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장묵의 테크로깅] 은행이 ‘이자’ 대신‘데이터’로 돈을 버는 세상
  • 강장묵 | 고려대 컴퓨터학과 교수 (.)
  • 승인 2016.02.18 17:43
  • 호수 13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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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쓰는 습관에 대한 기억을 자산으로…‘핀테크’가 가져올 변화

금융이란 거칠게 말해 법으로 보장받은 ‘돈 장사’다. 세계 최초로 ‘이자 놀이’를 과학으로 발전시킨 메디치 가문은 1397년 메디치 은행을 설립했다. 메디치는 ‘이자 놀이’를 법으로 금지하는 중세 교회법 아래서 이를 교묘하게 피하면서 초기 은행업을 탄생, 성장시켰다.

이로부터 619년이 지난 지금, 금융산업은 거대한 시장을 이루었다. 금융은 다양한 이용자로부터 돈을 모아 파생상품 등에 투자해 그 차액만큼 수익을 냈다. 2008년 미국에서는 주택담보대출(서브프라임 모기지론)에 파생상품을 붙여 팔다가 수익성 악화를 혹독하게 경험했다. 자본의 타락은 ‘돈놀이’로부터 시작했는데 그 피해는 고스란히 서민에게 돌아간 셈이다. 이를 교훈으로 미국은 무분별한 파생상품의 판매를 금지하는 ‘도드-프랭크 법’을 내놓았다. 그런데 수익을 크게 내던 파생상품 개발과 부동산이 침체되자 금융권의 수익률은 점점 떨어지게 됐다. 금융권이 ‘돈놀이’로는 성장에 한계를 맞은 것처럼 고객들도 이제 ‘이자’만으로 먹고살 수 없는 제로 금리 시대를 맞고 있다.

ⓒ 시사저널 이종현

이자를 팔던 은행은 대신 고객의 돈 쓰는 습관, 돈에 대한 기억(log file; 로그파일)에 주목하고 있다. 이제 은행은 이자에서 데이터를 파는 서비스로 환골탈태하는 과정에 서 있다. 인터넷 뱅크, 모바일 뱅크를 뛰어넘는 미래의 ‘핀테크(Fin Tech)’ 산업을 가능하게 해주는 것은 ICT(정보통신기술)다.

물품을 담보로 한 소액 대출이 늘어날 것

돈은 ‘피’다. 우리 몸의 70% 이상이 물인 것처럼, 자본주의 삶은 곧 돈이 만들어내는 수익과 지출로 구성된다. 그럼 우리는 이 소중한 피(돈)를 언제 어디에 쓰는 것일까. 20대 청춘 남녀라면 학교 주변과 대학가에서, 30대라면 ‘불목(불타는 목요일)’의 퇴근길에, 40~50대라면 자녀 교육에, 60대라면 최근 노인의 홍대 거리라는 서울 동묘역 주변에서 지갑을 열 것이다.

이렇게 열린 지갑의 기억은 고스란히 데이터로 남는다. 돈을 쓴 기억이 축적되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다가오는 명절에 어디에서 어떤 취미를 가진 분들이 기꺼이 돈을 쓸 준비가 되었는지를 알 수 있다. 주부의 신용카드 물품 내역을 분석하면 가족 구성원의 영양 상태와 식습관, 그리고 휴가 계획이 어떨지를 알 수 있다. 장래 돈을 어디에 쓸지에 대한 정보는 여행사와 여행보험, 그리고 금융 정보(돈 쓸 가능성에 대한 소비패턴 예측 기술)로 공유되어 ‘맞춤형 여행 일정’을 추천할 수도 있다. 이처럼 돈 씀씀이는 세대마다 연령마다 성별마다 다양한데, 이를 동네마다, 분마다, 바이오리듬마다, 날씨마다, 기분마다, 친구마다 세분화할 수 있다. 이를 돈에 대한 기억, ‘머니 라이프 로깅(money life logging)’이라고 한다.

