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 소리 나는 ‘금수저 교육’
  • 이민우 기자 (mwlee@sisapress.com)
  • 승인 2016.02.04 11:56
  • 호수 13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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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 2500만원 유치원에 지원자 몰려…수능 앞둔 고3 자녀에 매월 3000만원 과외도
ⓒ 일러스트 배중열

한국 교육이 위기다. 한때 긴박하게 다가왔던 이 말은 어느 순간 너무 익숙해져 버렸다. 정글에 던져진 아이들은 살아남기 위해 사교육 시장에 의존한다. 과잉체벌과 교권침해는 교실을 더욱 삭막하게 만들었다. 시사저널은 2월 한 달 동안 특별기획 ‘백년대계’ 시리즈를 통해 위기에 빠진 교육 실태를 점검하고 대안을 찾고자 한다.

 

누구나 평등한 세상은 없다. 근대화 이전의 계급·신분 사회에서는 계급 간 수직 이동이 거의 불가능하거나 상당히 제한적이었다. 그러나 현대 자유민주주의 사회는 적어도 ‘기회의 평등’을 보장한다고 여겨졌다. 동일한 출발선에서 달리기 시작해 열심히 노력하면 누구든 우승할 수 있었다.

경제성장기 한국은 비교적 평등한 기회의 나라였다. 적어도 1990년대까지는 세대 간 계층 이동이 활발했다. 부모의 가난이 자식에게 이어질 확률은 상대적으로 낮았다.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만 가면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여겨졌다. 해방 직후의 농지 개혁과 한국전쟁 등을 통해 불안정한 사회가 변화의 공간을 제공했다. 계층을 초월한 높은 교육열과 공교육 확대 정책, 경제성장기의 일자리 확대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그런데 최근에는 달라졌다. 계층 이동성이 크게 떨어졌다. 평균적으로 부모가 잘 배웠으면 자녀의 가방끈도 길어진다.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높을수록 자녀의 지위도 높아지게 됐다. ‘신(新)계급 사회’라는 말까지 등장했다.

계층 이동의 사다리 역할을 맡았던 교육은 계층 대물림의 통로로 변모했다. 평준화와 사교육 억제 중심의 교육정책은 경쟁을 강요하는 방향으로 흘렀다. 이른바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이들은 어릴 때부터 차원이 다른 환경 속에서 수준 높은 교육을 받게 됐다. 부유층 자녀들은 서울 강남으로 모였다. 그 안에서 상위 1% 부유층은 비공식 네트워크를 형성하며 그들만의 리그를 공고화했다. 이제는 점점 차원이 높아져 일반인들이 상상할 수조차 없게 된 ‘금수저’들의 교육 방식을 추적해봤다.

서울 강남구 YBM GATE 압구정 건물. ⓒ 시사저널 고성준


“드라마 속 금수저 교육은 현실이었다”

지난해 봄 동시간대에 방영된 두 편의 드라마가 있었다. SBS의 <풍문으로 들었소>와 KBS 2TV의 <후아유-학교2015>였다. 전자는 부의 세습을 꿈꾸는 대한민국 초일류 상류층의 속물의식을 풍자하는 블랙코미디였고, 후자는 고등학생들의 다양한 감성을 드러낸 청춘 학원물이었다. 장르는 달랐지만 두 드라마 사이에 공통점도 있었다. 드라마 속에 등장하는 상류층 인물들의 교육 방식이었다.

<풍문으로 들었소>에서 유명 로펌 대표의 아들 한인상(이준 분)은 사법시험을 준비하기 위해 수억대의 연봉을 주고 신림동 출신의 과외선생 경태(허정도 분)에게 과외를 받는다. 갓 태어난 한인상의 아이는 전문 보모에게 맡겨진다. <후아유>에서도 엘리트 집안에서 태어난 강소영(조수향 분)은 학습 매니저를 통해 성적은 물론 스펙까지 관리받는다. 학교에서 사고를 친 후 수습하는 역할도 학습 매니저의 몫이었다. 이 같은 모습은 드라마 속 ‘픽션(fiction·허구)’에 불과할까.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 사는 주부 이주희씨(35·가명)의 두 자녀는 모두 이중국적자다. 5세인 큰아들은 괌, 3세 딸은 하와이에서 태어나 미국 시민권을 취득했다. 이씨는 원정 출산 논란 이후 국적법이 바뀌었다는 소식을 듣고 처음에는 망설였다. 하지만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는 브로커의 말을 듣고 원정 출산을 결심했다. 자녀에게 더 좋은 선택의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서였다. 현행법상 두 자녀는 하나의 국적을 선택해야 하는 22세까지 두 나라의 국민으로 생활하는 것에 전혀 문제가 없다. 한국 국적을 포기했어도 나중에 재취득할 수 있다.

