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WC 2016의 주인공은 스마트폰 아닌 VR이었다
  • 스페인 바르셀로나 = 민보름 시사비즈 기자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03.02 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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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LG 등 한국 업체 주도로 모바일 기반 강화…대중화 앞둬
2월24일(현지 시각) ‘MWC 206’을 방문한 사람들이 관중석에서 삼성이 새로 선보인 VR 카메라 ‘기어360’을 테스트 하고 있다. © AP연합

스페인 바르셀로나 피라 그란비아(FiraGran Via) 전시장엔 사람들이 가득 찼다. 세계 3대 정보기술(IT) 전시회 중 하나인 ‘MWC(모바일월드콩그레스) 2016’이 열렸다. 전시 관람객들은 신제품과 체험행사에 눈이 팔렸다. 옆을 보고 걷다 부딪히는 사람도 많았다. 그중 가장 사람이 북적대는 곳은 삼성전자 부스 앞이었다. 이곳에서 가상현실(VR) 체험행사가 열리고 있었다. 삼성전자 체험관에서 VR 헤드셋(HMD)을 착용한 관람객들은 양팔을 올리며 비명을 질렀다. 이들은 가상현실 롤러코스터 체험을 하고 있었다. 행사 진행자와 체험단이 내는 소리로 전시관 전체가 시끄러웠다.

관람객들은 이름을 명단에 올려두고 차례를 기다렸다. 행인들은 입꼬리를 올리고 체험하는 사람들을 구경했다. 각국 방송카메라들도 이 모습을 담아 갔다. 한 이동통신사 관계자는 “이번 MWC 2016에서 가장 눈에 띄는 신기술은 VR”이라며 “사물 인터넷(IoT)이나 클라우드 서비스는 지난 해와 크게 변한 점이 없다”고 말했다. VR은 단순히 태동하는 차원을 넘어 대중화를 앞두고 있다. 게임회사 닌텐도가 처음 VR 헤드셋을 내놓은 지 20여 년이 지났다. MWC 2016에서 VR 시장이 나아가는 몇 가지 방향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삼성전자뿐 아니라 다양한 기업들이 VR기기를 부스에 두고 관람객을 기다렸다. SK텔레콤도 VR 체험 시설을 만들어 선보였다. 방문객들은 한 번씩 VR 헤드셋을 착용하고 고개를 좌우로 움직여봤다. 흥미로운 현상은 이들 부스에서 제공하는 헤드셋 대부분이 삼성전자 기어VR이었다는 점이다. KT 같은 국내업체가 아니더라도, 노키아(NOKIA)·브이타임(vTIME) 같은 외국 업체들 역시 기어VR을 이용해 방문객에게 체험을 시키고 있었다.

삼성 ‘기어360’, LG ‘360캠’ 등 선보여

삼성전자는 2014년 미국 오큘러스사(社)와 합작해 헤드셋 렌즈에 삼성전자 스마트폰을 장착하고 가상현실 동영상을 감상할 수 있는 기어VR을 출시했다. 지난해 11월에는 12만원대 보급형 제품도 나왔다. 최원석 KT 융합기술원 책임연구원은 “삼성전자 자체 인지도가 있는 데다 기기도 모바일 기반이라 이런 전시관에서는 오큘러스 제품보다 활용도가 높다”면서 “오큘러스 리프트는 PC(개인용 컴퓨터) 기반이라 다른 기기에 줄로 연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폴 할리우드(Paul Hollywood) 브이타임 제품 책임자는 “우리 회사 서비스는 여러 사람이 동시에 체험하도록 돼 있다”면서 “이 서비스 특성상 기어VR처럼 모바일로 된 기기를 사용하는 게 우리나 관람객 입장에서 모두 편하다”고 설명했다.

모바일 VR 기술은 한국이 주도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2월21일(현지 시각) 신제품 프리미엄 스마트폰 ‘갤럭시S7’을 공개하면서 VR 카메라 ‘기어360’을 내놓았다. LG전자도 같은 날 스마트폰 ‘G5’와 함께 VR 헤드셋 ‘LG VR’과 360도 카메라 ‘LG 360캠’을 선보였다. 이 제품들은 모두 선이 필요없는 모바일 상품들이다. 한 LG전자 임원은 2월23일(현지 시각)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개발팀에 지하철에서 착용해도 거부감이 없는 제품을 만들어달라고 주문한 상태”라며 휴대성을 강조했다. KT는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을 맞아 각종 경기 상황을 가상현실 영상으로 전 세계에 제공하기 위해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KT는 주최 측인 GSMA(세계이동통신사업자협회)가 마련한 이노베이션센터 내 부스에서 기어VR로 관람객들에게 스키점프 체험 영상을 360도 동영상으로 제공하고 있었다.

