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 3저' 시대…호황 이끈 주역서 불황 악재로
  • 이민우 기자 (woo@sisapress.com)
  • 승인 2016.01.08 14:55
  • 호수 13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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닮은 듯 다른 '저유가·저금리·저원화'의 역습…올해엔 더 위험

3저 호황 시대가 있었다. 1980년대 한국은 저금리, 저유가, 저원화를 바탕으로 유례 없는 호황을 누렸다. 당시에는 수출이 늘어나면서 투자도 늘고 가계 소득도 증가하는 선순환이 이뤄졌다.

최근 한국은 1980년대 보다 더욱 극한 3저 현상에 마주했다. 하지만 30여년 전 같은 3저 효과는 나타나지 않았다. 오히려 경제 회복의 발목을 잡고 있다. 그 때와 지금의 차이는 무엇일까.

◇ 역오일 쇼크의 역습

8일 한국석유공사에 따르면 7일(현지시간) 두바이유 현물은 배럴당 27.96달러에 거래됐다. 30달러선이 무너지면서 11년 11개월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신흥국발 경제 위기로 수요가 꺾인 상황에서 산유국들이 공급을 경쟁적으로 늘린 탓이다. 1986년 그 때와 비슷한 양상을 보였다.
 

두바이유 현물은 7일(현지시간) 배럴당 27.96달러에 거래됐다. 30달러 선이 무너지면서 11년 11개월 만에 최저가를 기록했다. / 사진=뉴스1

1986년 유가 하락은 기업의 생산비용을 낮춰 가격 경쟁력을 키웠다. 수출이 늘면서 무역수지는 흑자로 전환됐고 가계의 구매력도 커졌다.

최근 양상은 다르다. 수출이 좀처럼 호전되지 않고 있다. 전세계가 주머니를 꽁꽁 싸매다 보니 아무리 낮은 가격으로도 물건이 팔리지 않는다. 오히려 재정 위기를 맞은 산유국들이 플랜트 공사를 발주하지 않아 조선·건설·철강 산업의 위기를 초래했다.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해 연초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유가 하락은 원유를 전량 수입하는 우리 경제에 분명한 호재"라고 했다가 연말 "유가 하락은 신흥국, 산유국의 경기 부진을 초래해 우리 기업의 수출을 위축시키는 결과를 낳았다"고 말을 바꿨다.

◇ 투자 활성화로 이어지지 못한 최저 금리

한국은행은 지난해 6월 기준금리를 역대 최저 수준인 1.5%로 전격 인하했다. 2014년 8월부터 2015년 6월까지 0.25%포인트씩 네 차례에 걸쳐 기준금리를 낮췄다. 금융통화위원회는 경기 회복세에 통화 정책이 부응해야 한다는 당국자들의 압박을 견뎌내지 못했다.

그런데 1980년대에 보였던 모습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저금리를 비롯한 정부의 확장 정책에도 불구하고 내수는 살아나지 않았다. 지난해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로 움츠러들었던 소비 심리가 좀처럼 살아나지 않았다. 최근 중국발 쇼크와 같은 돌발 변수로 대외적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기업들도 좀처럼 투자에 나서지 않았다.

오히려 저금리는 한국 경제의 또 다른 시한폭탄을 낳았다. 1200조원에 육박한 가계부채다. 기준금리 인하 직후인 지난해 3분기 가계 빚은 석 달 동안 34조5000억원 급증했다. 2002년 4분기 이후 13년 만에 가장 많이 늘어났다.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는 한국의 신용등급을 역대 가장 높은 수치인 Aa2로 올리면서도 가계부채를 경제 성장의 장애요소라고 평가했다.

 

정리=이민우 기자

◇ '통화가치 하락→수출 증가' 공식도 통하지 않았다

원·달러 환율은 8일 12시 현재 1196.44원을 기록하고 있다. 근래 가장 낮은 환율을 보였던 2014년 7월(1008.40원)보다 18.6% 올랐다. 그만큼 원화 가치가 낮아졌다.

그런데 수출이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지난해 수출은 2014년에 비해 7.9% 감소한 5271억달러로 잠정 집계됐다. 통화 가치 하락은 수출 증가로 이어진다는 공식이 깨진 셈이다.

문제는 원화가치만 떨어진 게 아니라는 점이다. 2014년 5월 1유로화 값은 1.40달러에서 현재 1.09달러까지 떨어졌다. 중국의 위안화도 달러화에 대한 가치가 급락하면서 5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수출 경쟁국이었던 일본도 2012년부터 아베노믹스 정책을 바탕으로 엔저 상태를 이어가고 있다.

◇ 올해도 신흥국 리스크에 발목 잡히나

문제는 올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채권을 대거 발행했던 신흥국의 만기가 도래한다. 올해(3450억달러)보다 60.9% 늘어난다. 가뜩이나 원자재 가격 급락과 중국의 경기 둔화로 사정이 좋지 않은 상태에서 대규모 자금 유출이 예고된 상황이다. 올해 만기가 도래하는 신흥국 외화표시채권만 5550억달러다.

국제 유가가 20달러대에 머무를 경우 가뜩이나 구조조정의 문턱에 서 있는 정유·화학·조선업은 직접적인 타격을 입을 수 밖에 없다. 투자·소비 진작 효과가 기대에 못미쳤지만 저금리 기조를 전환한다면 금융 부실로 이어질 수도 있다. 또 가계의 금융 부담이 커지면서 내수가 더욱 위축되는 부작용도 우려된다.

이일형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원장은 "세계 경제는 구조적인 문제를 안고 있어 새로운 해법이 필요하다"며 "한국 경제는 호재가 없다고 좌절할 것이 아니라 전화위복을 노려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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