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의 ‘구구단’이 일본으로 전파됐다
  • 김형자 | 과학 칼럼니스트 (.)
  • 승인 2016.02.18 17:26
  • 호수 1375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500년 전 백제 사람들이 사용했던 구구단표 목간 확인

최근 구구단이 적힌 백제시대 목간(木簡)이 확인돼 화제다. 1500년 전 백제에서 쓴 것으로 추정되는, 기다란 나무판에 붓글씨로 적혀 있는 구구단표가 발견된 것이다. 목간은 종이가 발명되기 전 문자 기록을 위해 사용하던 나무 판재로, 소나무를 얇은 형태로 가공한 것이다. 지금까지 광개토대왕릉비나 <삼국사기> 등의 문헌에 구구셈법 표기와 산학(算學)을 가르친 기록이 있었지만, 구구단표가 적힌 유물이 나온 건 이번이 처음. 한반도 최초의 구구단표인 셈이다.

中-韓-日 순 구구단 전파 주장 뒷받침

지난 2011년, 한국문화재재단은 백제 사비성터인 충남 부여 쌍북리 일대의 유적 발굴 조사에서 이 목간을 발견했다. 그 후 한국목간학회 등의 전문가들과 함께 적외선 촬영 등을 통해 내용을 정밀 판독했다. 그 결과 목간 한 점에 적힌 숫자 기록이 구구단임을 확인했다.

이전까지는 이것이 물품의 수량 등을 적은 ‘꼬리표(나무 명패)’일 가능성에 무게를 두었다. 하지만 목간 전면에 상하 네 개 숫자를 한 단위로 삼아 구분선을 가로로 긋고, 희미하게 ‘三(삼)四(사) 十二(십이)’ 등의 공식이 되풀이되는 기록에서 6~7세기 백제시대에 만들어진 구구단표임을 확신했다. 당시 우리나라에는 아라비아숫자가 없었으므로 1, 2, 3이 아니라 한 일(一), 두 이(二), 석 삼(三) 등의 한자를 이용해 쭉 적어놓은 것이다.

1500년 전 백제에서 쓴 것으로 추정되는 구구단 목간의 모습. 오른쪽은 구구단표 목간의 해독본이다. ⓒ 한국문화재단 제공

길이 30.1㎝, 너비 5.5㎝, 두께 1.4㎝ 크기의 목간은 9단부터 2단까지 칸을 나누어 직각 삼각형 모양으로 기록해놓고 있다. 9단을 가장 상단에 배치했고, 아래쪽으로 하위 단들을 기록해 아래로 갈수록 적은 숫자의 단으로 읽어 내려가는 순서다. 이를테면 9×9=81, 8×9=72 해서 9단을 쓰고, 그 아래쪽에 8단, 7단이 쓰여 있다. 각 단 사이에는 가로 선을 그어 구분했다. 또한 같은 숫자가 이어질 경우 반복부호(:)를 사용했다. 특이한 것은 9단이 끝나고 밑에 8단을 시작할 때 8×9=72부터 써야 할 것 같은데, 그건 생략하고 8×8=64부터 시작한다는 점. 이는 9×9=81 옆에 8×9=72가 있어 대각선 밑쪽으로 보면 그것이 확인 가능하기 때문이다. 마지막은 2×2=4로 끝나는 형식이다.

이러한 구구단 방식은 중국과 일본의 관련 유물에 비해 매우 전문적이고 실용적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이 목간은 구구단을 그냥 적은 것이 아니라, 그것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활용했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이것이 암기용 교재이거나, 옛 백제 관청에서 나온 점으로 미뤄 하급 관리들이 세금용 곡식의 수량을 잴 때 계산기처럼 사용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를 통해 백제 사람들이 구구단으로 숫자를 셈할 만큼 상당한 수준의 수학 지식을 갖고 있었음은 물론, 백제시대에 이미 수리 체계가 정립돼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역사적으로 볼 때, 구구단은 중국에서 기원전 10세기 무렵부터 등장했다는 게 통설이다. 중국은 기원전 3세기경 ‘리야 유적’에서 구구단이 적힌 목간 표를 출토했다. 특히 5세기 남북조시대 수학자이자 역학자인 조충지(祖沖之·429~500)는 구구단 계산법으로 동양에서 최초로 원주율을 계산해낸 것으로 유명하다. 구구단은 수학을 익히는 데 기본이자 모든 문명의 척도이기도 했다. 이를 근거로 중국은 동아시아의 문명을 선도했다고 자부한다.

