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재계에는 ‘정주영’ ‘이병철’이 넘쳐난다
  • 감명국 기자 (kham@sisapress.com)
  • 승인 2016.01.25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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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시장 진출 위한 밑그림 착착 진행하는 중국 CEO들…“한국은 이미 뒤처지고 있다” 경고

‘중국 기업들의 확장세는 거침이 없다. 중국 레노버는 2004년 미국 IBM의 PC·노트북 사업 부문을 인수했고, 2014년엔 휴대전화 제조사 모토롤라까지 사들였다. (중략) 중국은 최근 2~3년 사이에 미국의 주요 기업을 줄줄이 인수했다. 경영난을 겪고 있는 일본의 대표적인 전자업체 ‘샤프’도 범중화권 기업에 넘어갈 처지다.’(조선일보1월16일자)

레이쥔 샤오미 회장 © XINHUA 연합

중국 최대 가전업체인 하이얼이 1월15일 글로벌 기업인 제너럴일렉트릭(GE)의 가전부문을 54억 달러(약 6조5600억원)에 인수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중국 기업을 바라보는 시선이 바뀌고 있다. 다음 날 조선일보에서는 ‘삼성전자가 인수하려던 미국대표 기업 GE의 가전 사업 부문이 결국 중국 기업에 넘어갔다’며 ‘휴대전화·메모리반도체에 이어 생활가전 분야에서도 세계 1위를 노리던 삼성이 차이나머니(중국 자본)와 경쟁에서 고배(苦杯)를 마신 것’이라는 다소 자극적인 기사를 내보내기도 했다.

삼성그룹에 몸담았다가 퇴사한 후 현재 저술활동에 전념하고 있는 <삼성의 몰락>의 저자 심정택씨는 ‘범중화권 자본이 샤프 인수까지 넘보고 있다’는 데에 주목했다. 당초 샤프에 눈독을 들인 곳 역시 삼성이었고, 이를 주도한 이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었기 때문이다. 2013년 7월 일본을 방문한 이 부회장은 샤프와의 복사기 합작법인 설립을 위한 협상에서 거의 성사직전 단계까지 갔으나 결국 실패했다. 심씨는 “삼성의 새로운 미래 먹거리를 찾고 향후 그룹 후계자로서의 위치도 공고히 하고자 했던 이 부회장의 야심 찬 프로젝트는 결국 무산됐고, 이로 인해 이 부회장은 더욱 어려움에 처하게 됐다”고 밝혔다. 그는 “이 부회장은 ‘실용주의’를 내세우지만, 아직도 리더십에서 철학 확립 등 확실한 자기색깔을 내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주변에휘둘리는 정황이 눈에 보인다”고 밝혔다.

“미래 생태계의 큰 밑그림 이미 그리고 있다”

이와 대비되는 중국 기업 CEO(최고경영자)들의 공격적이고 저돌적인 리더십이 최근 자주 회자된다. ‘중국의 스티브 잡스’로 통하는 레이쥔(雷軍·48) 샤오미 회장이 대표적이다. 스타트업 미디어이자 중화권 네트워크인 ‘플래텀’의 조상래 대표는 “샤오미의 잠재력은 스마트폰·전기차·가전제품 등으로 확장되는 사물인터넷을 통한 새로운 인공지능(AI) 생태계의 큰 밑그림을 그리고 있다는 점이다”고 평가했다. 조 대표는 1년의 절반 이상을 중국에 머무르면서 샤오미 등 중국 기업 관계자들과 접촉하고 있다.

조 대표는 “레이 회장은 이미 미래 생태계의 밑그림 준비에 들어가 있다”고 말한다. 국내 일각에서 레이 회장이 ‘은둔형 CEO’로 알려진 것에 대해 그는 단호히 고개를 흔든다. “내가 직접 만나본 레이 회장에 대한 느낌은 자산 가치 16조원의 거대 기업 회장님이 아니라, 곁에서 같이 부딪히며 일하는 동료의 느낌이었다. 한국에서 온 나 같은 젊은 사람도 레이 회장을 만나는 데 큰 걸림돌이 없다. 샤오미 회사를 출입하는 것 역시 별다른 제재가 없다. 오죽했으면 내가 ‘외부인이 이렇게 자유롭게 드나들면 보안에 문제가 있지 않나’라고 회사 관계자들에게 물어볼 정도였겠나”라고 말했다. 그는 기자에게 자신의 스마트폰에 저장된 메시지를 직접 보여주기도 했다. 중국의 카톡에 해당하는 ‘위쳇’의 단체방에서 레이 회장은 실제 하루가 멀다 하고 활발하게 글을 올리며 주변 사람들과 대화하고 있었다. 심지어 인터넷상에서 마윈(馬雲) 알리바바 회장과 설전을 벌이는 일도 있다고 한다.

