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강 전북 현대’ 내세워 고급 브랜드 전략 강화
  • 서호정 | 축구 칼럼니스트 (.)
  • 승인 2016.02.25 19:05
  • 호수 13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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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 ‘스포츠 DNA’ 물려받은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의 통 큰 스포츠마케팅


올겨울 국내 프로축구 K리그의 뉴스는 온통 전북 현대로 도배됐다. 현대자동차가 지원하는 전북 현대는 이미 이동국·이재성·김기희·권순태 등 전·현 국가대표를 보유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에 만족하지 않고 김신욱·김보경·김창수·이종호 등 해외에 진출해 있거나 K리그의 다른 팀에서 뛰는 국가대표급 선수들을 대거 영입했다. 연일 터지는 전북 현대의 대형 선수 영입 소식에 언론과 팬들의 이목이 집중됐다.

얼어붙은 이적 시장 분위기와 정반대되는 전북 현대의 독보적인 질주는 수원 삼성과 비교해 더욱 주목을 받았다. 현대자동차와 더불어 재계의 쌍두마차인 삼성전자가 최근 스포츠에 대한 투자를 대폭 줄이고 있어서다. 삼성전자가 후원하는 수원 삼성은 대형 선수 영입은커녕 기존에 있던 선수들마저 상당수 정리해야 했다. 삼성전자는 수원 삼성, 삼성 라이온즈 등 산하 스포츠단을 제일기획으로 이관하고 지원금을 줄이는 등 몸집 줄이기를 하는 중이다. 2018년부터는 스폰서로 전환해 현재의 지원은 약 4분의 1 수준으로 깎인다.

현대자동차와 삼성전자에는 공통점이 있다. 최근 3세 경영으로의 승계가 진행 중이다. 현대자동차는 정의선 부회장이, 삼성전자는 이재용 부회장이 전면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두 후계자의 선택은 다르다. 이 부회장이 몸집 줄이기와 역량 집중화를 화두로 삼은 반면, 정 부회장은 브랜드 고급화 전략을 위한 적극 투자에 포커스를 맞췄다. 이런 성향이 기업 산하의 스포츠단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게 스포츠계의 반응이다.

2015년 10월25일 K리그 클래식에서 전북 현대가 우승을 확정한 뒤 정의선 회장(맨 왼쪽)은 유니폼을 입고 선수들과 어깨동무를 한 채 그라운드에서 세리머니를 펼쳤다. ⓒ 연합뉴스

삼성의 스포츠단 축소 경향과 뚜렷한 대비

현대자동차는 오랜 기간 한국 스포츠 발전을 위해 다방면의 노력을 기울여왔다. 그 출발점은 현대그룹의 뿌리인 고(故) 정주영 명예회장의 성향이다. 청년 시절 씨름을 곧잘 할 정도로 힘이 장사였던 정 명예회장은 기업가로 성공한 후 스포츠에 큰 관심을 보였다. 축구·농구·씨름을 비롯한 인기 스포츠는 물론, 서울올림픽 유치를 책임지며 아마추어 종목과도 깊은 인연을 쌓았다. 현대의 각 계열사는 한 종목 이상의 스포츠단을 운영할 정도로 한국 스포츠에서 차지하는 위상이 높다.

그중에서도 현대자동차그룹은 6개의 프로·세미프로 구단을 비롯해 총 10개의 스포츠단을 운영하고 있다. 정의선 부회장은 그런 할아버지의 ‘스포츠 DNA’를 가장 잘 이어받은 경우다. 아버지 정몽구 회장은 차남이지만 큰아버지인 정몽필 전 현대제철 회장이 딸만 남긴 채 1982년 불의의 사고로 사망하며 정 부회장이 장손 역할을 하게 됐다. 정 명예회장으로부터 밥상머리 교육을 받은 그는 현대가(家) 특유의 기질을 갖추는 동시에 자연스럽게 할아버지의 관심사였던 스포츠에도 눈을 뜨게 됐다.

스포츠에 대한 정의선 부회장의 관심이 본격적으로 커진 것은 기아자동차 사장이던 지난 2005년부터다. 할아버지와의 인연을 시작으로 아버지가 12년간 애정을 쏟아온 대한양궁협회의 9대 회장으로 취임한 이후 후한 포상과 아낌없는 지원을 펼쳤다. 전통적인 효자 종목인 양궁은 2000년대 들어 미국·중국 등의 거센 도전을 받고 있지만, 정 부회장의 통 큰 지원으로 여전히 금메달 밭을 만들고 있다. 2013년 1월 연임을 한 정 부회장은 현재 양궁협회에 60억원이 넘는 예산을 투입하고 있다. 기존 예산을 50% 이상 증액한 것이다.

