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장혈관 좁아진 환자의 절반 이상은 치료 필요 없다”
  • 노진섭 기자 (no@sisapress.com)
  • 승인 2016.02.18 17:13
  • 호수 1375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스텐트 시술 치료법으로 세계 의학교과서를 바꿔놓은 협심증·심근경색 전문가 박승정 교수

심장은 혈관(관상동맥)이 문제다. 동맥이라지만 제일 굵은 부분이 볼펜 심 굵기 정도(3~4㎜)에 불과하다. 이 혈관에 노폐물이 쌓이면 혈액이 심장으로 잘 공급되지 않아 가슴 통증 등과 같은 협심증이 생긴다. 쌓인 노폐물이 터져 생긴 혈전(血栓·피떡)이 혈관을 막으면 심장근육이 죽기 시작하는데 이것이 심근경색이다. 이 때문에 심장혈관이 좁아지지 않았는지를 평소 건강검진으로 살펴야 한다.

심장혈관이 좁아진 상태가 확인되면 과거에는 막힌 혈관을 잘라내고 새로운 혈관을 이어붙이는 수술이 치료법이었다. 1991년, 수술보다 환자에게 부담을 덜 주는 치료법이 도입됐다. 이른바 스텐트 시술이다. 허벅지에 있는 동맥을 통해 삽입한 볼펜 스프링처럼 생긴 그물망(스텐트)이 좁아진 심장혈관을 확장하는 방법이다. 광산 갱도가 무너지지 않도록 버팀목을 두는 것과 비슷하다. 가슴을 열지 않는 데다 시술 후 2~3일 만에 퇴원할 수 있다. 이 치료법을 국내에서 최초로 성공한 사람이 박승정 서울아산병원 심장내과 교수다. 환자의 부담을 최소화하는 방법을 찾아 세계 의학교과서를 바꿔놓은 의사로 유명하다. 최근에는 심장혈관이 좁아진 사람 가운데 치료를 받지 않아도 되는 비율이 절반 이상이라는 연구로 세계 의학계는 물론 환자들로부터 주목을 받고 있다. 박 교수를 만나 자세한 얘기를 들어봤다.

 

ⓒ 시사저널 최준필


일반인이 심장혈관이 좁아진 사실을 알았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결론부터 말하면 혈류 검사를 받아볼 것을 권한다. 혈관이 좁아졌더라도 피 흐름이 크게 나쁘지 않은 경우가 많다. 1996년 심장혈관 사진을 찍어보니 혈관이 85%까지 막힌 환자를 만났는데 협심증 등 이상 증상이 없었다. 약물을 투입해 심장혈관에 스트레스를 줘도 증상이 생기지 않았다. 보통 이 정도면 혈관을 확장하는 스텐트 시술을 하는 것이 기본이다. 그 환자의 혈류를 측정했더니 피 흐름에는 문제가 없었다. 이런 경우에는 별다른 치료를 받지 않아도 된다는 결론을 얻었다.

혈관이 많이 좁아진 경우에도 치료가 필요 없는가.

물론 심장혈관이 90~95%까지 막혔다면 치료를 받아야 한다. 그러나 그 이하는 혈류 검사를 받아서 치료가 필요한지를 확인하면 된다. 영상으로는 혈관이 80~85% 막혀 있더라도, 피의 흐름에 이상이 없으면 그냥 평소처럼 살아도 된다는 얘기다. 기술적인 얘기지만, 정상적인 피의 흐름을 1이라고 할 때 0.8 이하로 떨어지지 않으면 된다.

수술이나 시술이 필요 없다면 환자로서는 반길 일이지만 그래도 좁아진 혈관을 걱정하게 되는 것이 사실이다.

영상을 통해 혈관이 50% 이상 막힌 환자의 혈류를 검사해보니 정상이었다. 그래서 그 환자를 돌려보냈더니 혹시 그 좁아진 혈관 때문에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두려웠던 모양이다. 다른 병원에서 스텐트를 2~3개 넣었더라. 생기지 않을 일에 대한 우려로 불필요한 스텐트 시술을 받은 것이다. 환자의 부담을 최대한 줄이는 것이 최신 의료다. 시술로 치료할 수 있으면 굳이 수술이 필요 없다. 또 약물 치료가 가능하면 시술도 불필요하다. 심장혈관의 혈류를 검사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자료 : 서울아산병원


대다수 병원에서 심장혈관이 절반 이상 막히면 무조건 스텐트 시술을 권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수십 년 전 외국에서 개의 심장혈관을 절반 정도 좁혔더니 혈류가 감소하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를 근거로 사람에서도 심장혈관이 절반 이상 막힌 상태면 수술이나 시술로 치료해온 게 40년이다. 이는 환자에게 신체적·정신적·경제적 부담이 될 뿐이다.