인간의 시점을 이용해 VR 콘텐츠를 조작하는 모바일 기반 기술도 한국 업체가 이끌고 있다. 이 업체는 원래 장애인이 시점을 이용해 타자를 치는 기술을 내놓았다가 시장이 더 큰 VR 분야로 진출한 사례다. 앞으로는 VR 시청자가 보는 시점을 데이터화해 광고나 콘텐츠를 개발하는 데 활용하는 서비스를 할 계획이다. 박재승 비주얼캠프 사장은 “삼성전자는 미국 포브(Fove)라는 기업에 투자한 것으로 안다”면서 “하지만 그 회사 기술은 PC 기반이라 모바일 기반 기기에는 우리 회사 기술이 더 유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비슷한 서비스를 시도하는 경쟁사가 생긴다고 하더라도 그 회사 역시 인간 눈의 초점에 맞춰야 기술을 완성할 수 있다”면서 “그 시간 동안 우리는 앞서 갈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스타트업 부스가 모여 있는 피라 몬주익(Fira Montjuic)에서는 두 부스가 가장 눈길을 끌었다. 방문객들은 줄을 서가며 콘텐츠를 감상하거나 명함을 받아 갔다. 이 두 회사는 영국에서 온 브이타임과 한국에서 온 ‘홀로디지로그(Holodigilog)’다. 브이타임은 최초로 사회적 관계를 맺을 수 있는 VR 관계망 서비스를 개발했다. 이 회사는 1인칭으로 콘텐츠를 감상하는 것에 불과하던 VR 서비스에 여러 명이 접속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다.

 

가상현실 서비스 기업 vTIME 기술을 체험하고 있는 방문객들. © 민보름 제공

“상대방, 홀로그램으로 불러올 수도”

실제 체험 공간에서 관람객 여러 명이 VR헤드셋을 끼고 자리에 앉으면 가상현실 공간에 이들이 함께 모여 있는 화면이 옆에 나왔다. 장소는 동굴에서 눈이 내리는 북극으로 바뀌었다. 이런 방식으로 헤드셋 착용자들이 함께 다른 장소로 이동할 수도 있었다. 어차피 장소는 가상으로 만들어진 공간이기 때문이다. 이 기술은 게임기술을 기반으로 만들어져 처음엔 소니 플레이스테이션 플랫폼을 통해 소개됐다. 할리우드 제품 책임자는 “VR 헤드셋만 착용하면 다른 공간에 있는 사람도 한 공간에서 만날 수 있다”면서 “우리 애플리케이션은 이미 소니 콘솔 게임이나 안드로이드 플랫폼을 통해 사용자에게 제공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홀로디지로그는 광운대학교 내 연구센터다. 이들은 센터 내에서 홀로그램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개발은 이미 완성 단계에 이르렀다. 이제 자본력을 갖춘 기업이 나서 기술을 고도화하는 작업이 남았다. 연구센터에서 개발한 기술은 기존 디스플레이에 필름을 붙이고 그 화면에서 나오는 빛을 쏘는 방식으로 3차원 영상을 구현하는 것이다. 따라서 VR 헤드셋이나 다른 장비가 없어도 사용자는 3차원 동영상을 감상할 수 있다.

홀로디지로그를 이끌고 있는 김은수 광운대 전자공학과 교수는 “VR은 1인칭 시점이라는 점과 기기를 착용하고 혼자 오래 콘텐츠를 감상하기 어려웠다는 한계를 갖고 있다”면서 “홀로그램 기술은 헤드셋 없이 여러 사람이 영상을 볼 수 있고, 연락하고 싶은 상대방을 홀로그램으로 불러올 수도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미래 홀로그램 기술은 출장 간 남편이 홀로그램으로 나타나 생일을 맞은 아내에게 꽃을 주는 식으로 현실에서 활용 가능한 수준에 이를 것”이라고 예측했다.

