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자부활전 없는 사회 분위기 바뀌어야”
  • 김경민 기자 (kkim@sisapress.com)
  • 승인 2016.01.20 21:31
  • 호수 13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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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청년 이민에서 국정원 선거 개입까지 <한국이 싫어서>의 작가 장강명이 말하는 한국 사회

서울 전역에 눈이 내리던 1월13일 신도림역 인근 펍에서 소설가 장강명을 만났다. 2014년 수림문학상, 2015년 문학동네 작가상, 제주4·3평화문학상 등 연이어 수상작에 이름을 올리며 지난해 가장 ‘핫’한 장편 작가로 떠오른 그였다.

특히 지난해 출간된 장편 <한국이 싫어서>는 현실적 이유로 한국을 떠나는 청년들의 이야기를 담아내며 대중과 평단에서 공감을 이끌어냈다는 평을 받았다. 20대 후반의 직장 여성이 회사를 그만두고 호주로 이민 간 사정을 대화 형식으로 들려주며 자신의 행복을 추구해가는 과정을 속도감 있게 보여준다.

ⓒ 시사저널 최준필

장강명 작가는 “인터넷 포털 사이트의 뉴스에 ‘한국이 싫다’ ‘이 나라를 뜨고 싶다’ 이런 댓글들이 달려 있는 것을 보고 쓰기 시작한 작품”이라고 말했다. “2030세대들이 한국을 떠나고 싶어 하는 주된 이유는 취업난·주택난·생활고 등 여러 가지 현실적인 문제인 경우가 많다. 기성세대로서 이 같은 청년들의 문제의식에 일정 부분 죄책감과 안타까움을 느낀다. 저라고 어떤 솔루션을 줄 수는 없겠지만.”

법무부 자료에 따르면, 2014년 한국 국적 포기자는 1만9472명. 한국 국적을 취득한 사람(1만4200명)보다 5200여 명 많았다. 국적 포기의 동기가 취업인 경우가 증가하는 추세여서 한국을 떠나기로 한 결심에 현실적인 고민이 깔려 있음을 짐작해볼 수 있다.<시사저널 1369호 ‘특별기획 난세를 사는 법’ 참조>

책 제목만 보면 장강명 작가도 한국 사회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을 갖고 있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하지만 그가 한국 사회에 대해 갖고 있는 기본적인 신뢰는 의외로 단단했다.

“사회 비판적인 작품을 연달아 내고는 있지만, 개인적으로 지금의 한국이 일부에서 말하듯 ‘헬조선’이고 ‘미래가 없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문제는 ‘패자부활전’ 혹은 ‘다름’이 용인되지 않는 사회 분위기다. 또 전 세대를 아울러 뭔가 불만이 있을 때 그것을 대화로 풀어가는 기술이 부족하다. 한국의 젊은 세대들이 답답함을 느끼는 데에는 이처럼 ‘말이 통하지 않는’ 사회적 분위기가 어느 정도 작용했다고 본다.”

그가 현재 준비 중인 작품 역시 이 같은 문제의식을 반영하고 있다. 차기 작품으로 ‘문학 공모전’에 대한 논픽션 르포가 유력하다. 그는 “공모전을 많이 경험하면서 반성적으로 내가 서 있는 위치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한국 문학계에서 그는 ‘공모전의 사나이’로 불린다. 한국 사회에서 문학 공모전은 등단의 필수 코스처럼 여겨지고 있다. 작가 지망생들 사이에서는 ‘유명한 공모전 입상 없이는 문학계에 발도 못 붙인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문학계 활동은 등단으로부터 시작하는 구조다. 지방지 신춘문예 공모전에 당선되더라도 더 큰 규모의 문예지 등단을 노린다. 등단에도 재수, 삼수가 있다. 장강명 작가도 예외는 아니었다. 2011년 한겨레문학상으로 공모전에 입상한 그는 이후에도 각종 굵직굵직한 공모전에 작품을 내왔다.

‘공모전의 사나이’가 공모전을 소재로 삼은 이유는 뭘까. 그는 “한국 사회의 등단 문화와 공채제도 사이에 비슷한 점이 많다”고 말한다.

“문학 공모전이라는 게 한국 사회의 단면을 보여준다. 일종의 공채제도의 문학 버전이라는 생각도 든다. 외국 영화를 보면 취업을 할 때 우리처럼 입사 시험을 보는 장면이 안 나온다. 보통 함께 일할 사람을 찾아가 면접을 본다. 우리는 그런 식이 아니고 어느 날 사람들을 쭉 정렬시켜놓고 똑같은 시험을 치른다. 한번 합격 문을 넘어서면 잘 퇴출도 안 된다. 여기에서 ‘이너서클’이 생긴다. 이 간극을 만회할 수 있는 방법은 재수해서 그 집단에 새로 들어가는 것뿐이다.”

새로운 유형의 작품세계 인정받아

장강명의 소설은 당대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 문학계에 희소한 존재가치를 갖는다. © 시사저널 최준필

우리 사회에서 문제의 근원지로 종종 지적되고는 하는 학벌주의와 서열 매기기는 결국 처음 출발선이 달라서 생긴 격차를 만회할 방법이 없다는 데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왜 공모전을 통하지 않고서는 평단의 인정을 받는 작가가 나올 수 없는 건가에 대한 질문도 던지고 싶다”고 말했다.

