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인과의 대화] 널 죽여서라도 갖고 싶다
  • 배상훈 | 서울디지털대 경찰학과 교수 (프로파일러) (.)
  • 승인 2016.01.28 19:16
  • 호수 13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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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 스토커 “안 만나주고 피했다”며 주부 살해 8만원 범칙금으론 잔혹 범죄 스토킹 못 막아

지난해 7월27일 오전 6시50분쯤 B씨(43)는 대구시 서구 평리동 골목길에서 출근하던 주부 A씨(49)를 흉기로 10여 차례 찔러 살해했다. B씨는 스스로 ‘내연 관계’라고 믿고 있던 A씨가 자신을 만나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사건을 저질렀다. 그런데 내연 관계라는 것은 B씨 혼자만의 생각이었다. A씨는 이 사건 이전에 B씨에게 스토킹을 당하고 있다며 경찰에 신변 보호를 요청하기도 했다. 둘 사이는 내연 관계가 아니라 스토커와 피해자 관계였던 것이다. 당시 경찰은 B씨를 조사한 후 협박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으나 검찰에서는 증거 불충분을 이유로 두 차례나 보강 수사 지휘를 내렸다. 결국 경찰은 B씨의 신병을 확보하지 못한 채 수사를 진행했는데, 수사 도중에 B씨가 A씨를 흉기로 찔러 사망하게 한 것이다.

ⓒ 일러스트 오상민

사건 발생 후 경찰은 목격자 두 명의 진술과 범행 현장 주변의 CCTV 분석을 통해 B씨를 용의자로 특정했다. 경찰은 B씨의 연고지인 경기도에 수사대를 급파하는 등 검거에 나섰으나 소재를 파악하지 못했다. B씨가 휴대전화를 사용하지 않고 있어 위치 추적이 불가능했고, 운전면허도 없어 대중교통을 이용해 전국을 떠돌고, 모텔이나 찜질방 등에 은신해 있었기 때문이다. 수사에 진척이 없자 경찰은 사건 3일 후인 7월30일 B씨를 전국에 공개 수배했다. 공개 수배 다음 날 B씨는 경북 고령경찰서에 자수했다. B씨는 살해 직후 모텔에서 옷을 갈아입고 경북 고령으로 택시를 타고 이동해 모텔에서 사흘을 지내고 나머지 이틀은 노숙을 했다고 한다. 현재 사건은 대구지법 서부지원에서 재판 중이다. 지난 1월21일 검찰은 살인 혐의로 기소된 B씨에게 사형을 구형했다.

스토킹이 결국 소유욕으로 귀결

이 사건은 전형적인 스토킹 살인 사건이다. 스토킹 살인 사건의 경우 몇 가지 공통된 특징이 있다. 이 사건이 발생한 초기 몇몇 언론에서 오보를 냈다. 스토커와 피해자 사이를 내연 관계로 착각한 것이다. 스토킹 범죄를 저지른 스토커 대부분이 피해자와 특별한 관계를 맺고 있다고 착각한다. 그래서 스토킹 범죄에 대해 깊은 이해가 없는 기자들이나 수사 관계자들이 마치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다고 여겨 ‘치정 범죄’로 섣부른 판단을 할 수 있다. 이 사건의 경우에도 범인은 피해자에 대해 “얘기를 좀 하자는데 안 만나줬다. 좋아하는데 안 만나주고 피하니까 화가 났다. 그래서 칼로 겁만 주려고 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범인은 피해자의 감정이나 태도와는 무관하게 자신의 감정대로 행동했다. 범인 입장에서는 피해자가 자신을 만나주지 않고 또 무시까지 했으니 혼내주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른바 ‘감정의 일방통행’이 기본적으로 전제돼 있다. 이러한 감정의 일방통행은 이성에 대한 의사소통 능력의 부재 혹은 빈곤에 기인한다. 이는 낮은 사회성과 연결돼 있다. 이런 사람들은 평소 거절당하거나 부정당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다. 정상적인 사회관계 혹은 이성 관계를 가져보지 못했다는 것은 낮은 자존감과 상관성이 있다. 낮은 자존감으로 인해 사회성이 떨어지기도 하고 그 반대일 경우도 있다. 어쨌든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데 서투르게 되고 그 서투름이 억지스러운 방식이 돼 결국에는 감정의 일방통행에 이르는 것이다.