단지 금전적 지원을 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바쁜 일정 속에서도 선수들의 훈련환경과 컨디션 조절에 큰 관심을 기울인다. 대표적인 사례가 2012년 런던올림픽이다. 당시 양궁 대표팀은 선수촌에서 생활해야 했는데, 경기장까지 1시간가량 이동해야 했다. 정 부회장은 그 소식을 듣고는 경기장 인근의 고급 호텔을 잡아 선수들의 이동 시간을 최소화했다. 또 기름진 영국 음식을 피하기 위해 한식당에서 만든 고급 도시락을 훈련장으로 날랐다. 올림픽·아시안게임 등에서 양궁 대표팀이 금메달을 차지하면 관중석에 있는 정 부회장에게 가장 먼저 달려가 안기는 것도 그 때문이다.


사람의 가치와 디자인, 스포츠 핵심과 맞닿아

스포츠에 대한 진심 어린 투자와 관심이 최근 가장 크게 향하는 곳이 전북 현대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전북 현대는 리그 우승도, 팬도 없는 지방의 그저 그런 구단이란 이미지가 강했다. 우승권에 근접해 있던 수원 삼성(삼성전자 후원), FC 서울(GS그룹 후원), 포항 스틸러스(포스코 후원), 울산 현대(현대중공업 후원), 성남 일화(통일그룹 후원)와의 경쟁은 언감생심이었다. 그랬던 것이 2005년 여름 최강희 감독이 부임하고, 2006년 AFC 챔피언스리그, 2009년 K리그 우승을 기적처럼 일구며 상황이 바뀌었다.

정몽구 회장의 뒤를 이어 구단주가 된 정의선 부회장은 전북 현대가 극적으로 구축한 1등 이미지와 축구의 글로벌 가치를 적극 이용하기로 마음먹었다. K리그 구단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지갑을 닫고 허리띠를 졸라맬 때 정 부회장은 공격적인 투자라는 정반대의 가치를 들고나왔다. 그 결과 전북 현대는 이적 시장에 나오는 좋은 선수들을 상대적으로 헐값에 영입할 수 있었다. 그들은 세계 최고 수준으로 평가받는 전북 현대의 클럽하우스에서 최강희 감독의 지도 아래 기량을 끌어올렸다. 그 결과가 2014년, 2015년 K리그 연속 우승이다. K리그에서 한 팀이 2년 연속 우승을 차지한 것은 2003년 이후 12년 만이었다. 이재성·김기희·권순태·이주용 등은 국가대표에 뽑히며 전북 현대의 위상을 알렸다. 좋은 선수들이 모여 만든 최고의 경기력을 보기 위해 관중들은 몰렸고, 전북 현대는 2015년 평균 관중 1만7000여 명을 기록해 흥행에서도 1위를 차지했다. 명실상부 K리그의 ‘1강’이 된 것이다.

2015 시즌을 마치고 전북 현대는 2년 연속 우승에 만족하지 않기로 했다. 2016 시즌의 목표는 K리그 3년 연속 제패, 그리고 10년 만의 아시아 정복이다. 엄청난 투자를 펼치는 중국과 중동을 넘어 AFC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따내기 위해 대대적인 선수 영입에 나선 이유다. 그 뒤에는 정의선 부회장의 신뢰와 지원이 있다. 전북 현대는 현재 K리그에서 유일하게 매년 꾸준히 예산이 증가하고 있는 팀이다. 현대자동차가 세계 시장에서 점유율을 끌어올리며 수익을 내기는 하지만, 스포츠단에 투자를 늘리는 데는 주주와 투자자들의 시선도 의식해야 한다. 그러나 정 부회장의 확고한 의지가 그런 장애물을 넘어서게 했다.

