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현대차 저격수’ 박병일 자동차 명장
  • 박성의 기자 (sincerity@sisapress.com)
  • 승인 2016.02.18 17:12
  • 호수 13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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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 비판 계기 중국차 때문...제2의 박병일 길러낼 것”
박병일 명장은 그의 정비소 안에 자동차 기재 수백개를 모아두고 수시로 실험을 진행한다. / 사진=박성의 기자

머리는 명석했지만 집이 가난했다. 없는 살림에 중등 교육마저 사치였다. 중학교 1학년, 학교를 관두고 버스회사에서 자동차 정비를 시작한다. 중퇴라는 낙인이 찍혔지만, 수십 년 노력 끝에 국내 자동차 정비 분야 정수에 오른다. 국내 자동차 정비 명장 1호, 박병일씨(59) 인생사다.

한파가 가고 눈이 녹기 시작한 17일 오후, 인천 남동구 소재 자동차 정비소에서 박씨를 만났다. 2층 자동차 정비교육장에서 말쑥한 정장은 입은 박씨가 건넨 첫마디는 “요즘 현대차 문제 많죠?”였다. 기자가 고개를 끄덕이자, 자연스럽게 화이트보드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그러더니 문제점과 해결책을 척척 적어낸다. ‘현대차 잡는 저격수’란 호칭이 붙은 이유를 깨닫는 데는 수분도 걸리지 않았다.

◇ “수년을 괴롭힌 현대차, 악감정 없다”

박병일 명장이 화이트보드에 자동차 그림을 그려가며 현대차 문제점을 설명하고 있다. / 사진=박성의 기자

재판이 끝난 지 두 달여가 흘렀다. 그 시간 동안 박씨는 몸도 마음도 상했다. 현대차에 대한 언급을 피할 법도 하지만 박씨는 연초부터 현대차를 향한 날선 비판을 이어가고 있다. 궁금해졌다. 사건 사고는 수입차에서도 많이 발생한다. 박씨는 왜 유독 현대차에 추상같은 일침을 가하는 걸까.

“계기는 있다. 몇 년 전부터 한국에 진출하려는 중국차 브랜드 관계자들이 나를 많이 찾았다. 자사 자동차 경쟁력을 판단해 달라는 거다. 처음에는 정말 질이 떨어졌다. 그런데 매년 성장세가 놀라웠다. 최근에는 현대차 품질을 많이 따라잡았다. 불안했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국산차가 잘 됐으면 하는 소망이 크다. 그러기 위해서는 전문가로서 현대차 문제점을 짚어주는 게 소명이다 싶었다. 현대차가 그 의도를 오해했지만, 나는 지금도 현대차가 세계적 명차로 성장해주길 바란다.”

그는 현대차가 잘 돼야 자기 사업도 잘된다고 말한다. 박씨가 일하는 인천 남동구 주변에는 수백 개의 자동차 부품·정비업체가 들어서있다. 자동차 내수경기가 살아나고, 현대차도 많이 팔릴수록 박씨 사업체에는 이득이다. 다만 그는 장기적으로 현대차가 수입차 업체들과 경쟁하기 위해서는 비판도 달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입장이다.

◇ “MDPS 문제, 현대차 과연 몰랐을까”

박씨는 연초부터 불거진 현대차 MDPS(전동식조향장치) 논란에도 입을 열었다. 지난해부터 현대차 MDPS를 탑재한 차량들 중 일부에서 핸들이 잠기거나, 소음이 발생한다는 제보가 이어졌다. 결국 현대차는 지난 5일 플렉시블 커플링 무상교체라는 대책을 내놨다. 박씨는 현대차가 언 발의 오줌누기 식 대응을 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핸들이 잠기는 문제점이 있다는 제보가 있었음에도, 현대차는 플렉시블 커플링을 무상 교체해 주겠다고 했다. 이는 소음에 관한 해결책일 뿐이다. 핸들이 잠기는 문제에 대해서는 눈을 감았다. MDPS는 생명과 직결된 문제다. 현대차가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의지가 있는 지 의문이다. 분명 무상교체 후에도 핸들이 잠기는 문제는 재발하게 될 것이다. 그 때 가서는 무엇이 문제라고 설명할 텐가.”

자동차 정비 명장인 그가 본 MDPS 문제의 원인은 무엇일까. 그는 토크센서에 결함이 있을 수 있다고 지적한다. 토크센서는 바퀴를 움직이려고 하는 힘을 감지하는 센서다. 사견이라고 선을 그었지만 확신이 있다고 말한다. 이미 수 차례의 실험을 끝냈다. 만약 토크센서에 이상이 있다면 이는 현대차 기술력의 중대한 오류가 있음을 뜻한다. 박씨는 현대차가 억울하다면 공개실험 등을 통해 문제점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주장한다. 박씨는 계속해서 MDPS 문제를 파고들겠다고 밝혔다.

◇ “제2의 박병일 길러내는 게 꿈” 

박병일 명장은 연내에 중고차 사업체를 열 계획이다. / 사진=박성의 기자

박씨는 이미 국내 자동차 정비기술 정수에 올라있다. 굴지의 현대차와의 법정 공방에서도 기술지식 하나로 승리를 거뒀다. 박씨는 아직 자신의 꿈은 멈추지 않았다고 말한다. 박씨는 어릴 적 가난으로 배움을 멈췄다. 박씨는 자신처럼 배움을 멈추는 청년들이 없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는 자신의 정비공장 한 층을 무료 배움터로 탈바꿈시켰다. 제2의 박병일을 꿈꾸는 이들에게 1년여에 걸쳐 무료로 강의를 해줄 계획이다.

“자동차 기술을 배우고 싶어하는 이들 15~20명을 모았다. 3월부터 돈을 안 받고 1400시간에 걸쳐 자동차 정비 분야를 가르칠 예정이다. 무료로 봉사의 개념으로 실시한다. 교육 후에는 취업까지 도울 생각이다. 교육은 철저히 사례 위주다. 그래야 현장에 투입돼도 자동차 문제점을 금방 파악할 수 있다.”

제2의 박병일을 꿈꾸는 이들 중에는 박씨 아들도 있다. 박씨는 아들 역시 훌륭한 자동차 명인이 될 자질이 보인다며 미소지었다. 그는 연내에 중고차 판매업에도 뛰어들 계획이다. 자신의 기술력을 믿고 따르는 이들을 위해, 안전한 중고차로 보답하고 싶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중퇴의 자동차 기름을 묻히는 기술자지만 누구보다 행복하다. 사업으로도 성공하고 싶다. 내 부귀영화 때문이 아니다. 다만 나를 보고 꿈꾸는 수많은 정비공들을 위해서 꽤 괜찮은 인생을 살고 싶다. 기름내 나는 정비쟁이도 행복할 수 있다는 걸 남은 생애 동안 증명해 보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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