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라이' 데드풀이 올해 히어로 라인업 선봉에 서다
  • 이은선│매거진M 기자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02.17 14:19
  • 호수 13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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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금’ 히어로 무비 <데드풀>에서 <저스티스 리그>까지, 2016년은 히어로 풍작의 해

관객에게 ‘슈퍼 히어로’는 더 이상 낯선 존재가 아니다. <엑스맨>(2000년)의 성공적 스크린 데뷔를 시작으로 2000년대 들어 쏟아진 슈퍼 히어로 영화만 해도 30편이 훌쩍 넘는다. 물론 쪽박에 가까운 흥행 참패로 세상에 나오기가 무섭게 팬들의 기억에서 사라진 영화들도 있지만, 제작 편수로만 치면 어림잡아도 한 해에 2~3편씩은 꾸준히 개봉한 셈이다. 이렇듯 차고 넘치는 슈퍼 히어로 영화계에 또 하나의 ‘신상 히어로’가 나타났다. 무엇이 다르냐고 묻는다면, 그야말로 유전자가 다른 히어로라고 말해야겠다. 코믹스 팬들 사이에서 좋은 말로 문제아, 시쳇말로 ‘또라이’라 불리는 슈퍼 히어로, 데드풀(Deadpool) 얘기다.

지구의 안위를 걱정하는 마음? 믿음직한 영웅의 풍모? 그런 건 데드풀에게 없다. 대신 ‘말 많은 용병’이라는 별명을 가진 캐릭터답게 폭발적인 수다량을 자랑한다. 말 안 듣는 초등학생 같은 데드풀에게 비아냥거림과 성적(性的) 농담은 장기요, 재치와 순발력은 덤이다. 코믹스 시절부터 이 정체성은 확고했다. 절대 죽지 않는다는 장점을 살려 툭하면 자살을 시도하는 건 예사다. 데드풀은 자신이 코믹스 캐릭터임을 명확히 인지하고 ‘제4의 벽(fourth wall, 관객과 배우 혹은 캐릭터 사이에 있는 보이지 않는 벽)’을 깨부순 캐릭터다. 즉 갑자기 독자에게 말을 걸거나 작가에게 직접 전화해 이야기 전개 방향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딴죽을 거는 일도 허다했다.

그렇다고 마냥 우습기만 한 캐릭터는 아니다. 교태에 가까운 애교를 부리다가도 단숨에 등에 꽂은 가타나(일본 칼)와 총을 뽑아들어 상대를 해치우는 범상치 않은 캐릭터가 바로 데드풀이다. 슈퍼 히어로의 능력을 갖췄으나 스스로 영웅이 되기를 거부하는 안티 슈퍼 히어로. 사실 그에게는 눈물 없이 들을 수 없는 사연이 있다.

<데드풀>은 ‘어른들의 슈퍼 히어로 영화’

슈퍼 히어로들 활동의 대부분이 대의명분에 의한 것이라면, 데드풀의 활동은 훨씬 개인적인 사연에 근거한다. 그의 과거는 특수부대 출신 용병 웨이드 윌슨(라이언 레이놀즈)이었다. ‘거리의 여자’에서 ‘그만의 여자’가 된 연인 바네사(모레나 바카린)와 함께 행복한 날들을 보내고 있었지만, 이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다. 윌슨의 몸 구석구석에 암세포가 퍼졌기 때문이다. 고민 끝에 윌슨은 암을 치료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초인적인 힘을 주겠다며 접근한 이들의 실험에 응하고, 그 결과 ‘힐링 팩터’(상처를 초고속으로 자가 치유하는 능력. 또 다른 슈퍼 히어로인 엑스맨에 등장하는 울버린도 이 능력을 가지고 있다)를 갖춘 슈퍼 히어로로 거듭난다.

문제는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는 것이다. 윌슨의 얼굴은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흉측하게 변해버린다. 윌슨은 자신의 삶을 망가뜨리고 바네사마저 위험에 빠뜨린 아약스(에드 스크레인)를 찾아 복수할 것을 결심한다. 화가 난 윌슨이 아약스를 찾아 나서고, 동시에 바네사에게 다시 돌아가려는 여정, 이것이 <데드풀>의 뼈대다.

뼈대라고는 했지만 사실 이게 전부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데드풀>의 사연은 간결하다. 대신 이 영화가 놀라운 건 이 간결한 흐름 안에서 데드풀이라는 캐릭터의 매력과 장기를 최대치로 선보인다는점이다. 애초에 ‘전체 관람가’부터 ‘청소년 관람가’를 목표로 한 슈퍼 히어로 영화들과는 결이 아예 다르다. ‘어른들의 슈퍼 히어로 영화’를 지향한 이 영화는 러닝타임 내내 거침없는 농담, 잔인함과 화끈함을 수시로 오가는 액션, 속사포처럼 쏟아지는 수다의 향연을 펼친다.

