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시장, 피할 게 아니라 더 적극적으로 경험해야”
  • 중국 베이징 = 정덕현│대중문화 평론가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02.03 14:54
  • 호수 13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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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 새로운 ‘한류’ 실험 중인 김영희 PD 인터뷰
ⓒ 정덕현 제공

1월19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예능 프로그램 <폭풍효자> 제작발표회를 마친 김영희 PD와 직접 인터뷰를 가졌다. 프로그램 후일담부터 중국 한류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우리의 제작 현실에 대한 이야기까지 나눌 수 있는 시간이었다.

중국에서 현지 회사를 설립하고 직접 프로그램을 제작해 중국 방송사에서 방송을 한다는 건 새로운 흐름이라고 볼 수 있는데.

제작자로서 중국에서 프로그램을 제작하면서 그 규모에 깜짝 놀랐다. MBC에서 예능국장을 했었기 때문에 예능국 전체 예산을 잘 안다. 당시 1년간 12개 프로그램을 제작했는데, 지금 이 프로그램(<폭풍효자>) 하나가 그 규모에 버금간다. 12회 제작하는 데 한 방송사가 이렇게 어마어마한 제작비를 투자하는 게 아주 일반적인 일은 아니다. 보통 1년에 두어 개 정도 이런 블록버스터를 만들고 나머지는 작은 프로그램이 많다. 이러한 블록버스터에는 몇 백억 원이 기본으로 들어간다.

굳이 중국에 현지 회사를 설립한 이유는 뭔가.

사실 중국에 왔다 갔다 하면서 중국 투자가들로부터 무수한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다. PD들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거액을 제시하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투자가들은 대부분 머니게임을 하는 사람들이었다. 콘텐츠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래서 콘텐츠 제작자로서의 입지를 펼쳐나갈 수 있는 방법을 모색했다. 결국은 내가 중심이 돼서 회사를 설립하는 일이었다. 물론 뜻을 같이하는 중국인 동료이자 투자자가 필요했다. 그렇게 해서 ‘남색화염오락문화유한공사’라는 제작사가 탄생한 것이다. 현지 회사에서 프로그램을 만들기 때문에 그간 한류 예능의 한계로 지목됐던 중국 광전총국의 규제 대상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리메이크되는 한류 예능의 경우 편수 규제를 받는데 이 회사는 법적으로 중국 회사다. 그러니 그 규제 대상이 아니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이를 두고 인력 유출, 기술 유출이라는 시각이 있다.

동의하지 않는다. 유출 안 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과연 우리나라에만 있어야 하는 건가. 글로벌하게 가는 건 이 시대의 흐름이다. 그것을 수구적으로 판단한다는 건 잘못된 일이다. 중요한 건 중국 자본이 들어온다고 해서 주도권을 잃으면 안 된다는 점이다. 프로그램에 대한 판권을 우리가 소유하고 있다는 점은 그래서 중요하다. 여기서 만든 프로그램은 물론 중국에서 방영되겠지만, 향후 동남아·유럽·미주에도 수출이 가능하다. 그래서 <폭풍효자>의 영문 제목이 ‘The greatest love’다. 글로벌 콘텐츠 회사인데 그 사무실을 중국에 두고 있다고 보면 된다. 글로벌 시대에 중국·한국을 지나치게 국가적으로 나누어 바라보는 시각은 피해야 한다. 중요한 건 같은 업종에 있는 사람들이 공동의 목표와 뜻을 갖고 함께 일해나가는 그 마인드에 대한 공유다.

쯔위 사태를 보면 글로벌 프로젝트가 가진 한계도 드러내는 것처럼 보인다.

원칙은 간단하다. 로마에 가면 로마의 법을 따르라는 말이 있듯이, 로마에 가면 로마의 정서를 따르라는 것이다. 중국의 문화·정서를 따르는 것은 굉장히 쉬운 일이다. 그들이 말하고 원하는 걸 들으면 된다. 중국에선 법보다 더 중요한 게 정서다. 당에서의 결정도 결국은 그 정서에 기반한다. 우리 예능이 너무 들어와 있다고 하면 광전총국에서 듣고 방송사에 권고안을 보낸다. 그럼 그게 법이 된다. 그동안 중국은 스튜디오물이 거의 대부분이었는데, 우리나라에서 예능 프로그램이 들어오면서 오락적으로 빠진다는 시각이 나오고 있다. 광전총국의 규제가 언제 나올 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그래도 결국 우리가 작업하는 것이면 우리 정서가 들어갈 수밖에 없을 것 같은데.

중요한 건 공유점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들의 정서를 겨냥해 프로그램을 기획하지만 그걸 만드는 건 우리들이다. 그러니 우리들도 그 작업에 몰입할 수 있는 공감대가 형성되어야 한다. 그게 안 되면 작업의 퀄리티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효’ 같은 보편적인 소재는 그게 용이하다. 우리나라나 중국, 대만도 감동하고 눈물 흘리는 포인트는 같다. 황샤오밍의 엄마가 아들의 편지를 보면서 울었을 때 중국 작가와 감독, 한국 작가와 감독, 카메라맨들을 쳐다봤더니 다 똑같이 울고 있었다. 결국 이렇게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작업을 하면서도 중국인과 우리 사이의 경계 같은 것들이 사라져버리게 된다.

그래도 중국인 PD와 작가들, 또 우리 PD와 작가들이 함께 작업하는 것이니 현장에서 부딪침이나 의견 갈등이 있을 것 같다.

어떤 것을 결정할 때 의견 차이가 꽤 많이 나온다. 현장에 나가서는 더욱 그렇다. 보통 그날 촬영한 분량을 갖고 밤에 복기하면서 내일은 출연자들이 무엇을 할까를 두고 예측을 한다. 그렇게 해야 사전에 대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측 작가가 ‘목욕을 하러 갈 것 같다’고 얘기하면 중국 작가는 ‘목욕탕은 안 갈 거다, 대신 외할머니네 갈 거다’ 하는 식으로 다른 이야기를 한다. 이런 의견차이는 당연한 거지만 중요한 건 이럴 때 어떤 결정을 내리고 양측 제작진들이 따라오게 하느냐는 것이다. 내 경우에는 이미 예전에 플라잉 PD로 활동하면서 쌓은 신뢰가 있기 때문에 “그러면 이렇게 하죠”라고 결정하면 더 이상 토를 달지는 않는 편이다.

글로벌 콘텐츠 작업을 먼저 하는 입장에서 국내의 콘텐츠업계에 조언을 한다면.

우리 시장이 이러다가 중국에 따라잡히고 몰락할 것이라는 식의 표현은 부적절하다. 또 우리가 언제까지 그들보다 앞서서 발전할 것이라고 장담할 수 없다. 중국 시장을 포함해 글로벌 시장은 어쨌든 향후 미래가 될 수밖에 없다. 그때를 대비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중국 시장을 피할 게 아니라 더욱 적극적으로 경험하는 편이 낫다. 지금 우리 시장을 보면 상당 부분 정리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시장 규모에 비해 너무 많은 제작사들이 경쟁을 한다. 물론 인위적으로, 강제적으로 정리하는 건 반대다. 하지만 퇴출 대상은 빨리 퇴출되어야 시장이 살아남을 수 있다. 우리 시장의 한계로 느꼈던 것이 바로 저가 경쟁이다. 그 속에서는 하고 싶은 걸 못할뿐더러 PD가 어떤 아이디어를 내도 뒷받침하기가 어렵다. 그런 점에서 보면 아낌없이 지원을 해주는 중국 시장이 PD로서는 좀 더 글로벌하고 창의적인 프로그램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이 기회를 잘 활용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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