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경제 위기론’은 과장이 아니었다
  • 중국 상하이·선전·홍콩 = 박혁진 기자 (phj@sisa)
  • 승인 2016.02.06 09:53
  • 호수 13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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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發 위기는 이제부터 시작”…중국 경제 중심지 상하이·선전·홍콩 현지 취재
중국 상하이 금융 중심지인 푸둥(浦東) 지구의 모습. 기자가 방문한 1월18일에도 스모그로 인해 시야가 흐릿했다. 최근 ‘시계(視界) 제로’로 진입 중인 중국 경제를 연상케 한다. © 시사저널 박혁진

우리나라 최대 교역국인 중국의 경제 상황을 놓고 2016년 새해 벽두부터 경고등이 들어왔다. 연일 폭락하는 상하이 증시가 국내 증시에도 영향을 미치며 시장을 불안에 떨게 하고 있어서다. 정부나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은 중국 경제가 우리나라에 미치는 영향이 제한적이라고 말하고 있다. 과연 그럴까. 시사저널 취재진이 중국 현지를 찾아 확인했다.

중국 정부가 공식적으로 바오치(保七·7%의 경제성장률을 지킨다는 의미) 시대의 종말을 고(告)한 2016년 1월19일 오후, 중국 경제 수도로 불리는 상하이(上海) 중심가 난징둥루(南京東路)는 관광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였다. 중국의 ‘커밍아웃’으로 인해 다른 나라의 언론 지면이 ‘포비아’ ‘패닉’과 같은 단어로 도배됐음에도 정작 충격파의 진원지라 할 수 있는 상하이의 번화가에는 활기가 넘쳤다. 한국과 일본 등 해외에서 온 관광객뿐만 아니라 중국 각지에서 몰려든 현지인들로 유명 식당과 기념품 가게는 빈자리가 없을 정도였다. 상하이 고층빌딩이 한눈에 보이는 와이탄(外灘)지구에 있는 황푸강(黃浦江) 강변공원은 상하이의 야경을 담으려는 관광객들로 붐볐다. 지난 연말에는 이 강변 공원 진입 계단에 워낙 많은 사람이 몰려 10여 명이 압사하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비슷한 시각 상하이 증권거래소가 위치한 푸둥(浦東) 지구 상황도 비슷했다. 세계에서 2번째로 높은 빌딩으로 최근 완공된 상하이타워와 상하이의 랜드마크라 할 수 있는 ‘둥팡밍주(東方明珠)’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려는 관광객들로 넘쳐났다. 푸둥 지구 내 국제금융센터 안에 위치한 명품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명품 시계 브랜드인 ‘예거 르쿨르트’매장에 들어가 증시가 폭락한 지난해 하반기부터 최근까지 손님 수에 변화가 있었는지 물었다. 가게 측은 “연말에는 오히려 늘어났고 연초에 잠깐 줄어들기는 했는데, 그건 이맘때가 비수기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중국의 청담동이라고 할 수 있는 ‘신톈디(新天地)’ 거리의 최고급 레스토랑 ‘예(ye) 상하이’의 종업원도 “손님이 크게 줄어들지 않았다”고 말했다. 다른 매장의 상황도 비슷했다. 명품 매장의 손님은 감소하지 않았고, 유명하다는 식당의 예약률도 예년과 별다를 것이 없었다. 관광객들과 현지인들이 자주 가는 쇼핑몰과 식당에서는 중국 경제 위기의 ‘징후’를 도무지 발견하기 어려웠다.

