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권 성과주의 도입]① 정부·사용자, 저성과자 해고 본격화
  • 이준영 기자 (lovehope@sisapress.com)
  • 승인 2016.02.12 16:03
  • 호수 13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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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자 "쉽게 해고하고 임금 깎는 성과주의"
정부와 금융권 사용자들의 개인 성과주의 도입 시도가 본격화했다. 금융권 노동자들은 성과주의 도입과 저성과자 해고 지침이 쉬운 해고와 임금 인하로 이어진다고 12일 지적했다. / 사진=뉴스1

정부와 금융권 사용자들이 개인 성과주의를 본격적으로 도입하고 있다. 금융권 노동자들은 성과주의 도입과 저성과자 해고 지침이 쉬운 해고와 임금 인하로 이어진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저성과자 해고 지침을 공표하며 포문을 열었다. 지난달 22일 고용노동부는 공정인사와 취업규칙 등 2대 지침을 발표했다. 여기에 저성과자를 해고할 수 있다는 내용을 담았다. 특히 정부는 공정인사 지침에서 "업무 수행 능력의 현저한 부족은 근로제공 의무를 불완전하게 이행하는 것"이라며 "이는 근로계약의 해지 사유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단 근로자 평가는 위법·부당하지 않고 평가 내용과 방법이 객관적이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고용노동부의 저성과자 해고 지침에 이어 금융 당국은 개인 성과주의 도입안을 발표했다. 지난 1일 금융위원회는 내년까지 금융 공공기관 9곳에 성과주의를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금융 공공기관에 먼저 개인 성과주의를 도입한 후 민간 금융 기관으로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금융위는 9개 금융 공공기관의 성과 연봉 비중을 내년까지 30% 이상 확대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평가 방식도 기존 집단평가에서 개인평가와 집단평가 모두 반영한다. 전체 연봉의 최고등급과 최저등급 간 차이도 20~30% 이상 벌어진다. 고정수당처럼 운영되던 부분도 변동성과급으로 전환한다. 대상 금융공공기관은 IBK기업은행, KDB산업은행, 수출입은행, 예금보험공사, 자산관리공사, 주택금융공사, 신용보증기금, 기술보증기금, 예탁결제원 등이다.

금융권 사용자 측도 고용노동부와 금융위원회 등 정부의 개인 성과주의 도입과 저성과자 해고 지침에 즉각 찬성 의견을 밝혔다.

지난 4일 은행연합회를 중심으로 한 금융산업사용자협의회는 "전체 연봉 중 성과급 비중과 개인 간 차등 폭을 확대해 나가야 한다"며 "업무능력이나 근무성적이 현저히 부족한 경우에는 재교육 등 개선기회를 부여하고 그럼에도 개선되지 않으면 근로계약을 해지할 수 있도록 하는 고용 유연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특히 금융산업사용자협의회는 신입 은행원 초임을 낮출 필요가 있다고도 밝혔다. 이들은 "성과 연봉제 도입을 통해 시장 수요공급과 무관하게 지나치게 높은 은행권 초임을 현실화 해 고용증대에 기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은행측 입장에서 성과주의를 우선 도입하기 쉬운 대상은 신입행원이다. 신입 행원은 아직 노동조합원에 가입하지 않았기에 노조 보호를 받기 어렵다. 

SC은행은 최근 채용한 50명의 신입행원부터 성과에 따른 연봉제를 도입했다. KB국민은행도 페이밴드를 지난해 입사한 신입 직원부터 적용했다. 페이밴드는 정해진 기간 안에 승진을 못할시 기본급을 동결하는 제도다.

이에 나기상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금융노조) 본부장은 "앞으로 금융권 사측은 신입행원들을 대상으로 별도의 임금테이블을 만들어 초임을 깎을 가능성이 있다"며 "그런 시도가 있으면 노조는 물리력을 동원해서라도 막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신입 행원들 초임이 깎이면 기존 직원들과 똑같은 일을 하는데도 급여 테이블이 달라진다"며 "이는 직원간 갈등을 키운다. 이 상황에서 어떻게 영업이 될지 우려된다"고 덧붙였다.

금융권에서는 IBK투자증권이 최초로 저성과자를 일반해고 할 수 있는 취업규칙을 마련·시행했다. IBK투자증권은 지난해 말 노사합의를 통해 만든 저성과자 성과 향상 프로그램을 지난 3일 취업규칙에 포함했다. 이 프로그램은 올해부터 시행하고 있다.

성과가 낮은 IBK투자증권 정규 직원들은 30개월 동안 성과 향상 프로그램에 참여한다. 30개월이 지나도 지정된 성과 기준을 채우지 못하면 일반해고 될 수 있다.

이에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은 지난달 7일 IBK투자증권 노조를 소속 지부에서 제명했다.  

금융권 근로자들은 고용노동부의 저성과자 해고 지침과 금융위의 개인 성과주의 도입이 결국 쉬운 해고로 이어진다고 밝혔다. 개인 평가 방식의 한계도 지적했다. 

김문호 금융노조 위원장은 "개인 성과주의 도입은 저성과자와 고성과자를 구분한 후 정부의 2대 지침에 따라 저성과자를 일반 해고하기 쉽게 만든다"며 "금융위의 성과연봉제 도입 강요는 헌법의 노사 자치주의를 부정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시중은행 노조 관계자는 "개인성과제를 중심으로 한 성과주의가 도입되면 여기서 뒤떨어진 직원들은 희망퇴직 등에서 내부적으로 압박을 받는다"며 "현장 영업점 은행 직원들 업무는 집단적으로 성과를 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성과주의에서 개인 평가 방식은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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