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의 유일한 경고 ‘지방간’
  • 노진섭 기자 (no@sisapress.com)
  • 승인 2016.01.14 18:23
  • 호수 13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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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간 방치하면 돌이킬 수 없는 간염·간경변으로 진행가장 효과적인 치료법은 체중 감량
임영석 서울아산병원 소화기내과 교수가 컴퓨터 모니터로 지방간 영상을 보며 설명하고 있다. ⓒ 서울아산병원

간은 ‘침묵의 장기’라고 불릴 정도로 병이 생겨도 증상이 나타나지 않는다. 간의 유일한 경고는 지방간이다. 지방간을 방치하면 간염·간경변 등 되돌리기 어려운 상태로 진행할 수 있다. 그러나 지방간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사람이 많다. 50대 직장인 장인수씨도 몇 해 동안 지방간을 방치하다 최근 병원 신세를 졌다. 그는 “누구나 있는 것으로 알고 그냥 넘겼는데 작년 여름부터 쉽게 피곤을 느껴서 병원에 갔더니 지방간이 심해진 상태였다”고 말했다.

지방간은 간 무게(약 1.5㎏)의 5% 이상 지방이 쌓인 질병이다. 대한간학회가 1988~2007년 성인 75만명의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1990년대 10%였던 지방간 유병률은 꾸준히 상승해 30%까지 올라갔다. 성인 10명 중 3명은 지방간인 셈이다. 지방간은 증상이 없어서 외형상 건강해 보인다. 증상이래야 간이 있는 오른쪽 상복부가 가끔 뻐근하거나 갑갑한 정도다. 우연히 혈액검사나 간 초음파검사(또는 CT나 MRI 검사)로 발견하는 경우가 많다.

원인이 술이면 알코올성 지방간이라고 부른다. 술을 많이 마시면 간 기능, 특히 지방 분해력이 떨어져 간에 지방이 쌓인다. 한마디로 간도 술에 취해 제 일을 하지 못하는 상태가 된다. 이는 술 종류와 관계없이 술의 양과 기간에 따라 생긴다. 예를 들어 소주 1병(알코올 약 70㎎)에는 맥주 500cc(알코올 약 25㎎) 3잔과 비슷한 양의 알코올이 들어 있다. 임영석 서울아산병원 소화기내과 교수는 “애주가의 과반수는 지방간을 갖고 있다는 통계가 있다”며 “매일 소주 반 병을 수일간 계속 마셔도 지방간이 생길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여성 지방간도 늘어나고 있는데 국민건강보험공단(2011년)에 따르면, 여성 알코올 간 질환 환자 중 34.2%에서 지방간이 발견됐다. 여성은 남성보다 체지방이 많고 체내 수분은 적기 때문에 소량의 알코올에도 간이 쉽게 손상된다.

지방간 80%는 술과 관계없는 비알코올성

술을 전혀 마시지 않거나 소량(일주일에 여자 소주 1병, 남자 소주 2병 이하)을 마실 뿐인데도 간에 지방이 끼어 있는 질병이 비알코올성 지방간이다. 대한간학회에 따르면, 전체 지방간 중 비알코올성 지방간 비율은 80% 이상이고 증가세도 가파르다.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연구 결과, 비알코올성 지방간 유병률은 2004년 11.5%에서 2010년 23.6%로 2배 이상 급등했다. 비만한 사람의 유병률은 58~74%로 더 높다.

