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받느니만 못한 대상, '그들만의 잔치' 놀음
  • 정덕현| 대중문화 평론가 (.)
  • 승인 2016.01.14 18:22
  • 호수 137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매년 똑같은 논란 되풀이되는 연말 방송3사 ‘시상식 무용론’에 시청자들은 괴롭다

이건 도대체 누구를 위한 시상식일까. 매 연말만 되면 지상파 3사는 ‘연예대상’과 ‘연기대상’ 행사를 가진다. 하지만 시상식이 끝나고 나면 무수히 많은 잡음이 터져 나온다. 2015년도 다를 게 없었다. 나눠 먹기식 시상은 물론이고 심지어 대상의 공동 수상까지 나왔다. 대상 후보를 두고 누구는 올라갔는데 누구는 아예 오르지도 않았다는 것이 논란거리가 되고, 시상식의 졸속 진행은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이쯤 되면 ‘시상식 무용론’이 나올 법한 상황이다.

ⓒ KBS

<SBS 연예대상>에서 유재석과 김병만이 대상을 공동 수상한 것은 방송사의 전략적 포석으로 보면 이해되지 않는 건 아니다. 중국 한류를 열었지만 국내에서는 미미했던 <런닝맨>의 유재석을 절치부심하게 만들면서, 동시에 <정글의 법칙>이라는 SBS의 효자 프로그램을 이끌고 있는 김병만의 지속적인 도전을 격려하는 차원일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방송사의 입장이지 시청자의 입장은 아니다. 시청자들은 대상 공동 수상은 받는 이들에게도 그 의미가 사라진다고 지적한다.

그나마 유재석과 김병만의 대상 공동 수상은 누구를 선택하기 어려울 정도로 양자 모두에게 상 받을 자격이 있었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 수긍할 수 있다고 치자. 하지만 <KBS 연기대상>이 <프로듀사>의 김수현과 <부탁해요 엄마>의 고두심에게 공동 수상을 안긴 점은 선뜻 수긍하기 어렵다. 제아무리 한류의 주역이라고 해도 20대의 김수현을 고두심이라는 대배우와 한자리에 세운 건 너무나 어울리지 않는 일이었다. 이것은 KBS라는 플랫폼이 가진 이중적인 상황을 대변해주는 일이기도 하다. KBS는 과거의 보수적인 시청자층이 압도적인 충성도를 보이는 채널이다. 하지만 동시에 새로운 시청자층을 배려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양자에서 어느 하나를 선택하지 못하고 둘을 모두 껴안으려던 생각이 공동 수상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갈팡질팡하는 입장은 시청자들로 하여금 불편한 마음을 갖게 만든다. 젊은 시청자들은 고두심이 낯설고, 나이 든 시청자들은 김수현의 대상이 너무 섣부르다고 생각한다.

공동 수상만큼 논란이 쏟아졌던 건 부적절한 시상이었다. <KBS 연예대상>은 그 대표적인 사례가 됐다. <슈퍼맨이 돌아왔다>의 손을 들어준 KBS는 엉뚱하게도 이휘재를 대상(大賞)으로 지목했다. 하지만 과연 이런 선택을 대중도 공감할 수 있을까. 이 프로그램에서 이휘재만큼 논란이 많았던 인물도 없었다. 아빠의 육아를 콘셉트로 하는 프로그램에 계속해서 게스트를 출연시켜 구설에 오르기도 했고, 자주 아내를 출연시켜 논란이 벌어지기도 했다. 게다가 이 프로그램이 추성훈과 사랑이에 의해 어떤 기폭제를 만들고, 송일국과 삼둥이에 의해 정점을 찍었던 사실을 떠올려 보면 이휘재의 공로는 그리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 실제로 이휘재는 대상을 받으러 올라와 “당분간 댓글은 보지 말아야겠다”고 말하기도 했고 시종일관 굳은 표정이었다.

