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김종이 현대중 협력사대책위 본부장 “괘씸한 현대중 고발한다”
  • 박성의 기자 (sincerity@sisapress.com)
  • 승인 2016.02.19 17:06
  • 호수 13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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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속에 유서 새기고 산다"
김종이 현대중공업 협력사대책위원회 본부장. / 사진=박성의 기자

김종이 현대중공업 협력사대책위원회 본부장은 1988년 현대중공업 조선소에 입사한다. 하청업체 관리직으로 일은 고됐지만 자랑스러운 직장이었다. 다만 돈을 조금 더 벌고 싶었다. 퇴사 후 고임금 직군인 물량팀(하청업체 단기 계약직)에서 일한다. 그 뒤 2011년 김종이씨는 현대중공업 하청업체 대표가 됐다. 옛 직장과 힘을 합쳐 배를 만든 다는 건 큰 보람이었다.

그렇게 5년이 흐른 오늘 날, 김씨는 현대중공업을 등졌다. 영광스럽던 옛 일터는 김씨와 다투는 적이 됐다. 몸은 야위어가고 빚은 쌓여가지만 김씨는 고발자가 된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폐업한 하청업체 사장 신분이지만 현대중공업의 민낯을 알리고 현대중공업을 거듭나게 하겠다는 게 김씨의 소망이다.

◇ “일이 늘수록 빚은 쌓였다”

김씨가 하청업체 대표가 된 지 4개월 뒤인 2012년 3월, 회사에 위기가 찾아왔다. 현대중공업가 외주업체에 맡겼던 모듈 유니트 수주 건에 문제가 생겼다. 모듈 유니트는 LPG상선에 올라가는 제품이다. 현대중공업이 이미 LPG상선을 수주한 상황에서 외주업체가 단가 문제로 계약을 파기한 것이다.

이에 현대중공업은 모듈 유니트 작업을 각 부서별 의장업체에 맡겼다. 사실상 강매였다. 제작할 여건이 되지 않았지만 하청업체 입장에서 거부권은 없었다. 공정이 끝나고 쌓인 적자는 고스란히 김씨의 몫이 됐다.

“준비가 전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작업 지시를 받았다. 물량의 능률이나 투입해야 하는 사람 숫자에는 관심이 없었다. 일단 만들라는 지시였다. 2013년부터는 현대중공업이 무리하게 특수선을 수주하며 문제가 발생했다. 특수선은 정확한 설계도와 품셈이 생명이다. 현대중공업은 설계 노하우가 없었다. 결국 공정 과정에서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어야 했다. 잔업과 특근으로 인건비가 추가 발생했지만 원청에서 하청업체에 모두 전가했다. 3000만원이 더 들어갔다고 항의하면 중공업에서는 지원금 500만원만 받고 끝내라는 식이었다.”

◇ “마음 속에 유서 새기고 산다” 

김종이 현대중공업 대책위 본부장은 가족 얘기를 하며 한참 말을 잇지 못했다. / 사진=박성의 기자

2014년부터 현대중공업 파업이 이어지자, 사측은 하청업체를 더 많은 작업에 투입하기 시작했다. 일은 바빠졌지만 빚은 더 쌓여갔다. 계속해서 투입비용보다 돈을 적게 받으면서, 김씨 회사를 비롯한 하청업체들은 과부하에 빠졌다. 결국 지난해 문제가 불거졌다. 하청업체 총무와 대표가 연이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원청에선 개인사 문제라고 말하지만, 지인들은 현대중공업 기성 삭감이 원인이었다 말한다. 김씨에게 이들의 죽음은 남일이 아니다.

“나는 지금도 마음 속에 유서를 써놓고 산다. 동료들 죽음이 결코 남일 같지 않다. 그들이 무슨 마음으로 그런 선택을 했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빚이 한 달에 수억원씩 쌓여갈 때도 원청업체는 오히려 폐업을 종용했다. 장담컨데 원청업체가 지시한 모든 작업을 공기에 맞춰 해냈다. 진수, 시운전 등 큰 이벤트들을 도맡아 했는데 돌아온 것은 이런 대우다.”

김씨는 현대중공업을 상대로 민사소송도 걸었다. 그는 원청업체가 2012년 7월부터 2015년 7월까지 79억원 손해를 끼쳤다고 주장한다. 김씨 소송 소식에 묵묵히 원청업체 횡포를 견디던 동료들이 힘을 모으기로 결정했다. 김씨는 지난해 11월28일 동료 21명과 현대중공업 협력사대책위원회를 구성했다. 같은 달 31일부 회사는 폐업 신고했다.

◇ “현대중공업 미워하지 않는다…적폐는 바로잡아야”

김씨는 1988년 홀몸으로 울산에 와, 현대중공업 작업복을 입고 일했던 날들을 담담하게 기억해냈다. 한푼 없이 시작했지만 땀 흘려 모은 돈으로 8년 전 첫 집을 장만했던 날도 생생하다고 말한다.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다. 빚이 한계까지 쌓이자 지난해 집이 경매로 넘어갔다. 김씨는 집이 압류되기 전날, 가족들이 자고 있는 모습을 보며 느꼈던 기분을 설명했다. 담담하던 김씨는 이 순간 말을 잇지 못했다.

“처음으로 집을 장만했던 날, 아내와 함께 텅 빈 집에 누워 마냥 웃었다. 떳떳하게 일해 마련한 집이었다. 그 집이 경매로 넘어가던 날, 살고 싶지 않더라. 가족들 볼 면목이 없었다. 더 슬픈 건 가족들이 그런 나를 탓하지 않았다. 아내는 처가에서 돈을 빌려다 생활을 꾸리고 있다. 힘내라고 하는 가족들 말이 나를 더 서글프게 했다. 무엇보다 평생을 일했던 일터를 아침에 일어나서 갈 수 없다는 게 힘들다.”

김씨를 비롯한 현대중공업 대책위는 22일 오전 10시30분 서울시청에서 기자회견을 열 예정이다. 발표 내용은 현대중공업이 저지른 산업재해 은폐와, 무등록업체 운영, 뇌물·비리, 하청업체 조직적 상납 등이다. 현대중공업의 모든 적폐를 드러내겠다는 계획이다. 김씨는 그럼에도 현대중공업의 몰락을 바라지 않는다고 했다. 잘못된 부분을 바로잡고 현대중공업이 떳떳한 기업으로 거듭나길 소원한다고 했다.

“개인적으로는 금전적인 손해배상과 더불어 현대중공업이 잘못을 인정했으면 한다. 고 정주영 명예회장은 항상 울산 조선소 현장을 돌아다녔다. 그만큼 경영진이 현장을 이해하려 했고, 열정이 있었다. 지금의 경영진은 과연 현장 문제에 얼마나 관심이 있는지 묻고 싶다. 적자를 말하며 하청업체 기성을 삭감하는데 골몰할 게 아니다. 눈먼 돈이 천지로 빠져나가고 있다. 나는 현대중공업이 망하길 원치 않는다. 그렇기에 더욱 잘못을 바로 잡으려 노력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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