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의 기본은 ‘잃지 않는 것’이다”
  • 박혁진 기자·이예원 인턴기자 (phj@sisapress.com)
  • 승인 2016.03.03 18:22
  • 호수 13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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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투자 전문가 송승욱 ‘노바’ 회장이 말하는 불확실성 시대의 투자법

서울시 강남구 삼성동 주택가가 내려다보이는 건물 10층에 위치한 투자자문사 ‘노바’ 사무실. 100평은 족히 넘을 것 같은 사무실은 의외로 정적(靜的)이었다. 지난 1월 개봉했던 영화 <빅쇼트>에는 월스트리트의 투자자문사가 여러 곳 등장하는데, 대다수 직원이 헤드셋을 착용하고 듀얼모니터를 바라보며 분주하게 일했다. 비슷한 그림을 머릿속에 그리며 들어갔으나, 정반대의 풍경이 펼쳐져 있어 약간 당황했다. 노바 송승욱 회장(63)의 사무실에서는 아예 클래식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사무실 어느 곳에서도 냉철한 투자가의 흔적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사무실 한쪽 벽에 놓인 각종 상패들만이 송 회장의 30년 투자 인생을 짐작하게 했다.

 

ⓒ 시사저널 임준선

 


“‘중위험·중수익’으로 포장된 투자 상품 위험”

 

그의 독특한 투자철학을 접하고 나서야 이 사무실의 ‘정중동’(靜中動)을 이해할 수 있었다. 송 회장은 LG건설 상무, 미래에셋 파트너스 CEO(최고경영자) 등을 거친 투자 전문가로, 부동산과 주식시장에 이름이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재계 유명 인사들의 개인 자산관리도 그의 전문 영역 중 하나다. 그는 당장의 수익보다는 미래의 가치, 높은 이익보다는 가진 것을 잃지 않는 투자 원칙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대다수 투자자문사와 다른 방향을 걷고 있다. 투자자문사들이 무모할 정도로 공격적 성향을 띠고 있다면, 그는 가진 것을 지켜야 한다는 다소 방어적 전략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새롭다’는 뜻의 라틴어 ‘노바(NOVA)’를 회사 이름으로 한 것도 비슷한 이유에서다. 따라서 그는 성급하게 움직이기보다는 시간을 갖고 투자 대상의 미래 가치를 연구하고 또 연구한다. 이것이 이 사무실에 흐르는 ‘정적’ 분위기의 바탕이라고 기자는 판단했다. 송 회장은 특히 요즘과 같이 금융 및 주식시장이 불안정할 때는 이런 원칙이 더욱 중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투자의 기본은 ‘잃지 않는 것’입니다. 자기의 자산을 지키지 못하는 투자는 투자가 아니라 도박이죠. 지금은 투자를 할 때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High Risk, High Return)’보다는 ‘로 리스크(Low Risk)’에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저성장과 저금리 기조 속에 국내외적으로 여러 불확실성 요인이 얽혀 있는 상황에서, 무모한 투자는 원금 손실로 이어질 가능성이 큽니다.”

 

송승욱 회장이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이유는 30년간 투자업계에서 일하며 그 업계의 속성을 너무나 잘 파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는 요즘 같은 시대에는 금융회사들이 심어놓은 ‘선악과’를 조심해야 한다고 말한다. ‘중(中)위험·중(中)수익’과 같은 달콤한 말로 표현된 투자 상품들이 그것이다. 고(高)위험 상품보다는 위험도를 낮춰서 마치 리스크와 수익 간 ‘황금률’을 맞춰놓은 것 같지만, 여기에 넘어가면 지금까지 키워온 자산들이 한순간에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이 송 회장의 판단이다.