상하이의 활력, 빈부 격차로 인한 착시현상

상하이 번화가인 ‘난징둥루(南京東路)’ 풍경. © 시사저널 박혁진

기자의 통역을 맡았던 전직 코트라 직원이자 조선족인 오향숙씨(36)는 이러한 현상을 ‘눈속임’이라고 말했다. 중국 사회 최대문제라고 할 수 있는 ‘빈부 격차’에서 비롯된 ‘착시현상’이라는 의미였다. 중국의 빈부 격차가 심하다는 이야기는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실제로 중국 현지에서 대학을졸업한 청년들의 첫 월급은 한국 돈으로 60만원에서 100만원 사이를 오간다고 한다. 대학을 졸업하지 못한 근로자들의 급여는 30만원을 약간 넘는 수준이다. 반면 상하이 부자들은 이곳에서 ‘부자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월급 200만원을 상회하는 ‘한국인 가정부’를 구하지 못해 안달이라고 한다. 상하이 인구의 일부라고는 하지만 여전히 숫자를 정확하기 파악하기 어려울 정도의 거부들로 인해 상하이 번화가의 ‘불야성’은 계속되는 셈이다. 특히 급속한 부동산개발로 인해 돈을 번 부유층의 자녀들이 지갑을 여는 데 주저하지 않는 것이 현재의 소비 시장을 떠받치는 원동력이라는 게 현지 사람들의 목소리다. 하지만 인구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서민층이 느끼는 체감경기는 갈수록 안 좋아지고 있다는 것이 대체적인 평가다.

국내 언론에서 우선적으로 주목하는 것은 상하이 주가다. 연초부터 상하이 주가가 폭락하면서 국내 증시에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여름 5000을 넘었던 지수는 2736(1월29일 종가 기준)까지 떨어졌다. 상하이 증시 폭락으로 인해 국내 증시를 비롯한 세계 금융 시장도 출렁이고 있다. 실제로 중국 현지 언론에서는 주가 급락으로 인해 자살을 했다는 투자자들의 소식을 심심치 않게 접할 수 있다고 한다. 문제는 상하이나 선전 등 중국 주식시장의 주가가 실물경기를 정확하게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데 있다.

경제 전문가들이나 중국 현지 기업인들은 주가와 실물경기 사이에 괴리감이 있다는 대전제에 대해서는 대체적으로 의견이 일치하지만, 이에 대한 분석은 완전히 반대다. 국내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이나 경제 전문가들은 중국 증시에 대한 공포감이 다소 과도하게 부풀려진 측면이 있다고 분석한다. 연초 두 차례 발동한 서킷브레이커로 인한 것이라며, 중국 증시의 영향이 제한적일 것이라고 예측하는 이가 많다. 하지만 현지에서 일하는 기업인들은 실물경기가 오히려 주가보다 더 좋지 않다고 말하고 있다. 현지에서 오래 일한 주재원이나 현지인들일수록 이런 의견을 더욱 강하게 피력했다. 특히 건설이나 부동산, 철강, 자동차 등 한국과 밀접한 연관을 가지고 있는 산업일수록 현장에서 느끼는 체감경기는 바닥을 맴돌았다.

우선적으로 부동산 시장이나 이에 따른 건설 경기는 중국 경제의 ‘시한폭탄’이라고 불릴 정도로 상황이 좋지 않았다. 건설 경기와 밀접한 연관이 있는 엘리베이터 사업에 30년간 종사해온 현대엘리베이터 중국법인 영업발전 부서의 류린(劉琳) 부장은“건축을 위해 중국 정부가 장기 임대를 허가해주는 토지 면적이 2014년에 비해 2015년에 20% 이상 줄어들었다”며 “이는 건설경기가 갈수록 안 좋아지고 있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류 부장은 엘리베이터업계의 글로벌 1위 기업인 오티스에서 20년간 일하다 3년 전 현대엘리베이터로 회사를 옮겼는데, 과거 20년에 비해 최근 1~2년간 관련 업무가 눈에 띄게 줄어든 것은 분명한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는 “건설 경기를 미리 예측해볼 수 있는 설계사 업무나 중장비업체의 판매량이 전년 대비 50% 감소했고, 2015년에만 로컬 중장비회사들 중 10%가 문을 닫았다”고 설명했다.

