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 규정 어겨 사업 챙겨주고 선금도 미리 떼주고…
  • 이승욱 기자 (gun@sisapress.com)
  • 승인 2016.03.03 17:54
  • 호수 13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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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백억짜리 대구지하철 스크린도어 사업, 특혜·외압 시비로 얼룩

지하철 이용객의 자살 방지와 안전사고 예방을 위해 설치한 지하철 승강장 스크린도어(PSD) 설치 사업을 둘러싼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안전을 위해 설치한 승강장 스크린도어에 대한 안전성 논란이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서울시가 2015년 국정감사 때 제출한 ‘서울지하철 노선별 스크린도어 고장·장애 발생 현황’ 자료에 따르면, 서울메트로가 관리하고 있는 1~4호선의 경우 하루 평균 33건(2014년 기준)꼴로 PSD 고장 및 장애가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더욱이 시민 안전을 위해 설치한 PSD가 오히려 인명 사고를 야기하는 사례도 매년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 2월3일 오전 지하철 서울역에서 80대 할머니가 스크린도어 벽과 전동차 사이에 끼여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지난해 8월에는 지하철 강남역에서 스크린도어를 점검하던 기사가 사망하는 사고도 발생했다. 이런 가운데 올해 국토교통부는 총 1500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전국 광역철도에 PSD를 추가 설치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이를 통해 2017년까지 도시철도 90개 역, 광역철도 139개 역의 PSD 설치를 완료할 계획이다.

 

대구지하철 1·2호선 승강장 스크린도어 추가 설치 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사진은 논란이전에 설치된 대구지하철 반월당 환승역 스크린도어. ⓒ 시사저널 임준선

 


대구시, PSD 관련 공사 직원 3명 해임 요구

 


그런데 최근 전국으로 확대되고 있는 지하철 PSD 사업과 관련해 안전성 논란 외에도, 공사 발주 과정에서 특혜 의혹이 제기되는 등 또 다른 논란이 일고 있다. 최근 대구와 부산 등 일부 지역의 지하철 PSD 설치 사업자 선정 과정에서 불법성이 확인되는가 하면, 특정 업체를 밀어주려 한다는 외압 의혹까지 불거졌기 때문이다.

 

특히 대구시는 지난해 12월29일부터 두 달에 걸쳐 대구도시철도 1·2호선 PSD 설치 사업 전반에 대한 특별감사를 실시했다. 지난해 11월 대구도시철도공사(DTRO)가 발주한 PSD 사업을 둘러싸고 안전성 시비가 인 데 이어, 해당 시공사가 일괄 하도급 과정에서 부당한 이익을 챙긴다는 의혹이 제기된 데 따른 특별감사였다.

 

대구시는 2월26일 특별감사 결과를 확정하고 “대구도시철도공사가 업무 추진 과정에서 중대한 잘못을 저지르고 시공사가 불법 하도급을 한 사실이 밝혀졌다”면서 “해당 임직원 및 시공사를 법 규정에 따라 엄정히 처벌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대구시는 이에 따라 PSD 사업을 총괄한 대구도시철도공사 김 아무개 기술본부장(이사)과 업무 전반을 추진한 직원 2명(부장 1명, 차장 1명) 등에 대한 해임 처분을 대구도시철도공사에 요구하기로 했다. 또 업무 보조 직원 1명에 대해서도 견책 처분을 요구하기로 했다. 또 홍승활 대구도시철도공사 사장에게는 ‘주의’ 처분을 내렸다.

 

앞서 대구도시철도공사는 지난해 11월 공개입찰을 통해 대구도시철도 1호선 27개 역사의 PSD 설치 공사 사업을 285억원에 현대엘리베이터㈜에 맡기고, 2호선 22개 역사 PSD 설치 공사는 233억원에 현대로템㈜에 맡겼다.

 

문제는 대구도시철도공사가 PSD 설치 공사를 발주하는 과정에서 ‘시설 공사’가 아닌 ‘물품 구매’로 입찰한 것이 발단이 됐다. 시설 공사로 발주할 경우 발주 기관과 조달청이 공사에 필요한 기술들을 점검하는 ‘기술검토협의’를 거치지만, 물품 구매는 구매할 제품에 대한 규격만 확인하도록 돼 있다는 점을 악용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결국 시설 공사에는 엄격한 기준이 적용되지만 상대적으로 물품 구매는 그 과정이 느슨한 것이다.



 


하청업체 선정 과정에도 외압 의혹 제기돼

 


이 과정에서 현대로템은 경기도 소재 S사와 PSD의 설계·제작·설치 등 설제 시공의 대부분을 담당하도록 하는 턴키 방식으로 하도급 계약을 체결했다. 이는 발주처의 서면 승낙 없이 동일한 업종의 건설업자에게 하도급을 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는 건설산업기본법 제29조를 위반하는 행위다. 또 현대엘리베이터는 ‘자기상표부착제품 표준하도급 기본계약서’를 이용해 2개 업체와 하도급 계약을 맺어 지방계약법 시행령 92조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현대로템은 S사와 턴키 방식으로 하도급 계약을 체결하면서, 단지 공사만 수주한 채 전체 공사금액 233억원 중 56억원의 이익을 남기려고 한 것으로 대구시 특별감사 결과 드러났다. 대구시는 이에 따라 현대로템에 대해서는 형사 고발, 과징금 부과와 함께 영업정지 처분을 내리도록 관할인 경남 창원시에 통보하기로 했다. 또 현대엘리베이터에 대해서는 부정당 업자로 규정해 입찰 참가 자격 제한 조치를 내리기로 했다.

