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양건 사망 미스터리 남북 관계에 불똥 튈까
  • 이영종│중앙일보 통일전문기자 (.)
  • 승인 2016.01.07 16:40
  • 호수 13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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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사고 위장 제거’ ‘권력 암투설’…국정원은 “단순 교통사고로 본다”

북한 김양건 노동당 비서의 사망 소식이 지난 연말 충격파를 던졌다. 그가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의 최측근 실세인 데다 대남 총책이란 점에서다. 급작스러운 김양건 부고가 나오자 대북 관측통들 사이에서는 평양 권력의 핵심부뿐 아니라 남북 관계에도 파장이 만만치 않을 것이란 분석이 나왔다.

김양건의 사망 사실이 알려진 건 2015년 12월30일 오전 7시30분쯤이었다. 북한 관영 조선중앙통신이 노동당 중앙위원회 등 3개 기구의 명의로 나온 그의 부고를 전하면서다. 부고는 “김양건 동지가 교통사고로 29일 6시15분 일흔세 살을 일기로 애석하게도 서거했다”고 밝혔다. 로동신문도 이날 2면에 부고와 함께 그의 약력을 상세하게 실었다. 또 김정은을 위원장으로 하는 국가장의위원회 명단도 공개했다.

2009년 8월21일 북측 조문 사절단과 함께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 빈소를 찾은 김양건 비서(맨 왼쪽). ⓒ 연합뉴스

과거 이제강·김용순도 교통사고 사망

노동당 통일전선부장과 대남담당 비서를 겸하고 있는 김양건의 사망은 우리 언론뿐 아니라 외신에도 큰 뉴스였다. 서울 광화문의 통일부 기자실과 각 언론사의 취재망은 부산해졌다. 서울 주재 해외 언론 기자들은 긴급 뉴스로 김양건의 부고를 전했다. 그런데 언론이 가장 큰 관심을 가진 건 그의 사망 원인을 둘러싼 의혹이었다. 도대체 북한에서 김양건 같은 고위급 인사가 교통사고를 당해 사망한다는 게 납득이 되지 않는다는 측면에서다.

우선 김양건은 김정은 정권 들어 최고 실세로 승승장구하는 인물로 김정은의 곁을 지켜왔다. 적어도 부총리급 예우와 의전을 받고 있는 것으로 드러난다. 그런데 차량사고 등으로 숨진다는 건 가능성이 커 보이지 않는다는 게 북한 전문가나 탈북 인사들의 지적이다. 한국이나 다른 서방 국가의 경우에도 장관급 인사가 교통사고로 숨지는 건 매우 드문 일이다. 일각에서는 과거 김정일 국방위원장 시절 당 간부들이 참석하는 비밀 파티 때 보안 유지를 위해 직접 운전토록 했다는 점을 들어 운전기사 없이 음주운전을 하다 사망했을 것이란 주장도 내놓는다. 하지만 70세가 넘은 고령의 고위 인사들에게 자가운전을 시키지는 않았을 것이란 반론도 만만치 않다. 최근 수년간 평양에 차량이 늘어 일부 정체 현상도 생겨났다고 하지만 노동당 비서가 사망할 정도의 교통사고가 발생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라는 지적도 있다.

김양건뿐 아니라 다른 고위직 인물들이 교통사고로 사망했다고 북한이 발표한 경우가 적지 않다는 점도 의혹을 증폭시킨다. 석연치 않은 북한의 부고가 나올 때마다 “교통사고를 위장한 고위직 제거”이거나 “권력 암투의 결과”라는 분석이 끊이지 않고 나왔다. 2010년 6월 노동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인 이제강이 사망했을 때 북한은 교통사고라고 밝혔다. 당시 북한 권력 내부는 막내아들 김정은이 김정일의 후계자로 자리를 굳히고 있던 시점이었다. 신구(新舊) 권력의 충돌과 갈등 상황에서 파워게임에 결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실세인 이제강이 제거된 것이란 관측이 나왔다. 공교롭게도 김양건의 전임자인 김용순 대남 비서도 2003년 6월 급작스럽게 교통사고로 사망했다는 부고가 나왔다. 이 같은 일련의 사태를 놓고 단순 사고가 아닌 제3의 요인이 개입한 것이란 얘기가 나오고 있다.