공동 수상이나 부적절한 시상에 대한 논란은 많은 취향이 서로 부딪치는 과정에서 나올 수 있다 쳐도, 시상식 진행 자체에 대한 논란은 방송사로서는 치명적인 일이다. 방송사가 시청자들의 입장과 반하더라도 자사의 이익을 위한 시상식을 선택했다면, 적어도 쇼로서 만족할 만한 재미는 줘야 했다. 그런데 과연 2015년의 시상식들은 그런 즐거움과 재미를 주었을까. 결과적으로 만족감은 둘째 치고 불편함을 주는 장면들이 나오기까지 했다.

<SBS 연예대상>의 시상식 진행을 맡은 전현무는 시청자들에게 질타를 받았다. 시상식의 재미를 위해 했던 일이라고는 해도 무관(無冠)의 강호동에게 지나치게 깐족대는 모습을 보였다. “상에 대한 욕심이 있느냐”고 묻고는 “그렇다”고 하자, “올해 자기가 한 게 뭐가 있느냐”고 되묻는 식이었다. 예능 프로그램이었다면 그러려니 했겠지만 한 해의 공과를 나누는 시상식 자리에서 많은 시청자가 지켜보는 와중에 나온 언사로 무례하게 다가올 수 있었다. 결국 못내 불편했다는 시청자들의 비난이 봇물 터지듯 나오면서 논란이 커졌고, 다음 날 전현무는 공식적으로 사과했다.

유재석과 김병만에게 공동 대상을 준 SBS 연예대상은 ‘대상’의 의미를 퇴색시켰다. ⓒ 뉴시스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바로 다음 날 있었던 <KBS 연기대상>에서도 전현무의 진행 방식은 전날과 다름이 없었다. <프로듀사>로 남남 커플이 된 김수현과 차태현에게 커플 뽀뽀를 요구하는가 하면, 특종이라며 김수현의 주량과 주사(酒邪)를 집요하게 캐묻는 모습을 보여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시상식이 매해 이런 논란을 되풀이해 일으키는 까닭은 방송사가 스스로 자화자찬의 축배를 드는 동안 시청자들은 소외되는 느낌을 받아서다. 시청자들이 공감할 수 있는 시상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고, 그 기준도 애매모호하기 때문에 결과를 수긍하기가 어렵다. 공동 수상은 다른 말로 하면 방송사 스스로가 “올해는 이것도 좋았고 저것도 좋았다”고 자화자찬하는 것이다. 시청자들에 대해 겸손한 자세가 결코 아니다.

시청자가 투표해서 뽑는 상을 제외하고는 그 시상 기준이 모호하다는 점도 논란이 나오는 이유 중 하나다. 결국 방송사가 제시하는 시상 기준에선 시청률이 절대적인 잣대가 되곤 한다. 2015년 연기대상을 가져간 SBS의 주원은 <용팔이>로, KBS의 김수현과 고두심은 <프로듀사>와 <부탁해요 엄마>로, MBC의 지성은 <킬미힐미>로 지난 한 해의 시청률을 이끌었던 주인공들이다. 시청률이 조금 떨어져도 상을 탄 경우라면, 중국의 한류 예능을 연 <런닝맨>의 유재석처럼 방송사의 긍정적인 이미지를 만드는 데 일조한 경우다.

연말 시상식에서 쏟아져 나오는 시청자들의 볼멘소리는 바로 이 소외된 위치가 주는 불편함에서 야기된다. 심지어 ‘전파 낭비’라는 얘기까지 나오는 연말 시상식이 제대로 이루어지려면 시청자가 소외되지 않고 참여할 수 있는 공정한 룰이 전제되어야 한다. 적어도 ‘그들만의 시상식’으로 끝나서는 결코 논란의 악순환이 멈춰지지 않을 터다. 하다못해 쇼로서의 재미라도 충분히 살리든가. 재미도 없고 의미도 없는 시상식을 굳이 연말의 프라임 타임에 방영하는 건 시청자들을 너무 무시하는 태도가 아닐까 싶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