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자의 기억 심리부검] “더 이상 짐이 될 수 없다”
  • 서종한 | 프로파일러 (사이몬프레이저대학 정신건강법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03.10 20:16
  • 호수 13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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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대 노부부의 동반 자살…남편 이어 부인까지 병 걸리자 ‘죽음’ 선택

제주시 용담동 단독주택에서 살던 60대 후반의 노부부가 사망한 채 발견됐다. 남편은 옷장 사이에 끈을 고정해 목을 맨 상태였고, 부인은 안방 침대에 가지런히 누운 채 있었다. 남편은 손목을 그어 자해를 했던 것으로 보였다. 거실 바닥 여기저기에 발자국 형태의 혈흔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사망 당일 돈을 받기 위해 온 사채업자가 안에서 TV 소리가 나는 것을 보고 근처 열쇠공을 불러 강제로 문을 따고 들어간 것이다. 눈앞에 펼쳐진 상황에 깜짝 놀란 사채업자가 119에 신고를 했고 구급대원이 심폐소생술을 한 끝에 부인만 구사일생하게 됐다. 거주지 주변 빈 폐가 건물로 평소 학생들이 담배도 피우고 술도 마시러 오는 곳일 정도로 사람의 왕래가 거의 없던 곳이었다.

 

이 부부는 40대에 같은 직장에서 만나 뒤늦게 결혼해 25년을 함께 생활해왔다. 주변에서 부부 금실이 좋기로 소문난 사이였다. 하지만 1년여 전부터 남편이 평소 좋지 않던 간이 악화돼 간경화 진단을 받아 일을 쉬게 되면서 생활고에 시달리게 됐다. 부인이 남편 병수발을 하느라 수입이 전혀 없게 되자 먹고살기 위해 사채업자와 3금융권에서 돈을 빌렸다. 5000만원이라는 거액이 빚으로 고스란히 남게 된 것이다. 남편 몸이 나을 기미를 보이지 않고, 생계마자 힘들어진 부인으로서는 더 살아봐야 좋은 꼴을 보지 못할 것이라는 절망감에 점차 빠져들었다. 그러던 중 부인이 건망증이 심해지고 머리가 둔해지는 느낌을 받아 가까운 병원을 찾았는데 알츠하이머 증상이 왔다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진단을 받게 됐다.

 

ⓒ 일러스트 임성구

살아난 부인이 치료를 받고 퇴원한 후 그녀를 만나 자초지종을 들을 수 있었다. 처음에는 선뜻 만나주려 하지 않았지만 자신의 기구한 이야기를 세상에 들려주고 싶다며 용기를 냈다. 그녀가 오갈 데 없게 되자 복지센터에서 임시로 거주할 곳을 마련해줬고 그곳에서 그녀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더 살아봐야 좋은 꼴 볼 일도 없고…”


“처음에는 남편에게 죽자고 했다. 치매가 왔으니 더 이상 당신을 돌볼 수 없다고 했다. 누워 있던 남편이 나의 말을 듣고 울기 시작하더라. 자기 때문에 고생해서 병이 왔다고. 내 손을 잡고 미안하다고 하더라. 한참을 말없이 서로를 바라만 보다가 남편이 입을 뗐다. 같이 죽자고. 그때부터 자살을 계획했다. 앞으로 더 살아봐야 좋은 꼴 볼 일도 없고 함께 죽을 수도 없는 날이 올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서로에게 더 이상 짐이 될 수 없었다.”

