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생활보장비와 자녀 용돈에 절대 의존
  • 노진섭 기자 (no@sisapress.com)
  • 승인 2016.01.20 21:41
  • 호수 13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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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대 은퇴 후에도 일해야 하는 삶…은퇴 10년 전부터 ‘은퇴 달력’ 만들어 준비해야
ⓒ 연합뉴스

우리 국민은 은퇴생활비를 얼마로 예상할까. KB금융지주경영연구소가 지난해 7월 약 3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은퇴 후 매월 적정 생활비로 226만원을 희망했다. 그런데 현재 보유한 금융자산, 저축액, 공적 연금, 퇴직연금, 개인연금 등을 탈탈 털어도 실제 준비할 수 있는 돈은 월 110만원 수준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현재 60세 이상 가구의 은퇴생활비는 월 164만원이다. 여기에는 70대 이상 노인과 1인 가구까지 포함돼 있으므로 실제 60대 가구의 은퇴생활비라고 보기에는 역부족이다. 미래에셋은퇴연구소가 중산층(소득 상위 25~50%) 60대 2인 가구의 적정 은퇴생활비를 추산했더니 약 260만원으로 나타났다. 준비할 수 있는 돈(110만원)보다 150만원이 더 필요한 셈이다. 이는 물가상승률 2%, 투자수익률 3%, 기대수명 80세 조건일 경우, 현재 40세 직장인이 은퇴하는 60세까지 향후 20년 동안 매달 약 100만원씩 적립해도 메울 수 없는 액수다.

그런데도 은퇴 준비를 하지 못한 탓에 은퇴자 10명 중 6명은 생활비에 쪼들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은행·통계청·금융감독원이 2만 가구를 대상으로 조사해보니, 지난해 3월 말 현재 은퇴 부부의 62.1%는 생활비가 ‘부족하다’고 답했다. ‘여유 있다’는 가구는 7.9%에 그쳤다. 은퇴자들이 생활비를 마련하는 방법은 공적 수혜금(기초생활보장 급여·28.3%)과 가족 수입 및 가족·친지 등의 용돈(28.1%)이 가장 많았고, 공적 연금(25.4%), 임대 수입 등 기타(9.2%), 개인 저축액 또는 사적 연금(9.1%) 등의 순이었다. 반대로 예비 은퇴자들에게 노후 준비에 대해 물었더니 ‘미흡하다’는 사람이 55.4%였고 은퇴 준비가 ‘잘돼 있다’는 사람은 8.8%였다.

자산 불리기보다 현금 흐름을 확보해야

40대 직장인 주형상씨는 은퇴 준비를 시작했다. 서울 여의도에 살던 아파트 한 채(약 8억원)를 전세로 주고, 전세금(약 5억원)으로 광장동에 아파트를 사서 이사했다. 기존 아파트를 담보로 은행 대출(약 4억원)을 받아 오피스텔 2채를 마련했다. 그는 “특별한 은퇴 계획은 없고 되도록 부동산을 늘려 노후에 임대 수익에 의존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나름대로 은퇴를 준비하지만 실제 은퇴자의 삶은 녹록하지 못한 게 현실이다. 무엇이 문제일까. 전문가들은 은퇴 준비 방향을 바꾸라고 조언한다. 은퇴 준비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자산을 늘리는 것과 현금 흐름을 확보하는 것이다. 과거에는 자산을 늘려 시세 차익을 거두는 것으로 노후 대비책을 삼았다. 그러나 금리·부동산·주식 시장의 미래가 불확실해지면서 현재는 매월 생활비를 마련하는 전략이 눈길을 끌고 있다. 예를 들어 부동산을 살 경우 가격 상승을 통한 차익 실현이 아니라 월세와 같은 현금 흐름을 살피는 것이다.