두 자녀에게 미국 시민권을 안겨주기 위해 들어간 돈은 총 1억원 남짓. 이씨는 첫째를 낳을 때 두 달 동안 친정어머니와 병원 근처 호텔에 머물렀다. 병원비와 호텔 숙박비, 업체 수수료 등 4000만원이 들었다. 둘째 아이를 낳을 때는 아예 산후조리를 도와줄 산모 도우미도 데려가 더 많은 비용이 들었다. 남편이 서울 강남구 청담동과 신사동에 여러 채의 빌딩을 소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금전적 부담은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이씨의 첫째 아들은 돌이 지날 무렵부터 육아 전문가에게 맡겨졌다. 자녀를 미국 아이비리그 대학에 보낸 경험을 지닌 전문가였다. 그녀에게 지급하는 돈만 매월 400만원 수준이었다. 이씨는 조금 비싸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자신이 자유롭게 여가생활을 즐길 수 있다는 생각에 오히려 편했다고 했다.

이씨의 아이들을 맡은 전문가는 일반적인 베이비시터와 차원이 달랐다. 그녀는 영어 원어민교사를 섭외해 매주 3차례씩 아이들에게 영어 동화책을 읽어주도록 하는 등 체계적인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이씨는 “유아기 발달이 중요하다고 해서 전문가에게 맡겨봤더니 확실히 차원이 달랐다”며 “덕분에 첫째 아이는 영재 테스트에서 상위 5% 안에 들었다”고 자랑했다.

그녀의 노력은 효과가 있었을까. 실제로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자녀의 인지 능력을 좌우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영국 경제학술지 ‘이코노미카’에 실린 페인스타인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생후 22개월 때 인지 능력이 상위 10% 수준이던 저소득층 자녀와 하위 10%이던 고소득층 자녀의 인지 능력은 생후 78개월(6년 6개월) 즈음에 역전됐다. 저소득 가구 아동의 인지 능력은 상대적으로 약화된 반면 고소득 가구 아동의 인지 능력은 점점 향상됐기 때문이다.


‘월 200만원’ 유치원부터 입시 전쟁

“우리 저번에 ㅇㅇㅇ에서 만났지?”

MBC의 예능 프로그램 <아빠 어디 가>에서 안정환 선수의 아들 리환군과 김성주 아나운서의 아들 민율이가 나눴던 대화다. 대화에 등장하는 ㅇㅇㅇ은 강남 엄마들이 선망의 대상으로 삼는 G 영어유치원이었다. G 유치원은 영재시험을 통해 상위 5%로 인증받은 아이들만 들어갈 수 있는 것으로 유명했다.

G 유치원 상담사에게 문의한 결과, 기본 유치원비는 월 166만원이었다. 급식비 12만원과 수업재료비 36만원도 추가로 내야 한다. 여름과 겨울철 유치원복과 체육복 비용도 별도 부담이다. 영재시험을 뚫고 매월 200만원 넘는 교육비를 부담한다고 해도 바로 입학하기는 어렵다. 대기자가 많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상류층 부모들 사이에서 이른바 ‘반반 유치원’이 인기를 누리고 있다. 반반 유치원이란 영어와 중국어를 함께 가르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영어뿐 아니라 중국어 구사 능력이 아이의 경쟁력을 키울 수 있을 것이라는 부모들의 기대감이 깔려 있다. 기존 영어유치원에서도 부모들의 니즈(욕구)를 반영해 중국어 수업을 교육 프로그램에 추가하고 있다고 한다.

강남의 초등학교에서는 ‘유치원 계급’까지 생겨날 정도다. 자연스레 같은 유치원 출신들끼리 무리 지어 다니는 경우가 많아서다. 서울시 강남구 청담동 E 영어유치원에 6살배기 딸을 보냈던 박수정씨(34·가명)는 최근 유치원을 옮기기 위해 알아보는 중이다. 새 유치원에 보내려면 월 50만원 정도를 더 내야 하지만 자신의 딸이 더 똑똑하고 좋은 가정환경에서 자란 친구들과 어울렸으면 하는 기대 때문이다.

영어유치원을 졸업한 아이들은 주로 사립초등학교에 보내진다. 이른바 수업을 영어로 진행한다는 ‘영어 몰입 교육’ 때문에 인기를 누렸다. 지난 2014년 교육부와 각 시·도교육청에서 영어 몰입 교육을 정규 교육과정에서 폐지했지만 여전히 높은 경쟁률을 보이고 있다. 유치원비로 연간 2000만원 이상을 쓴 학부모들에게 600만~1000만원 수준의 수업료는 큰 부담이 되지 않았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 강남 엄마들에게는 또 다른 과제가 주어진다. 바로 사교육이다. 강남에서는 이른바 ‘빅3’ 영어학원이 있다. 이곳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미국 초등학교 3학년 수준의 시험을 통과해야 한다고 알려져 있다. 이 밖에 수학·미술·피아노·스케이트 등을 가르치기 위한 학원에도 보낸다. 최근에는 이 같은 사교육 프로그램을 대신 짜주는 전문 매니저까지 등장했다.

강남 엄마들이 높은 교육열을 보이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아이들에 대한 투자를 통해 일류 대학에 보낼 수 있다는 믿음이다. 그 믿음은 실제 데이터로 확인할 수 있다.