박승정 교수(오른쪽)가 심장혈관이 많이 좁아져 혈류가 좋지 않은 환자에게 스텐트로 혈관을 넓히는 시술을 하고 있다. ⓒ 시사저널 최준필


병원에서 찍은 영상 진단을 믿지 말라는 얘긴가.

심장혈관이 얼마나 좁아졌는지 눈으로 확인하는 데 영상 진단만 한 것도 없다. 그런데 혈관이 좁아졌다고 해서 피의 흐름이 모두 나쁜 상태는 아니다. 왜 그런지를 연구했더니 심장혈관이 절반가량 막혀도 사람마다 혈관 내부 환경은 제각각이었다. 혈관이 막힌 모양, 좁아진 혈관 길이 등에 따라 혈류가 정상이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한 것이다. 그러므로 심장혈관 사진 한 컷으로 치료 결정을 내리는 것은 무리다. 영상을 찍는 각도에 따라 혈관의 막힌 정도가 20%가 되기도 하고 60%가 되기도 한다.

치료가 필요하지 않은 사람의 비율은 얼마나 되나.

혈관이 좁아진 사람 1000명 가운데 혈류 속도가 정상인 사람이 57%로 나타났다. 예전 같으면 1000명 모두 스텐트 시술을 받아야 할 테지만 지금은 절반 이상이 치료를 받을 필요가 없는 셈이다. 더욱이 환자가 심장 통증 등 아무런 증상도 느끼지 않는데 굳이 시술을 받을 이유가 없다(최근 몇 년 사이 서울아산병원에서 심장 수술과 시술 건수는 각각 약 50%가 줄어들었다).

반대의 경우, 즉 혈관이 아주 좁아지진 않았지만 혈류 검사 결과가 나쁘면 어떻게 해야 하나.

심장혈관이 30% 막힌 상태인데 혈류가 좋지 않은 사례가 있다. 그 환자의 혈관 내부를 살펴봤더니 혈관에 쌓인 노폐물이 터진 상태였다. 영상 진단 결과보다 더 좋지 않은 상태였다. 이런 경우라면 치료가 필요하다. 따라서 눈으로 보는 영상만 믿지 말고 혈류를 측정하자는 얘기다.

혈류에는 이상이 없지만 심장 통증 등 협심증 증세를 느끼면 어떻게 하나.

다른 의사들이 나에게 그런 반론을 편다. 증상이 있는데 치료하지 말라는 건 말이 안 된다는 것이다. 혈관 내부에 노폐물이 쌓이다 터지면 혈류가 줄어들면서 사람은 가슴 통증(협심증)을 느낀다. 그런데 그런 사람 중 80%는 자연적으로 회복되면서 증상이 사라진다. 즉, 증상이 계속되지 않고 혈류가 정상으로 돌아온 상태라면 굳이 병원 치료를 받지 않아도 된다.

혈류 검사를 통해 치료를 결정해야 한다는 연구 결과를 받아들이지 않는 의사가 많을 것 같다.

아직은 혈류 검사를 통해 스텐트 시술을 최소화하라는 주장에 동의하는 의사가 많지 않다. 그러나 환자 입장에서는 시술이나 수술을 받을 필요가 없다면 당연히 반길 일이다. 개인의 의료비 절감과 함께 더 넓게는 국가 보험 재정도 절약할 수 있다. 과거 수술로만 심장질환을 치료하던 시절에 스텐트 시술을 받아들이지 않았던 의사들이 지금은 스텐트 시술을 표준 치료로 정한 것처럼, 앞으로 5~10년 안에 심장질환 치료에 대한 패러다임도 새롭게 바뀔 것으로 기대한다(심장혈관 중에서도 협심증이 가장 심하게 나타나는 부위가 좁아진 경우에는 수술로만 치료하던 시절, 박 교수는 스텐트 시술로도 치료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당시 비아냥거렸던 하버드 의대 교수들이 2003년 박 교수를 초청해 스텐트 시술을 전수받은 일은 세계 심장학회의 유명한 일화로 꼽힌다. 이를 계기로 세계 심장학교과서의 표준 치료법이 변경됐다).

스텐트도 최근에 재료가 바뀌었는데 환자에게 이로운 점은 무엇인가.

과거에 사용하던 스텐트는 금속이어서 평생 혈관에 남아 있었다. 만일 그 부위에 병이 재발하면 재시술이나 수술이 어려웠다. 요즘은 녹는 스텐트(생체 흡수형)를 사용한다. 시술 후 6개월부터 서서히 녹기 시작해 3년 정도 지나면 모두 흡수돼 혈관에 아무것도 남지 않고 혈관 기능도 자연적으로 회복된다. 스텐트를 넣었던 부위가 재발해도 재시술이나 수술이 가능해졌다(생체 흡수형 심장 스텐트는 건강보험 적용을 받지 못해 환자가 비용 전액(약 200만원)을 부담해야 한다. 일반 금속 스텐트 시술은 건강보험 적용을 받으므로 환자 부담은 비용의 5% 선이다).