 

 

광운대학교 홀로디지로그 휴먼미디어연구센터 소속 김은수 교수(왼쪽)와 김승철 교수는 홀로디지로그라는 이름으로 피라 몬주익(Fira Montjuic)에 부스를 차렸다. © 민보름 제공

김은수 교수와 김승철 교수는 광운대 홀로디지로그 휴먼미디어연구센터 소속이다. 이들은 산업통상자원부와 미래창조과학부 지원으로 10년 간 3차원 영상을 연구해왔고, 3년 전부터는 홀로그램 기술을 개발했다. ‘MWC 2016’에서 부스는 작았지만, 몬주익센터 17번 부스 주변에서 가장 인기가 높았다. 기자는 두 교수를 인터뷰했다.

홀로그램을 연구하게 된 계기는?

김은수 VR 기술은 이미 예전에 완성 단계에 이르렀다. 하지만 눈에 피로감을 유발하고 기기를 써야 하는 단점이 있었다. 그래서 5분에서 10분 이상 감상하기가 힘들다. 그런 단점 없이 3차원 영상을 보여줄 수 있는 기술을 연구하게 됐다.

어떤 사람들이 연구하고 있나?

김은수 광운대학교에 연구센터가 있다. 그중 홀로그램 기술을 연구하는 연구원은 석·박사 과정까지 합쳐서 16명 정도다. 산업자원부와 미래창조과학부로부터 산학협력으로 자금 지원을 받고 있다.

홀로디지로그 기술이 다른 홀로그램 기술과 다른 점은?

김승철 기존 홀로그램은 주변에 거울 같은 판을 놓는 식으로 반사작용을 이용해 3차원 영상을 만들었다. 하지만 그런 방법을 쓰면 밝은 곳에선 거울이 보여 실감이 나지 않는다. 때문에 불이 어두운 곳에서만 영상을 보여줘야 했다. 우리 기술은 기존에 나온 디스플레이에 필름을 붙여 이런 제약 없이 사용할 수 있다.

김은수 어떤 물체가 벽에 있는 화면에서 튀어나오는 기존 3D 영상은 체감도가 떨어진다. 우리는 바닥에 디스플레이를 두고 영상이 그 위에 떠 있는 식으로 입체 영상을 보여주기 때문에 진짜 물체가 현실에 존재하는 느낌을 만든다.

이 기술이 어떻게 활용될 수 있나?

김은수 단지 콘텐츠를 3차원으로 구현하는 것을 넘어 현실에 존재하는 사람을 가상으로 불러올 수 있다. 그러면 출장 간 남편이 집에 있는 아내에게 나타나 꽃을 주는 일이 가능하다. 각기 다른 지역에 있는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여 회의를 할 수도 있다. 홀로그램이 실제 사물처럼 정교해지는 날이 오면 가상이 아니라 현실처럼 보이게 된다. 영화 <아바타>에서 보던 영상이 실제가 된다. 우리 삶이 완전히 달라질 것이다.

현재의 기술에서 한계나, 향후 더 발전해야 할 점이 있나?

김승철 지금은 상하 각도 45도 정도를 보여줄 수 있는데, 이것을 360도까지 높여야 한다. 하지만 기술 원리는 사실상 완성된 셈이다. 기업이 이 기술을 양도받아 상업화가 가능할 정도로 고도화해야 하는 작업이 남아있다. 실제 우리와 기술에 대해 협의 중인 곳도 있다. 고도화 작업이 빨리 진행되기를 바란다.

관심을 갖고 접근하는 기업이 많이 있나?

김승철 우리는 기술을 개발하는 것뿐 아니라 이 기술을 알려 상용화시키기 위해 국내 각종 전시회에 참가했다. 지난해부터는 CES(세계 3대 IT 전시회 중 하나)에도 참가하고 있다.

김은수 있긴 하지만 구체적으로 말할 수는 없다. 우리가 기술을 알리기 위해 CES에도 나가면서 외국 업체들도 연락을 하고 있다. 그러나 아무래도 외국 기업보다 한국 기업에 기술을 이전하는 게 좋다는 생각이다.

MWC 2016에 와서 인상 깊게 본 기업이나 경쟁자를 꼽는다면?

김은수 보시면 알겠지만 우리와 비슷한 기술을 보유한 곳이 없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관심을 받고 있는 것이다. 메인 건물(주 행사장인 피라 그란비아)에서는 VR이 인기인 것 같지만, 결국 홀로그램 기술이 발전하면 홀로그램이 대세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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