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당히 벌어서 아주 잘 살자!!”
  • 조유빈 기자 (you@sisapress.com)
  • 승인 2016.02.25 19:02
  • 호수 13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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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청년몰’, 서울 ‘열정도’ 등 개성 만점 ‘청년 거리’ 탐방

전북 전주 완산구에 있는 풍남문 주변 골목을 따라 걸어 들어가면, 시장 골목 가득 구수한 콩나물국밥 냄새가 식욕을 자극한다. ‘피순대’가 가마솥에 가득히 쪄지고 있고, 막걸리 한잔을 마시기 위해 술상을 주문하는 어르신들도 드문드문 눈에 띈다. 각종 곡물과 생선을 좌판에 내놓고 판매하는 모습이 여느 시장과 다르지 않다. 전북에서 가장 큰 재래시장이었던 남부시장의 현재 모습이다.

이 시장 계단을 통해 2층으로 올라가면 1층과 사뭇 다르게 개성 있는 풍경이 펼쳐진다. 세계 여러 나라 음식 맛을 볼 수 있는 식당부터 카페와 바, 마사지를 받을 수 있는 휴식공간, 상담소까지 다양한 가게를 만날 수 있다. 벽에는 ‘만지면 사야 합니다’ ‘적당히 벌고 아주 잘 살자’ ‘보이는 게 전부다’ ‘어차피 인생은 굴러먹다 가는 뜬구름 같은 것’ 등의 재치 있는 글들이 눈길을 끈다. 이곳이 바로 놀 거리, 먹거리, 살 거리가 가득한 전주의 ‘청년몰’이다.

‘미스허문방구’에서는 불량식품을 만날 수 있다. 어릴 때 ‘문구점’이 아닌 ‘문방구’에서 사먹던 그 식품들이다. ‘오브라이트롤’이라는 이름이 붙은 테이프 모양의 과자부터 버너와 석쇠를 이용해 직접 구워 먹을 수 있는 ‘쫀디기’까지 추억 속의 상품이 가득하다. 전통 디자인 소품을 판매하는 ‘새새미’라는 가게에는 ‘오빠가 백은 못 사줘도 주머니는 사줄 수 있어’라는 문구를 적은 종이가 문에 붙어 있다. ‘수수’라는 수제 요거트 집에서는 ‘애들이 먹어도 환장한다’는 양갱과 ‘여자가 먹어도 좋다’는 복분자주스를 수제로 만들어 판매한다.

겨울을 제외한 매월 넷째 주 목요일, 전주 남부시장 2층 청년몰에서 열리는 ‘청년몰 콘서트’. ⓒ 청년몰 제공


젊은 장사꾼들 모인 전주 남부시장 ‘청년몰’

길을 따라 걷다 보면 ‘먹거리(Food Street)’인 식당가가 등장한다. ‘구라파식당’ ‘청춘식당’ ‘플라잉팬’ 등의 상호가 나붙은 이곳도 심상치 않다. 구라파식당에서는 유럽과 스페인 요리를 판매하는데, 토마토소스와 돼지고기를 이용한 판체타, 판체타를 활용한 푸실리 파스타와 타파스가 주메뉴다. 팬 요리를 판매하는 플라잉팬의 벽에 적힌 ‘모든 걸 먹어볼 순 없지만 시도는 해보자’라는 문구답게, 이곳에서는 ‘치킨 차우멘’ ‘후난 치킨’ 같은 흔치 않은 이름의 치킨 요리들을 만날 수 있다. 플라잉팬을 운영하는 김은홍씨는 청년몰 모집 당시 커트라인에 딱 걸리는 나이인 39세에 입점했다. 그는 “음식은 많은 도구가 필요하지 않다. 이곳에서는 팬을 이용해 만드는 볶음요리가 주종인데, 다양한 독자적 메뉴를 개발해 판매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낮술을 환영한다는 청춘식당의 간판에는 ‘니들은 참말로 열심히다’라는 글이 적혀 있어 오가는 사람들의 입가에 미소를 자아낸다. 그러면서도 가게 한쪽에 붙어 있는 세월호 리본을 보면 마냥 웃을 수만은 없다. 세월호 참사를 겪은 단원고 학생들을 기억하려는 청년들의 작은 시도다. 식당가에서 벗어나면 카페와 술집이 눈에 들어온다. 네 명 정도만 앉을 수 있는 작고 분위기 있는 술집 ‘바, 차가운 새벽’에는 안주 종류가 거의 없다.  칵테일 고유의 맛을 제대로 느끼기 위해서다. 이곳의 한정 메뉴는 ‘어른의 아이스크림’. 주류를 베이스로 만든 아이스크림에 취향에 맞는 칵테일을 부어 떠먹는 독특한 메뉴다. 메뉴가 따로 없이 자신의 취향을 말하면 그 맛에 맞춰 칵테일을 만들어주는 것도 흥미롭다.

