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권 경쟁자 견제하려 험지 출마 권유했나
  • 남상훈│세계일보 기자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01.25 2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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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대희·오세훈 험지 출마 제기했던 김무성 대표 곤혹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로부터 ‘험지 출마’를 요청받았던 안대희 전 대법관과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1월17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4·13 총선 출마를 잇따라 공식 선언했다. 부산 해운대 출마 예정이었던 안 전 대법관은 김 대표가 제시한 추천 지역에 없었던 서울 마포 갑으로 지역구를 옮겼다. 오 전 시장은 김 대표의 부탁을 뿌리치고 종로 출마를 강행했다. 수도권 출마를 요구받았던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도 대구 수성 갑 출마를 고수했다.

거물 정치인의 험지 출마를 밀어붙였던 김 대표는 조정에 실패하면서 리더십에 큰 타격을 입었다. 험지 출마론을 꺼냈다가 친박(親박근혜)계와의 힘겨루기 끝에 되레역풍을 맞은 모양새다.

김무성 “제 지역구 심판받겠다” 험지 출마 거부

1월18일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국회 의원회관에서 신년기자회견을 준비하면서 생각에 잠겨 있다. © 시사저널 박은숙

김 대표가 험지 출마 카드를 꺼내든 것은 지난해 12월21일이다. 김 대표를 향한 당 내의 험지 출마론이 확산됐던 시기다. 비박(非박근혜)계 서울 의원들은 지난해 11월 중순부터 김 대표 등 영남 중진들이 수도권의 야당 의원 지역구에 출마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울시당위원장인 김용태 의원은 당시 “내년 4월 총선은 수도권에서 승부를 봐야 하는 만큼 김 대표(부산 영도) 등 경륜과 명망을 갖춘 중진 의원들이 수도권의 험지에 나서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자신의 수도권 차출론이 확산되자 김 대표는 지난해 12월2일 부산 영도 출마를 재확인했다. 그는 기자들과 만나 “저는 제 지역구의 지역 주민들에게 심판을 받도록 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당내에서 드세지는 자신의 험지 출마론을 거부한 것이다.

그럼에도 김 대표에 대한 수도권 출마요구는 계속됐다. 그러자 김 대표는 ‘명망가 험지 출마론’을 들고나와 반전을 시도했다. 안 전 대법관, 오 전 시장, 김 전 지사, 정몽준 전 대표, 김황식 전 국무총리 등을 험지 출마 대상자로 꼽았다.

김 대표는 12월23일 안 전 대법관을, 그 다음 날 오 전 시장을 만나 험지 출마를 설득해 “당의 뜻을 따르겠다”는 대답을 받아냈다. 김 대표에게 쏠렸던 험지 차출의 시선을 두 사람에게로 돌려놓는 데 성공한 셈이다. 당내에서 김 대표 수도권 차출론은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김 대표가 차기 대선 주자들의 험지 출마를 권유한 배경을 놓고도 뒷말이 무성하다. 대권 경쟁자를 견제하기 위해 야당세가 강한 험지로 내모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된다. 안 전대법관이 부산에서 당선될 경우 지역의 대표 정치인인 김 대표의 입지가 흔들릴 수 있다. 한 친박 의원은 “안 전 대법관의 부산 해운대 출마는 친박 진영에서 결정한 것”이라며 “안 전대법관을 친박계 차기 대선 주자의 한 명으로 만들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었다”고 말했다.

오 전 시장이 ‘정치 1번지’ 종로에서 야당 중진인 정세균 의원(더불어민주당)을 꺾고 당선되면 차기 대권가도에 탄력을 받게 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나 이명박 전 대통령처럼 대선 출마를 하려는 정치인이 거치는 지역구다. 김 전 지사도 마찬가지다. 4년간 대구 수성 갑 바닥 민심을 닦아온 더불어민주당 김부겸 전 의원을 꺾고 야당의 착근을 차단할 경우 여당의 텃밭인 TK(대구·경북)에서 대권 도전의 기반을 마련할 공산이 크다.

안 전 대법관의 서울 차출을 두고선 김 대표와 친박계 좌장인 서청원 최고위원의 교감설도 제기된다. 두 사람이 서 최고위원과 가까운 김세현 해운대 갑 예비후보를 지원하기 위해 안 전 대법관을 해운대에서 빼내는 데 암묵적 동의를 했다는 것이다. 당내에선 김 대표가 그에 상응하는 반대급부를 서 최고위원으로부터 확약받은 것 아니냐는 관측도 있다. 논문 표절로 물의를 일으켜 불출마를 선언했던 문대성 의원(부산 사하 갑)이 자신과 가까운 김 대표의 인천 남동 갑 출마 제의를 전격 수용한 것이 예사롭지 않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더욱이 김 대표는 서울로 출마 지역을 옮긴 안전 대법관을 지명직 최고위원으로 배려하기도 했다.

김 대표가 험지 출마론을 통해 친박계의 ‘TK 진박(진실한 사람+친박) 낙하산’을 에둘러 비판하려고 했다는 관측도 있다. 거물 정치인들이 당을 위해 희생하는 모습을 보이는 마당에 친박들은 청와대 참모와 고위 공직자를 당선이 보장된 TK에 내리꽂았다는 점을 대비하려 했다는 얘기다. 이런 기류를 포착한 친박계는 김 대표를 역공했다. 이들은 “남의 등을 떠밀게 아니라 험지 출마론을 얘기하는 분부터 솔선수범해야 한다”며 김 대표의 험지 출마를 다시 거론했다. 그러면서 “김 대표가 그럴 준비가 안 돼 있으면 남의 등을 떠밀지 말아야 한다”고 목청을 높였다.

김 대표 묘수(妙手)의 효과는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안 전 대법관과 오 전 시장은 김 대표가 수도권 험지 출마 권유 후 지역구를 확정해주지 않아 강한 불만을 토로했다. 두 사람은 김 대표에게 “경선 준비가 급하다. 어디가 됐든 빨리 정해달라”고 촉구했다. 험지 출마 제의를 받고도 20여 일이나 발이 묶인 상태였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왼쪽)과 안대희 전 대법관이 1월17일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사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종로와 마포 갑 출마 선언을 하고 있다. © 시사저널 이종현

안대희 서울 차출 ‘김무성-서청원’ 교감설

당내에서도 비판이 제기됐다. 서울의 한 중진 의원은 “험지 출마 지역도 정하지 않고 차기 대권 주자들에게 무조건 험지 출마를 강요해 혼란을 키운 것은 김 대표의 실수”라고 지적했다. 그는 “총선을 준비하는 당 대표에게 전략적 마인드가 그렇게 없어서야 누가 믿고 따르겠느냐”고 반문했다.

비판 여론이 들끓자 김 대표는 1월9일 안 전 대법관과 오전 시장에게 출마 지역을 제시했다. 김 대표는 안 전 대법관을 만나 “서울 도봉 갑(더불어민주당 인재근 의원), 중랑 을(더민주 서영교 의원), 광진 갑(국민의당 김한길 의원) 등 세 곳 중 한 곳을 고르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대표는 오 전 서울시장과 메시지 교환을 통해 박영선 의원 지역구인 구로 을 등을 제안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두 사람은 김 대표의 뜻대로 따라주지 않았다. 김 대표가 출마 지역 3곳을 추천했다고 공개한 것에 대해 불만을 드러냈던 안 전 대법관은 추천 지역을 외면하고 마포 갑을 선택했다. 안 전 대법관의 선택은 친이(친이명박)계인 강승규 마포 갑 당협위원장에게 공천권을 내줄 수없다는 친박계의 의도와 맞닿아 있다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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