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테러의 트라우마 계속된다
  • 최정민│프랑스 통신원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01.12 12:39
  • 호수 13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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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시민들, 인권 침해 논란에도 국가 비상사태 용인하는 분위기
프랑스 경찰이 2015년 12월30일 에펠탑 주변을 순찰하고 있다. © AP 연합

프랑스에서 성탄 축제의 시작을 알리는 행사는 샹젤리제 야간 조명 점등식이다. 매년 11월, 파리 시장과 국제적인 스타가 참석해 성대하게 치러지는 이 행사는 경제위기 때도 예외 없이 열렸다. 그러나 2015년의 샹젤리제 조명은 소리 소문 없이 불을 밝혔다. 지난 11월 파리 테러 이후 변한 풍경 중 하나다. 성탄 시즌에 들어섰지만 행사까지 요란하게 열기엔 아직 추도 기간이끝나지 않았던 것이다.

81%의 프랑스인들이 2015년을 ‘안 좋았던 해’라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프랑스 일간 ‘르 파리지엥’의 의뢰로 여론조사 전문 기관인 오독사(Odoxa)가 지난해 12월27일 발표한 결과에 따르면, 2015년은 프랑스인들에겐 “테러로 시작해 테러로 끝난 ‘끔찍한 한 해’”로 기억됐으며, 응답자 중 54세에서 60세의 연령층에서 특히 부정적인 견해가 두드러졌다고 ‘르 파리지엥’은 밝혔다.

2015년의 이슈 중에서 테러 다음으로 58%가 난민 사태를 꼽았으며, 41%는 시리아 내전 문제를, 국내 사안인 실업 문제와 극우 정당의 돌풍을 각각 41%, 31%로 꼽았다. 난민 문제는 테러와 직접적인 연관성을 갖고 있다. 테러범들이 난민 대열에 끼어 밀입국했다는 정보와 난민으로 위장하기 위해 위조 여권을 사용했다는 주장은 난민 수용에 대한 찬반 논쟁에 종지부를 찍게 했다. 실제로 파리 테러 발생 이후 기타 유럽 국가들에 난민 수용을 강하게 촉구해왔던 프랑스와 독일은 급격히 방향을 선회했다.

2015년 12월23일 국제이주기구(IMO)가 발표한 통계 자료에 따르면, 2015년 한 해에만 유럽으로 들어온 난민의 숫자는 100만 5504명에 이른다. 2차 대전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난민의 50%는 시리아 출신인 것으로 나타났으며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난민이 그다음으로 20%와 7%를 차지했다.

국제이주기구 “2016년에도 난민 폭발적 이동”

국제이주기구는 이러한 난민의 폭발적 이동이 2016에도 계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를 두고 프랑스 일간 무가지 ‘마탱플뤼스’는 “상황이 변한 것이 없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더군다나 지난 12월28일 시리아 정부가 공식 발표한, 자흐란 알루시 시리아 반군의 지휘관이 공습으로 사망했다는 소식은 1월로 예정돼 있던 평화회담의 전망을 암울하게 만들었다.

프랑스는 여전히 새로운 테러 위협에 노출돼 있다. 지난해 12월23일 베르나르 카즈네브 내무장관은 오를레앙을 타깃으로 준비됐던 테러를 적발하고 무력화시켰다고 발표했다.

테러 이후 올랑드 정부의 방향은 대(對)테러전에 초점이 맞춰졌다. 테러 발생 직후 국가 비상사태에 돌입했으며, 관련법 개정이야기가 나온 것은 테러 발생 3일 만이었다. 현재는 테러 가담자의 국적 박탈까지 추진하고 있어 논란이 되고 있다.

국가 비상사태의 연장은 인권 침해 논란에 불을 지폈다. 유럽연합 인권자문회의는 프랑스가 추진하는 국가 비상사태의 예외조항들이 개인의 인권 보호 조치들을 느슨하게 할 수 있다고 우려를 표명하며, 유럽인권보호조약에 위반될 소지가 있다고 경고했다.

