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에 4만명 벌금 못 내 감옥 간다”
  • 조유빈 기자 (you@sisapress.com)
  • 승인 2016.01.20 21:21
  • 호수 13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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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통과한 ‘장발장법’ 대표 발의한 홍종학 더불어민주당 의원

남편은 회사 구조조정으로 실직했다. 정부의 긴급생계비로 하루하루를 근근이 살아가고 있었다. 아내는 만삭이었다. 아이가 태어나면 어떻게 키워야 할지도 막막했다. 어느 날 밤, 아내가 갑자기 진통을 호소했다. 남편은 당시 면허가 취소된 상태였지만 고민할 겨를도 없이 병원으로 차를 몰았다. 급한 마음에 빨간불 신호를 지나친 것이 경찰에 적발됐다. 도로교통법 위반으로 벌금 200만원이 나왔다. 정부가 준 돈은 이미 출산비용으로 바닥났다. 한 달 안에 벌금을 완납하지 않으면 구치소로 끌려간다고 했다. 아내와 갓 태어난 아이를 두고 구치소에 들어갈 수는 없었다. 그는 은행 문을 두드렸고, 10개월 분납 조건으로 200만원의 대출을 받게 됐다.

김미정(가명)씨는 3년 전 강원도 정선의 한 다방에서 일하게 됐다. 처음엔 배달만 하는 조건이었다. 그러나 다방 업주는 선불로 준 300만원의 돈을 미끼로 김씨에게 성매매를 하라고 요구했다. 겁먹은 김씨는 일을 그만뒀고, 업주는 돈을 갚지 않았다는 이유로 김씨를 사기 혐의로 고소했다. 법원은 김씨에게 벌금 100만원을 선고했고, 100만원을 낼 여력이 없었던 김씨는 대출을 신청했다.

ⓒ 시사저널 최준필

벌금을 낼 여력이 없어 감옥에 가야 할 상황이 된 이들에게 마지막 희망이 된 은행은 바로 ‘장발장은행’이다. 장발장은행은 과잉 형벌의 상징이 된 장발장의 이름을 따 설립된 은행으로, 소설가 서해성씨의 제안으로 이름이 붙여졌다. 벌금형을 선고받고도 낼 돈이 없어 교도소에 갇혀야 하는 사람들에게 벌금 액수만큼 돈을 빌려준다. 가난이 곧 교도소행이 되는 사회를 고쳐보고자, 시민들이 나서서 성금으로 설립한 무담보·무이자 은행이다. 목표는 ‘파산’이다. 이러한 도움을 받아야 하는 힘든 ‘장발장’들이 없어지길 바라는 것이다.

이 은행의 취지에 드디어 ‘법’도 힘을 보탰다. 5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집행유예 선고가 가능한 형법 개정안, 이른바 ‘장발장법’이 지난해 12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것이다. 1월12일, 장발장법을 대표 발의한 홍종학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국회에서 만났다. 홍 의원은 현재 장발장은행의 운영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2015년 6월4일 국회에서 열린 ‘국회로 간 장발장’ 행사에서 염수정 추기경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장발장법에 대해 설명해달라.

법안의 내용은 두 가지다. 벌금형에도 집행유예 선고가 가능하게 하는 것과, 벌금을 분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징역보다 가벼운 형벌이 벌금형이다. 그러나 징역형에는 집행유예라는 제도가 있다. 실제로는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은 상태에서 개과천선의 기회를 받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더 가벼운 형벌인 벌금형에는 집행유예가 없다. 형편이 좋지 않아 벌금을 못 내는 사람들은 징역형을 살게 된다. 형평성에 맞지 않는 처벌을 받게 되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이 1년에 4만명이 넘는다.

선진국의 경우 소득에 따라 벌금이 달라진다. 일명 ‘일수(日收)벌금제’다. 유명 운동선수가 속도위반을 한 경우 몇 만 달러의 벌금을 물기도 한다. 법조계는 우리나라에 이 법제도를 적용하는 것이 시기상조라며 반대해왔다.

장발장은행 운영위원으로 참여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43199는 2009년 벌금을 못 내 감옥에 간 사람들의 수다. 그 이후 인권연대에서 43199위원회가 만들어졌다. 바로 이것이 장발장은행의 전신이다. 교도소에 재능기부를 하시는 분들이 있다. 재소자들을 대상으로 교육을 하시는데, 그러다 교도소에 있는 사람들에게 벌금을 못 내 징역을 살게 된 안타까운 사연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시민사회 출신으로 여러 활동을 해오던 와중에 이 사연들을 전해 듣고 도움이 될 수 있다면 바로 참여하겠다고 했다.

장발장은행에서 대출받을 수 있는 자격과 심사 기준은 무엇인가.

벌금형을 선고받았지만 벌금을 낼 여력이 없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대출을 신청할 수 있다. 신청하면 대출심사위원회의 심사를 거쳐 대출받을 사람을 정한다. 죄의 종류, 가정형편 등을 본다. 청년, 어르신, 한부모 가정의 엄마나 아빠에게 우선적으로 대출해준다. 대출심사위원회는 검찰 출신의 김희수 변호사,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을 비롯해 법학과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들로 이뤄져 있다. 홍세화 협동조합 가장자리 이사장이 은행장으로 있고 교수, 작가, 교정청장, 병원장 등도 운영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성범죄·음주운전·대포통장 등으로 벌금형을 선고받았을 경우 어떻게 되나.

정말 어려운 형편인 사람들이 음주운전을 했다가 벌금형을 받는 일이 가끔 있다. 안타까운 사연이 그 배경이 됐더라도, 음주운전의 경우는 도와드리기 어렵다. 벌금 500만원을 기준으로 한 것은 500만원도 갚을 수 없는 어려운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기 위함이다. 대포통장·성범죄 등의 경우 500만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기 어렵고, 상습범의 경우 형이 더 가중돼 법 적용 대상이 되지 않는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이 대출을 받는 것이다 보니 상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본다.

돈을 빌리면 6개월의 유예 기간을 두고 그 기간이 지나면 갚게끔 한다. 그러나 막노동을 해서 돈이 생기면 바로 돈을 갚으러 오는 사람도 있다. 장발장은행이 조금씩 알려지자, 어떤 독지가가 사정이 안 좋은 분의 돈을 대신 갚겠다고 나섰다. 그런데 그 사람이 그걸 거절했다. 내가 빌린 돈이니, 직접 벌어서 갚겠다는 것이다. 실제로 대출을 받은 300명 중 129명이 돈을 상환하기 시작했고, 이미 전액 상환을 한 사람이 9명이다. 이들이 상환한 금액은 또 다른 어려운 사람들에게 대출해주기 위해 쓰인다.

‘장발장법’을 통해 장기적으로 어떤 실효를 거둘 수 있을 것으로 보나.

장발장은행이 출범한 이후 ‘국회로 간 장발장 행사’가 국회에서 열렸다. 염수정 추기경, 정의화 국회의장을 비롯해 많은 분이 적극적으로 동참해주셨다. 미국에서는 돈을 조금씩이라도 갚아나가는 사람들을 더 높게 평가한다. 병원비가 없을 경우 병원에서 대출해주고 형편이 되는 대로 갚게 하는 제도도 있다. 법안이 통과된 것을 계기로 조금씩 사회가 바뀌게 되면 선진국처럼 일수벌금제도도 도입할 수 있지 않겠나. SNS(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와 다양한 플랫폼을 통해 장발장은행과 장발장법에 대해 적극적으로 알릴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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