장루이민 하이얼 회장 © PIC 연합

최근 중국에서 각광받는 또 한 명의 CEO가 있다. ‘중국의 잭 웰치’로 불리는 장루이민(張瑞敏·68) 하이얼 회장이다. GE회장을 역임했던 잭 웰치의 트레이드마크인 과감한 혁신과 자신감 있는 도전, 그리고 경영의 신속성을 모두 닮았다는 것이다. 하이얼이 GE 가전 부문을 인수한 것도 예사롭지 않은 인연이다. 홍순도 아시아투데이 베이징 지국장은 자신의 저서 <중국을 움직이는 CEO들>에서 장루이민을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한국의 삼성전자를 극복해야 할 당면 목표로 삼고 있다는 산둥성 칭다오(靑島) 소재의 종합 가전회사 하이얼은 한때 파산 직전의 재기불능 회사였으나 지금은 삼성전자를 입에 올리는 것이 이해가 될 정도로 환골탈태의 이적(異蹟을 일궈낸 기업으로 평가받고 있다.’

과거 하이얼이 어렵던 시절, 패배주의에 빠져 불량 제품을 아무렇지도 않게 만들던 공장 직원들 앞에서 장 회장이 불량품 냉장고 76대를 해머로 때려 부순 일화는 너무나도 유명하다. 당시 냉장고 한 대 값이 노동자 3개월 치 월급이었다. 홍 지국장이 소개한 장 회장과의 인터뷰 내용 중 다음의 말은 주목할 만하다. “내 자식과도 같은 하이얼을 세계 최고 브랜드로 키우는 것이목표다. 어쩌면 이 목표는 내 당대에 이루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언젠가는 이뤄질 것이다. 나는 그 초석을 놓는다는 심정으로 일하고 있다.”

홍순도 지국장은 “지금 중국 경제를 주도하는 기업들은 지난 세기말(1990년대)이나 21세기 들어 창업한 신진 기업들이 대부분”이라고 밝혔다. 즉 레이쥔·장루이민·마윈 등은 한국으로 치면 1960~70년대 활약한 이병철·정주영·구인회 등 맨손으로 부를 일군 재벌 창업주들에 해당하는셈이다. 홍 지국장은 “그래서 중국의 CEO들은 저돌적이고 공격적일 수밖에 없다. 한마디로 자전거 페달을 계속 밟아야지 멈추면 죽는다는 인식이 강하다. 반면 지금 한국의 경영진들은 모두 재벌 2·3세, 심지어는 4세들도 있다. 아무래도 소극적이고 보수적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부족한 기술력, 합작 투자나 인수 통해 메워”

조상래 대표는 “CEO를 바라보는 정서와 문화도 한·중 양국이 많이 다르다”고 말한다. 그는 “레이쥔 회장은 영어를 잘 못한다. 그가 쓸 수 있는 단어는 ‘아 유 오케이(Are you ok?)’ 등 극히 짧은 영어뿐이다. 하지만 중국 사람들은 영어를 잘 못하는 레이 회장에게 오히려 더 인간적이고 친숙함을 느낀다. 만약 이재용 부회장이 영어를 잘 못한다고 하면 국내에서는 비난 일색일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 전문가들 사이에서 중국 기업의 향후 공세를 경계하는 목소리는 날로 더 커지고 있다. 성연주 대신증권 리서치센터 글로벌마켓전략실 연구위원은 “중국 기업들은 지금 당장의 부족한 기술력을 해외 기업과의 합작이나 인수를 통해서 메우고 있다. 지금 당장의 성과보다는 장기적인 안목에서 해외 고급 기술력을 빨아들이고 이로 무장해 세계 시장을 장악하려는 것이다. 그것이 중국의 강점이고, 그 시도를 창업 1세대들인 지금의 중국 CEO들이 착착 밑그림을 그리며 하고 있다”고 밝혔다. 조대표는 “레이쥔 회장의 앱 생태계 밑그림, 장루이민 회장의 세계 가전업계 진출 등은 모두 국내 주력 기업인 삼성·LG 등과 겹친다. 또한 중국 기업들의 목표는 인구가 많아 시장 잠재력이 큰 인도, 남미, 동남아 등이다. 이곳 역시 우리 기업들이 향후 먹거리를 위해 진출해야 할 시장이다. 이미 우리가 뒤처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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