그럼에도 테러에 대한 불안 탓에 시민들은 국가 비상사태를 용인하는 분위기다. 테러 사건 직후 여론을 보면 91%의 프랑스인이 국가 비상사태에 찬성했으며 92%가 과격 극단주의자의 가택연금에 우호적인 것으로 나타났다고 르피가로는 전했다. 프랑스 법무부의 전직 판사였던 드니 살라스는 프랑스인들이 국가 비상사태를 ‘필요악’으로 보고 있다고 분석했다.

국가 비상사태 이후 조치들에 대해 프랑스 일간 ‘라 크루아’의 플로르 토마세 기자는 “2700건의 압수수색을 벌였지만 법적조치로 이어진 것은 488건밖에 되지 않았다”고 지적하며, 압수수색이 ‘효과적’이지 못했다고 분석했다. 경찰의 권한이 대폭 강화됐음에도 실효성이 없었다는 것이다.한 현직 검사가 “국가 비상사태보다 평상시에 효과적으로 테러에 대처할 수 있는 방안을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국가 비상사태로 경찰에 막강한 권한이 주어졌지만 경찰의 사기가 높은 것도 아니다. 테러가 발생하기 한 달 전이었던 지난해 10월13일 처우 개선을 위한 경찰들의 대규모 시위가 있었던 것을 상기한다면, 현재 프랑스 보안 인력의 피로도는 한계치를 충분히 넘어선 상태다.

이러한 상황에 대해 ‘인력 충원 없이 경찰의 임무는 계속 가중되고 있다’고 프랑스 앵테르는 전했다. 프랑스 경찰 노조인 ‘알리앙스’는 경찰 산하에서 요인 경호를 맡는 ‘공화국 경호대’ 소속 공무원 14명이 현재 소송을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장 클로드 드라주 노조 위원장은 “소송 사태를 피하려면 정부는 상황을 직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은 향후 3년간 5000명의 경찰 인력을 증원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인력 충원은 당장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다. 대테러 조치의 일환으로 1000여 명의 신규 인력이 모집됐지만 이들이 교육과정을 마치고 일선에 투입되려면 2년을 기다려야 한다고 프랑스 앵포는 보도했다. 더구나 이 인력이 충원되더라도 지난 사르코지 정권에서 1만3000명의 경찰 및 헌병 인력이 감원됐던 것을 감안한다면, 턱없이 부족한 충원인 셈이다. 익명을 요구한 경찰 고위 공직자는 “2015년 1월 테러 이후 경찰은 도로 단속에선 거의 발을 뺀 상태다. 헌병은 어떨지 모르지만 경찰엔 방법이 없다. 파리 지역에선 야간 소음 단속도 못하고 있다”고 토로하며 “인력부족은 현실이다. 부정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경찰과 헌병의 근무 피로도 한계에 도달

인원이 충원되더라도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프랑스의 대표적인 우파 시사주간지인 ‘렉스프레스’의 크리스토프 바르비에 편집장은 국가 비상사태를 연장하는 것을 두고 “그 많은 비용을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라고 지적했다.

프랑스의 대(對)테러 경계령은 ‘비지피라트(Vigipirate)’라는 체제다. 1995년 지하철 교외선의 테러를 계기로 마련된 이 시스템은 주요 공관 및 종교시설과 역, 공항 등에 군 병력이 24시간 경계를 서는 시스템이다. 안전을 위한 최대 경계 시스템이지만, 그만큼 들어가는 비용 또한 만만치 않다. 2015년 1월 샤를리 에브도 테러 이후 프랑스 전역에 발령된 비지피라트 경계령에 따른 하루 비용은 무려 100만 유로(약 13억원)에 이른다. 프랑스 공영방송인 프랑스2에서 샤를리 에브도 테러 이후 비상경계상태 운영 시 1만명의 군 인력을 운용할 경우 시간당 4만1600유로(약 5400만원)의 비용이 소요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렉스프레스의 바르비에 편집장은 올랑드 대통령의 대테러 강경 드라이브에 대해서도 “이런 방향이 차기 대권에 파란불을 밝혀주는 것은 사실이다”고 전제한 후 “대테러 정책으로 올랑드는 사회당 내부의 경쟁자들을 모두 잠재웠다. 그러나 재선에 성공하더라도 언젠가 대테러전에 대한 평가가 이뤄진다면, 현재의 강공 드라이브는 역풍을 맞을 수 있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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