 

대구시 감사를 통해 대구도시철도공사의 부당한 업무 추진 과정이 일부 드러났지만 논란은 계속될 전망이다. 단순한 업무 오류라고 보기에는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사업자 선정 과정에서 석연치 않은 특혜 시비와 하도급업체 선정 과정에서 외압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대구도시철도공사는 2호선 PSD 설치 사업을 수주한 직후 현대로템에 대해 계약금으로 약 89억2000만원을 선급금으로 지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1차 공사비의 70%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업계에 따르면, 통상 공사 계약금으로 전체 공사비 대비 10~30%를 지급한다. 이는 관련 행정자치부의 예규(제40호)에도 어긋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지방자치단체 입찰 및 계약집행기준에 의거해 선금을 지급할 수 있지만, ‘물품 구매’는 적용에서 제외한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현대로템과 S사로부터 2호선 PSD공사의 재하도급을 받은 대구 지역 소재 업체 선정 과정에 외압 의혹이 제기되면서 논란은 더욱 커졌다. 현대로템이 하도급업체로 선정한 경기도 소재 S사가 재하청을 준 대구 지역 절곡(切曲) 전문업체인 S업체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대구도시철도공사 고위층이 개입했다는 의혹이다. 실제 S업체는 S사와 PSD 관련 사업 수주를 협의해오던 PSD 구조물 제작업체인 E사를 제치고 S사의 하도급업체로 선정됐다.

 

대구시는 특별감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하도급 과정에서 각종 외압 의혹에 대해, 낙찰자가 결정된 후 도시철도공사 경영진이 특정 지역 업체를 배려해달라는 청탁을 한 사실은 확인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지역경제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이라는 시의 경제정책 방향과 부합해 문제 삼기 어렵다”고 결론 내렸다. 현대로템 측도 특별감사 과정에서 “특허가 없는 업체도 입찰 자격을 모두 부여하는 등 하도급업체 선정 과정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해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조달청이 업체 선정 과정에서 ‘설계내역서와 제작 도면이 누락됐다’며 두 번이나 보완을 요청했다. 그런데도 대구도시철도공사는 낙찰자 선정 방법을 변경하지 않았고 자체 감사 과정에서도 원가계산 내역서에 첨부된 도면이 대구도시철도 1·2호선의 설치 대상 도면이 아닌 것을 인지했지만 시정하지 않은 점 등 사업 추진 과정에서 석연치 않은 대목이 적지 않게 드러났다. 이에 따라 대구시는 공사비 원가 계산 과정과 불법 하도급을 방치하는 과정에서 대구도시철도공사 측의 부적절한 행위가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수사기관에 수사를 의뢰하기로 했다. 향후 수사 과정에서 공사 직원의 개입 등 비리 혐의가 드러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인 셈이다.

 

 

서울메트로가 관리하는 서울지하철 1~4호선 구간의 스크린도어 고장 및 장애 발생은 2014년에만 연간 1만2134건이었고, 하루 평균 33건꼴로 지하철 승강장 스크린도어(PSD)에 문제가 생겼다. 이로 인한 유지·보수 비용은 한 해 평균 1개 역사당 7200만원에 이른다. PSD의 내구 수명을 30년으로 감안하면, 설치비용 대비 2배 정도가 소요돼 ‘돈 먹는 하마’로 혈세가 낭비되고 있는 실정이다.

 

시민 안전을 담보하기 위해 반드시 PSD에 대한 안전을 좀 더 정량적이고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국제 안전 규격인 안전 무결성 수준 SIL(Safety Integrity Level) 인증을 받은 제품이 설치돼야 하는 이유다.

 

현재 공공기관(발주 기관)은 국제안전규격(SIL)에 대한 지식이 없거나 그것을 적용할 의지가 없어 국제기준에 준해 설계 및 발주를 하지 않고 오로지 기능과 가격에만 맞춰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는 오히려 ‘시민 안전’을 위한 시설물이 아니라 ‘시민 안전’을 고려하지 않고 행정기관의 편의에 따라 구매 일정을 맞춰 설치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막대한 혈세가 투입되고서도 실제 그 효과에 대한 의문이 계속 제기되는 상황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PSD 사업을 수주한 업체들은 ‘작동 기능’과 ‘가격’에만 맞춰 납품하고 있다. 결국 향후 설치비보다 많은 유지·보수 비용을 지급할 ‘악순환’ 구조가 만들어진 셈이다.

 

PSD는 전기 및 전자회로 시스템에 의해 작동되기 때문에 만약 수주업체가 안전을 고려하지 않고 제작하면 소프트웨어와 전자파 등 외부 환경에 의해 오동작 및 잦은 고장이 발생할 수 있다.

 

오동작 및 잦은 고장의 원인은 ‘제작 후 문 열고 닫음 100만회 기준’(KRS 한국철도표준기준)만 통과하면 되기 때문에 국제안전규격(SIL) 인증처럼 설계 단계, 적정 부품 선정, 제작, 설치 등 전 과정에 대한 안전성 적합 여부를 확인하지 않고 설치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특히 스크린도어의 고장률을 낮추기 위해선 가장 큰 고장 원인이 되고 있는 스크린도어 감지 센서의 품질부터 높여야 될 것이다.

 

대다수 국가에서는 PSD 설치 때 SIL 인증을 받은 제품을 사용하는 것이 ‘의무화’돼 있는데 국내에서는 PSD가 ‘안전시설’이 아닌 ‘일반 구조물’로 분류돼 안전 사각지대로 놓여 있다. 이에 따라 시민 안전을 위해 빠른 ‘법률 개정’이 필요한 사항이다.

 

고장이 나면 대형 인명 사고가 발생할 수 있는 중요한 구조물이지만, 처음부터 안전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설치가 진행되고 있는 것을 이대로 둘 수 없다. 중앙정부가 하루빨리 구체적인 스크린도어 안전 기준을 설정해 더 이상 ‘국민 안전’이 방치되도록 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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