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호’ 하려다 ‘왕따’ 만들라
  • 장지연 인턴기자 (.)
  • 승인 2016.01.28 19:06
  • 호수 1372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어린이집 CCTV 영상 실시간 제공…교사뿐 아니라 아이들 인권 침해 우려

2016년 1월14일 오후 1시 서울의 한 아파트 단지에 위치한 어린이집. 만 1세부터 5세까지의 아이들이 교실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삼삼오오 모인 아이들이 미술활동에 한창이다. 한 아이가 엉덩이를 들썩인다. 또 다른 교실에서는 비교적 체구가 작은 아이들이 둥글게 앉아 블록을 가지고 놀고 있다. 만 1세반 아이들은 낮잠 시간이다. 교사 옆으로 나란히 줄지어 잠을 자고 있는 아이들의 얼굴이 보인다. 한 아이가 잠들지 못하고 뒤척인다. 보육교사가 다가가 아이를 다독이며 잠

일부 보육시설이 학부모들에게 무분별하게 CCTV 영상을 제공하면서 어린이 인권 침해 사례가 늘고 있다. ⓒ 시사저널 고성준

들 때까지 곁을 지킨다.

“학부모들, CCTV 영상 카톡으로 공유”

서울의 한 아파트에 설치된 홈네트워크 서비스를 통해 본 장면이다. 방법은 간단하다. 집 안 거실 벽에 달린 비디오폰의 ‘CCTV 조회’를 클릭하면 아파트 단지 내 보육시설의 모습이 고스란히 보인다. 자녀를 해당 어린이집에 보내지 않는 아파트 주민들까지도 아이들의 모습을 언제든지 볼 수 있다. 이처럼 일부 보육시설에서 학부모들에게 CCTV 화면을 실시간으로 보여주는 네트워크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CCTV 카메라가 유무선 인터넷과 연결돼 있어 어린이집 영상을 언제 어디서든 확인할 수 있다. 학부모들은 각 가정의 PC·비디오폰이나 스마트폰 등으로 아이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놓치지 않고 볼 수 있는 것이다.

CCTV 영상 제공과 관련해 규정을 위반하는 어린이집이 늘어나고 있다. 지난해 4월30일 국회에서 통과된 어린이집 CCTV 설치 의무화 법안에는 CCTV의 범위에 네트워크 카메라가 포함됐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네트워크 카메라는 학부모와 보육교직원 전원의 동의를 받아야 설치할 수 있다”면서 “현재 설치된 곳은 290개소”라고 말했다. 하지만 학부모와 교사들의 전체 동의 없이 CCTV 영상이 실시간으로 제공되고 있는 사례가 나타나 논란이 일고 있다.

아이들 모습을 아파트 단지 내에 실시간으로 제공하고 있는 앞 사례의 어린이집 경우에도 전체 학부모와 교사의 동의가 없었다. 어린이집 원장 정가선씨(가명·45)는 “네트워크 서비스가 개인정보보호법에 위반된다는 것을 최근에 알았다”고 말했다. 정씨는 위법인 것을 알면서도 네트워크 서비스를 제공하는 이유에 대해 “그만큼 학부모들의 만족도가 높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서비스가 전체 학부모들에게 반가운 것은 아니다. 정씨는 “발달이 느린 아이들이나 행동이 다소 과격한 아이들의 보호자는 좋아하지 않을 것”이라며 “학부모들이 CCTV 영상을 카톡(카카오톡)으로 공유하면서 특정 아이가 과격한 행동을 보인다며 퇴소를 요구한다. 그러지 않을 경우 자녀를 보내지 않겠다고 한다”며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CCTV 영상 제공으로 아이들의 인권이 침해받을 수 있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강원도의 한 어린이집에서도 CCTV 영상을 확인한 학부모들이 아이들의 모습을 공유해 논란이 된 사례가 있다. 남자아이가 놀림을 받은 전후 사정보다는 이 아이가 다른 아이를 밀치는 장면만을 문제 삼았다. 어린이집으로 “그 아이와 같은 반이 되면 우리 아이를 다른 곳에 보내겠다”는 학부모들의 항의가 들어왔다. 당시 아이들을 지도했던 해당 어린이집의 보육교사 조은하씨(가명·34)는 “다른 아이들까지도 ‘엄마가 그런 애랑 놀지 말라고 했다’며 그 아이를 생일파티에 초대하지도 않는 등 은근한 따돌림으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조씨는 “CCTV는 각도에 따라 영상이 다르게 보이기도 하는데 학부모들은 결과만 놓고 판단하는 경우가 많다. 아이들 옆에 있어서 전후 사정을 아는 교사로서는 답답하다”고 했다.

 현장에서 아이들을 지도하고 있는 보육교사 다수가 CCTV 영상 제공에 대한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서울의 한 직장 어린이집에서 근무하고 있는 보육교사 노유진씨(가명·29)는 “우리는 다른 어린이들의 인권 침해를 이유로 전체 학부모의 동의하에 CCTV를 공개한다”고 말했다. 영유아보육법에 따르면, 보호자는 자녀가 학대 또는 안전사고 등으로 신체·정신적 피해를 입었다고 의심될 경우 어린이집에 열람요청서나 의사소견서를 제출해 영상정보의 열람을 요청할 수 있다. 한 어린이집 원장은 “문제가 되지 않는 CCTV 영상은 제공하지 않는 쪽으로 보호자와 협의한다. 다른 아이들의 초상권과 인권 때문”이라고 말했다.

학부모가 집 안의 PC 화면으로 어린이집 아이들의 모습을 보고 있다. ⓒ 시사저널 고성준

“아동의 인권 침해 고려하지 않아”

한국보육지원학회 관계자는 “CCTV 설치 의무화는 ‘아동을 학대하는 교사’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아동의 인권 침해에 대해서는 고려하지 않은 법안이기 때문에 다른 대안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보건복지부는 “실제 CCTV 운영 과정에서 영상자료가 보육교사 등의 인권 침해로 악용되는 사례가 없도록 제도적인 보완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지도·점검 등을 통해 목적 외 사용을 엄격히 관리해나갈 계획”이라고 공시한 바 있다.

일부 보육교사의 아동학대 사건이 있을 때마다 CCTV 설치 의무화 여론이 높았다. 관련 개정안이 통과된 것도 지난해 1월 인천 송도 어린이집에서 발생한 교사의 아동 폭행 사건이 계기가 됐다. 이런저런 논란이 많았지만 결과적으로 통과된 것은 CCTV 설치 의무화가 아동을 보호하기 위한 법안이라는 여론이 더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 보육 현장 곳곳에서 본래의 목적과는 다르게 CCTV 화면이 이용되면서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