최근 몇 년 동안 한국 문학계에는 ‘장편소설 위기론’이 제기될 정도로 상황이 좋지 않았다. 장르소설과 장편소설이 드물고 소재 면에서 당대의 현실을 다룬 작품이 많지 않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됐다. 지나치게 허구적인 소재이거나 먼 과거에 일어난 일을 소재로 다루는 경우가 다반사라는 것이다.

장강명 작가의 소설은 그런 점에서 평단의 갈증을 해갈시켜주는 요소를 두루 갖추고 있다. 국정원 불법 선거 개입, 오타쿠 문화, 청년 이민 등 그가 소설의 소재로 삼은 것들은 하나같이 현재 한국 사회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들이다. 10여 년간 신문기자로서 쌓아온 필력은 장편소설을 끌고 가는 데 부족함이 없다.

청년들의 ‘연쇄 자살’을 중심 소재로 내세운 <표백>으로 2011년 한겨레문학상을 받으며 등단했을 때 “88만원 세대를 대표하는 주인공의 묘사가 대단히 사실적이고 생생하다. ‘도발하고자’ 하는 작가의 뚝심에 표를 던졌다”는 호평을 받았다.

장강명 작가는 “공교롭게 지금 심사위원들이 원하는 스타일과 맞았는데 그건 내 노력의 결과가 아니다”며 “아마도 소설 소재의 희소성 때문에 좋은 평가를 해주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글을 쓸 때 소재에 대해 강박적으로 매달리거나 집요하게 들어가는 성향이 있다. 소설 제목들에서 알 수 있듯이 다소 사회 비판적이기는 하지만 비판하기 위해 파고드는 것이 아니라 이해하기 위해 파고드는 것이다. 취재를 할 때 그 세계의 바닥을 한 번 찍고 오고 싶은 욕구가 있다.”

사회 비판적 내용 균형감 있게 다뤄

그는 “그렇다고 글이나 취재로 바닥을 찍은 것 같지는 않다”며 쑥스러운 듯 웃으며 말을 이어나갔다. “주변 사람들로부터 ‘촉이 좋다’는 얘기를 듣는다. 제목·도입부·소재를 고를 때 화제성 있는 걸 잘 고른다는 것이다. 아마도 11년간 신문기자를 하면서 배운 것이 아닐까 싶다.”

2002년 동아일보사에 입사한 그는 2012년 퇴사하기까지 정치부·경제부 등을 거치며 취재기자로 활동했다. 그는 “입사할 때부터 막연하게 ‘10년 정도 일하고 다른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며 “남들과 똑같이 사표를 언제 내지, 사표를 낼까 말까 등 고민만 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울컥해서 사고 치듯 냈다”고 말했다. 2012년 그는 11년간 일해온 직장에서 나왔다. 막연히 ‘글로써 뭔가를 해보겠다’는 생각뿐이던 시기였다.

“회사를 나온 후 두려움 섞인 절박함을 가득 안고 있었던 것 같다.” 이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그는 글을 썼다. <한국이 싫어서> <열광금지 에바로드> 등 등단 이후 발표한 대다수 작품이 이 시기에 작업한 것들이다.

이젠 주어진 마감 시간을 지키기 위해 신경 쓰지 않아도 돼 좋다는 그는 인터뷰 내내 조심스러운, 그러나 분명한 어조로 말을 이어갔다. 가상의 상황에 대한 현실적인 묘사가 높은 평가를 받은 최근작 <댓글부대>에 대한 얘기다. <댓글부대>는 2012년 대선 당시 국가정보원의 댓글 조작을 통한 선거 개입에서 모티프를 얻어 쓴 소설이다.

“전작에 이어 이번 작품도 사회 비판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정도의 비판은 우리 사회가 수용할 수 있을 거라는 신뢰가 있다. 그 정도 지성과 그 정도 관용은 있다고 본다.” 그는 “<댓글부대>의 경우 어느 편에 치우치지 않게 보이기 위해 애를 많이 썼다”고 말했다.

글쓰기가 좋아 기자가 되고 싶었고 기자가 된 후에도 그 꿈을 놓지 못했다는 그는 지금도 중고몰에서 산 노트북으로 매일 8~9시간씩 글을 쓴다. 작업실은 주로 집이다. “제가 집돌이예요. 이거 안 쓰면 굶어 죽는다는 생각으로 매일 글을 씁니다. 작업을 하다 보면 8시간은 금방 지나가죠. 저는 지금 매일매일이 꿈처럼 행복합니다.”

 

장강명 소설 밖 사건들 


국정원 댓글 조작 사건 국가정보원이 제18대 대통령 선거에 개입한 사건이다. 2012년 대통령 선거 기간 중 국정원 소속 심리정보국 소속 요원들이 국정원의 지시에 따라 인터넷에 게시글을 남겼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2030의 해외 이민 취업난과 주택가격 상승 등 한국에서의 삶이 점점 더 힘들어지는 상황 속에서 경제·사회적으로 안정된 나라로 떠나는 청년 세대가 증가하고 있다. 법무부 자료에 따르면 2013년부터 2015년 7월까지 한국 국적 포기자의 수가 총 5만2093명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한 해 평균 1만9000여 명이 한국 국적을 포기한 셈이다.

오타쿠 문화 ‘오타쿠’(お宅·한 분야에 열중하는 사람)는 만화·영화·게임·캐릭터·연예인 등에 빠진 사람을 부정적으로 부르는 말이다. 최근 점점 더 많은 사람이 자신의 취향을 드러내길 꺼려하지 않으면서 오타쿠 문화가 다양한 산업으로 확장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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