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규선과 사라진 ‘27 억원’의 미스터리
  • 이승욱 기자 (gun@sisapress.com)
  • 승인 2016.01.18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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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입수> 최규선 유아이에너지 회장, ‘페이퍼컴퍼니 설립’ 인정하는 통화 녹음파일

“반드시 사업으로 재기에 성공해 동교동 어르신들을 찾아뵙고 인사를 드릴 것이다.” 지난 2002년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이른바 ‘최규선 게이트’의 주인공 최규선 유아이에너지 회장(현 썬코어 회장)이 평소 지인에게 자주 한 말이다. DJ(김대중 전 대통령) 정부 말기 터져 나온 체육복표 사업 비리 등 ‘최규선 게이트’로 최 회장 자신뿐만 아니라 현직 대통령의 아들까지 구속됐다. 정권 말기 불거진 권력형 게이트는 DJ 정부에는 치명타였다. 당시 최 회장은 게이트의 정점(頂點)에 서 있었다.

최규선 유아이에너지 회장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대선 후보 시절부터 마이클 잭슨 방한과 헤지펀드계의 전설로 불리는 조지 소로스와의 화상(畵像)회의를 성사시키며 DJ 정부 출범에 혁혁한 공을 세웠다. 하지만 ‘최규선 게이트’가 불거지면서 최 회장은 김 전 대통령과 동교동계로부터 외면당해야 했다.

성공한 사업가로 변신해 동교동계와의 화해를 바랐던 최 회장은 출옥 후 각종 사업에 뛰어들며 화려한 재기를 꿈꿔왔다. 하지만 최 회장의 사업 재기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최 회장은 지난 2008년 MB(이명박) 정부 시절 이라크 쿠르드 유전 개발 사업에 참여하는 과정에서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로 약식기소 처분을 받았다. 2013년에는 유아이에너지를 운영하면서 400억원대 회사 자금 횡령 사건에 휘말려 불구속 기소됐다. 이 사건은 3년째 1심 재판이 진행 중이다.
지난해 상장사인 루보를 인수해 썬코어 회장으로 화려하게 재기하는 듯했지만 그를 둘러싼 구설은 여기가 끝이 아니었다. 지난해 11~12월까지 최 회장은 여러 건의 고소 사건에 휘말렸다. 최 회장이 회사 투자 및 수주 로비 명목 등으로 수억 원을 가로챘다는 고소가 이어졌고 현재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이다.<24쪽 기사 참조>

시사저널은 최 회장이 연루된 잇단 고소 사건을 주목해 집중 취재에 들어갔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눈에 띄는 사건을 접할 수 있었다. 바로 최 회장의 지인이자 DJ 정부 당시 청와대 행정관을 지낸 신 아무개씨 등과의 분쟁으로 빚어진 고소 사건이다. 최 회장이 실소유했다는 의혹을 사고 있는 비상장 회사 ㈜파라마운트컨설팅의 대표이사를 지낸 신씨는 “최 회장이 BW(신주인수권부사채) 인수 과정에서 빌린 저축은행 대출금 50억원 중 약 27억원을 상환받고도 이를 갚지 않았다”며 횡령 및 배임 의혹을 주장하고 있다. 신씨는 이 과정에서 최 회장이 페이퍼컴퍼니를 활용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본지는 최근 최 회장이 피소된 사건이 사업 투자나 회사 운영자금을 빌리는 과정에서 빚어진 양상과는 달리 페이퍼컴퍼니를 통해 회사 자금을 유용했다는 주장에 주목해 해당 사건을 취재했다. 이 과정에서 상식적으로 납득되지 않는 의혹이 상당수 있다는 점을 발견했다.

의혹 1. 대출 상환금, 왜 파라마운트로 갔나

27억원 횡령 고소 사건은 최규선 회장의 유아이에너지가 현대피엔씨(現 현대페인트)의 대주주였던 2009년께로 거슬러 올라간다. 본지가 입수한 현대피엔씨의 BW 인수 계약서에 따르면, 코스피 상장사인 현대피엔씨는 2009년 12월 50억원의 BW를 발행하고 이를 비상장사인 파라마운트컨설팅(이하 파라마운트)이 인수하는 계약(3년 만기 조건)을 체결했다. 파라마운트는 현대피엔씨가 발행한 BW와 현대피엔씨 측의 보증을 토대로 토마토2저축은행(현재 파산관제인 예금보험공사)으로부터 마이너스 대출 5억원 등 총 55억원의 대출을 받았다. 파라마운트는 대출금 중 50억원을 BW 인수 대가로 현대피엔씨에 제공했다.

문제는 BW의 상환 과정에서 발생했다. 현대피엔씨는 이후 2012년 2월29일부터 2012년 8월27일까지 총 13~14차례에 걸쳐 파라마운트 법인계좌로 약 27억원을 이체했다. 파라마운트가 저축은행으로부터 받은 대출금의 원금 상환이라는 명목이었다. 하지만 본지가 입수한 현대피엔씨와 파라마운트의 BW 인수 계약서에는 ‘원금 상환 및 이자 지급 장소’가 ‘토마토2저축은행 선릉지점’으로 돼 있다.