청년몰은 2011년 문화체육관광부의 문전성시 사업(문화를 통한 전통시장 활성화 시범사업)으로 문을 열었다. 시장의 문화 프로그램을 진행해오던 사회적 기업 ‘이음’이 내부 구성원을 바꾸고 기존 상인을 변화시키는 시도를 한 것이다. 청년 장사꾼으로서 소양 교육을 받은 청년들이 야시장 등을 통해 장사를 경험한 후, 2개의 시범 가게(캘리공방 이응, 카페 나비)를 먼저 개점했다. 10년 전 화재가 난 후 비어 있던 2층 공간을 활용한 것이다. 이후 2012년부터 청년몰 가게 모집을 시작했고, 일명 ‘1기’인 플라잉팬, 차가운 새벽, 미스터리 상회, 차와 등의 가게가 영업을 시작했다.

이곳 상인들은 모집을 통해 뽑힌 만 20세에서 39세 사이 청년이다. 각자 ‘가게의 독자적인 메뉴가 있을 것’ ‘구상이 세부적일 것’ 등을 참고로 해 선정됐다. 부족한 돈은 사회적 기업과의 협업으로 해결했다. 청년 상인들이 함께 공사와 청소를 하며 서로 가까워졌고, 2012년 5월 정식으로 ‘청년몰’이라는 이름을 달았다. 그러나 시작은 녹록지 않았다. 청년몰에 대해 사람들은 잘 알지 못했고, 손님도 찾아오지 않았다. 자체적으로 손님을 불러들이기 위해 페이스북 페이지를 개설했고, 전단지를 돌리고 포스터를 붙였다. 초기에 12개의 가게로 시작한 이곳에 현재는 서른 곳이 넘는 가게가 운영 중이다. 오전 11시부터 오후 10시까지 가게마다 문을 여는 시각도 다양하다. 겨울을 제외한 봄, 여름, 가을에는 매월 넷째 주 목요일 저녁 7시에 청년몰 콘서트를 개최한다. 인디밴드와 싱어송라이터 등이 참가해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라이브로 들려준다.

청년몰의 플라잉팬 벽에 적힌 문구. 가게 주인 김은홍씨가 직접 적었다.
청년몰의 명소 청춘식당. 가게 앞 간판에 세월호 리본이 붙어 있다.


인쇄공장의 변신, 서울 용산 ‘열정도’

서울에도 청년들이 모여 만든 ‘섬’이 있다. 서울 용산구 원효로 1가의 버려진 인쇄공장 단지. 이 어두운 골목에서 길을 꺾어 들어서면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가게들이 나타난다. 어찌 보면 을씨년스러울 수도 있는 이 골목에 여섯 개의 음식점이 문을 열면서 이곳은 ‘아는 사람들은 다 아는’ 젊음의 거리, ‘열정도’가 됐다. 주변의 고층 오피스텔 건물들에 둘러싸인 골목의 모습이 섬같이 느껴진다. 가게의 콘셉트와 인테리어, 일하는 사람들까지 개성이 넘친다.

