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TBC, 지상파와 어깨 나란히 '5대 방송사' 재편 야심
  • 정덕현 | 대중문화 평론가 (.)
  • 승인 2016.01.20 21:49
  • 호수 13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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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극받은 TV조선 등 타 종편도 변화 조짐…이유 있는 종편들의 ‘예능 대진격’

KBS <1박2일>을 만들었던 김시규 PD는 2011년 JTBC로 이적했다. 그는 예능국장을 맡으며 JTBC 예능의 대부분에 관여했다. 그러다 2014년 예능과 교양을 아우르는 제작총괄이 되었다. 2015년에는 드라마도 한두 편 만들기 시작하더니, 2016년부터는 아예 드라마 부문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지난해 하반기 괜찮은 반응을 얻었던 <송곳>이 바로 김시규 제작총괄이 관여하고 김석윤 PD가 연출한 작품이었다. 김석윤 PD는 과거 예능 PD로서 <올드미스 다이어리>(KBS) 같은 시트콤으로 시작해 <조선명탐정> 같은 영화를 연출하며 예능과 드라마, 영화를 넘나드는 연출자다.

유재석의 ⓒ JTBC

김시규 PD 이야기를 꺼낸 건 그의 지난 5년간의 행적이 JTBC가 걸어왔던 길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게 해줘서다. 대다수 종편 채널이 애초에 생각했던 것처럼 JTBC도 방송사 정착의 전초병으로 예능을 꼽았다. 그래서 KBS에서 김시규 PD와 김석윤 PD 등을 끌어왔고, MBC에서는 여운혁 PD와 그 라인들을 대거 스카우트했다. 결과적으로 김시규 PD의 이적은 JTBC가 지난 5년간 정착하는 데 큰 힘을 발휘했다.

강호동의 ⓒ JTBC

JTBC는 김시규 PD가 예능국장을 거쳐 제작총괄까지 맡는 일련의 과정 속에서 무수한 예능 히트작들을 쏟아냈다. <썰전> <마녀사냥> <유자식상팔자> <히든싱어> <비정상회담> <냉장고를 부탁해> 등등. 시청률은 물론이고 화제성까지 JTBC 예능이 지상파를 포함한 전체 예능에서 가장 뜨겁고 트렌디한 예능이 될 수 있었던 건 역량 있는 예능 인재들을 대거 영입해 지속적으로 투자한 덕분이다. 그 결과 지금의 JTBC가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실로 예능은 JTBC의 중요한 동력이었던 것이다.

JTBC의 대표적인 예능 프로그램을 꼽으라면 <썰전>을 빼놓고 말하긴 어렵다. 대단한 시청률을 내고 있는 건 아니지만 차별성을 명

ⓒ JTBC

확히 보여줬고, 동시에 JTBC라는 방송사의 정체성도 드러낸 예능이다. 지난 몇 년간 이 코너를 이끈 건 이철희, 강용석, 김구라였다.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 소장이 진보적인 입장을 대변한다면 강용석 전 한나라당(새누리당의 전신) 의원은 보수적인 입장을 대변하고 김구라는 둘 사이에서 예능 바깥으로 나가는 것을 조절해주는 균형자 역할을 했다. 종편 채널에 대한 보수적인 선입견 속에서 진보와 보수를 나란히 앉혀놓으면서 여타의 보수 색채를 보이는 종편들과는 다르다는 걸 분명히 보여줬다.

강호동의 ⓒ JTBC

이 프로그램 후반부에 방영됐던 ‘예능심판자’(지금은 경제 뉴스로 바뀌었지만)는 지상파와 케이블을 아우르는 전 방송사의 예능 프로그램을 대상으로 비평을 했다. 지상파 바깥에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예능에서 그동안 잘 시도하지 않았던 시사를 끌어들이면서 정치적 균형을 잡으려 노력했고 동시에 비(非)지상파가 할 수 있는 영역들이 있다는 걸 보여준 예능 프로그램이었다.

뉴스에서도 흥미로운 대목을 엿볼 수 있다. JTBC의 <뉴스9>의 한 코너로 만들어지고 있는 ‘뉴스룸’이 유명 연예인이나 대중문화 종사자들을 대상으로 인터뷰를 하면서 화제가 되고 있어서다. 최근 엄청난 화제를 몰고 왔던 배우 정우성의 ‘뉴스룸’ 출연은 흥미로운 토크쇼의 한 대목처럼 진행됐는데 시사와 예능의 접점을 보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이처럼 어디서든 예능 유전자를 발견할 수 있다는 건 JTBC의 열린 마인드를 잘 말해주는 대목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JTBC 예능 프로그램들이 끌고 가는 트렌드다. <썰전>은 시사와 대중문화, 경제를 예능으로 끌어와 정보와 교양이 가미된 예능이라는 트렌드를 만들었고, 이것은 방송가에서 무시할 수 없는 흐름이 되고 있다. MBC의 <마이 리틀 텔레비전>에서 김구라가 하는 ‘트루스토리’는 다양한 교양정보들이 어떻게 예능과 만나는가를 보여주는 코너다. tvN의 <수요미식회>는 음식이라는 소재를 가져와 깊이 있는 정보를 알려주는 것으로 충분히 재미있는 예능 프로그램이 될 수 있었다. 지난 한 해를 이끌었던 ‘쿡방’ 트렌드는 정보를 담은 또 하나의 예능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 최근에는 셀프 인테리어를 가져온 ‘집방’이라는 또 하나의 새로운 트렌드로 확장되어가고 있다. 싼 가격에 인테리어를 스스로 해보는 노하우를 알려주는 프로그램이다.