물론 김정은 제1위원장이 김양건 국가장의위원회의 위원장을 직접 맡는 등의 정황을 근거로 “교통사고를 위장한 제거일 수 없다”는 반론도 나온다. 김정은의 눈 밖에 났다면 숙청을 하거나 공개 처형을 해버리지 사고사로 꾸밀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최고 지도자에게 돌이킬 수 없는 불경죄를 저질러 문제가 됐거나 김정은 체제에 반하는 모종의 사건에 연루된 경우라면 로동신문에 부고가 실리는 건 물론 ‘국장’으로 장례를 치르지도 않는다. 북한이 발표한 부고는 김양건에 대해 “수령에 대한 고결한 충정과 높은 실력을 갖고 있었다”며 “김양건 동지를 잃은 것은 우리 당과 인민에게 있어 큰 손실”이라고 밝혔다. 적어도 김정은이나 북한 체제와 관련한 문제는 없었다는 얘기가 된다.

그런데 일각에서는 북한 파워엘리트 간이나 권력 내부의 갈등에 의해 제거됐을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을 내놓는다. 김양건의 급작스러운 부상이나 대남 노선에 불만을 품고 위기감을 느낀 군부나 다른 세력들이 교통사고로 위장한 제거에 나섰을 수 있다는 얘기다. 최고의 정보기관 수장을 맡고 있는 김원홍 국가안전보위부장이나 군부의 황병서 군 총정치국장 등이 주도했을 경우 김정은에 대한 보고까지 완벽하게 입을 맞출 수 있다는 것이다. 김정은 체제 등장 이후 고모부 장성택과 현영철 인민무력부장 등에 대한 처형 등 공포 정치 때문에 평양 권력의 중심부는 꽁꽁 얼어붙었다. 파워게임에서 밀리면 끝이라는 절박감이 팽배한 상황에서 권력 암투가 치열하게 벌어질 수 있다는 게 우리 당국의 평가다. 대북 정보 관계자는 “오는 5월 노동당 7차 대회에서 대대적인 물갈이 인사가 예상되고 있고, 이를 계기로 김정은 체제에서 살아남기 위한 노동당과 군부 세력의 파벌 싸움이 치열하게 전개될 것”이라고 말했다.

2015년 12월30일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사망한 김양건 노동당 비서의 빈소에 조화를 보냈다. 이날 북한 각계 인사와 주 북한 외교단은 빈소를 찾아 조의를 표했다. ⓒ 조선중앙통신 연합

“김정은 생모와 김양건 부인 각별한 친분”

김양건의 죽음을 둘러싸고 이처럼 의문이 제기되고 있는 건 그가 김정은 체제에서 권력 실세로서 자리를 굳혀왔다는 점 때문이다. 무엇보다 김양건은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이 후계자로 낙점 받아 권력을 거머쥐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것으로 우리 정보 당국은 파악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김양건 비서의 부인과 김정은의 어머니 고영희(2004년 사망) 사이에 각별한 친분이 있었다고 한다. 이 때문에 어린 시절 김정은이 김양건의 부인을 ‘이모’라고 불렀다는 것이다. 이복형인 김정남이 장자승계(長子承繼) 원칙에 따라 후계자가 될지 모른다는 우려가 있던 상황에서 생모와 자기편이 되어준 김양건에게 김정은이 상당한 고마움을 느껴왔을 것이란 분석이 나오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이에 힘입어 김정은 체제 등장 이후 김양건은 승승장구했다. 또 최근 수년간은 노동당 대남 비서직을 넘어 비서실장에 가까운 김정은의 최측근 인사 역할을 맡아왔다.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의 뒤를 이어 북한 권력 2인자에 오를 것이란 관측이 제기될 정도였다.

이런 배경을 토대로 김양건은 김정은을 늘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는 모습을 보였다. 다른 측근 실세들이 숙청되거나 해임·강등되는 롤러코스터 인사의 희생양이 되는 와중에도 김양건만은 김정은 정권 4년 동안 아무런 부침이 없었다. 김정은의 현장 방문 행사 등을 수행하는 김양건은 자신감을 드러내왔다. 김정은에게 밀착해서 보고하거나 설명을 듣고, 김정은의 부인 리설주와 눈을 마주한 채 대화하는 장면도 나타났다. 짝다리를 짚거나 몸을 한쪽으로 기울인 듯한 자세도 포착되곤 했다. 쭈뼛거리거나 긴장한 표정인 다른 간부들과는 달랐다. 정부 당국자는 “든든한 배경 때문에 대남 문제를 넘어서 김정은의 통치 활동 전반을 보좌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장성택 처형 직전인 2013년 11월 김정은과 백두산을 방문해 대책을 논의한 이른바 ‘삼지연 8인방’ 가운데 김양건이 포함된 것도 같은 맥락이란 얘기다.