비만 외에 당뇨나 고지혈증이 있는 사람이나 약제(여성호르몬·스테로이드 등)를 오래 복용한 사람에게서 잘 발생한다. 그 외에 다양한 원인이 최근 연구로 밝혀졌다. 대표적인 게 탄수화물·당분이다. 식약처에 따르면, 비알코올성 지방간의 유병률은 탄수화물을 많이 먹는 사람(상위 33%)이 적게 먹는 사람(하위 33%)에 비해 남성은 약 1.7배, 여성은 약 3.8배 높다. 또 과당은 오로지 간에서만 대사되는데 많은 양의 과당이 한꺼번에 간으로 유입되면 미처 포도당으로 전환되지 못하고 지방 성분으로 간에 쌓인다. 특히 한국인은 흰 쌀밥 위주의 식습관으로 인해 탄수화물 섭취가 많아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나이를 먹을수록 근육량이 줄어드는 ‘근감소증’이 비알코올성 지방간과 연관된 사실도 최근 밝혀졌다. 차봉수·이용호 세브란스병원 내분비내과 교수팀은 2008~11년 국민건강영양조사 데이터를 분석했더니 근감소증을 보이면 비알코올성 지방간 발생 비율이 1.55~4배까지 높아진다는 점을 발견했다. 정확한 근감소증 여부는 특수 장비로 측정하지만, 평소 걷는 속도로 근감소증을 예측해볼 수 있다. 4m를 걷는 데 5초 이상 소요되면 근감소증을 의심해봐야 한다. 차봉수 교수는 “비만과 당뇨가 없는 사람도 근감소증을 겪으면 비알코올성 지방간이나 간 섬유화 증세를 보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지방간은 간염이나 간경변에 비하면 심각한 질병은 아니다. 그러나 지방간 환자 4명 중 1명은 치료를 하지 않고 방치해 간경변증으로 진행한다. 최근에는 비알코올성 지방간 중에 염증까지 생긴 ‘지방 간염’도 발견되고 있다. 간에 지방이 축적될 뿐 아니라 간세포가 썩는 염증이 생긴 것이다. 지방간은 심혈관 질환과도 관계가 있다. 지방간 환자는 심장 혈관에 석회화(石灰化)가 생길 위험이 30% 증가한다. 특히 비알코올성 지방간은 심혈관 질환으로 사망할 위험이 정상인보다 3.5배 높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김태헌 이대목동병원 간센터 교수는 “지방간은 대부분 특별한 증상이 없어 병원을 찾는 경우가 많지 않고, 진단을 받더라도 다른 간 질환에 비해 가볍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며 “일부 지방간은 장기간 내버려두면 치명적인 간경화로 진행되어 간암 발생의 위험성이 커진다”고 강조했다.

지방간에 가장 분명한 치료 효과를 보이는 것은 체중 감량이다. 일주일에 0.5~1㎏을 줄이면서 현재 체중의 10%만 감량하면 된다. 너무 급하게 체중을 감량하거나 체중 감량 수술을 받으면 오히려 지방간이 악화할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또 동물성 지방을 줄이고 채식주의자가 될 필요가 있다. 하루 세 끼를 챙기되 한 끼 분량을 조금 줄인다. 튀김, 사탕, 꿀, 초콜릿, 라면, 도넛, 케이크, 삼겹살, 갈비, 닭 껍질, 햄, 치즈, 땅콩, 콜라, 사이다 등은 피해야 할 음식이다. 임영석 교수는 “대다수 지방간 환자는 과체중·비만이므로 체중 감량이 가장 효과적인 지방간 치료법”이라며 “현재 체중의 10%를 3~6개월 동안 서서히 줄인다는 목표를 세우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간에 무리 없는 하루 음주량, 소주 반 병

운동은 지방간 치료에 도움이 될 뿐 아니라 혈압·혈중 콜레스테롤·혈당까지 내린다. 걷기, 조깅, 자전거 타기, 등산, 수영, 에어로빅댄스 등 유산소 운동이 적합한데, 일주일에 3번 이상 한다. 강도는 땀으로 몸이 촉촉하게 젖을 정도가 좋다. 운동 중에 가슴이나 무릎 등 몸에 통증을 느끼면 중단한다.

알코올성 지방간이라면 금주는 절대적이다. 금주하면 정상 간으로 회복되지만 계속 술을 마시면 악화돼, 심하면 알코올성 간염이나 간경변증으로 진행한다. 이 상태까지 가면 회복이 어렵다. 술을 끊을 수 없다면 많이 줄이기라도 해야 한다. 간에 무리를 주지 않는 알코올 섭취량은 하루 10?20g, 즉 맥주 1캔, 소주 반 병, 양주 2?3잔 정도다. 일주일에 1~2회 정도로 음주 횟수를 낮춰 간이 쉴 수 있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이준혁 삼성서울병원 소화기내과 교수는 “금주와 함께 하루에 30~40분 정도, 주 3회 이상 꾸준히 운동하면 3~6개월 안에 대부분 좋아진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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