현대엘리베이터 중국법인이 시사저널에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2016년 중국의 ‘상품방’(임대주택 성격의 보장방과 반대되는 개념으로 시장의 수요에 의해 가격이 결정되는 일반적인 주택을 지칭)만 따져도 미분양 면적이 6.96억㎡에 달한다. 중국 1인당 평균 주거 면적이 30㎡(9.075평)임을 감안하면 약 2억3200만명이 거주할 수 있는 넓이다. 이러한 미분양률은 중국 역사에서 찾아볼 수 없을 정도의 규모라는 것이 현지인들의 공통적인 얘기다.

중국 광둥성 선전시에 위치한 세계 최대 IT 단지 ‘화창베이(華强北)’. © 시사저널 박혁진

2억명 살 수 있는 부동산이 미분양

다만 상하이 중심지의 부동산은 여전히 과열 양상을 보이고 있다. 부동산 시장 침체기에도 강남만큼은 집값이 적정 수준을 유지했던 우리와 비슷한 현상이다. 하지만 이같은 미분양으로 인해 건설회사나 관련 회사들의 도산이 계속되면 중국 경제는 심각한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크다. 지난해 12월 중국 정부가 관련 기관들을 모아놓고 개최한 ‘전국 주택 및 도농 건설’ 회의(全国住房和城鄕建設會議)에서 주택개발 부서장인 천정가오(陳政高)가 “부동산정책 주안점을 주택 재고 소진에 맞춰 부동산 시장의 안정을 꾀해야 한다”고 말한 것도 미분양사태로 인한 부동산 시장 붕괴가 가져올 여파를 염두에 둔 발언이다.

철강이나 무역, 화학과 같은 기간산업은 이미 2014년부터 하락세가 시작됐다. 이미 이 업종과 거래를 하는 한국 기업들은 철수하거나 철수를 준비 중이다. 현지에서 만난 국내 대기업의 중국 상사에서 일하는 주재원은 지난해 초에 4년 일정으로 상하이 근무를 발령받았다. 그는 귀국 시기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언제 돌아갈지 알수 없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이 주재원이 일하는 상사는 철강과 화학제품 등을 주로 중개한다. 그는 “지금도 짐 싸서 한국으로 돌아가는 주재원이 많기 때문에 우리도 언제 법인을 청산할지 모른다”며 “한국과 연관이 많은 산업의 경기가 꺾인 것만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중국 경제가 고비를 맞았다는 것은 제2의 경제수도라 불리는 선전(深圳)에 거주하는 기업인들에게도 공통적으로 들을 수있는 얘기였다. 선전은 첨단 산업으로 불리는 드론의 전 세계 생산량 70%를 차지하는 도시로, 중국 고속 경제성장의 상징과 같은 곳이다. 불과 20년 전만 해도 홍콩에 인접한 평범한 어업도시였던 선전은 20년동안 첨단 단지와 고층 빌딩이 생겨나면서 젊은 인구들이 유입되어 도시 인구의 평균나이가 33세에 불과하다. 중국의 경제성장률이 7% 이하로 떨어진 지난해에도 선전은 8.9%에 달하는 성장률을 기록했다. 이런 선전에서도 경기가 안 좋아졌다는 말을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었다. 선전한인회 황성주 사무국장은 “성장률이 아직도 9%를 오가고 있기 때문에 언뜻 보면 나쁘지 않다고 볼 수도 있지만, 선전이 한창 성장할 때는 15%대의 성장률을 기록했다”고 말했다. 신한은행 중국법인 박종덕 선전분행장은 “경기가 한창 좋을 때는 제조업 공장들이 많이 들어섰는데, 이제는 (지금도 과포화 상태이기 때문에) 선전 정부에서 더 이상 공장 설립 허가를 내주지 않는 상황”이라며 “중국이 빠르게 성장하기 때문에 아직은 활력이 있는 것처럼 말하지만 그 속내를 들춰보면 어렵다고 느끼는 사람이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선전에서 10년 이상 현지인들을 상대한 이미현 선전한인회 부회장은 “지난해부터 교민 사회에서 백수 아빠가 많이 늘어나고 있다”며 “뭔가 재기를 해보려고 하지만 서비스나 제조업과 관련한 중국 전체의 경기가 좋지 않기 때문에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 부회장은 “극히 소수의 부자들은 넘쳐나는 돈을 주체하지 못하지만, 대다수 중국 현지인들도 점차 경기가 안 좋다고 예상하기 때문에 지갑을 닫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홍콩 무역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홍콩 항. 인근에 있는 중국 선전 항에 물류를 빼앗기며 물동량이 30% 이상 줄었다. © EPA 연합

