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롱 속 단기 부동자금 931조원 넘어
  • 하장청 기자 (jcha@sisapress.com)
  • 승인 2016.02.17 14:44
  • 호수 13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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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간 증가율 17.2%...금융위기 이후 최고 수준
서울 을지로 외환은행 본점에서 한 직원이 5만원권 지폐를 정리하고 있다. / 사진=뉴스1

저금리 기조가 장기화되며 장롱 속 현금성 자산 비중이 늘어나고 있다. 지난해 말 단기 부동자금은 사상 처음으로 930조원을 돌파했다. 단기 부동자금의 연간 증가율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고 수준인 17.2%로 나타났다.

17일 한국은행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단기 부동자금은 약 931조3000억원으로 집계됐다.

현금 76조3000억원, 요구불 예금 181조9000억원, 수시입출식 저축성예금 450조2000억원, 머니마켓펀드(MMF) 58조2000억원, 종합자산관리계좌(CMA) 43조8000억원, 양도성예금증서(CD) 21조1000억원, 환매조건부채권(RP) 8조4000억원 등이다.

이 중에서 6개월 미만 정기예금 70조5000억원, 증권사 투자자예탁금 20조9000억원 등이 단기 부동자금에 포함된 반면 MMF 등의 잔액은 예금취급기관 보유분과 중앙정부∙비거주자 보유분은 빠졌다.

단기 부동자금은 지난 2008년 말 539조6000억원에서 글로벌 금융위기가 고조된 2009년엔 646조7000억원으로 19.8% 급증했다. 이는 국내총생산(GDP)의 전년대비 증가율 4.3%를 뛰어넘는 수준이다.

2010년 653조5000억원에서 2011년 649조9000억원으로 소폭 줄었지만 2012년 들어 666조4000억원으로 다시 늘었다. 2013년 712조9000억원, 2014년 794조8000억원까지 높아졌다.

전문가들은 연 1%대의 저금리 국면에서 유동성은 풍부해졌지만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한 채 현금화를 위한 대기성 자금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고 판단했다.

통화승수 역시 19년래 최저치 수준에 머물러 있다. 통화승수는 본원통화에 대한 광의통화(M2) 배율로 산출되며, 시중에 풀린 자금이 경제 전반에 걸쳐 순환되는 척도로 가늠한다.

통화승수가 높을수록 금융회사들이 고객을 상대로 신용 창출을 활발히 했다는 의미로 간주된다.

지난해 12월 통화승수는 17.5배에 그치며 1996년 10월 이후 19년 만에 최저치로 떨어졌다. 1999년 한때 통화승수는 32.7배에 달했지만 꾸준히 감소 추세를 보이고 있다. 2014년 말 19.0배를 기록했다.

통화당국은 통화승수 하락 요인으로 5만원권 현금 보급 증가와 금융상품 구조 변화 등을 꼽았다.

일각에선 통화정책 효과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최근 글로벌 금융시장 변동성 확대 이면에는 유로존∙일본 등 주요 중앙은행들의 통화정책을 통한 경기부양책이 자리잡고 있다.

류용석 현대증권 시장전략팀장은 “일본은행(BOJ)의 마이너스 금리 도입 이후 엔화가 강세로 돌아선 것도 통화정책 효과에 대한 회의론이 작용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류 팀장은 “통화정책의 신뢰가 회복되기 전까지 글로벌 금융시장 변동성이 지속적으로 확대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유동성 함정에 대한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정원일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일본은 유동성 함정에 빠져있다”고 꼬집었다. 그는 “아베노믹스의 통화완화정책이 초기엔 소비 활성화 등 긍정적으로 작용했지만 실물경제 부진을 낳았다”며 “화폐 수요는 제한적인 반면 시중 유동성은 부동산 등 안전자산으로 쏠려 거품 우려를 키우고 있다”고 경고했다.

정 연구원은 “한국도 유동성 함정 우려가 높아 실물지표 추이를 냉정하게 지켜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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