ⓒ 서울아산병원


심장혈관 여러 곳이 동시에 좁아진 상태(다혈관 협심증)에는 어떤 치료가 환자에게 유리한가.

장기간 연구해보니 스텐트 시술보다 수술이 효과적이라는 결론이 나왔다. 시술과 수술을 비교해보니 사망률과 뇌졸중 발생률에는 차이가 없었다. 그러나 스텐트 시술을 받은 환자는 수술을 받은 환자보다 재시술 위험이 약 2배 높다는 결과가 나왔다. 또 시술받은 환자에게서 수술 환자보다 심근경색 발생 확률이 약 1.7배 높았다.

치료방법을 수술에서 스텐트 시술로 바꾸는 노력을 해왔던 의사가 다혈관 협심증에는 수술이 이롭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한 이유는 무엇인가.

물론 다혈관 협심증도 스텐트 시술로 치료할 수 있다면 환자의 부담을 덜어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연구를 해보니 다혈관 협심증에 수술과 스텐트 시술 간 사망률 차이는 없었지만 시술을 받은 사람이 재시술을 받는 경우가 많은 것은 사실이다. 따라서 다른 것은 몰라도 다혈관 협심증은 수술이 환자에게 이롭다. 이런 객관적 결과를 알려야 환자가 조금이라도 유리한 치료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박승정 서울아산병원 심장내과 교수는… 



 

1979년 연세대 의대를 졸업하고, 1991년 한양대 의대 대학원에서 의학 석사, 1994년 고려대 의대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6~88년 세브란스병원 심장내과의 연구 강사로 재직했고, 1989년부터 서울아산병원에 몸담고 있다. 2008년 서울아산병원 심장병센터 소장을 역임했고, 2006~15년 서울아산병원 심장병원장을 지냈다. 2002년부터 보건복지부 심장혈관연구재단 이사장으로 있다. 2004~13년 보건복지부 지정 허혈성심질환 임상연구센터 소장을 지냈다. 세계적인 의학지에 현재까지 497편의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지난해에는 국내 의학자 중 최초로 세계적인 학술지 NEJM에 연구 논문 5편을 게재하는 성과를 올렸다. NEJM은 임상 분야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학술지로 영향력을 알 수 있는 인용지수가 네이처(42.3)나 사이언스(31.4)보다 높은 54.4점이다. 2005년 분쉬의학상(대한의학회), 2008년 미국 관상동맥중재시술학회(TCT) 최고업적상(심장학 분야 노벨상으로 꼽힘), 2010년 유럽심장학회 올해의 의사상, 2011년 유일한상(유한재단), 대한민국 최고과학기술인상(교육과학기술부) 등을 수상했다. 환자 치료에 앞서 ‘내 부모라면 어떤 치료를 할까’를 고민하는 의사로 유명하다.


 
 

 

협심증과 심근경색증은 무엇이 다른가? 


협심증과 심근경색증은 심장의 관상동맥이 점점 막혀서 발생한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이 때문에 증상이 가벼우면 협심증, 심하면 심근경색으로 아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다른 병이다.

왼쪽 팔을 들고 오른손으로 왼쪽 손목을 꽉 쥔 상태에서 왼손을 쥐었다 폈다를 반복하면 저린 증상이 나타난다. 피가 통하지 않기 때문인데 이것이 협심증과 같다. 혈관이 75% 이상 좁아진 상태가 협심증이다. 혈관이 좁아져도 어느 정도 피가 통하므로 평소에는 별다른 증상이 없지만 운동할 때처럼 심장에 많은 산소가 필요한 상황에서는 심장 통증을 느낀다. 그러나 휴식을 취하면 증세가 사라지는 게 특징이다.

심근경색은 심장혈관이 30~40% 좁아진 상태에서 혈관에 낀 기름 찌꺼기가 터지면서 혈관 내부의 성분들과 결합해 굳어 혈전(피떡)이 된다. 혈전이 혈액의 흐름을 방해해서 혈액 순환이 완전히 차단되므로 지속적으로 가슴 통증이 발생하고 심장근육이 죽는다. 심근경색은 평소에 별다른 증상이 없고 건강진단 때 찍은 심전도 결과가 정상인 사람에게도 갑자기 발생할 수 있다. 혈액이 20~30분 공급되지 않으면 심장근육이 서서히 죽기 시작한다. 특히 급성 심근경색은 환자 3명 중 1명이 병원에 도착하기 전에 숨진다. 급성 심근경색증 환자의 절반은 평소 아무런 증세가 없어 건강하게 보이던 사람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