현대피엔씨가 BW 인수 대가로 보증한 저축은행 대출금을 정확히 상환하기 위해 상환 방법을 구체화시킨 것이다. 그런데도 어떤 이유에서인지 현대피엔씨는 파라마운트 법인계좌로 50억원 원금 중 27억원을 전달한 것이다. 이는 현대피엔씨와 파라마운트 법인계좌 간 거래명세표로 확인됐다. 이와 관련해 현대피엔씨(현 현대페인트) 재무 담당 직원은 “당시 재무 담당 직원이 BW 계약서상 원금 상환 방법을 정확히 인지하지 못한 채 파라마운트로 돈을 보낸 것”이라면서 “(최 회장 등) 윗선에서 파라마운트로 원금 상환을 하라고 지시했는지 여부는 현재로서는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의혹 2. 27억원 원금 상환 제대로 이뤄졌나

그런데 뜻밖의 문제점은 상환 만기일인 2012년 12월로부터 2년 5개월이 흐른 시점에서야 드러났다. 최 회장과 유아이에너지가 현대피엔씨의 지분을 정리한 후, 현대피엔씨가 회생 절차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과거 파라마운트에 전달한 27억원의 대출금 상환이 전혀 이뤄지지 않은 사실을 인지한 것이다. 현대피엔씨 측은 “법원이 회생 절차를 진행할 때 채권신고서를 받았는데 (파라마운트에 입금한 BW 대출 상환금 명목의 27억원이) 하나도 변제가 안 돼 있고, 이자까지 고스란히 남아 있던 것을 뒤늦게 확인했다”면서 “27억원을 갚지 않아 회사로서도 큰 손해를 본 셈이 됐다”고 말했다.

실제 최 회장을 고소한 파라마운트의 전 대표 신씨에 따르면, 토마토2저축은행으로부터 받은 기존 55억원 대출금과 2011년 3월 14억원의 추가 대출금을 포함해, 파라마운트의 부채가 원리금 109억원으로 불어난 후 87억원가량으로 조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피엔씨는 채권 정리 과정에서 토마토2저축은행에 원금과 이자를 포함해 납입을 했지만, 나머지 이자 미수금 18억여 원은 파라마운트 현 대표인 최 회장과 연대보증인인 신 전 대표, 후임인 김 아무개 전 대표 등이 떠안은 상황이 돼버렸다.

결국 신 전 대표와 김 전 대표 등은 지난해 11월 최 회장을 횡령 및 업무상 배임 혐의로 고소했다. 신 전 대표는 “최 회장이 현대피엔씨의 자금 27억원을 저축은행에 변제하지 않고 계약서와 달리 파라마운트 계좌로 입금했다는 것은 처음부터 상환할 목적이 아니라 다른 목적이었던 것”이라면서 “연대보증인으로 걸린 나와 김 전 대표는 신용이 최하위로 추락하고 신용불량이라는 불명예와 함께 경제활동을 전혀 하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김 전 대표는 이 과정에서 정신적 충격을 받아 뇌출혈로 수술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최 회장은 기자의 해명 요청에 1월14일 “BW 50억원은 도야인터내셔널에서 파라마운트를 대신해 이미 대위변제했고 완전 상환됐다”면서 “이를 통해 50억원에 대한 워런트는 당시 현대피엔씨의 장기 근속자들에게 전부 무상으로 넘겨줬다”고 주장했다. 도야인터내셔널은 최 회장의 모친인 신 아무개씨가 대표이사로 있는 주유소 운영업체다. 최 회장 측은 이에 대한 근거로 도야인터내셔널이 현대피엔씨의 BW 대위변제로 51억원(이자 포함)을 갚았다는 저축은행의 증서와 확인서 등을 제시했다. 

최 회장은 “최규선 게이트라는 악명 때문에 사업에 재기하려는 나를 색안경을 끼고 공격을 하고 있다”면서 “이미 여러 차례 각종 고소·고발이 있었지만 검찰 수사 등에서 무혐의를 받기도 했는데 너무 억울하다”고 항변했다.

하지만 본지가 확인한 결과, 도야인터내셔널이 대위변제한 50억원은 파라마운트의 현대피엔씨 BW 관련 대출금과는 상관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현대피엔씨 측은 “애초 현대피엔씨가 발행한 BW는 100억원 규모로 이 가운데 50억원은 파라마운트로, 나머지 50억원은 토마토2저축은행이 인수한 것”이라면서 “도야인터내셔널이 대위변제했다고 하는 것은 토마토2저축은행이 인수한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피엔씨 측은 “파라마운트가 인수한 BW 50억원 중 현대피엔씨가 제공한 27억원이 (저축은행에) 상환되지 않은 것은 맞다”고 재확인했다. 이에 따라 최규선 회장 측에 다시 확인 요청을 하자, 최 회장 측 관계자는 1월15일 “현대피엔씨 BW 100억원이 파라마운트와 토마토2저축은행에 각각 50억원씩 나뉘어 발행된 것이 맞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관계자는 “현대피엔씨가 파라마운트에 발행한 BW의 상환금 명목으로 27억원을 건넨 것은 맞다”면서도 “27억원을 저축은행 대출금으로 상환한 것으로 안다”고만 말했다.