현금 흐름 확보에는 정교한 계획이 필요하다. 은퇴 5~10년 전부터 이른바 ‘은퇴 달력’을 만들어 단기·장기 계획을 세우고 실천해야 한다. 유지송 신한금융투자 연금기획부 팀장은 “은퇴 준비 기간을 10년으로 잡았다면 초기 1~3년 동안은 남은 직장생활에서 모을 수 있는 돈이 얼마이고, 부족한 부분을 메우기 위해 당장 할 수 있는 일과 장기적으로 실천할 일이 무엇인지 파악해야 한다”며 “그 후는 그 계획들을 실천하면서 평가하고 재조정하는 시간이다. 은퇴를 3년 정도 남긴 시기에는 실제 은퇴 시점이라고 생각하고 생활비를 줄이는 등 기존 생활방식에 변화를 줘야 한다”고 설명했다.

창업은 자본보다 기술 가지고 도전해야

무엇보다 자신에게 필요한 은퇴 후 생활비를 산정해야 한다. 은퇴 후 필요한 소득은 은퇴 전 생애평균소득을 대체하는 ‘소득대체율’로 가늠할 수 있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34개 회원국의 소득대체율은 평균 67.9%다. 국내 연구에서는 은퇴 전 소득 대비 66.5%가 적정 소득대체율로 제시됐다. 평생 월평균 400만원을 벌었다면 최소한 70%(약 280만원)를 노후 소득으로 준비해야 한다.

이를 위해 국민연금으로 대표되는 공적 연금은 필수다. 국민연금연구원에 따르면, 현재 가입 기간 40년을 기준으로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은 40%다. 하지만 청년 실업과 명예퇴직 등 노동 시장의 불안한 현실을 고려할 때 40년을 채우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따라서 근로활동을 하는 시기에 최소 25~30년은 국민연금에 가입해 국민연금으로 25~30%의 소득대체율을 확보한다는 목표를 세우는 게 좋다. 또 퇴직연금에 30년간 가입해 물가상승률을 고려한 투자수익률을 반영하면 15%가량의 소득대체율을 확보할 수 있다. 이렇게 국민연금·퇴직연금·기초연금 등으로 50~55%의 소득대체율을 확보하고 나머지 15~20%는 개인연금(연금저축, 연금보험)과 예금, 적금을 통해 보완할 수 있다.

공적 자금 외의 부족분을 마련하기 위해 흔히 퇴직금으로 창업을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창업 후 3년 이내에 문을 닫는 사람이 47%다. 창업에 실패하면 평생 모아둔 자금을 날릴 뿐만 아니라 부채까지 생기게 된다. 특별한 기술 없이 소자본으로 하는 창업은 대부분 실패한다. 창업은 자본이 아니라 자신의 기술을 기반으로 시작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사람들은 국민연금과 같은 공적 연금에 의존할 방법밖에 없다. 이상건 미래에셋은퇴연구소 상무는 “은퇴 준비에는 사망 시점까지의 현금 흐름, 물가 변동에 따른 화폐 가치, 투자 안정성 등 3요소가 충족돼야 한다”며 “이는 민간에서 하기 어렵고 국가 차원의 연금이 유일한 수단이지만, 국민연금과 같은 공적 연금은 충분한 노후생활비의 재원으로는 부족하다는 점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은퇴자들은 돈에 쪼들리는 생활을 피하고 싶어 한다. 미래에셋은퇴연구소는 50대 중산층 은퇴자의 적정 월생활비로 약 300만원을 산정하고 이를 마련하는 방법을 제시했다. 월생활비를 최저 생활비, 필요 생활비, 여유 생활비 등 3가지로 구분하고 각각 100만원씩 확보하는 방법이다. 최저 생활비는 최저 수준의 삶을 유지하기 위한 식료품비, 대중교통비 등이다. 이 생활비는 국민연금과 같은 공적 연금(종신 수령 물가연동소득)으로 확보하면 된다. 공적 연금이 모자라면 그 부족분을 사적 연금으로 채워야 한다. 예를 들어 연 3%씩 수령 금액이 증가하는 주택연금 증가형이나 종신 연금보험을 여러 개 가입해 5~10년 단위로 거치한 후 받으면 종신 수령 물가연동소득과 유사한 현금 흐름을 만들 수 있다.