최근 종영했지만 <마녀사냥>은 지금껏 방송에서 도외시됐던 성인 예능을 하나의 트렌드로 만들어냈다. 이제는 지상파 예능에서도 성인들만이 이해하는 멘트들이 살짝살짝 나오는 걸 보면 더 이상 금기시되지는 않는 모양새다.

인기 프로그램 넘어 ‘예능 트렌드’ 이끌어

<비정상회담>은 외국인들이 자국의 문화를 우리 문화와 비교해 토론하는 프로그램으로 ‘외국인 트렌드’를 이끌어냈다. 지상파에서도 외국인들을 모아 여행을 떠나거나 합숙 생활을 하는 모습은 낯설지 않다. 무엇보다 긍정적인 영향은 외국인에 대한 인식이 상당히 달라졌다는 데 있다. 과거의 외국인이 ‘외국인 노동자’의 이미지를 먼저 떠올리게 했다면 <비정상회담>은 지적인 이미지로 이러한 편견을 깼다. 지상파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외국인을 끼워넣는 게 당연한 트렌드처럼 자리했다. MBC의 <진짜사나이> 같은 군 체험 예능에서 외국 친구들을 보는 건 또 하나의 즐거움이 되고 있다.

지난해 쿡방 트렌드 열풍의 진원지로 불리는 <냉장고를 부탁해>도 빼놓을 수 없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서 최현석·이연복 등 스타 셰프들이 배출돼 타 쿡방에서도 맹활약하는 풍경을 2015년 내내 우리는 접했다. 재미있는 프로그램 정도가 아니라 새로운 문화 트렌드를 만들어가고 선도한다는 것은 또 다르다. JTBC 예능 프로그램들이 앞서 끌면서 지상파가 따라오게 만들었다는 점은 방송사의 존재감을 높여줬다.

여타 종편들과 JTBC가 가장 차별화된 점은 아마도 지난 5년간 꾸준히 드라마를 제작·방송하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그냥 제작하는 정도가 아니라 꽤 높은 수준의 드라마를 선보이고 있다. 김수현 작가의 <무자식상팔자>는 종편에서 처음으로 시청률 10%를 넘긴 작품이며, <밀회>는 시청률과 작품성, 화제성에서도 한 해의 수작으로 꼽히는 작품이었다. 드라마 제작에 엄청난 투자가 들어간다는 점에서 이를 지속적으로 해왔다는 점은 JTBC가 여타의 종편들과 달리 종합편성 채널로서의 진정성을 보인 점이다. 보수적인 정치·시사 뉴스에 편중된 프로그램을 내세우고 있는 다른 종편들과는 사뭇 다른 행보였다.

2015년 JTBC의 드라마 성적은 그리 좋지 않았다. 그 와중에 빛을 발한 건 <송곳>이었다. 앞에서 언급한 대로 <송곳>은 드라마국에서 만들어낸 작품이 아니라는 점에서 이례적이다. tvN <응답하라 1988>의 성공이 ‘예능 드라마’라는 트렌드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과 발맞춰 JTBC 예능의 제작 능력이 드라마에서도 계속 시도될 것임을 의미한다.

지상파 예능의 아이콘이었던 유재석과 강호동은 JTBC 예능에 등장했다. 아직 그 성과가 뚜렷이 나오고 있지는 않다. 유재석의 <투유프로젝트-슈가맨>은 조금씩 시청률이 반등하고 있고, 강호동의 <마리와 나>나 <아는 형님>에 대한 평가는 전반적으로 좋은 편이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유재석과 강호동을 끌어안을 정도로 JTBC 예능의 위상이 높아졌고 올해 역시 예능 대진격을 예고하고 있다는 점이다.

ⓒ JTBC

이처럼 JTBC가 전면에 서서 독보적인 행보를 하자, 그동안 시사·정치 토크에만 집중한 채 예능을 등한시하던 타 종편들의 움직임도 최근에는 예사롭지 않다. 사실 지금껏 채널A나 MBN은 JTBC가 그랬던 것처럼 예능 프로그램에 대해 지속적으로 투자를 해왔다. <동치미>

<황금알>(이상 MBN), <이제 만나러 갑니다>(채널A) 같은 집단 토크쇼는 3~4%대의 시청률을 가져오며 종편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예능 프로그램이 되기도 했고 심지어 이 트렌드가 지상파로 옮겨오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 여기에만 안주할 수 없게 되면서 <전국제패> <오시면 좋으리>(이상 MBN), <개밥주는 남자> <동갑내기 여행하기>(이상 채널A) 등을 새롭게 선보이고 있다.

상대적으로 정치 뉴스에 많은 시간을 할애해오던 TV조선도 최근에는 변화를 보이고 있다. tvN을 초창기부터 이끌었던 송창의 PD를 제작본부장으로 영입해 제작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엄마가 뭐길래> 같은 예능 프로그램은 한때 동시간대 최강자였던 <썰전>을 제치고 3.9%의 괜찮은 시청률을 내기도 했다. 또 올해 상반기에는 <오직 하나뿐인 그대>라는 드라마를 준비 중이다. JTBC의 진격이 타 종편에도 자극제가 되고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역시 선두 주자는 JTBC다. 예능 프로그램들을 전초병으로 내세워 결과를 얻어낸 JTBC는 2015년 광고 매출에서 2000억원을 넘어섰다. 여타 종편 채널들의 두 배에 해당하는 규모다. 이런 예능 강화를 등에 업고 JTBC는 이제 종편 채널이라는 프레임을 벗어던지려고 한다. 대신 지상파 3사와 tvN을 포함한 ‘5대 방송사’라는 프레임을 꿈꾸고 있다. 그런 계획에 이만큼 다가오게 된 일등공신으로는 역시 예능 프로그램들을 지목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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