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을 앞두고 야권이 분열되는 등 정국이 혼란스럽다. 정부와 새누리당이 오만과 독선, 그리고 우(右)편향으로 흘러가서 부동층(浮動層) 유권자가 늘어났지만, 내분에 휩싸인 야당은 이들을 유인하지 못하더니 결국에는 안철수 의원이 탈당해서 국민의당이란 신당을 창당하기에 이르렀다.
야권이 분열되면 야권 성향 유권자들에게 선택의 폭을 넓혀주는 좋은 측면도 있지만, 야권 표 분산으로 인해 야권 전체가 참패할 가능성이 커지는 것도 사실이다. 더욱 우려되는 것은 야권 성향 유권자들이 자신의 한 표가 무의미하다고 생각하고 대거 기권을 하는 경우다. 그렇게 되면 새누리당은 수도권에서 대승을 거둘 것인데, 그 후 정국이 어떻게 될지는 충분히 상상할 수 있다. 야권이 분열된 상태에서 젊은 세대가 정치를 불신하고 투표를 기피하는 현상이 커지고 있는 것도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정치에 대한 환멸이 커진 데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지난 정부의 책임이 크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노무현 정부는 집권 후반기에 민생을 살피기보다는 국가보안법 개정 같은 어젠다를 추구하다가 역풍을 맞았다. 이명박 대통령은 이념은 낡은 것이며, 자신은 국민을 부자로 만들어주겠다고 약속하고 취임했지만 임기 내내 국민을 분열시키는 정치를 했고 대기업들만 더욱 부유하게 만들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국민대통합을 이루어서 국민행복시대를 열겠다고 약속했지만 그 약속이 우습게 되는 데 취임 후 100일이 걸리지 않았다. 경제민주화를 통해 양극화를 해소하고 국민을 행복하게 만들겠다고 약속했던 정권이 매사에 경직된 이념을 내세우고 갈등을 조장했으니 서글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사정이 이러하니 이제 정치에는 기대할 것이 없다는 목소리마저 나오고 있다. 지난 2011년 미국을 뒤흔든 ‘월가를 점령하라’ 같은 대중운동만이 우리가 겪고 있는 사회 양극화와 청년 실업 문제를 해결하도록 움직일 수 있다는 주장이다. 기성 정치가 대립 구도에 갇혀서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하면서 ‘적대적 공생’을 하고 있기 때문에 조직화된 대중운동을 통해서 당사자들이 분노를 표출해야만 세상이 바뀔 수 있다는 말도 나오고 있다.
돌이켜보면 2011년에도 우리는 그런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서울대 김난도 교수가 펴낸 <아프니까 청춘이다>가 선풍적 인기를 모았는데, 그가 던진 메시지는 참고 인내하면 희망이 온다는 것이었다. 그즈음 젊은 세대는 그 ‘희망’을 안철수라는 사람을 통해서 보았는데, 그는 정치가 바뀌어야 하며 자신이 정치를 바꿀 수 있다고 약속했다.
그리고 몇 년 세월이 흘렀고, 정치인으로 탈바꿈한 안철수 의원은 새로운 실험을 다시 시작하고 있다. 그가 제도권 정치의 한계를 극복하고 자신이 대중에게 심어주었던 이상을 조금이나마 실천하고, 더 나아가서 ‘적대적 공생’이라는 모욕적 말을 듣고 있는 기성 정치권에 작은 변화라도 주는 데 성공한다면 그래도 정치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을 줄 것이다. 반면에 그의 실험이 야권 성향 표를 분열시켜 새누리당에 대승을 안겨주는 데 그친다면 정치에 대한 불신을 한층 키우지 않을까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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