정 부회장은 재벌 3세들 중 가장 확실한 철학과 능력을 지니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선대가 이뤄낸 성과를 떠받치지 못하는 게 재벌 3세의 한계라지만, 정 부회장은 경영의 진화를 통해 현대자동차를 한 단계 끌어올리려 한다. 고급 브랜드 전략이 대표적이다. 기아자동차 사장 취임 후 ‘디자인의 기아’라는 아이덴티티를 새로 규정해, 인수 직후 골칫거리였던 기아자동차를 형님인 현대자동차 못지않은 위상으로 끌어올렸다. ‘정의선차’로 불리는 모하비와 K7은 대성공을 거두며 정 부회장의 경영 능력을 증명하는 힘이 됐다. 현대자동차로 와서는 고급 브랜드 제네시스의 론칭과 성공에 집중하고 있다. BMW·벤츠·아우디 등 유럽 자동차업계와 경쟁하기 위해서는 브랜드 가치를 한 단계 끌어올릴 필요가 있다고 판단해서다.

고급 브랜드 전략을 위해 정 부회장이 내건 핵심 콘텐츠는 사람의 가치, 그리고 디자인이다. 이것은 스포츠의 핵심과 맞닿아 있다. 기업 내 역량과 인재를 집중시키고, 소비자가 바라는 기준에 부합할 수 있는 퀄리티를 만들어내는 것은 스포츠에서 선수의 힘이 증대해 팬들을 확보하는 전략과 흡사하다. 디자인은 그런 소비자 심리를 극적으로 끌어내는 동기가 된다. 이런 정 부회장의 사고와 신념이 스포츠와 만나 이뤄진 결과물이 전북 현대의 명품 클럽하우스다. 300억원이 넘는 돈이 투입된 클럽하우스는 한국 스포츠의 롤 모델로 자리 잡았다. 세계 축구의 주류를 누구보다 잘 아는 슈틸리케 국가대표팀 감독마저 직접 보고 감탄했을 정도인 클럽하우스는 최신 시설과 시스템으로 무장했다.

현대자동차그룹 산하의 현대캐피탈 스카이워커스(배구), 기아 타이거즈(야구)에도 같은 지원이 이뤄졌다. 최근 산하 스포츠단에서 호성적이 나오는 것은 그런 전폭적인 지원 덕분이다. 전북 현대의 이철근 단장은 “당초 예정됐던 것보다 2년이 더 소요됐다. 정 부회장이 이왕 만드는 데 최고의 디자인, 최고의 소재, 최고의 시설을 투입하라고 지시해 설계가 변경되고 지원이 추가됐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2009년 K리그 우승 축하연 때 정 부회장에게 클럽하우스 건축을 부탁하며 꿈을 이뤄낸 최강희 감독은 “애초에 바란 것은 작은 숙소와 전용훈련장이었는데, 그 이상의 깜짝 선물을 받았다”고 말했다.

경기장에서 선수들과 함께 어깨동무

지난해 정의선 부회장은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FC 서울과의 원정 경기에 직접 나타나 전북 현대를 응원했다. 0-0으로 비기며 우승에 한 발짝 더 다가서자 경기 후 전북 현대 유니폼을 입고 그라운드로 내려가 선수들과 일일이 포옹을 하고 악수를 나눴다. 원정 응원을 온 팬과 서포터즈 3000여 명 앞에서는 선수들과 어깨동무를 하고 응원에도 동참했다. 빠듯한 일정 때문에 경기장에 직접 들르기가 힘들지만 우승에 가까워졌다는 소식에 시간을 쪼개 원정 경기에 동참했다. 지난 시즌 최강희 감독이 단일팀 최다승 기록을 세우자 직접 축하 인사를 하고 화환을 보냈다. 팀의 간판인 이동국이 전북 현대에서 100골을 기록하고 최근 예능 출연으로 유명해진 다섯째 대박이(이시안)를 얻자 현대자동차의 승합차인 스타렉스 리무진을 선물하기도 했다. 양궁에서 보여준 특유의 스킨십으로 격려한 것이다.

리그 2연패를 기념하는 축승연(祝勝宴) 자리에서도 정의선 부회장은 전북 현대에 대한 깊은 애정을 드러냈다. 당시 정 부회장은 몸살감기와 다음 날 빠듯한 스케줄로 참가가 어렵다고 통보했지만 마음을 바꿔 축승연 자리에 등장했다. 건배사를 하고, 코칭스태프와 선수들에게 폭탄주를 건네며 축하를 했다. 결국 마이크까지 잡고 애창곡을 불렀다는 후문이다. 적극적인 스킨십으로 내부의 진심을 잡고, 과감한 투자와 고급화 전략으로 외부의 관심을 사는 정 부회장의 리더십은 스포츠에서도 그대로 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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