2015년 특목고 합격자 중 서울시 출신의 10.8%는 강남구 출신이었다. 2013년 7.8%에 비해 3%포인트 늘어났다. 자연스레 8학군으로 불리는 강남구에 대한 쏠림 현상도 더욱 심화됐다. 10~14세 유입 인구가 2012년 3686명에서 2014년 4362명으로 증가했다.

국제중 선호 현상도 특목고·자율형사립고 진학률의 현격한 차이에서 비롯됐다. 초·중등학교 공시 시스템에 따르면, 2015학년도 국제중 졸업자의 자사고·특목고 진학률(16.8%)은 서울시 전체 평균에 비해 3~4배에 달했다. 서울 광진구에 위치한 대원국제중의 경우 2015학년도 졸업자 157명 가운데 69명(44%)이 자사고에 진학했다. 과학고·외국어고·국제고 등 특목고로 진학한 학생도 34명(22%)이었다. 일반고에 진학한 이는 54명(34.4%)이었다. 서울 도봉구에 위치한 영훈국제중도 전체 졸업자 145명 가운데 자사고(51명)와 특목고(21명)에 진학한 학생이 절반에 가까웠다.

반면 서울시 전체를 봤을 때 중학교 졸업자 3명 가운데 2명(66.1%)은 일반고에 진학했다. 자사고 진학률은 13.3%, 특목고 진학률은 3.5%에 불과했다.

과거에는 외국어고나 과학고 등 특목고가 SKY(서울대·고려대·연세대) 대학으로 가는 지름길로 여겨졌지만 그 경로도 다양해졌다. 국제중이 도입되고 자사고가 설립됐기 때문이다. 국제중·고교는 아이를 보냈다가 국내 입시가 불리하다고 여겨질 경우 해외 유학을 보내는 데도 수월했다.


한 달 과외비가 1년 연봉보다 많아

사교육 1번지로 불리는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학원가. 저녁 시간대에는 학원을 찾은 학생들과 그 주변을 배회하는 학부모들로 가득 찬다. 그러나 정작 상위 1% 학생들은 이곳을 찾지 않는다.

D 외고에 다니는 김정호군(19·가명)은 학교가 파한 후 곧바로 집으로 향한다. 그는 일주일에 6시간씩 받는 과외만 4개다. 김군의 한 달 과외비는 과목당 600만원 수준. 4개 과외비에 수행평가와 경력, 전체 학습 일정 등을 관리해주는 학습 매니저 비용까지 계산하면 한 달에 2500만원 넘게 쓰고 있다. 이는 임금근로자의 1년 연봉과 비슷한 규모다. 참고로 2014년 임금근로자의 중위 소득 연봉은 2465만원이었다.

김군을 가르치는 과외 강사진은 유명 입시학원 스타 강사로 이뤄진 ‘드림팀’이다. 이들은 학원에 나가지 않고 상류층 고액 과외만 업으로 삼는 ‘선수’로 알려져 있다. 불법 고액 과외에 대한 정부의 단속이 강화되면서 점조직처럼 움직이고 있다. 이들을 섭외하기 위해서는 돈뿐만 아니라 강남 엄마들의 인맥도 필수적이다. 대부분 불법 과외 사실을 숨기기 때문에 두터운 친분이 없으면 소개조차 받기 어렵다는 게 정설이다.

상류층 엄마들의 막대한 교육 투자는 어느 정도 보상이 이뤄질까. 초상류층 자녀에 대한 별도의 연구 결과는 없지만 자녀의 학업성취도가 경제적 부와 일정 부분 비례한다는 것은 통계적으로 증명됐다. 경기도교육청과 경기도교육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월평균 가구소득 581만원 이상인 고소득층과 125만원 이하인 저소득층의 자녀 간 대학수학능력시험 성적은 최대 43.42점 차이를 보였다. 언어 영역과 수리 영역, 외국어 영역 등 3개 영역을 합산한 점수다.

김희삼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의 분석에 따르면, 특목고생 가운데 50.4%는 가족 월평균 소득이 500만원을 넘었다. 반면 ‘200만원 이하’를 버는 가정은 15%에 불과했다.

2015학년도 서울대 합격생의 출신 학교를 분석한 결과, 합격생을 많이 배출한 상위 30개 고교 가운데 특목고·자사고는 25개교에 달했다. 고소득층 자녀가 특목고나 자사고에 진학한 후 명문 대학에 입학할 개연성이 높다는 의미다.

김희삼 연구위원은 “현 사회에서 교육이 과거와 같은 균형추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인식이 짙어지고 있다”며 “좋은 학교에 가려면 부모의 경제력이 뒷받침되어야 하는 상황에서는 교육이 계층 이동의 사다리보다는 계층 대물림의 통로로 인식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저성장·고령화 시대를 맞은 한국 사회가 정체되지 않기 위해서는 타고난 재능을 계발하고 여러 경로를 통해 성공할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겨야 한다”며 “학연과 지연으로 얽힌 거미줄을 걷어내고 불리한 배경의 청년들이 배제되지 않도록 정책적 지원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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