 

“남편이 먹던 진통제와 수면제를 모으기 시작했다. 그리고 죽을 날을 2월15일 결혼기념일로 잡았다. 그렇게 모은 수면제가 100알은 족히 됐다. 지금으로부터 딱 한 달 전 서로 수면제를 나눠 먹고 연탄불을 피웠다. 그렇게 자살을 시도했지만 남편이 견딜 수 없어 창문을 열어 죽지 않고 다음 날 깨어났다. 다시 한 달 후 죽기로 결정했다. 그사이에는 집에 있던 가구나 전자제품을 중고 가게에 내다 팔아 쌀과 식료품을 구입했다. 이번에는 확실히 하기 위해 남편이 먼저 나를 목 졸라 죽이고 그다음에 따라오기로 했다. 그랬는데 남편만 가고 나 혼자 남게 된 것이다. 슬프고 남편이 보고 싶을 뿐이다.”

 

부인은 남편과 결혼한 후 항상 같이 다니며 함께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했다. 서로를 의지한 채 힘든 일도 견뎌내며 하루하루를 살았다. 남편의 가족들과는 왕래가 거의 없었다. 남편이 어릴 때부터 말썽을 많이 피우고 술도 많이 먹고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를 많이 주는 바람에 부모도 그를 내놨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친가나 친척들 간에 왕래가 거의 없었다. 잘살지 못하는 집에서 막내로 태어나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무작정 상경했다. 시체 닦는 일을 비롯해 허드렛일을 하며 여기저기 공사판에서 막노동을 했다. 저녁에는 친구들과 모여 술을 먹었고, 주변 사람들과 주먹다짐은 다반사였다. 그런 그가 늦게 만난 지금의 부인 때문에 술을 끊고 싸움도 하지 않았다. 가족 내력으로 남편 쪽 집안사람들은 간이 좋지 않았다. 그의 아버지도 간경화로 일찍 죽었다. 하나뿐인 여동생도 그가 죽기 전 간 이식 수술을 받았다. 하지만 집안에 특별한 정신 병력이 있거나 자살한 가족은 없었다.

 

그는 평소에 말이 거의 없었다. 감정을 표현하는 일이 없었다. 과묵하지만 늘 부인의 말을 끝까지 듣고 웃음 지으며 잘해주려고 했다. 부인 말을 잘 받아주고 경청해주고 잘 따라줬다. 결혼 이전에 있었던 충동적인 성격도 없어졌고 평소 감정기복도 거의 없었다. 둘 다 등산을 좋아해서 가까운 산을 자주 오르곤 했다. 결혼하고 나서도 쭉 함께 공장에서 일을 했다. 같은 조여서 늘 붙어 다녔고 장을 보러 갈 때도 손을 잡고 같이 갈 정도였다. 하지만 그들의 주변에는 친구가 없었다. 하루 종일 공장에서 일을 하고 저녁 늦게야 집에 돌아왔다.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는 친구도 없었다. 오로지 서로에게는 남편과 부인뿐이었다. 노부부의 짧은 유서 내용이다.


“주변 사람에게 누를 끼쳐 죄송합니다. 집 주인 아저씨께 죄송합니다. 가까운 경찰서로 신고해주세요. 저희는 자식이 없습니다. 저희가 소유하고 있던 재산은 돈을 빌린 사람들에게 돌려주십시오. 방세를 내지 못해 죄송합니다.”

 

남편의 질병으로 생계가 힘들어지면서 경제적인 어려움에 봉착했다. 그리고 부인도 알츠하이머 증세가 심해지면서 더 이상 일을 하지 못했다. 입버릇처럼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남편이 이야기했다. 자살에 대한 관념과 의지가 뚜렷했다. 하루하루 불안감이 엄습했다. “이렇게 굶주려 죽으면 어떡하지”라는 생존에 대한 두려움이 이어지면서 스트레스를 받았다. 본능적 불안과 두려움이었다. 공장 일도 그만두면서 그나마 알고 지낸 사람들과도 헤어졌다. 친가와 관계가 단절돼 누구 하나 도움을 받을 사람이 없었다. 갇혔다는 느낌, 바로 외로움이다. 더 이상 살아가야 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 가장 치명적인 절망감과 무망감(無望感)이 무거운 삶의 어깨를 더 짓눌렀다.