한국, ‘제2의 홍콩’처럼 어려움 겪을 수도

중국에서 일하는 한국 기업 주재원들이나 교민들은 중국의 제조업이나 기간산업 또는 건설산업 경기가 계속 안 좋을 경우 한국이 받을 타격이 다른 나라에 비해 훨씬 클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국내 한 대기업 화학 계열사의 현지 주재원은 “일단 대중(對中) 수출이 줄어들고, 두 번째는 중국에서 남아도는 자재나 제품들이 한국에 거의 원가에 들어오게 된다”며 “또한 세계 시장에서 품질을 내세워 중국 업체와 경쟁하던 기업들이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주재원은 “옛날처럼 메이드 인 차이나 제품의 질이 떨어진다고 생각하면큰 오산”이라며 “철강이나 화학제품은 한국에 버금가는 품질을 갖췄거나 그 이상”이라고 주장했다. 이미 한국산 전자제품이나 자동차들은 매해 집계하는 판매 순위에서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는데, 이 시장을 중국 업체들이 빠르게 잠식하고 있는 상황이다.

일각에서는 최근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홍콩의 사례에서 향후 한국이 겪을 어려움을 미리 예측해보기도 한다. 홍콩이 한때 중국의 경제성장에 따른 혜택을 보기도 했지만, 결과적으로 경쟁 산업의 주도권을 중국에 빼앗겨 어려움을 겪는 것처럼, 한국도 비슷한 수순을 밟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실제로 한때 세계 금융과 물류의 중심이었던 홍콩은 두 산업이 어려움을 겪으면서 심각한 위기에 봉착했다. 현재 홍콩 경제를 떠받치는 것은 본토에서 넘어오는 중국 관광객들이다. 자동차 AV 시스템 전문 업체인 남성전자 홍콩법인 이용수 대표는 “홍콩 항을 거쳐 갔던 물류의 상당수가 선전 항 쪽으로 이동하면서 이미 물류산업이 30% 가까이 쪼그라들었다”며 “예전에는 항구에 컨테이너가 들어차 자리가 없었는데 이제는 빈자리가 눈에 띌 정도”라고 말했다. 홍콩 증시로 몰리던 자금도 선전이나 상하이 주식시장으로 상당수 이동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대형 투자은 행인 골드만삭스도 2016년 1월 보고서를 통해 홍콩 내 성장률이 지난해 2.3%보다 0.7%포인트 하락할 것으로 예측했다. 골드만삭스 측은 홍콩 경제 부진의 주요 원인으로 중국 경제의 성장 둔화를 꼽았다.

전문가들은 중국이 우리나라의 최대 교역국인 만큼 올 한 해 중국 경제의 영향을 더 크게 받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중국 경제가 한창 성장할 때와 같이 우리 물건을 중국 시장에 내다 판다는 생각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한다. 박은균 코트라 선전무역관장은 “중국 경제가 어려운 것은 사실이지만 여전히 기회가 없다고는 할수 없다”며 “예전처럼 독자적으로 중국에공장을 지어 싼 노동력을 활용해 물건을 만든다는 생각보다는 자금력이 풍부한 중국 기업과의 합작을 통해 중국 내수 시장의 문을 두드리는 것도 좋은 전략”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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