엑스맨 소속이었던 데드풀의 이력답게 영화 안에도 나름의 연결고리가 있다. 극 중 데드풀을 멤버로 섭외하기 위해 엑스맨 소속 슈퍼 히어로 콜로서스(앙드레 트리코테우스)와 네가소닉 틴에이지 워헤드(브리아나 힐데브란드)가 찾아온다. 흡사 데드풀의 근엄한 아버지와 같은 콜로서스, 반항기 가득한 여동생 같은 네가소닉 틴에이지 워헤드가 데드풀과 일시적으로 팀을 이뤄 활동하는 모습 역시 이 영화의 재미 중 하나다. 이 와중에도 “우린 예산이 많지 않아 다른 엑스맨은 못 부른다”고 수다를 떠는 데드풀의 매력이 빛난다.

영화 의 한 장면 ⓒ (주)이십세기폭스코리아

죽어가던 데드풀에 호흡기 부착한 레이놀즈

웨이드 윌슨에게 눈물겨운 사연이 있듯, 이 영화 자체에도 못지않은 사연이 있다. 영화는 유쾌하지만 그 과정까지 100% 유쾌했던 건 아니다. 이 프로젝트는 제작진과 배우의 열정이 맨땅에서 꽃을 피운 경우다. 중심에는 라이언 레이놀즈가 있다. 그는 단순히 <데드풀>의 주연 배우가 아니라 이 프로젝트를 살아 숨 쉬게 한 심장과 같은 존재다. 비유가 너무 거창한 것 아니냐고? 이 영화를 향한 레이놀즈의 고생과 열정을 안다면 할 수 없는 말이다. 거의 ‘레이놀즈 인생극장’에 버금가는 이야기가 있다.

<데드풀>의 영화화가 처음 거론된 때는 2005년, 무려 10년을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데드풀> 영화화 판권을 사들인 20세기폭스사는 레이놀즈에게 러브콜을 보낸다. 마블 코믹스의 아버지인 스탠 리가 말한 것처럼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아이언맨을 연기하기 위해 태어났듯, 라이언 레이놀즈는 데드풀을 연기하기 위해 태어났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레이놀즈는 이전까지 데드풀에 대해 전혀 몰랐지만, 20세기폭스사로부터 배달된 한 무더기의 코믹스를 읽고는 그 자리에서 데드풀과 사랑에 빠졌다. 그런데 그로부터 몇 달 후, 스튜디오의 총책임자가 해고당하면서 프로젝트 자체가 공중에 붕 떠버리게 됐다.

악재는 이어졌다. 레이놀즈는 <엑스맨 탄생:울버린>(2009년)에 웨이드 윌슨 역으로 처음 등장했지만, 코믹스와는 너무 다른 캐릭터로 인해 영화와 더불어 팬들의 혹평을 받고 물러나야 했다. 그사이 레이놀즈가 출연한 또 다른 슈퍼 히어로 영화인 <그린랜턴:반지의 선택>(2011년)이 재앙에 가까운 흥행 참패를 기록하며 영화 <데드풀> 제작은 더욱 요원해졌다. 당시는 청소년부터 성인 관객까지 폭넓게 포섭하는 다른 슈퍼 히어로 영화들이 등장해 전 세계적 팬덤을 구축하며 승승장구하던 때였다. ‘19금’ 수위를 넘나들어야 제맛인 <데드풀>의 영화화는 이래저래 미뤄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데드풀>을 포기할 수 없었던 레이놀즈는 제작자로 발 벗고 나섰을 뿐 아니라, 시나리오 작가들과 달라붙어 영화의 대본을 완성하기에 이른다. 그 과정은 이 영화의 각본가 중 한 명인 렛 리즈가 이렇게 증언했을 정도다. “레이놀즈는 데드풀과 닮은 점이 정말로 많아서 제작 과정 내내 감시자 역할을 했다. 각본 방향이 좀 엇나간다 싶으면 ‘이건 데드풀답지 않은데?’라고 지적하기 일쑤였다. 최고의 결정권자였다고 할까.” 그리고 마침내 기회는 찾아왔다. 제작진이 시험 삼아 찍어본 2분짜리 콘셉트 테스트 영상이 온라인에 유출되면서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데드풀이 차 안에서 현란한 수다와 액션으로 적들을 제압하는 장면이었다. 2015년 3월, 20세기폭스사는 <데드풀>의 본격적 촬영을 허했다. 유출 사고가 아니었다면, 우리는 역대 가장 매력적인 캐릭터 중 하나인 데드풀을 만나지 못할 뻔했다.

