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영 입주자들, 1조6천억원대 부당이익 반환 소송한 까닭은
  • 송응철 기자 (sec@sisapress.com)
  • 승인 2016.02.04 11:33
  • 호수 13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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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양 전환 가격을 실제건축비 아닌 표준건축비로 산정 입주자들 “초과 금액 반환하라” 소송 줄이어

부영그룹은 명실상부한 국내 최대 민간 임대주택 건설업체다. 사실상 임대주택업계를 독식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1983년 설립 이후 임대주택 사업 분야에만 매진한 결과다. 부영그룹은 현금이 풍부한 기업으로도 유명하다. 2014년 말 기준 사내유보금이 1조5000억원에 달한다. 1년 안에 현금화가 가능한 자산도 4조원 이상으로 추산된다. 부영그룹은 이런 자금력을 바탕으로 최근 석 달 동안 삼성생명 서울사옥 등 1조원이 넘는 부동산을 매입해 재계를 놀라게 했다.

이처럼 ‘잘나가는’ 부영그룹이지만 재계에서 두각을 드러낸 건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2009년까지만 해도 재계 순위권 밖에서 머무르다 일순간 20위권 내로 진입했다. 당시 부영그룹의 난데없는 등장은 재계에서 큰 화제가 됐다. 이런 순위 급상승이 가능했던 건 주력 계열사들을 물적 분할하는 과정에서 자산이 대폭 평가 증액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임대주택법을 위반한 결과라는 지적이 나온다. 임대주택의 분양 전환 가격을 산정하는 규정을 초과해 자산을 평가했다는 것이다. 시사저널 취재 결과, 이렇게 증가된 금액은 3조원을 넘어서는 것으로 확인됐다.

부영그룹 주요 계열사들이 2009년 물적 분할을 하는 과정에서 임대주택법을 위반해 임대주택 자산 평가액을 3조2000억원가량 부풀렸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 시사저널 고성준

시간은 2009년 12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부영그룹은 당시 주력 계열사의 사업 구조 개편 작업을 단행했다. 이 과정에서 부영은 부영주택으로, 동광주택산업은 동광주택으로 각각 물적 분할이 됐다. 그러면서 부영과 동광주택산업은 자산을 감정평가해 신설 법인에 각각 양도했다. 물적 분할 당시 부영 전체 자산의 장부가액은 6조1281억원(이하 1000만 단위 생략)에서 9조8581억원으로 3조7299억원 증가했다. 동광주택산업의 자산도 7096억원에서 1조1963억원으로 4866억원 늘어났다. 두 회사의 총자산이 4조2165억원 증가한 셈이다. 이는 분할 이전 자산의 61.6%에 해당하는 규모다.

서울 중구 서소문동에 위치한 부영그룹 사옥. ⓒ 시사저널 사진자료


평가 자산 가치 늘어난 이후 차입금 4배 증가

이로 인해 부영그룹의 재계 순위는 54위에서 19위로 단숨에 뛰어올랐다. 단순히 순위만 상승한 게 아니었다. 물적 분할로 인한 자산 평가액 증가는 사세 확장에도 상당한 도움이 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금융 대출 편의가 향상됐기 때문이다. 실제 부영주택은 2009년부터 2014년까지 금융권으로부터 단기 차입금 1조1245억원과 장기 차입금 3958억원 등 모두 1조5193억원을 추가로 대출받았다. 이 회사의 2009년 말까지 대출금은 단기 차입금 3921억원과 장기 차입금 533억원 등 총 4455억원 규모였다. 물적 분할 이후 불과 5년 만에 차입금이 4배가량 불어난 셈이다.

문제는 신설 법인에 자산을 양도하는 과정에서 임대주택 자산이 과도하게 부풀려졌다는 지적이 나온다는 점이다. 여기에는 임대주택채권과 임대주택, 완성 임대주택, 임대주택 토지 등이 포함된다. 시사저널이 확보한 자료에 따르면, 부영의 임대주택 자산 가치는 4조6125억원에서 7조4861억원으로 2조8736억원, 동광주택산업은 4425억원에서 7736억원으로 3311억원 각각 늘어났다. 이들 회사의 임대주택 자산이 모두 3조2047억원 평가 증액된 것이다.

