파크스’ 사건을 언급했다. 이는 흑인 로자 파크스가 백인에게 버스에서 자리를 양보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체포된 사건이다.

안 의원이 인간적 유대보다 능력주의를 선호해 보수 여당을 거부했다는 분석도 있다. <CEO 안철수, 영혼이 있는 승부>에서 안 의원은 “기회의 평등에서 같이 출발한 두 사람 중에 한 사람은 좋은 성과를 거두었고 한 사람은 실패를 했다면 그 결과에 따른 보상에 차별을 두는 것이 더 정의로운 것이 아닐까”라며 능력·성과주의를 선호하는 모습을 보인다. 또 2004년에 펴낸<CEO 안철수,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에서는 “안 연구소에는 나의 친척이 한 명도 없다. (중략) 나와 학연이나 지연으로 연결되어 있는 사람도 없다”면서 ‘인맥’으로 일을 해나가는 것을 꺼리는 경향을 내비친다. 하지만 이런 안 의원의 인식이 정치와는 불협화음을 내는 요소가 된다는 비판도 있다. 안 의원 측 사정을 아는 한 인사는 “보수 여당에서는 성과나 능력보다는 당내 인맥을 관리하는 ‘당내 정치’가 상대적으로 중요한 측면이 있다. 하지만 이는 어느 정당이나 마찬가지다. 안 의원은 이에 문제의식을 느끼지만, 능력이나 실력으로 줄 세울수 없는 게 정치인데 단순하게 생각한 부분이 있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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