일본에서는 서기 8세기경의 구구단이 적힌 목간이 발견된 바 있다. 옛 도읍이었던 ‘나라(奈良)’ 등에서 출토되었는데, 모양새와 내용이 이번 부여에서 나온 구구단 목간과 비슷하다. 이런 이유로 일본은 곧바로 중국으로부터 직접 구구단을 들여왔고, 일제 강점기에 우리나라에 구구단을 전파해주었다고 주장해왔다. 우리나라는 문헌 기록을 통해 이미 고구려 때부터 구구단을 사용했을 것으로 추측했지만, 실물로 된 구구단 표식이 발견되지 않아 구체적인 증거를 내놓을 수 없었다.

이번 목간의 확인은 구구단이 중국에서 곧바로 일본에 건너가 영향을 주었다고 보는 주장과는 다른 실물 자료다. 시기가 앞서는 백제 구구단 목간이 그대로 일본에 전래됐을 가능성을 입증하는 자료인 셈이다. 중국에서 구구단을 직접 가져왔다는 일본 주장을 둘러싼 논란에 마침표를 찍고, 중국-한국-일본으로 전해졌다는 주장을 뒷받침해주는 백제 목간의 발견은 그야말로 우리가 수학 강국임을 드러낸 쾌거다.

비밀처럼 몰래 사용했던 구구단 권력

구구단의 유래는 음의 높낮이를 정하는 표준 율관(律管)의 길이와 직경이 각각 9촌과 9분인 것에서 기인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일은 이’ 2단부터 시작하는데, 왜 구구단이라고 할까? 처음 중국에서의 구구단은 ‘이일은 이’가 아니라 ‘구구 팔십일’부터 시작했다. 5세기경 문헌인 <손자산경(孫子算經)>에 이미 완벽한 형태로 나타난 구구단은 13세기 송나라 때까지 ‘구구 팔십일’에서 시작해 ‘일일은 일’로 끝나 있다. 왜 이런 방식을 썼을까.

옛날에는 구구단을 배우는 사람이 어린아이가 아닌 어른이었고, 구구단을 사용하는 사람도 일반인이 아닌 특수 계층이었다. 높은 신분의 귀족들만 이를 익혀 사회적 권력으로 사용했던 지혜 중의 하나였다. 그 구구단이 가져다주는 이익이나 편리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귀족들은 일반인들에게 구구단이 알려지는 걸 꺼려해 비밀처럼 몰래 사용했다. 혹시라도 널리 알려질 것을 대비해, 일반인들이 쉽게 터득하지 못하도록 일부러 어렵게 만들었다. 바로 맨 뒤에서부터 시작하는 ‘구구 팔십일’부터 외웠던 것이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9를 영원히 죽지 않고 사는 신의 상징으로 생각했다. 9는 항상 자기 자신으로 돌아오는 수이기 때문이다. 9가 어떻게 자기 자신으로 돌아올까. 9×1=9 → 0+9=9, 9×2=18 → 1+8=9, 9×3=27 → 2+7=9, … 9×9=81 → 8+1=9. 그렇다면 9에 어떤 수를 곱해도 모두 자기 자신으로 돌아올까? 그렇다. 9×349=3141 → 3+1+4+1=9, 9×135=1215 → 1+2+1+5=9.

또 구구단을 잘 살펴보면 끝 숫자에 재미있는 규칙이 숨어 있다. 바로 숫자들의 반복이다. 이를테면 2단의 끝 숫자에는 ‘2, 4, 6, 8, 0’이 반복되고 있다. 4, 6, 8단도 마찬가지. 4단은 4, 8, 2, 6, 0이, 6단은 6, 2, 8, 4, 0이, 8단은 8, 6, 4, 2, 0이 반복된다. 3단의 끝 숫자는 어떨까? ‘3, 6, 9, 2, 5, 8, 1, 4, 7’로, 1부터 9까지의 숫자가 골고루 한 번씩 나오고 있다. 7단과 9단도 마찬가지다. 7단은 7, 4, 1, 8, 5, 2, 9, 6, 3이고, 9단은 9, 8, 7, 6, 5, 4, 3, 2, 1이다. 참 재미있는 규칙이 아닐 수 없다.

‘구구단’ 하면 암산용 계산표처럼 아무 뜻도 모른 채 그저 외웠던 기억이 난다. 이제부터는 공식을 써넣은 국내 최고의 수학사 유물인 백제 구구단의 의미를 생각하며 외우자. 구구단을 외우는 연산 학습이 논리적으로 생각하는 왼쪽 뇌와 숫자의 위치나 움직임을 기억하는 오른쪽 뇌를 골고루 발달시킨다는 사실도 기억하면서 외우면 더 흥미롭지 않을까.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