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용산 개발 의혹’ 파헤친다
  • 박준용 기자 (juneyong@sisapress.com)
  • 승인 2016.01.20 21:17
  • 호수 137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코레일·롯데관광개발·용산AMC 등 배임 혐의 고발당해…허준영 자총 회장 ‘기획 사정說’

‘빚잔치’만 남았다. 그리고, 책임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총 사업 예정액이 31조원으로 ‘단군 이래 최대 규모 사업’이라 불리며 추진됐던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이하 용산 개발) 이야기다.

코레일은 당초 용산 개발을 직접 추진하지 않았다. 시가 8조원에 달했던 용산 철도정비창 부지를 매각해 부채를 메우려 했다. ‘땅 주인’으로만 관여하려 했던 코레일은 2006년 12월 용산 개발의 실무 회사인 용산역세권개발(이하 용산AMC) 지분 29.9%를 사들이면서 사업의 ‘주역’이 됐다. 이후 코레일은 민간 투자자를 끌어들였다. 오세훈 당시 서울시장은 코레일 측에 ‘한강르네상스 프로젝트’와 용산 개발 사업을 연계하자고 제안했다. 사업 규모는 31조원까지 커졌다. 무리한 사업 확장, 부동산 경기 악화로 사업은 끝내 2013년 4월 파산하고 말았다. 이로 인해 파악된 코레일의 손실은 1조원이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정부는 용산 개발이 물거품이 된 후 2년이 지나도록 누구에게도 이에 대한 형사 책임을 묻지 않았다. 2013년 시민단체가 이 사건에 대한 감사를 청구했지만 감사원은 “사업계획 수립이 2008년 이전에 완료돼 감사 시효가 지났고, 용산 개발은 민간 지분이 70%가 넘는 민간 사업”이라면서 이를 기각했다. 하지만 검찰이 최근 용산 개발 사건에 대해 때늦은 수사에 나선 정황이 포착됐다.

총 사업 규모가 31조원에 달했던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 사업은 2013년 무산됐다. 이에 대한 책임을 묻는 수사가 최근 진행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 연합뉴스

본지 취재 결과, 용산 개발에 참여한 코레일, 롯데관광개발(이하 롯데관광), 사업 실무를 담당한 용산AMC 경영진이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 혐의 등으로 2015년 12월28일 서울중앙지검에 고발당한 것으로 확인됐다. 고발인은 “용산 개발 사업 관계자에게 제보를 받았다”고 주장하는 보수단체 소속 박 아무개씨와 김 아무개씨 등이다.

뒤늦게 수사에 착수한 검찰은 수사 속도를 높이는 모양새다. 서울중앙지검은 고발장이 제출된 지난해 12월28일 이후 즉각 사건을 형사1부에 배당했다. 또 올 1월11일부터 고발인 조사에 착수했다. 통상 검찰의 고발인 조사 착수 시점이 고발 후 한 달 이상인 점을 감안하면 빠른 속도다. 형사4부에 배당됐던 사건은 주요 수사 전담 부서로 이관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또 코레일 내외부 관계자로부터 용산 개발 의혹에 대한 새로운 수사 첩보를 최근 입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수사를 주관하는 검찰 관계자는 “고발 내용을 검토 중이다”라고 밝혔다. 또 다른 검찰 관계자는 “고발인 조사가 빠르게 진행되는 것을 봤을 때 검찰의 수사 의지가 강하다고 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수사 당국이 용산 개발 의혹의 책임자로 주시하는 대상은 허준영 한국자유총연맹 회장(전 코레일 사장)이다. 그를 고발한 고발인들은 허 회장이 코레일 사장으로 재직하며 민간 기업에 혜택을 주고, 코레일에는 손실을 안겼다고 주장하고 있다.

김수남 검찰총장이 2015년 12월2일 취임했다. 그의 주도로 대형 국책사업 비리가 수사선상에 오를 전망이다. ⓒ 시사저널 최준필

검찰에 고발된 허 회장의 주요 배임 의혹은 그가 롯데관광에 특혜를 안겼다는 논란에 관해서다. 롯데관광은 용산 개발이 착수되던 시점에는 사업을 주도하지 않았다. 삼성물산이 최대주주로 용산 개발을 주도했다. 하지만 사업 과정에서 삼성물산이 코레일과 갈등을 빚었다. 삼성물산이 코레일에 지급해야 할 토지 매입 중도금을 연체했기 때문이다. 삼성물산은 지급 시기를 미루다 용산 개발의 사업성이 없을 것으로 최종 판단해 철수했다. 2010년 9월 롯데관광은 용산AMC의 지분 45.1%를 삼성물산으로부터 인수했다. 이로 인해 롯데관광은 코레일(지분율 25%)에 이어 용산 사업 시행사인 드림허브의 2대 주주(지분율 15%), 용산AMC의 1대 주주(지분율 70%)가 됐다.

용산 개발의 주관사가 된 롯데관광에 코레일은 특혜 소지가 있는 조치를 해준다. 2011년 7월 4000억원을 유상증자(전환사채)하는 조건으로 드림허브가 개발할 예정이던 랜드마크 빌딩을 짓기도 전에 4조원대에 미리 사줬다. 또 드림허브의 토지대금 2조2000억원의 지급 시기를 연기해줬다. 코레일이 드림허브에 준 혜택은 곧 롯데관광에 대한 혜택이었다. 롯데관광이 당시 드림허브의 민간 최대 투자사였기 때문이다. 이는 허 회장의 코레일 사장 재임 기간에 이뤄졌다.