골목길을 걷는 손님들에게 인사를 건네는, 이 삭막한 거리에 생명을 불어넣은 사람들이 열정도를 운영하는 청년들이다. 관리자부터 직원까지 이곳에 있는 모두가 ‘청년’이다. 열정도는 ‘청년장사꾼’이라는 소자본창업단체의 프로젝트로 시작됐다. 상권이 전혀 형성되지 않은 골목, 빈 가게들을 임차해 여섯 개의 매장을 동시에 냈다. 골목 한 바퀴를 뛰면 찜닭을 무료로 증정하는 이벤트를 하고, 매달 토요 야시장으로 불리는 푸드트럭 장터를 열면서 사람들에게 열정도를 알려나갔다.

2층 가정집 외관을 갖춰 눈에 띄는 첫 번째 가게, ‘감자집’은 양념감자튀김과 일반감자튀김을 ‘착한 가격’에 만날 수 있는 열정도 대표 맥줏집이다. 인기 메뉴는 직접 제조한 ‘인생 맥주’다. 철판요리와 와인을 함께 즐길 수 있는 ‘철인28호’, 찜닭을 판매하는 ‘치킨사우나’, 백반과 함께 저녁 술상을 즐길 수 있는 ‘판’, 열정도 이름을 붙인 ‘열정도쭈꾸미’와 ‘열정도고깃집’도 있다. 아기자기하면서도 복고풍이 느껴지는 인테리어를 갖춘 열정도고깃집에서는 청년들이 직접 초벌한 고기를 구우면서 먹기 편하게 잘라준다. 거리 한가운데 위치한 열정도쭈꾸미는 이 중에서도 분위기가 가장 발랄하다. 가게 외부는 ‘쭈꾸미 팔아서 장가가자’ ‘쭈꾸미 맛이 거기서 거기죠’라는 문구들이 간판이 달려야 할 위치에 검은 페인트로 거칠게 적혀 있다. 가게 내부 벽에 일하는 직원들의 키·근육 등 프로필을 적어둔 것도 인상적이다.

서울 용산 ‘열정도’에 있는 ‘열정도쭈꾸미’(위 사진)와 ‘철인28호’. ⓒ 시사저널 고성준


기차역·고속도로휴게소 파고든 청년 셰프들

정부 정책사업의 기회를 잡아 매장을 운영하는 청춘들도 있다. 우송대 외식조리학부와 글로벌한식조리학과를 졸업한 김세준·조규훈·권성록씨는 청년 창업을 지원하기 위해 코레일이 진행한 ‘스테이션 청춘 셰프’ 프로그램에 참여해 대전역에 1호점을 냈다. 이들이 운영하는 ‘쁘띠박스’의 주 메뉴는 ‘한입도시락’과 ‘라이스 크로켓’이다. 연어·멸치·제육볶음·떡갈비 등 한입도시락에 들어가는 내용물의 종류도 다양하다. 고객 시식 행사를 거친 후 지난해 12월부터 본격적인 영업에 들어갔다.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김세준씨는 “창업에 관심을 갖고 있던 차에 코레일 프로그램에 응모해 창업을 하게 됐다. 기차를 타는 승객들에게 적합한 메뉴를 직접 구상하고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함께 청춘 셰프로 선발된 팀들도 청량리, 영등포, 오송역 등에 순차적으로 개점을 준비하고 있다.

고속도로휴게소도 청년 장사꾼들의 첫 일터가 되고 있다. 한국도로공사가 정부3.0 역점 사업으로 추진한 ‘고속도로휴게소 청년 창업’을 통해 가게를 연 경우다. 기존 휴게소 제품과 중복되지 않는, 우수한 창업 아이디어를 가진 청년들에게 매장 인테리어 비용을 지원해주고 초기 임차료를 면제해준다. 이 사업 덕에 쿠바식 토스트, 한 손바닥 사이즈의 화덕 피자, 황금돼지빵 등 창의적인 아이템을 가진 청년들이 전국 각지 휴게소에서 가게 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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