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현대중공업, 도급계약서 ‘날림 처리’ 의혹
  • 박성의 기자 (sincerity@sisapress.com)
  • 승인 2016.02.17 15:52
  • 호수 13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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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고 돈 받아라"...공문서 오기에 원청 '나몰라라'
그래픽=시사비즈

현대중공업이 지난해 12월 사내 하청업체와 도급계약을 일방적으로 통보·해지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줄도산이 발생하고 있다는 ‘갑질 의혹’ 제기됐다. 당시 현대중공업은 “경영이 어려워 일감이 줄어든 것은 사실이지만 협력사와 적법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반박해 왔다.

취재결과 현대중공업 본사 직원이 문자를 보내 기성(하도급 대금)을 작업 후 계산할 것을 강요하고, 공사도급기본계약서에 적시된 조항을 지키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또 지난해 해양사업 문서 일부분에 기재된 도급업체와 실제 작업한 업체가 다른 것으로 밝혀져, 사측이 도급 계약을 ‘날림 처리’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불거졌다.

현대중공업 직원이 하청업체 대표에게 '선작업 후계약'을 강요해왔으며, 이 같은 행태는 계약서와 문자 기록 등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 사진=박성의 기자

지난해 11월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업체에서 일하던 총무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한달 뒤 현대중공업 조선사업부 사내하청업체 대표 서모씨(63)씨가 차 안에서 목숨을 끊는다. 현대중공업의 기성 삭감에 따른 경영난 탓에 두 명이 죽었다. 

이에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업체를 운영하다 폐업한 대표 21명으로 구성된 현대중공업 사내협력사 대책위원회는 기자회견을 열고 현대중공업의 기성 단가 책정기준 공개를 요구했다. 회견에 참석한 이들은 “현대중공업이 협력사들을 대상으로 계약서조차 갖추지 않고 일을 시키는 행태가 만연해 있다”고 입을 모았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모든 공정은 법 테두리 안에서 절차대로 이루어지고 있다”며 반박했다. 

취재결과 도급계약서는 공정이 진행된 후 작성됐다. 현대중공업 간부가 하청업체 대표에게 “돈은 작업 후에 받아가라”고 지시한 정황도 포착됐다. ‘선시공 후계약’ 형태는 현대중공업 일부의 문제가 아닌 이미 하나의 절차로 이뤄지고 있었다.

현대중공업 A하청업체 대표 이모씨는 “현대중공업은 작업에 관한 절차를 무시한 채, 일단 일부터 하면 돈을 주겠다는 식 행태를 보여왔다”며 “원청 요구에 따라 인력을 채용하고 공기에 맞춰 일을 끝내고 나면, 정작 돌아오는 돈은 투입된 금액에 한참 못 미쳤다. 애초 계약을 맺고 작업에 착수하는 형태가 아니다보니 원청이 자신들 멋대로 대금을 책정한 것”이라고 토로했다.

◇ 효력 없는 공사도급계약서에 실적문서는 ‘오류 투성이’ 

현대중공업과 하청업체가 맺은 도급계약 중 임금 지불 관련 내용. / 사진=박성의 기자

현대중공업이 하청업체와 맺은 공사도급계약서를 위반하고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현대중공업이 계약서에는 하청업체 직원의 임금체불 문제는 본사차원에서 책임지겠다고 적시하고, 정작 하청업체가 경영난에 빠지면 경영난 등을 이유로 계약내용을 무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본지가 입수한 현대중공업 공사도급기본계약서에 기재된 제11조(임금 등의 직접 지불) 항에 따르면 갑(현대중공업)은 을(하청업체)에 대한 공사대금으로 을을 대신하여 우선적으로 을의 종업원에 대한 채무를 직접 지불할 수 있게 돼있다. 지불 조건 상황은 ▲을이 파산 및 부도 등을 받은 경우 ▲을이 종업원 임금을 당해 지급기에 지불하지 않은 경우 ▲을이 제3자 체불상태에 있는 경우 ▲기타 을이 채무상화에 빠진 경우 등이다.