이런 성격을 가진 사람들의 경우 은둔형 외톨이는 거의 없다. 이성이 아닌 동성 사이에서는 호평을 받는 경우가 많다. 남성 동료들이나 친구들, 선후배 사이에서는 ‘카리스마’가 있다거나 호탕한 ‘대인배’ 소리를 듣기도 한다. 동성에게는 굳이 감정의 공유에 매달릴 필요가 없다. 큰소리를 치거나 과장되게 행동하거나 돈을 잘 쓰거나 욕을 잘하거나 등등 외적인 관계에 치중하기 때문에 그렇게 보일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보이면 보일수록 실제 사람들과의 관계는 원활하지가 않다. 소심하고 자신감 없는 자신을 들키고 싶지 않아 과장된 행동을 하는 것이다. 물론 여성 스토커의 경우 행동에 차이가 있을 수 있다. 그렇지만 감정의 일방통행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다만 사회 체계가 아직도 남성 중심인 이유로 여성 스토커의 경우 동성들 사이에서의 행동방식이 남성 스토커와 다를 뿐이다.

스토킹이 단순히 감정적인 짝사랑으로만 머무른다면 범죄의 영역으로까지 들어오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감정의 일방통행은 결국 과도한 소유욕과 연결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가해자 자신은 피해자에게 모든 것을 바치고 희생했다고 생각할 것이기 때문이다. 피해자는 전혀 관심이 없는데도 그렇게 여긴다. 그렇게 되면 “나는 이 정도로 했는데 왜 너는 나에게 조금의 관심도 가지지 않느냐”는 의문을 갖게 되고, 이로 인해 서운해하고, 결국 분노하는 단계로 접어든다. 낮은 자존감으로 인해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자신의 희생을 알아주지 않는 피해자를 공격하게 된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자신과 피해자를 하나로 묶어서 생각하게 되는데 이게 바로 소유욕이다. 결국 스토킹은 소유욕으로 귀결된다.

스토커, 일상생활 문제 없어 찾아내기 어려워

그렇다면 스토커들의 일상생활은 어떨까. 많은 사람이 오해하는 것 중 하나가 자존감이 낮고 사회성이 떨어져 일상생활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다. 그러나 이들은 완전한 정상은 아닐지 몰라도 외부에서 보기에 정상 범주 내에 있다. 일상생활에서의 수행 능력이 크게 떨어지지는 않는다. 그래서 스토커를 미리 찾아내는 일은 쉽지 않다. 자신을 비교적 잘 감추기도 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직장이나 기타 생활공간에서 능력을 인정받기도 한다. 외형적으로 눈에 띄거나 평소 평판이 크게 나쁘지 않다. 스토킹 범죄가 매우 위험한 범죄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자신을 은폐하며 상대에게 신뢰를 줘 접근하지만 이후 감정의 일방통행을 통해 피해자를 당황하게 만들고 종국에는 몸과 마음에 커다란 상처를 주기 때문이다.

스토킹의 결과는 이 사건처럼 살인이나 잔혹한 폭력으로 나타나는 경우도 있지만 그보다는 지속적으로 자행되는 일상생활에서의 괴롭힘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더 빈번하다. 피해자를 정신적으로 괴롭히고 일상생활을 영위하기 힘들 정도로 심각한 피해를 야기하는 것이다. 가령 매일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노려만 본다든지, 거부 의사를 분명히 했는데도 문자메시지나 카톡(카카오톡)을 보낸다든지, 어떤 물건을 선물이라며 매일 집 앞에 놓고 간다든지 하는 행동을 지속적으로 할 수 있다. 피해자에 대한 주변 평판을 부정적으로 만드는 행동을 지속적으로 할 수도 있다. 그래서 서구의 여러 국가에서는 스토킹을 공격적인 폭력범죄의 범주에 두고 처벌을 하고 있다.