필요 생활비는 은퇴 전 생활 수준을 유지하기 위한 차량 유지비, 외식비 등이 포함된 것이다. 이 자금은 사적 연금이나 주택연금으로 마련한다. 즉시연금보험에 가입하거나 주택연금을 활용해 추가적 종신 소득을 확보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종신 수령 물가연동소득으로도 부족하면 비종신 소득(확정 기간형 연금상품 등)이 필요하다.

여유 생활비는 여가·문화활동비, 손자녀 교육비 등을 포함해 여유로운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비용이다. 이는 인컴(income)형 자산 등을 통해 얻어야 한다. 인컴형 자산이란 시세 차익뿐 아니라 이자나 배당 등 안정적 소득을 노릴 수 있는 자산을 의미한다. 권기둥 미래에셋은퇴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성공적 은퇴 설계의 핵심은 예상 지출액을 충당할 수 있는 현금 흐름, 즉 ‘은퇴 소득’을 확보하는 데 있다”며 “은퇴 설계 시 은퇴 소득뿐만 아니라 자금 마련 방안도 고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부족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은퇴 후에도 가능하면 일을 계속하는 게 중요하다. 재취업 등으로 일을 하면 은퇴 전의 생활  수준까지는 안 되더라도 다소 풍족한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수단이다. 문제는 적은 월급에 만족하지 못하는 자존심이다. 유지송 팀장은 “은퇴 후 재취업을 한다면 눈높이를 낮추는 자세가 필요하다. 재취업은 단순히 돈 문제가 아니라 국민연금·고용보험·퇴직연금·건강보험 등을 추가로 적립할 기회이기도 하다”며 “월 100만원, 즉 연봉 1200만원을 벌면 자산 7억~8억원의 이자 수익에 해당한다”고 강조했다.

개인마다 자산과 생활방식이 다르므로 자신에게 맞는 노후 설계를 짜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전문가들의 조언을 받는 게 도움이 된다. 정부는 최근 국민연금공단 전국 107개 지사에서 개인별로 재무설계를 비롯한 맞춤형 노후 준비 상담 서비스를 무료로 제공하기 시작했다.

 

은퇴 계획을 짤 때 놓치기 쉬운 점들  


은퇴 계획을 짤 때 놓치기 쉬운 부분들이 있다. 의료비가 대표적이다. 40~50대는 아직 병원에 자주 가지 않을 시기여서 노후에 병원비가 많이 든다는 것을 실감하지 못한다. 그러다 보니 대비도 소홀하다. 60대로 들어서면 이전 세대보다 의료비를 3배 이상 쓴다.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약값이나 간병비 등 의외로 들어가는 비용이 크다. 이를 위해 80세까지 보장되는 사보험 등을 살펴보고 가입해둘 필요가 있다.

자녀에게 들어가는 돈도 만만치 않다. 대학 진학률이 높다 보니 사교육비와 등록금 모두 부담이 크다. 경우에 따라 유학비용도 필요하다. 자녀가 결혼할 때 들어가는 목돈도 생각할 부분이다. 어떻게 되겠지 하는 생각으로 자녀를 위한 교육비와 결혼비용을 많이 쓰면 노후 생활이 비참해질 수 있다. 미래에셋은퇴연구소에 따르면, 자녀 결혼비용을 충당하느라 은퇴 빈곤층으로 떨어지는 비중이 50대에 아들 둘을 가진 경우 결혼 전 40%에서 결혼 후 57%로 17%포인트나 증가한다.

자녀 결혼 연령이 높아지면서 자녀와 동거하는 시간이 길어지고 있다는 점도 은퇴 준비금 마련에 부담을 준다. 주택을 담보로 자녀의 사업자금을 대줬다가 아예 집을 날리는 사례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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