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호기심에서 놀라움으로…“사람 갖고 노나, 소름 끼친다”
  • 이민우 기자 (mwlee@sisapress.com)
  • 승인 2016.03.10 10:54
  • 호수 1378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세돌 VS 알파고, 승리 확신하던 바둑 고수들 경기 기울자 “실수마저 계산된 것이냐” 탄식

“실수였을까, 비수였을까.”

 

그들의 표정이 한 순간 굳어졌다. 그들의 눈동자에는 ‘삶의 희비가 담겨 있다’는 가로 세로 각 19줄의 바둑판이 담겨 있었다. 어느 누구도 섣불리 말문을 열지 않았다. 어색한 침묵이 이어졌다.

 

3월9일 이세돌 9단과 인공지능(AI) 컴퓨터 ‘알파고’의 첫 대국을 지켜보던 바둑 국가대표팀의 화기애애했던 분위기는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알파고가 우변 흑집에 침투한 순간이었다. 결과적으로 알파고의 102수는 승패를 결정짓는 ‘묘수(妙手)’였다.

 

이세돌 9단이 3월10일 서울 광화문 포시즌스호텔에서 열린 알파고와의 1국에서 첫 수를 두고 있다. ⓒ한국기원

‘미지(未知)’의 알파고에 대한 의문의 시선들


대국이 시작되기 전, 서울 성동구 마장동의 한국기원에 모인 바둑 관계자, 시민들의 모습에는 한껏 여유로움이 가득했다. 승패에는 큰 관심이 없었다. 알파고의 승리를 예상하는 건 바둑을 모르는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치부했다. 앞서 한 설문조사에서 이 9단과 알파고의 승리를 점치는 시민은 반반으로 나뉘었다.

 

그들의 관심은 오직 ‘미지의 영역’인 알파고였다. 알파고가 어느 정도 수준의 바둑을 선보일지에 집중됐다. 일을 하루 쉬고 한국기원을 찾았다는 김주년(남·40)씨는 “바둑은 경우의 수가 사실상 무한대”라며 “바둑은 인공지능이 하기 어려운 영역이라 인간을 넘어서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바둑 동아리에서 활동하는 대학생 이재복(남·24)씨도 “이세돌 사범님이 이길 것”이라며 “알파고 실력이 궁금할 뿐”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대국이 시작되자 분위기는 급반전됐다. 경기 초반부터 강하게 몰아붙이는 알파고의 기세에 다들 긴장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한국기원을 찾은 시민들에게 대국을 해설하던 이현욱 8단은 대국이 시작된 지 40여분 만에 “기계가 이럴 수 있나. 인간이 두고 있는 것 같다”며 “너무 소름끼친다”고 평가했다.

 

알파고 실수에 “기계도 실수…컴퓨터 과부하 걸렸나”


이 9단도 인간이었다. 그 또한 알파고의 실력을 알 수 없었다. 그는 경기 초반 정석대로 진행하지 않았다. 마치 알파고의 실력을 확인하려는 듯 변칙수를 썼다. 이 9단은 특유의 공격성을 보이며 밀어붙였지만, 알파고 또한 전형적인 방법으로 응수했다. 강(强) 대 강의 대결이었다.

 

“자신이 불리할 때는 정석대로, 유리할 때는 실수가 많이 나오는 것 같다.” 대국을 지켜보던 최명훈(프로 9단) 국가대표팀 코치는 알파고에 대해 이렇게 분석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알파고에 대한 평가에 온 관심이 집중됐다.

 

이현욱 8단은 대국이 시작된 지 1시간50분가량이 흘렀을 무렵 알파고의 실수가 나오자 “컴퓨터에 과부하가 일어난 게 아닌가”라며 “사실상 승부가 기울었다”고 했다. 프로 기사의 대결에선 사실상 경기를 뒤집기 어렵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기계는 실수하지 않는다’는 일반 상식을 뒤엎고 가볍게 인간의 승리로 기우는 듯 했다. 

 

바둑 국가대표팀 선수들이 3월10일 한국기원에서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경기를 보며 내용을 분석하고 있다. ⓒ시사저널 고성준

이세돌 돌 던지자 “실수마저도 계산된 것이었나” 탄성


대국 3시간이 흐르던 무렵부터 장내 분위기는 얼어붙었다. 스크린을 통해 전해져오는 이 9단의 표정에도 밀리는 기세가 역력했다. 방청객들은 승부처가 된 102수에서 이 9단이 다음 수로 ‘묘수’를 찾아낼 것으로 기대했지만 보기 좋게 빗나갔다. 이현욱 8단은 “이세돌 9단이 경기를 뒤집기 힘들 것 같다. 사실상 패배했다”고 밝혔다. 그러자 기원에 모인 시민들 사이에서는 ‘아이고’라는 탄식과 함께 한숨이 터져 나왔다.

 

한상문(남·70)씨는 “이 9단이 컴퓨터(알파고)에게 질 거라 생각하지 못했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김영수(남·78)씨는 “알파고가 아니라 알파고를 만든 인간이 이긴 것”이라고 평가했다. 김성룡 9단은 “알파고의 실수도 계산된 것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실수일 수 있지만 경우의 수를 없애고 결국 이기는 수를 둔 것”이라면서 “사람을 갖고 논 것과 다름없다. 소름 끼친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세계 바둑 최강자인 이 9단은 대국이 끝난 뒤 작은 웃음을 터뜨리며 말문을 열었다. 이 9단은 “초반의 실패가 끝까지 이어졌다. (알파고가) 이렇게 바둑을 둘 줄 몰랐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굉장히 즐겁게 뒀고, 첫판을 졌다고 흔들리지는 않는다”며 자신감 넘치는 모습을 유지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