2016년은 이렇게 눈물겨운 과정 끝에 세상 빛을 보게 된 <데드풀>뿐 아니라, 슈퍼 히어로 신-구 격돌이 본격화되는 해다. 일단 제대로 만들기만 하면 전 세계 박스오피스 수입을 긁어모으다시피 하는 데다, 코믹스의 풍부한 이야기와 캐릭터들은 새로운 이야깃거리를 발굴해 선보여야 하는 제작 부담을 줄일 수 있다는 매력적인 장점이 있기에 슈퍼 히어로 영화들은 더욱 가열차게 쏟아져 나올 전망이다. 실제로 전 세계 박스오피스 역대 흥행 10위권 내에 <어벤져스1>(2012년), <어벤져스2>(2015년)와 <아이언맨 3>(2013년)까지 세 편의 슈퍼 히어로 영화가 점령하고 있음은 2000년대 흥행 영화를 이야기할 때 눈여겨봐야 할 지표 중 하나다.

4월에 개봉하는 마블의 는 국가가 히어로를 관리하는 법안을 두고 이를 지지하는 아이언맨과 저항하는 캡틴 아메리카가 자신의 세력을 모아 전쟁을 벌이는 내용을 다룬다. ⓒ 소니픽쳐스 릴리징 월트디즈니 스튜디오스 코리아(주)

마블의 <어벤져스>의 대항마, DC의 <저스티스 리그> 출격

올해부터는 그 양상이 더욱 흥미롭게 됐다. 마블과 더불어 코믹스의 양대 산맥을 이루고 있는 DC 코믹스가 ‘어벤져스’를 앞세운 마블 군단에 새로운 도전장을 내밀었기 때문이다. 그간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배트맨 3부작(<배트맨 비긴즈> <다크 나이트> <다크 나이트 라이즈>)을 시작으로 <슈퍼맨 리턴즈>(2006년) 등 다양한 슈퍼 히어로 영화를 내놨던 DC는 3월 <배트맨 대 슈퍼맨:저스티스의 시작>으로, 8월에는 조커·할리퀸·데드샷 등 DC의 유명 악당 군단이 총출동하는 <수어사이드 스쿼드>까지 출격시킬 예정이다.

특히 <배트맨 대 슈퍼맨:저스티스의 시작>은 슈퍼맨·배트맨·원더우먼 등 DC의 슈퍼 히어로가 뭉친 연합체인 ‘저스티스’를 선보이기 위한 발판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프로젝트다. 마블이 <캡틴 아메리카> <아이언맨> <토르> 등의 시리즈를 순차적으로 선보인 후 이들이 총 출동하는 <어벤져스>를 내놨듯, DC 역시 내년에 개봉하는 <저스티스 리그>로 맞불을 놓겠다는 전략이다. 따라서 이번 영화에는 슈퍼맨(헨리 카빌)과 배트맨(벤 애플렉)뿐 아니라 원더우먼(갤 가돗)과 아쿠아맨(제이슨 모모아) 등도 모습을 드러낼 예정이다.

이 영화는 배트맨이 ‘인간이 아닌 신의 영역에 있는 슈퍼맨이 인류를 보호하기만 할 것인가’라는 문제를 제기하면서 불붙은 두 히어로의 갈등을 다루고 있다. 그리고 흥미롭게도 4월에 개봉하는 <캡틴 아메리카:시빌 워> 역시 비슷한 소재를 다룬다. 국가가 히어로를 관리하는 법안을 통과시키려 하자 이에 동의하는 아이언맨(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과 저항하는 캡틴 아메리카(크리스 에반스)가 각 의견에 동의하는 동료들을 모아 벌이는 ‘시빌 워’가 발발한다는 내용이다. <어벤져스> 3편이 더욱 흥미로워지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하게 될 영화인 셈이다.

5월에는 엑스맨 프리퀄 3부작의 마지막 편 <엑스맨:아포칼립스>가 찾아온다. 인류를 파멸시킬 수 있는 전능한 존재인 아포칼립스(오스카 아이삭)가 자신을 섬길 4명의 기사 ‘포 호스맨’을 뽑아 돌연변이들을 장악하려 한다. 찰스 자비에(제임스 맥어보이)가 드디어 ‘프로페서X’로 재탄생할 예정이라는 점에서 기대를 모은다.

6월에는 2014년 개봉한 1편에 이어 ‘닌자 거북이’들도 돌아온다. <닌자터틀:어둠의 히어로>는 본격적으로 뉴욕을 구하기 위해 나선 돌연변이 거북이들의 활약을 그린다. 하키 마스크를 쓴 자경단 청년 케이시 존스(스테판 아멜)도 새롭게 합류한다. 연말에는 닥터 스트레인지 박사가 슈퍼 히어로 군단에 첫 인사를 건넬 예정이다. ‘셜록’으로 유명한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대마법사(틸다 스윈튼)의 제자가 되어 악에 맞서는 히어로 스트레인지로 변모했다. 그는 향후 <어벤져스> 3편인 <어벤져스:인피니트 워>에서도 중요한 임무를 맡을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 영화계는 사실상 ‘슈퍼 히어로의 해’라고 해도 무방한 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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