의혹 3. 파라마운트는 페이퍼컴퍼니?

사라진 27억원의 행방과 함께 파라마운트(법인 등기부상 법인 설립 2008년 9월)의 실체에 대해서도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검찰은 지난 2013년 최 회장의 416억원대 횡령 사건을 수사할 당시 파라마운트를 페이퍼컴퍼니라고 결론 내렸다.

하지만 최 회장은 이를 강하게 부인했다. 최 회장은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파라마운트를 페이퍼컴퍼니라고 주장하는 것은 검찰의 이야기일 뿐”이라면서 “파라마운트는 신 전 대표가 (옥외) 광고 사업을 해야 한다고 도움을 요청해 설립한 회사이고 직원들이 실제로 일을 했던 회사”라고 해명했다.

반면 신 전 대표 등의 주장은 엇갈린다. 신 전 대표는 “최 회장이 현대피엔씨를 인수한 후 현대피엔씨 사옥에 LED 광고판 사업을 하려고 하니 명의를 빌려달라고 해서 도움을 준 것”이라면서 “관할 기관의 허가가 나오지 않아 광고 사업도 하지 못했고 실질적인 운영도 되지 않은 곳”이라고 주장했다. 현대피엔씨 측도 “파라마운트에 제공한 27억원의 구상권을 청구하려고 했지만 껍데기뿐인 회사라 아무런 조치도 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기자는 취재 과정에서 최 회장의 최근 해명에 의혹을 제기할 만한 자료를 입수했다. 지난 2013년 416억원 횡령 사건 당시 최 회장 스스로가 파라마운트의 실질적인 설립자이고 파라마운트가 사실상 페이퍼컴퍼니라는 것을 인정한 정황이 담긴 녹음파일이다. 최 회장이 2013년 4월8일 검찰의 참고인 조사를 받고 나온 신 전 대표와 한 전화통화에서 “(신 전 대표와 김 전 대표를 언급하며) OO이나 XX는 가라(가짜)로 내세운 대표이사고…. (검찰) 그 사람들은 아무것도 모르고…. (파라마운트는) 내 회사야”라고 말했다. 최 회장은 또 “(파라마운트가) 페이퍼컴퍼니라는 것은 다 아는데…”라고 말하기도 했다.

현재 사건은 서울강남경찰서에 고소장이 접수돼 있고 고소인 신 전 대표에 대한 조사를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최 회장이 한때 실질적인 오너 역할을 했던 현대피엔씨의 50억원 BW 발행 과정과 사라진 대출 상환금 27억원을 둘러싼 의혹의 실체가 드러날지 주목된다. 

파라마운트컨설팅의 등기부 소재지에 위치한 건물. © 시사저널 고성준

 현대피엔씨가 지난 2012년 13~14차례에 걸쳐 BW(신주인수권부사채) 대출금 상환 명목으로 나눠서 전달한 27억원은 최규선 회장이 현재 대표로 있는 ㈜파라마운트컨설팅을 거쳐갔다. 파라마운트가 현대피엔씨 등 계열사의 자금 통로로 이용됐다는 의혹을 받은 것은 이뿐이 아니었다. 검찰은 2013년 최 회장의 416억원 횡령 사건 당시 파라마운트가 페이퍼컴퍼니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검찰은 2008년 4월~2011년 9월 최 회장이 현대피엔씨의 법인자금 107억8400여 만원이 파라마운트로 건너간 후 이를 단기 대여금 형식으로 18차례 빼돌린 혐의를 확인하면서 파라마운트를 페이퍼컴퍼니로 규정했다. 
 하지만 파라마운트의 페이퍼컴퍼니 의혹에 대해 최 회장은 여전히 부인하고 있다. 파라마운트의 실체에 대한 엇갈린 주장을 확인하기 위해 기자가 파라마운트의 등기부등본상 주소를 확인해봤다. 지난 1월13일 오후 현재 법인 등기부등본상 주소지로 등재된 서울 강남구 역삼1동 615-XX번지를 찾아가 확인해보니 사진 촬영 스튜디오로 활용되고 있었다. 스튜디오 관계자는 “파라마운트나 최규선이라는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다”면서 “스튜디오가 오픈한 지 1년 6개월 정도 됐는데 이전에는 커피숍으로 운영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등기부등본상 법인의 두 번째 주소지로 등록된 강남구 삼성동 122-쫛번지도 직접 확인했다. 원룸과 오피스텔로 이용되고 있는 이 건물 주인은 “파라마운트가 건물에 입주한 적은 없다”면서 “다만 파라마운트라는 이름이 적힌 우편물이 발송된 적은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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