그렇다면 스토킹은 관심병과 어떻게 다를까. 관심병은 말 그대로 상대방의 이목을 끌기 위해 하는 행동이다. 스토킹과 겹치는 부분이 있기도 하다. 하지만 관심병은 자신의 외로움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피해자의 사회적 관계를 파괴하는 등의 공격성이 크지 않고 사회성의 빈곤이라는 감정의 일방통행과는 차별적인 범주에 속한다.

이른바 덕후(오타쿠)와는 어떻게 다를까. 덕후는 어떤 일이나 사물, 행동 등에 편집증적으로 집중하는 사람을 의미한다. 여기서 만약 사람에게 집중한다면 그것을 스토킹이라고 할 수 있을까. 필자가 보기에 이 둘 사이에는 분명 차이가 있다. 덕후는 결국 자기 자신에 집중하는 것으로 피해자의 사회적 관계를 파괴하는 것과는 다를 것이다. 덕후는 감정의 일방통행이 아니라 행동의 집중이므로 스토킹의 소유욕과는 차별적인 범주일 것이다. 

참고 용서한다고 문제 해결 안 돼

대구지방경찰청은 2015년 7월30일 주부 살인 용의자 B씨를 공개수배했다. ⓒ 대구지방경찰청

마지막으로 스토킹 범죄를 다루는 데 부족한 사회안전망을 언급하고자 한다. 지속적으로 벌어지는 스토킹 사건을 보면 거의 대부분 수사기관이나 사법기관 등이 사건 자체를 가볍게 여긴다는 생각을 지우기 어렵다. 물론 사망한 피해자 A씨는 당시 두 달째 경찰의 신변 보호를 받고 있던 중이었다. 담당 경찰관이 지정돼 수시로 전화 등을 하며 A씨를 보호하고 있었다. 살해되기 전날 오후에도 담당 수사관과 신변 보호에 대한 상담을 하기로 약속했다. 그런데도 살해를 당한 것이다. 이는 결국 스토킹 가해자가 실제 살인을 저지를 정도로 위험한 상태인지 여부에 대한 판단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경찰에서는 “스토킹 관련 수사가 상당히 진행돼 ‘협박 등 혐의’로 B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하기도 했지만 ‘증거 부족’ 등의 이유로 영장이 기각돼 B씨를 강제로 붙잡아두지 못했다”고 밝히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스토킹 범죄의 문제는 즉시성에 있다. 잠시라도 가해자에 대한 감시를 늦추면 그 즉시 피해자를 공격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스토킹 범죄는 수사기관이나 사법기관만의 문제가 아니다. 얼마 전 한 남성이 고등학교 시절부터 짝사랑한 선생님을 수년간 스토킹하고 잔인하게 살해한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에서 일반인들의 스토킹 범죄에 대한 무지가 잘 드러났다. 가해자 남성은 수년간 피해자 교사를 쫓아다니면서 살해하겠다는 내용이 담긴 이메일을 무려 400여 차례나 보내는 등 집요하게 교사를 괴롭혀왔다. 또한 자신이 그 교사와 사귀었다는 내용의 이메일을 학교로 보내기도 했다. 그런데도 피해 교사는 용서해주라는 어머니의 말을 듣고 경찰에 신고하지 않은 채 참아왔다는 것이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스토킹은 범죄행위다. 참고 용서한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의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20대 여성의 25%, 대학생의 30%가 스토킹에 의한 피해를 입고 있다. 그런데 스토킹과 구애의 경계를 명확히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당연히 확실한 처벌로 이어지는 경우가 드물다. 또한 현행법 체계에서 스토킹은 경범죄처벌법의 ‘지속적 괴롭힘’ 항목에 포함돼 8만원의 범칙금만 부과한다. 이 정도 처벌로 잔혹한 폭력범죄인 스토킹을 막을 수는 없다. ‘스토킹 방지 및 처벌 특별법’ 제정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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