 

“금융회사들이 이른바 ‘중위험·중수익’이라 일컫는 ELS(주가연계증권)·DLS(파생결합증권) 등을 과도하게 발행하고 있습니다. 5%, 6% 정도의 ‘적정한 수익’을 원하는 많은 투자자로부터 상당한 판매를 이끌어냈지만, 금융시장이 불안정해 대량 원금 손실 사태로 이어질 가능성이 커 보입니다. 2008년 국내 중소기업들의 연쇄부도를 야기한 ‘키코(KIKO) 사태’와 비슷한 양상으로 흘러갈 개연성이 충분합니다. 현재 ELS가 100조원 정도 팔렸는데, 10배 이상의 손실이 날 것으로 봐요. 시장이 불안정하고 저금리가 지속되는 상황에서 이를 매력적인 투자 상품인 것처럼 호도하는 건 잘못된 일입니다.”

 

이런 유혹에 빠진 사람들의 대다수는 자신들이 해온 투자에 대해 지나친 자신감을 갖고 있다. 송 회장은 가진 것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자신이 이룬 ‘부(富)’가 과연 실력에 의한 것이었는지, 운에 의한 것인지 냉철하게 따져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를 바둑알을 무작위로 뽑는 것에 비유해 설명했다. 첫 번째로 뽑은 색깔의 바둑알이 계속 나올 거란 보장은 없다는 것이다.

 

“‘가격’만 보면 투기, ‘가치’를 보면 투자”


“운이 좋으면 두 번째, 세 번째도 같은 색이 나올 수 있겠지만, 운이 좋아 몇 번이지 여러 번 반복되면 결국 확률의 지배를 받아 성공률이 급격히 낮아집니다. 자기에게 운이 왔을 땐 그 운을 실력으로 착각하지 말고 위기관리에 돌입해야 하죠.”

 

투자에 작용하는 운을 자신의 실력과 구분하되, 투기적인 투자를 조심해야 한다는 얘기다. 송 회장은 투자를 할 때 ‘가격’을 보면 투기, ‘가치’를 보면 투자라고 설명했다. 이젠 담보 가치가 아닌 미래의 수익 가치를 봐야 할 시점이며 지금 눈앞에 보이는 가격보다는 앞으로 어떤 산업이 성장할 것인지를 찾는 게 투자의 핵심이라는 것이다. 그는 주식 또한 현재 수익이 많이 나는 캐시카우(Cash Cow)보다는 미래 성장 가치를 찾아볼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송 회장은 “구글이나 페이스북, 애플 등 굴지의 기업들은 모두 성장 가치에 의해 커왔다”며 “주변 사람들이 하는 투자에 휘말리지 말고 과연 10년 후에도 이 산업이 성장해 있을지 고민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미래 산업 가치에 대한 확신이 없는 투자자들은 이른바 계량적인 분석을 토대로 한 숫자에 의존하기 쉬운데, 송 회장은 이를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밸류에이션(기업 가치 평가) 등 투자에 사용되는 숫자는 어떤 가정하에서 만들어졌는지에 따라 결과 예측이 매우 달라지기 때문에 쉽사리 받아들여선 안 된다는 것이다. 그는 “가정이 검증 안 된 숫자는 그림에 불과하다”며 “숫자를 조금만 바꾸면 수익률이 확 올라가는데, 이는 말장난과 다를 바 없다”고 말했다. 숫자에 의존하기 전에, 국내외 시장의 흐름을 먼저 보고 그다음에 성장 가능성이 있는 산업과 기업을 짚어내는 게 올바른 순서라는 것이다.

 

투자업계에서 30년을 근무한 ‘베테랑’ 투자가이지만, 송 회장은 “나에게도 투자는 어느 것 하나 편안한 게 없다”고 했다. 한 건, 한 건이 새롭고 항상 리스크가 따르기 때문이다. 그는 투자를 하려면 통찰력과 용기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세상이 어떻게 변하는지 큰 그림을 볼 수 있는 통찰력, 용기를 갖고 자신의 선택에 확신을 가질 수 있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며 “잘된 투자든, 미흡했던 것이든 지난 경험을 통해 반성하고 조금씩 나아가는 과정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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