세부적인 평가액 내역을 보면 부영의 경우 △임대주택채권 1조1397억원(분할 당시 장부가액 2조5094억원→양도금액 3조6492억원) △임대주택 7289억원(8458억원→1조5748억원) △완성 임대주택 1286억원(2602억원→3889억원) △임대주택 토지 1922억원(2830억원→4752억원) △임대주택 용지 6839억원(7139억원→1조3979억원) 등이 증가했다. 동광주택도 △임대주택채권 720억원(1939억원→2660억원) △임대주택 2127억원(1831억원→3959억원) △완성 임대주택 61억원(98억원→160억원) △임대주택 토지 400억원(556억원→957억원) 등의 자산이 불어났다.

이들 회사의 자산 평가 증액은 기업 회계기준상 별다른 하자가 없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일반 기업에 해당하는 얘기다. 부영건설의 경우 임대주택법의 적용을 받는다. 해당 법의 목적은 임대주택 건설을 촉진하고 국민의 주거생활 안정을 도모하는 데 있다. 이를 위해 임대사업자에게 각종 지원을 부여한다. 대표적인 것이 정부가 공사비 35%를 지원해주는 ‘국민주택진흥기금’과 각종 세제 혜택이다. 이는 부영그룹이 안정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으로 지목된다.

그만큼 제한도 많다. 임대주택 자산 평가의 기준이 되는 분양 전환 가격 산정 시 규제를 두는 것이 그중 하나다. 임대주택법에는 분양 전환 가격을 산출할 때 실제 투입된 건축비를 기준으로 하고, 국토교통부가 고시하는 표준건축비를 넘지 말아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그러나 부영과 동광주택산업은 임대주택 자산을 실제건축비가 아닌 표준건축비를 기준으로 평가했다. 부영그룹 관계자는 “물적 분할 당시 국토부 질의응답 답변 내용을 근거로 표준건축비를 임대주택 자산 평가 기준으로 삼았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표준건축비를 기준으로 임대주택 자산을 평가하면서 부영그룹은 상당한 이득을 봤다. 반면, 이로 인한 부담은 입주자들에게 모두 전가됐다. 지방자치단체로부터 분양 전환 가격 승인을 받는 과정에서도 같은 방식을 동원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입주자들 사이에서 부영이 부당하게 폭리를 취하고 있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온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부영그룹 관계자는 “임대아파트 분양가격은 임대주택법에 따라 분양 전환 시 감정을 통해 주변 시세의 70~80%인 저렴한 가격으로 해당 지자체의 승인을 받아 분양 전환한다”며 “부당하게 높은 가격으로 책정한 것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소송 패소할 경우 조 단위 부당이득 반환

당초 부영그룹은 일부 입주자들의 문제 제기에 대해 이렇다 할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다만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입장만을 되풀이했다. 임대주택 분양 전환 시 국토부가 지정한 규제가격의 세부 사항에 따라 표준건축비를 적용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2011년 4월 한국토지주택공사(LH) 임대주택 입주민들이 LH를 상대로 낸 부당이득금 반환소송 결과가 나온 이후 부영 입주자들의 줄소송이 이어지고 있어서다. 당시 대법원 전원합의부는 공공임대아파트 분양 전환 가격의 건축비는 표준건축비를 상한으로 하고 실제건축비를 분양 전환 가격으로 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그러면서 이런 산정 기준에서 초과된 금액을 입주자들에게 반환하라고 주문했다. 사실상 임대주택 분양가 산정의 가이드라인이 제시된 것이다.