하청업체가 기성삭감으로 경영난에 빠지자, 현대중공업은 계약서를 외면했다. 채무변제는 의무가 아니며, 계약서대로 모든 하청업체 상황을 고려할 경우 본사가 경영난에 처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이에 파산에 직면한 하청업체 대표들은 대출과 사채까지 써가며 임금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지난해 현대중공업이 작성한 물량처리 계획 및 실적 현황 문서에는 A업체가 5월부터 해양부문 작업을 진행했다고 기재돼 있으나, 취재결과 관련 작업은 A업체가 아닌 이모씨 업체가 실시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 사진=박성의 기자

현대중공업 해양사업부가 지난해 작성한 실적 현황문서에서는 오기가 발견됐다. 실제 공사를 진행한 하청업체와 기재된 업체명이 달랐다. 자신의 업체가 실적 문서에서 누락된 것을 확인한 이모 대표가 원청에 항의했지만 담당자는 “왜 기재가 잘못됐는지 알 수 없다. 공정에 문제가 없으면 되지 않냐”며 전화를 끊었다.

이 대표는 “내가 계약하고 작업했던 공사가 어느 날 다른 업체가 작업한 것으로 기재된 것을 보고 황당했다. 단순 오기라기에는 다른 업체명이 너무 구체적으로 적시됐다. 특정업체 평판을 고의적으로 올렸거나 문서를 사실상 날림으로 처리했다는 것”이라며 “실적은 하청업체에게 굉장히 중요한 문제다. 정작 담당자는 왜 그렇게 기재됐는지 모르겠다며 모른 체 했다. 추후 수정여부 등을 알려주지도 않았다”고 토로했다. 이 대표 업체는 결국 지난해 폐업했다.

◇ 하청업체 줄도산...현대중공업 발목 잡을 수 있어

사내하청업체 대표들은 현대중공업이 경영난을 방패삼아 갑의 횡포를 저지르고 있다고 말한다. 특히 일방적으로 예산제도를 변경한 게 줄도산 도화선이 됐다는 주장이다. 상호 합의하에 작성하는 계약서가 아닌, 원청 임의로 대금을 적용한 결과 ‘적자 도미노’가 시작됐다는 것이다.

김종이 현대중공업 협력사 대책위원회 본부장은 “원청에서 임의로 적용하는 대금을 목표 예상공수라고 한다. 2013년 이후 이 금액을 업체당 월 출근인원대비로 산정하기 시작했다”며 “출근인원이라는 게 허점 투성이다. 하청에서는 공기를 맞추기 위해 야근과 주말특근을 진행해야 하지만 원청에서는 평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작업한 인력만 인건비를 계상해 줬다”고 토로했다.

대책위에 따르면 2014년부터 현대중공업이 드릴쉽 등 특수선을 무리하게 수주하는 과정에서, 업체당 인건비 대비 40~50%도 안 되는 용역비를 지급했다. 그 결과 2013년 9개에 그치던 연간 폐업사가 2014년 15개 업체, 2015년에는 57개 업체 폐업으로 번졌다. 3년 동안 81개 업체가 폐업하며 일자리를 잃은 근로자만 5200여 명이다.

현대중공업은 지난해 매출 46조2317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대비 12.1%(6조3507억원) 감소했다. 영업적자는 1조5401억원, 당기순적자는 1조3632억원을 기록했다. 전년에 비해 적자 규모는 줄었지만 해양부문 프로젝트가 손실을 내고 있다. 중국의 상선 저가수주 및 저유가도 발목을 잡고 있다. 현대중공업이 긴축 경영 등을 이유로 하청업체와의 대화를 거부하고 있지만, 이 같은 행태가 현대중공업 발전을 저해할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내부 혁신이 아닌 외부 환경을 탓하는 자세로는 위기를 타파할 수 없다는 분석이다.

김보원 카이스트(KAIST) 경영대학 교수는 “현대중공업은 적자 위기를 외부로 전가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수조의 적자가 하청업체의 기성을 삭감하고 계약을 소홀히 한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는 아닐 것”이라며 “저유가와 플랜트부문 위기는 내부 혁신과 체질 개선 계기로 삼아야 한다. 단순히 하청업체 수를 줄이고 그로 인해 예산을 절감할 수 있다고 믿는다면, 경영진의 안일한 대응이라고 밖에 해석할 수 없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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