 

서울 종로구 인사동에 노인들이 모여 있다. ⓒ 시사저널 사진자료

 


부모·자녀 동반자살, 동양 집단문화 특성

 

이 노부부의 동반자살은 위계력이 없는 상태에서 동반자가 자살 의도에 대한 명확한 의지를 갖고 공동으로 모의해 결행한 것이다. 동반자살은 크게 ‘가족 내 동반자살’과 ‘가족이 아닌 관계’에서의 2인 이상이 공모해 함께 죽는 것으로 구분할 수 있다. 가족인 경우 흔히 부부이거나 부모와 성인 자녀가 함께 의지를 갖고 자살을 선택하는 상황이 다반사다.

 

하지만 필자의 책 <심리부검: 나는 자살한 것을 후회한다>에서 보면 상대방이 자살 의지가 있다손 치더라도 자살자가 이를 적극 부추겨 결행이 이뤄지게 되면 살인 후 자살(murder-suicide)이라고 보는 것이 바람직하다. 미국자살예방협회 회장이었던 래니버먼도 이 점을 강조하며 살인과 자살을 구별해 사용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대개, 가족 내 자살은 젊은 연령대의 경우 부모가 자녀를 살해한 후 자살하는 사례가 많고, 우리의 노부부처럼 부부 중 한 명(주로 남자 배우자가 살인의 역할)이 다른 배우자를 먼저 죽이고 이를 확인한 후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다. 언론에 보도된 자살 사건과 2013년 경찰청 자살 통계 자료를 보면, 부모와 자녀의 동반자살이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가해자가 부모인 경우가 가장 많았고, 피해자는 반대로 의사결정 능력이 없었던 나이 어린 초등학생(12세 이하)이었다. 필자가 2013년 실시한 심리부검 연구에서 가장 큰 원인으로는 경제적 빈곤이 우세하게 나타났다.

 

흥미로운 점 하나는, 부모와 자녀의 동반자살은 미국이나 캐나다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고, 집단주의 문화 특히 동양 사회에서 종종 발생하는 독특한 문화적인 현상이라 볼 수 있다. 서구 개인주의 사회와는 달리 유교적 의식과 공동체적 이데올로기를 가지고 있는 한국 부모가 자녀를 별개의 인격체가 아닌 자신의 부속물로만 생각하는 경향이 아직도 강하게 남아 있다. 물론 한국 사회의 사회지원망과 사회복지 체계를 불신하기 때문에 홀로 남겨진 자식이 제대로 클 수 있을지에 대한 걱정도 그 원인 중 하나다. 그 기저에는 ‘헬조선’이라는 한국 사회에 대한 강한 불신이 담겨져 있다. 단순히 자살을 위해 살인한 가족에 대한 엄격한 법 적용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위 사례처럼 특히 65세 노인이 포함돼 동반자살을 하는 경우 살인 후 자살이 이뤄지는 것이 보통인데, 근력이 있는 남성이 여성을 살해하고 자신도 목숨을 끊는 경우다. 노인 가족 동반자살의 가장 큰 원인 중 하나는 신병 비관과 생활고인데, 배우자가 병간호에 지쳤거나 자식에게 부담되기 싫은 점 등 건강과 경제적 문제, 부양 문제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

 

무엇보다도 노인 가족 동반자살은 주로 간호를 하던 노인이 배우자의 건강이 호전되기를 기대할 수 없어 절망했을 때 발생하거나 부차적으로 자신의 질병이 악화되는 경우 더 자주 발생한다. 더 큰 문제는 젊은이와는 달리 노인들은 대인 관계가 빈약해지거나 가족 간의 관계가 와해되면서 자연스럽게 그들의 자살 징후나 암시를 직접적으로 감지해내지 못하는 경우가 잦아지는 것이다. 이런 점은 노인 부부가 있는 자식이나 주변 사람들이 특히 대상자가 경제적인 어려움과 질병에 놓여 있는 경우 주의 깊게 살펴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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