허 회장의 후임으로 부임한 정창영 전 코레일 사장도 이 조치에 대해 비판했었다. 정 전 사장은 언론 인터뷰에서 허 회장을 겨냥해 “전임 사장에 대해 이야기하는 게 조심스럽지만 용산 사업을 왜 이렇게 민간 출자사와 계약했는지 이해가 안 된다”며 “코레일은 일방적으로 자금을 지원만 하고 지원할 자금을 회수할 수 있는 조항이 하나도 없는 계약 조건은 부당하다”고 말했다.

허 회장은 용산 개발 사업이 파산한 데 대해 자신의 책임은 적다고 반박한 바 있다. 그는 언론 인터뷰에서 “선발에서 지던 게임을 중간계투인 제가 역투해서 어렵게 역전시켜놨는데 마무리투수가 잘못해서 진 게임을 가지고 중간계투를 탓하면 되겠느냐”고 말했다.

표면적으로는 허 회장의 배임 의혹에 대해 수사 당국이 뒤늦게라도 수사에 나선 것은 정당해 보인다. 이는 최근 정부가 “1조원 이상이 투입된 대형 국책 사업을 중점적으로 조사하겠다”고 한 맥락과 닿는다.

하지만 용산 개발 수사의 배경을 두고 뒷말이 돈다. 검찰이 최근 이 고발 사건을 수사선상에 두고 ‘만지작거리는’ 것은 허 회장이 청와대에 ‘밉보인’ 탓이라는 분석이 나오기 때문이다.

허준영 한국자유총연맹 회장이 ‘용산 개발 의혹’ 수사선상에 올랐다. ⓒ 사진공동취재단

허 회장이 청와대의 눈 밖에 났다는 주장은 2015년 2월 있었던 자총 회장 선거에서 출발한다. 당시 허 회장이 자총 선거 과정에서 상대 후보인 이동복 전 의원을 누르고 당선됐다. 자총 관계자에 따르면, 이 전 의원은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 중앙정보부(현 국가정보원)의 간부를 지낸 친박(親박근혜) 인사다. 관계자들의 말대로라면 허 회장은 청와대에서 내려보낸 인사를 밀어내고 회장직을 차지한 것이다.

허 회장이 청와대와 불편한 관계라는 점은 행정자치부와의 갈등으로도 짐작할 수 있다. 허 회장은 선거 방식을 두고 행자부와 대립했었다. 2015년 행자부가 자총 회장 선거에서 추천제 방식을 제안하자 그는 이를 거부했다. 그러자 행자부는 매년 자총 인사에게 주던 상훈을 중단했다. 2015년 12월 자총 대의원에게 보낸 편지에서 허 회장은 “행자부는 개념 정립도 안 된 추천제를 계속 강요하면서 급기야 자기들 요구를 들어주지 않자 협박을 일삼았다”면서 “독재 시절에도 반체제·반정부 조직에 대한 탄압은 있었지만 애국충정 조직에 대한 탄압은 없었다”면서 행자부를 비판했다.

더구나 허 회장이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와 가깝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이는 정부가 허 회장을 ‘기획 사정(司正)’ 대상에 올렸다는 관측에 근거를 더한다. 현 정권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지속적으로 해온 ‘김무성 견제’가 이번 용산 개발 수사를 통해서도 나타나고 있다는 분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한 자총 관계자는 “김무성 대표의 후원 세력이 2015년 2월 자총 회장 선거 당시 허 회장에 대한 지지를 표명했다. 허 회장도 김 대표와 친분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통상적으로 청와대에서 내려보낸 인물이 자총 회장을 지냈다. 허 회장은 청와대에서 보낸 인물에 대항해 출마해 당선된 것이다. 청와대 입장에서는 ‘항명’으로 생각할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또 다른 자총 관계자도 “행자부는 허 회장이 자총 회장에 오르고 나서 지속적으로 불이익을 주고 감사했다”면서 “‘친박’ 핵심으로 알려진 정종섭 행자부장관과 대립하는 모양새는 곧 청와대와 대립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허 회장 측은 이에 대해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시사저널이 수차례 연락을 시도했으나 그는 응하지 않았다. 허 회장의 측근은 ‘용산 개발 의혹’ 연루와 청와대와 갈등설 모두를 전면 부인했다. 허 회장의 한 측근은 “현재 허 회장을 고발한 인물은 용산 개발에는 전혀 관여하지 않은 인물이다”면서 “롯데관광의 김기병 회장 등 민간 업체에는 문제가 있을지 몰라도 검찰 수사를 한다면 허 회장은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허 회장이 청와대에 밉보였다는 주장에 대해 또 다른 측근은 “자총 회장 선거가 한 달 후인 2월에 있다. 선거가 다가오자 허 회장 상대 후보 쪽에서 흠집 내기를 하는 것이다”라면서 “김 대표와 허 회장이 가깝고, 허 회장은 청와대 뜻에 반하는 인물이라는 것은 확인된 사실이 아니다. 이 또한 허 회장 상대 후보가 일방적으로 주장하는 것이다”고 반박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