돈 씀씀이에 대한 체험과 기억을 로그파일로 축적하고 이를 잘 모아두면 금융은 더 이상 돈놀이가 아닌 또 다른 과학으로 거듭나게 된다. 크게는 가구별 주택 구매와 대출부터, 작게는 집 안의 세간살이 기반의 소액 대출까지 이 로그를 이용해 설계하고 실행할 수 있다. 지금도 수억 원짜리 아파트를 갖기 위해 15년 또는 30년 동안 원금과 이자를 함께 상환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미래에는 이렇게 굵직굵직한 것보다 소상하고 자잘한 것을 담보로 돈을 빌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 현재 인터넷에서는 중고 물품을 거래하는 전자상거래가 왕성하게 운영되고 있는데, 가까운 장래에는 우리가 소지한 모든 세간마다 고유 IP가 부여되고 센싱(sensing)된 정보가 소통되는 사물인터넷 시대가 열릴 것이다. 그럴 경우 미래의 은행은 이처럼 쪼잔해 보이는 중고 물품을 담보로 실시간으로 돈을 빌려줄 수 있다.

미래의 보험료 결정, DNA가 좌지우지

이런 소액 대출을 장점으로 삼는 게 핀테크다. 2016년 우리나라의 핀테크산업은 20만원 이하의 소액 대출 서비스에 집중하고 있다. 일단 소액일수록 핀테크 서비스의 구현이 쉽고, 서민에게 쌈짓돈을 빌려줄 경우 이런 소액은 이자를 갚고 원금까지 돌려주는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다. 그리고 모든 과정에서 사람의 개입이 없고 시스템이 알아서 처리한다. 인건비는 제로에 가깝고 소액이지만 수익률은 높고 원금을 떼일 확률이 낮은, 이른바 황금알 사업인 것이다. 전자화된 소액 대출이 2016년 핀테크의 핵심 서비스라면 2020년 이후에는 사물인터넷과 연동해 물품을 담보로 하는 소액 대출이 늘어날 전망이다.

올해 태어날 아이를 위해 부모가 보험을 가입할 때도 이런 기술은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 이미 올해 태어난 2016년생 아이의 보험은 최대 100년 후인 2116년까지 적용된다. 그럼 2100년도에는 어떤 미래가 펼쳐질까. 올해 자녀 보험을 가입하는 부모에게는 ‘아들일지 딸일지’에 따라 달라진 보험료가 와 닿는다. 아들인 경우 활동이 왕성하고 잦은 사고가 있는 탓에 어린이 보험료가 올라간다. 반면 딸은 아들에 비해 보험료가 낮다. 그럼 미래에는? 아마도 성별보다 DNA가 기준점이 될 것이다. DNA로 예측하는 활동지수, 유전적 질병의 발생률 등으로 보험료가 결정될 것이다. 아이의 안전을 위해 착용형 센싱 또는 삽입형 안전장치를 시술받는다면 보험료는 내려갈 수도 있을 것이다. 또는 폭력적 성향의 DNA를 감소시키는 수술을 받은 경우에도 아이의 보험료를 할인받을 수 있는 세상이 올 수 있다.

미래 자동차보험료에도 변혁이 오게 된다. 예를 들어 스마트카를 구매하면 하루하루 자신이 산 모델의 중고차 시세와 자동차담보대출 예상액이 스마트폰에 뜰 것이다. 스마트카를 담보로 돈을 빌리면 이자를 내지 못한 경우 ICT 기술로 스마트 자동차가 스스로 보험회사의 주차장으로 이동하도록 하는 프로그램을 심어둘 수 있다. 자진 채납인 셈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사람이 직접 운전하는 것보다 딥러닝(deep learning)으로 학습된 자율주행 방식을 택할 경우 아마도 자동차보험료는 내려가게 될 것이다. 지금보다 더 기술 친화적인 미래의 이면에는 생활 물품 하나하나마다 등급을 매기고 가치를 평가해 이를 저장하게 될 것이다. 물론 이를 통해 편리하게 담보 대출을 해주고, 때론 작동을 하지 못하게 해 마지막 물건까지 저당 잡히는 어두운 면도 존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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