이듬해인 2012년부터 부영 입주자들도 부당이득 청구소송을 시작했다. 그 첫 사례는 경상남도 김해시 장유 부영아파트 입주민들이었다. 이들은 부영이 실제건축비가 아닌 표준건축비를 기준으로 분양 전환 가격을 산정함으로써 부당이득을 취했다며, 이를 돌려달라는 취지의 소를 법원에 냈다. 그러자 부영은 실제로 건축에 투입된 비용은 표준건축비보다 많다고 맞섰다. 이에 입주자들은 실제건축비 내역이 담긴 장부를 공개하라고 요구했지만, 부영은 끝내 해당 자료를 재판부에 제출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그리고 2014년 8월 1심 재판부는 입주자들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부영에 대해 소송에 참가한 입주자들에게 세대당 800만원에서 1000만원의 부당이득금을 돌려주라고 판결했다. 이런 결과에 부영 입주자들의 이목이 집중됐다. 이후 소송에 참가하는 이들이 점차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지금까지 전국적으로 150여 건의 소송이 진행 중이며 전체 소송가액은 1조6000억원을 넘어선 것으로 알려졌다.

부영그룹은 소송이 진행 중인 상황이어서 자세한 내용에 대해서는 밝힐 수 없다는 입장이다. 다만 이 회사 관계자는 “LH는 공기업으로 주택가격을 스스로 결정하지만 부영은 임대주택법에 따라 해당 지자체의 승인을 받아 주택가격을 정한 뒤 분양 전환 절차를 진행한다”며 “따라서 해당 대법원 판례는 부영그룹에 적용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런 해명과 달리 재판 결과가 대부분 입주자들의 승리로 일단락되고 있다.

부영그룹 지주사 부영의 지분 93.79%를 보유한 이중근 부영그룹 회장. ⓒ 연합뉴스


“재정적 부담으로 경영상 어려움” 선처 호소

다만 지난해 9월 이례적으로 김해 장유 부영 12·13차 입주자들이 제기한 소송에서는 부영이 승소했다. 재판부가 감정평가사에게 십 수년 전 건축 당시 소요된 건축비를 추산해 감정한 감정평가서상의 추산금액을 실제 투입된 건축비로 받아들이면서다. 이런 결과에 입주자들은 “임대주택법령이 정한 분양 전환 가격 산정 기준에 없는 예상 감정액을 실제건축비로 인용해 부당이득금이 아예 발생하지 않거나 그 금액을 대폭 줄이는 판결을 내놓았다”며 “이번 판결은 2011년 전원합의체 판례와 앞선 서울중앙지법과 창원지법 등의 1심 판결을 뒤집는 꼴”이라고 반발했다.

하지만 다른 지역에서 진행 중인 소송에서는 여전히 부영 입주자들이 우세한 상황이다. 의정부지방법원은 지난해 11월 입주자들에게 승소 판결을 내린 바 있다. 이처럼 승소 행렬이 이어지고 있는 만큼 부영그룹은 부담이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소송가액이 조 단위를 훌쩍 넘긴 상황이어서 더욱 그렇다.

부영 측에서도 상당한 위기감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 부영 측은 입주자들과의 재판 과정에서 “부영과 동광주택을 상대로 수많은 동종 소송이 제기된 상태”라며 “입주자들의 부당이득 반환청구권이 받아들여질 경우 재정적 부담으로 중대한 경영상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 분명하다”고 재판부에 선처를 호소한 바 있다.

그만큼 부영은 재판에 필사적일 수밖에 없다. 현재 법원의 판결을 받아들이지 않고 항소로 일관하고 있다. 따라서 최종 결과가 나올 때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전망이다. 그러나 최종적으로 입주자들이 승소하게 될 경우 부영그룹에는 상당한 후폭풍이 예상된다. 재계 순위 급락은 물론, 그동안 크게 늘린 대출금 상환에도 차질이 생길 것으로 보인다. 이 경우 최근 사업 다각화를 위해 진행 중인 호텔과 레저 사업 등에도 제동이 걸릴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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