정준희 통일부 대변인이 2015년 12월30일 “북한 김양건 비서의 사망과 관련해 판문점 연락관 채널을 통해 홍용표 통일부장관 명의로 조의를 표명했다”고 밝히고 있다. ⓒ 연합뉴스

국정원 “북 고위층 과속 사고 종종 있었다”

평안남도 안주 출신인 김양건은 김일성대 불문과를 나와 당 국제부에서 잔뼈가 굵은 외교통이다. 김정일 정권 초기인 1997년 4월 당 국제부장을 맡았고, 10년 후엔 통일전선부장으로 발탁됐다. 그렇지만 2010년 5월과 8월 김정일 방중 때 잇달아 수행하고, 이듬해 8월 러시아·중국 방문 때 동행하는 등 대남 사업을 넘어 활동 반경을 넓혔다. 김정은이 챙기는 국가체육지도위원회 위원도 맡았는데, 담당 종목은 북한에서 가장 인기 있는 축구였다.

김양건 사망에 대해 이런저런 의혹이 제기되고 확인되지 않은 설들이 흘러나오지만, 우리 정부 당국은 차분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국가정보원 측은 북한의 부고가 나온 당일 김양건의 사망과 관련해 “현재로서는 교통사고 이외의 가능성을 보고 있지 않다. 단순 교통사고인 것으로 보고 있다”고 국회 정보위에 보고했다. 김양건이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과 반목해왔다는 징후가 전혀 없었다는 것이다. 국정원은 또 “김양건은 전문 관료로서 성향도 온건해 북한 지도부 내 파벌과도 늘 일정 거리를 유지해왔기 때문에 정치적으로 숙청당할 일도 만들지 않았을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교통량이 많지 않은 북한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했다’고 발표하니 의심하는 시각이 제기되는 데 대해 국정원에서는 “북한 고위층이 새벽 시간대 과속으로 인해 다치거나 숨지는 일이 종종 있었다”는 취지의 보고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국정원 측도 일단 북한 측의 발표를 토대로 1차 평가를 내놓은 후 추가적인 첩보 입수를 위해 대북 정보망을 총가동한 것으로 전해진다. 최종적인 분석은 좀 더 시간이 지난 뒤 구체적인 사고 정황 등이 입수돼야 이뤄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김양건의 사망을 둘러싼 의혹과는 별개로 그의 공백이 남북 관계에 미칠 파장에도 관심이 쏠린다. 김양건이 대남정책과 관련해 김정은에게 직보(直報)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는 점 때문이다. 과거 김용순 대남담당 비서의 경우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집무실 문을 열고 들어가 남북 관계 현안에 대해 수시로 보고하고 결심을 받아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98년 6월 정주영 현대 명예회장의 판문점 소떼 방북을 앞두고 북한 군부가 “어떻게 지킨 군사분계선인데 거길 남조선의 재벌영감이 소달구지를 끌고 넘어오게 하느냐”고 반발하며 뒤엎으려 하자 김용순이 김정일에게 직보해 승인을 얻어냈다는 일화가 있다. 김용순이나 김양건 같은 노련한 실세 대남 총책이 사라진 상황에서 남북 관계 경색 등의 국면에 돌파구를 마련해야 할 때 군부 강경파에 맞서기 쉽지 않을 것이란 얘기도 나온다.

김양건의 뒤를 이을 대남통으로 당 통일전선부 부부장인 원동연과 맹경일 등이 꼽히지만 아무래도 김양건의 위상에는 미치지 못할 것이란 지적이다. 이 때문에 김양건 사망의 공백을 메우기 쉽지 않고 12월 초 차관급 대화 결렬 이후 남북 관계 재가동에도 시간이 걸릴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다만 우리 정부가 김양건 사망에 조의를 표하는 등 전례 없이 유연한 입장을 취한 점을 두고 북한이 긍정적으로 호응해올 수 있는 분위기를 마련해준 것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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